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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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발로 나와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그 경기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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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에서 사퇴한 후 kt에 합류했을 때. 오른쪽은 함께 부임한 김민재 코치.

kt wiz No.74
정명원(鄭明源 / Myeong-won Chung)
생년월일1966년 6월 14일
출신지전라북도 군산시
학력군산남초-군산남중-군산상고-원광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9년 태평양 돌핀스 2차 2순위 지명
소속팀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1989~2000)
지도자경력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 (2001~2004)
현대 유니콘스 1군 투수코치 (2005~2007)
넥센 히어로즈 2군 투수코치 (2008~2011)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 (2012~2013)
kt wiz 1군 투수코치 (2014~ )

1994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정명원(태평양 돌핀스)이상훈(LG 트윈스)
1998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평균 자책점
김현욱(쌍방울 레이더스)정명원(현대 유니콘스)임창용(삼성 라이온즈)
1994년 한국프로야구 구원왕
선동열(해태 타이거즈)정명원(태평양 돌핀스)선동열(해태 타이거즈)
199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이강돈(빙그레 이글스)정명원(태평양 돌핀스)정경훈(한화 이글스)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8번
오덕환(1988)정명원(1989~2000)결번(2000~팀 해체)

1 소개

인천 소방서장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에 빛나는 태평양현대클로저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現 kt wiz 1군 투수코치. 선수 시절 등번호는 28번. 은퇴 후에는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2014년부터 kt wiz의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1]

통산 75승 54패 142세이브 ERA 2.56의 성적을 올렸다. 그보다 통산 평균자책점이 낮은 선수는 선동열최동원밖에 없다. 선발로 나서건 마무리로 나서건 항상 든든한 선수였으나, 대개 마무리로 많이 언급된다. 애초에 커리어에서도 선발보다 마무리 쪽이 더 월등히 높다. 여담으로 통산 세이브 8위다.


2 선수 시절

원광대학교 시절까지 그저 그런 선수로 프로에 대한 욕심은 없었고, 실업야구 리그로 가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눈에 띄어 1989년 태평양 돌핀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그는 박정현-최창호와 함께 신인 트로이카(일명 짠물 트리오)를 형성하며 11승 4패의 성적을 기록, 태평양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2]


2.1 인천 소방서장 등극

인천의 수호신

데뷔 첫 해 11승을 거둔 이후에도 한동안 선발투수로 활동했지만, 신인시절을 넘어서는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994년 본격적으로 마무리로 전업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4년 본격적인 마무리 첫 해, 4승 2패 40세이브 ERA 1.36으로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이는 종전 선동열의 최다 세이브인 31세이브를 뛰어넘는 것이자, 최초의 40세이브 돌파 기록이다. 최소한 세이브 부문에서는 선동열보다 나은 투수가 있다고 생각하게 한 최초의 선수. 이후 오승환이 47세이브로 아시아 신기록을 기록하긴 했지만...참고로 정명원 이후 정말로 수많은 마무리들이 있었지만 단일 시즌 40세이브는 오로지 3명만 기록했다. 진필중, 오승환 그리고 손승락. 그 정도로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이다. 게다가 1994년 정명원이 받은 이후 마무리가 골든 글러브를 받은 경우는 19년이 지난 2013년손승락이었다.

올스타전에 출전해 3이닝 퍼펙트 투구를 보이며 (서군이 졌는데도)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흠좀무...

이후 태평양 돌핀스현대그룹에 인수되어 현대 유니콘스가 되자 창단멤버가 된다.[3]


2.1.1 1996년 현대vs삼성 빈볼 사건

1996년 6월에 2위 현대와 1위 삼성 라이온즈인천에서 3연전을 벌였을 때, 처음 2게임을 모두 승리한 현대는 뒤지던 5회 말, 박충식을 상대로 한 장정석의 역전 만루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하고, 이후 삼성 백인천 감독은 투수를 박충식에서 이상훈으로 교체하였다. 교체된 이상훈은 나오자마자 6-7-8회에 걸쳐 현대의 이근엽, 권준헌, 박진만의 무릎 근처를 연속 차례로 맞추었다. 현대 측 벤치에선 이를 고의적인 빈볼로 받아들이고,[4] 상당히 흉흉한 분위기에 휩싸였었다.

