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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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종모(金鍾模 / Joung-mo Kim)
생년월일1959년 11월 11일
출신지전라남도 화순군
학교서림초-동성중-광주상고
포지션내야수[1], 외야수
투타우투우타
선수경력해태 타이거즈 (1982-1992)
지도자경력해태 타이거즈 수비코치(1993~2000)
삼성 라이온즈 수석코치 (2001~2003)
KIA 타이거즈 타격코치(2006~2007)
KIA 타이거즈 수석코치(2008~2009)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011~2012)
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2013~2014)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2014)

1983년~ 1984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82년1983년1984년1985년
김준환(해태 타이거즈)
양승관(삼미 슈퍼스타즈)
김성관(롯데 자이언츠)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박종훈(OB 베어스)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홍문종(롯데 자이언츠)
이광은(MBC 청룡)
박종훈(OB 베어스)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1986년~ 1987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85년1986년1987년1988년
이광은(MBC 청룡)
박종훈(OB 베어스)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이광은(MBC 청룡)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김종모(해태 타이거즈)
이광은(MBC 청룡)
장효조(삼성 라이온즈)
이강돈(빙그레 이글스)
이정훈(빙그레 이글스)
이순철(해태 타이거즈)
1987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김무종(해태 타이거즈)김종모(해태 타이거즈)한대화(해태 타이거즈)

1 소개

한국의 前 야구선수, 前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 해태 타이거즈의 원년 멤버이다. 등번호는 7번[2]. 광주상고 출신.

2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적인 외야수로서,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등의 거포가 많았던 해태에서 가장 정교했던 교타자로 꼽히면서 펀치력도 준수한 편이었다. [3] 수비도 좋아서 265경기 연속 무실책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4] 해태의 우승에 크게 활약한 1등 공신인 셈. 항상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인품도 매우 훌륭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런 활약에 비해 존재감은... 그래서인지 가장 늦게 작성되었을지도...

컨택능력에 있어서 좌효조, 우종모라고 불릴만큼 프로야구 초창기 우타자중에서는 잘 맞추는 타자였다. 그러나 역시 장효조의 벽은 넘지 못하고 항상 2인자에 그쳤다.[5]원조 콩라인 프로 통산타율은 0.298 말년에 많이 까먹었다. 1987년 올스타전에서는 MVP로 꼽혔다. 그러나 고질적인 허리부상 때문에 현역 11년간 100경기 이상 출장한 적은 3번밖에 없었다. 1992년을 끝으로 은퇴한다, 그의 등번호는 이종범이 입단하면서 가져간다.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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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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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이후 해태에서 수비코치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스승인 김응용이 2001년부터 삼성감독으로 옮길때 따라 삼성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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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2004년 선동열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자 타격코치로 1년을 있다가, 코치진개편때 잘리고 다시 해태의 후신인 KIA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8년 조범현 감독이 부임할 때 다시 KIA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조범현이 삽질해서 경질될 때를 대비한 프런트의 보험용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6] 당연히 해태와 인연이 없던 OB 출신의 조범현프랜차이즈 출신 김종모를 불편하게 여겼을 것이고... 결국 2009년 KIA 우승으로 조범현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자 우승 4일만에 조범현의 입김으로 해임된다. 이에 대해 KIA팬들의 반발이 많았다.

이후 모교인 광주동성고 감독을 역임하다가 2012년 페넌트레이스 종료 후 스승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로 영입되었다. 2014년 6월 26일, 김성한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수석코치에 임명되었다. 마찬가지로 공석이 된 타격코치 자리는 장종훈 코치가 전담한다. 이후 김성근 감독이 2014년 한화 이글스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코치직을 사임(구단의 재계약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의 행보는 불명확하나, 수석코치로 여러 번 우승을 하면서 나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공석인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기아가 김기태를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그냥 추측으로 끝났다.

4 기타

우승복 하나는 끝내주게 좋은 분이시다. 선수 시절 6개의 우승메달[7]를 건 뒤로, 해태 코치로써 93,96,97년 우승. 거기에 01년에는 김응용감독을 따라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에서 거기서도 우승(2002년)을 하며 05년까지 삼성에 몸을 담았다가, 선동열이 수석코치로 오자 다시 친정인 KIA 타이거즈로 돌아가 09년까지 타격코치를 하며 KIA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을 맛보게 되었다. 그야말로 옥새. 그리고 그 옥새를 버린 기아는 2010년부터 거짓말처럼 16연패를 당하더니 최근까지 내내 하위권을 전전하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 마디로 김종모가 1군 코치로 부임하는 동안에는 그 팀은 우승한다. 과연 한화도? 그런데 한화는 안될거야 아마 결국 한화에서는 비밀번호 2자리만 더 늘린 채 팀을 떠나게 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이건열과 더불어 마산아재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타자 헬멧 쓰고 외야 수비를 본 인물로 추정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2해태 타이거즈77258.29175120104328720.453.342
198386311.350
(2위)
109
(5위)
172114451729.524
(4위)
.406
(2위)
198474272.316
(5위)
8612114
(5위)
4438235.522
(4위)
.394
198557147.23134204209111.327.285
1986104383.313
(2위)
120
(3위)
1921161
(3위)
59
(5위)
642.460
(5위)
.381
(2위)
198788332.331
(5위)
11013194143225.458.377
1988105353.3001068243536129.368.350
198957127.23630400166010.268.288
1990117381.286109201106441046.423.360
199164155.206324182315012.400.262
19922120.20040014306.350.385
통산(11시즌)8502739.298815111108239532926265.435.356
  1. 1983년 당시 3루수로 출장했었다.
  2. 이후 이종범의 영구결번으로 처리 된 등번호이기도 하다.
  3. 세간의 평으로는 포수 미트에 들어간 공을 꺼내서 치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4. 이것은 훗날 조원우에 의해 깨진다.
  5. 특히 83년에는 .350의 고타율을 기록하고도 장효조에 밀려 2위를 기록하는데, 이게 역대 타이거즈 역사상 이종범에 이은 역대 2위 기록이다.
  6. 비슷한 케이스는 SK의 김성근 전 감독-이만수 수석코치, LG의 이순철 전 감독과 양승호 수석코치가 있다.
  7. 83,86,87,88,89,91. 이때까지는 한국시리즈의 우승팀 선수들에게는 우승반지가 아니라 메달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