두산 베어스 No.83 | |
이광우(李光雨 / Kwang-woo Lee) | |
생년월일 | 1965년 3월 14일 |
출신지 | 전라북도 익산시 |
학력 | 군산초-군산중-군산상고-원광대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1989~1991) OB-두산 베어스(1992~2001) LG 트윈스(2002) |
지도자 |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2003) KIA 타이거즈 잔류군 투수코치(2003~2007) KIA 타이거즈 재활코치(2007~2009) 성균관대학교 투수 인스트럭터(2010) 화순고등학교 감독(2011~2013)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2014)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2014)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2015) 두산 베어스 잔류군 투수코치(2016~ )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0번 | ||||
김준환 (1982~1988) | ➡ | 이광우(1990~1991) | ➡ | 박노준 (1992~1993) |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11번 | ||||
계형철 (1982-1991) | ➡ | 이광우 (1992-2001) | ➡ |
1 소개
전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LG 트윈스의 투수였으며,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재활군 투수코치이다.
현역 시절엔 쓰리쿼터 투구폼으로 직구-슬라이더의 투피치 투수로, 주로 미들맨과 임시 선발을 오고가던, 돋보이진 않지만 소속팀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던 투수였다. 포크볼을 던지기 위해 검지와 중지 사이를 5mm가량 찢는 수술을 감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 선수시절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으로 군산상고 졸업생이다. 동기로는 정명원 등이 있다. 1984년 청룡기에서 군산상고가 우승할 때 최우수 선수도 그였다.[1]
동기인 정명원과 같이 원광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을 했는데, 호남 연고 팀인 해태 타이거즈는 1차 1순위로 그를 지명했다. 동기인 정명원이 태평양 돌핀스에서 2차 2라운드에 지명된 걸 보면 크게 선전한 셈.[2]
원광대학교를 졸업하고 1989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해서 선수로 뛴다. 그런데, 입단 동기인 이강철이 10승을 거두고 조계현이 1990년대 최고의 에이스가 되었으나, 이광우는 1989년 4점대 방어율을 올린다. 결국 1990년 5.91, 1991년 6.16으로 거하게 말아먹고 박노준을 상대로 OB 베어스에 트레이드됐다.
OB 베어스로 간 첫 해에는 4.51로 부진했으나, 1993년과 1994년에는 좋은 성적을 거둔다. 다만, 이시기에 항명 파동에 연루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부터 방어율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서, 2000년에 찍은 3.70을 빼면 4점대 5점대 방어율을 올렸다... 2000년에는 11승 3패 1세이브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리고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10승대 성적이다.
하지만 2001년에 2승 3패 평균자책 5.40이라는 그저그런 성적을 내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그 후 LG 트윈스에 입단했지만... 1군 4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1.81로 거하게 불만 지르고 은퇴한다.
통산 성적은 66승 65패 15세이브, 방어율 4.46.
3 은퇴 이후
2003년 친정 팀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선임되어 2007년까지 잔류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07 시즌 중 재활코치로 보직이 변경됐고, 2009 시즌 후 김종모 수석코치와 같이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다.
그 후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의 투수 인스트럭터를 거쳐서 화순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2013년까지 맡았다.
2014년 두산 베어스 2군 투수코치로 복귀했으나, 시즌 중 권멍청권명철과 자리를 바꿔 불펜 투수코치로 올라온 가득염과 같이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