이에 정명원이 7:1로 크게 이기던 상황에 9회 초 등판했는데,[5] 일단 첫 타자 양준혁에게 위협구를 던졌다. 양준혁이 이에 반발하자 정명원은 양준혁을 맞췄다. 이때, 양측간 패싸움이 크게 날 뻔했으나 결국, 정명원보다 나이가 적었던 양준혁이 참고, 1루로 걸어가면서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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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측은 정명원보다 나이가 4세 위였던 이종두양준혁의 대주자로 내보내 이후에 벌어질 만한 빈볼 상황에 대비했으며, 곧바로 정명원은 특유의 빠른직구로 다음 타자 이승엽의 등 부분을 맞추었다.[6] 이에 곧바로 양 팀은 크게 패싸움에 들어갔으며 경기가 끝난뒤, 사건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정명원이 10게임 출장 정지 및 벌금을 내는 것으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삼성에서 세번이나 연속으로 맞출때는 뭐하다가 이 사건으로 삼성과 현대와는 더욱 앙숙 관계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 정명원은 현대 고위 간부로부터 금일봉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훗날 16년 후 두산의 투수코치로 옮기게 되었을때의 인터뷰에서 '팀워크'와 '경기 출전 금지'에 따른 보상조로 금일봉을 받았으며, KBO에서 부과한 벌금까지 현대 구단 측에서 대납했다고 인정했다. 다분히 재계 라이벌간 자존심 대결의 성격이었음을 반영한 것.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 "정명원이 이승엽에게 빈볼을 놓은 사연…현대와 삼성, 두 재벌의 대리전"]

여담이지만 위의 역전 만루홈런을 친 장정석넥센 히어로즈 감독으로 선임되어서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되었다.

2.2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7] 상대는 그 해 우승 팀 해태 타이거즈. 인천에서 4차전을 끝내고 잠실로 올라가는 길에 해태 타자들은 코감독의 무시무시한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는 카더라가 전해진다.

1998년 현대가 마무리 투수 조 스트롱을 영입하며 선발로 전환하였다.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5회를 버티지 못하고 6실점으로 탈탈 털렸는데, 그 다음 등판 경기에서 완투승을 시작으로 괴물 모드로 각성(...), 14승 8패 1.86의 성적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획득했고[8][9] 주장으로서 팀의 첫 우승을 맛보는 감격을 누렸다. 이 때 생방송으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한 말이 "같이 고생한 창호정현이가 없어서 아쉽습니다."[10] 그야말로 사나이들의 인정과 의리가 물씬 풍겨지는 진심어린 인터뷰가 많은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1999시즌은 스트롱이 재계약에 실패하자 마무리 투수로 뛰었는데, 4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부진했다.

이 시기의 99현대의 투수진은 정민태김수경을 제외하면, 위재영, 최원호, 임선동 같은 선발자원이 단체로 부진했으며 조규제, 조웅천 등의 계투진도 시원찮았다. 이런 상황에서 마무리이자 투수진 최고참인 정명원까지 부진했으니....

물론 99시즌이 역대급 타고투저도 감안해야 겠지만 투수진이 정민태와 김수경을 빼면 모두 부진해서 가을야구를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00시즌은 5선발로 뛰면서 5승을 거두는데 그쳤으며[11], 그 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 패전처리로 올라온 것이 그의 마지막 등판이 되고 만다.


2.3 플레이 스타일

현역 시절의 트레이드마크는 삐딱하게 쓴 뉴에라(...응? 뉴에라라기 보단 챙이 펴진 야구 모자..)와 상대 타자가 오금이 저릴 정도의 강렬한 눈빛,타석에 들어가기도 전에 부왘 감히내공에 스윙을 해? 잘못했습니다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는 마초 스타일. 그리고 전매특허의 포크볼.

189cm의 큰 키에 걸맞게 오버핸드의 높이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포크볼로 리그에서 위력을 떨쳤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포크볼의 달인 할 때 제일 많이 언급되는 투수.

전형적인 상남자 스타일에 터프가이이며, 의리와 인정을 중요시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특히 1998년 우승 당시 인터뷰에서 우승의 기쁨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어려운 시절부터 오랜시간 친형제처럼 동거동락하던 태평양 삼총사 박정현, 최창호와 함께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뜨거운 눈물로 표현한 것이 임팩트가 컸다.

반면에 마운드 밖에서의 실제 성격은 차분하고 약간 소심한 성격이어서, 입단 당시 태평양 돌핀스감독이었던 김성근의 조련으로 마운드에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줬다.이중인격(?) 판정이 이상하게 되면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팬들은 그 표정을 알 수있다는 설이있다.

김시진 감독의 경우는 그의 차분하고 소심하며 예민한 성격을 감안하여 밤에 몰래 어깨를 주물러 주는 등 마음을 다독여 주는 데 집중했고, 그것이 잘 먹혀들어가 그가 현대 시절 좋은 성적을 올리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3 코치생활

3.1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2000년에 다시 한 번 팀의 우승을 맛보고 은퇴했다.[12]

지도자로도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중. 그의 손을 거친 몇몇 투수들이 각성에 성공하였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탈탈 털리고 팬들한테 욕먹자 카트라이더 하러 가야 한다고 키배를 떴던 선수.

2001~2004 시즌은 현대의 2군 투수코치, 2005~2007 시즌은 1군 투수코치, 2008, 2009 시즌은 히어로즈의 재활군 코치직을 역임했고, 2010 시즌부터 2군 투수코치를 맡았다. 2010 시즌에는 좋지 않은 팀 분위기에도 넥센 히어로즈에서는 유능한 투수 자원들이 속속 등장해서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데, 팬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1등 공신이 정명원이라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원준의 등장과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고원준은...

두산으로 옮기기 전에 2군 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한다.[13] 사실 그럴 만한 게 여러 번 1군 승격을 부탁했으나, 김시진 감독이 거부했기 때문. 그것말고도 외딴 동네인 2군 강진에 구단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 보니 혼자서 유망주를 키우느라 벅찼다고 한다[14]. 거기에다가 정명원 코치가 키운 선수도 김시진 감독, 정민태 코치가 키웠다고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 여러 모로 안습..... 위 각주에 링크된 인터뷰 기사에도 나와 있다시피 23년 간 있어 온 팀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본인은 굉장히 허탈해했으며, 대놓고 삼청태현넥 인증 넥센 팬들은 이 같은 상황을 불러온 정민태를 대차게 깠다.


3.2 두산 베어스

3.2.1 2012년

2012년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로 옮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서한규 2군 수비코치의 페이스북에서 확인되었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 갤러리김태희(김상진) 바랬는데[15] 올리비아 핫세(정명원)가 와서 부왘을 올리고 있다.
홍상삼, 이원재, 서동환 너흰 다 죽었어...

넥센으로 두산으로 이적 과정은 넥센의 차기 2군 감독으로 내정된 상태에서 2011년 10월 30일경에 두산측의 영입 제안을 받고, “이제는 1군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이유에서 옮긴 것이다. [본인 인터뷰 기사]

2012년 아직 10경기를 치렀지만 엠팍이고, 돡갤이고 정명원 코치에 대한 찬양이 가득하다.
지난 시즌 동안 윤석환 전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간 뒤로 털린 경우가 많았는데, 정명원 코치가 올라가면 마운드가 엄청나게 안정화된다고 카더라 3개월은 더 봐야 하지만..
길게 믿고 던지게 하기에 지난 시즌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선발진이 엄청나게 안정화되었고, 선발 투수들이 던지는 시간이 늘어나 불펜 투수들도 작년보다는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는 분위기. 그리고 SBS ESPN에서 윤석환 전 코치는 디스하고 있다 카더라.[16]

... 인 줄 알았으나 5월이 지나면서 투수진이 난타당하기 시작했고 5월 30일 현재 평균자책점 6위, 볼넷 2위로 투수진이 썩 좋지 못하다. 특히 더스틴 니퍼트임태훈 새끼[17]가 급격히 무너진 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우선 한 시즌은 끝나봐야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18] 그래도 6월부터 더스틴 니퍼트의 구위가 돌아오면서 평가가 다시 좋아지고 있는 중인데, 선발들을 작년 시즌보다 길게 던지게 하고, 혹사를 자제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마운드에서 흔들리는 선수를 다독이고 격려하는 힘도 뛰어나, 두산 팬들은 명원갑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중. 윤석환 영원히 꺼져

현역 때 대표적인 포크볼러여서 포크볼 전수에 일가견이 있다. 2012년에 선발 에이스로 각성한 노경은, 역시 포크볼로 선발 10승을 달성하는 등 재미를 본 이용찬, 그리고 불펜 에이스로 다시 발돋움한 홍상삼 등이 그에게 전수받은 포크볼로 많은 재미를 봤다. 다만 홍상삼선배 포크볼 작가에 이어 포스트 시즌 때 거하게 불을 질렀지만

3.2.2 2013년

2013년 4월 코치로서 인터뷰를 했다. 지금껏 해온 선수 발굴과 육성에 많은 보람을 느끼는 듯. ['나도 장인(匠人)이 되고 싶다’ 정명원 두산 투수코치]

그러나, 5월 두산 베어스의 투수진이 무너지자 두산 베어스 갤러리 등에서 정석환이라고 까이고 있다. 그나마 후반기 들어와서 두산의 성적이 상승하면서 5월보다는 덜 까이는 중.

2013 시즌 종료 후 김진욱 감독이 경질되자, [구단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구단 프런트 또한 두산 투수들 사이에서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의 위치에 있는 그를 잔류시키기 위해 사표를 반려하려 했으나, 김진욱 감독의 해임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거절했다고 한다.[19] 그가 떠난 후 김민재, 조원우 코치도 사표를 제출하고 팀을 떠났다.[20]

두산 팬들은 김진욱 감독 재임 시기 동안 투수진 안정에 크게 기여한 코치가 허망하게 팀을 떠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야기한 두산 프런트에 대해 이를 갈고 있는 중이다.

애제자 노경은김진욱 감독의 해임과 정명원의 사퇴에 대해, "두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픈 반응을 내비쳤다. 부모님 이상으로 이들을 잘 따랐던 노경은김진욱 감독과 정명원 투수코치가 떠난 후 이듬해 2014년에 무려 15패를 당하며, 최다패 투수로 거하게 말아먹었다....물론 이 분의 이해할 수 없는 기용도 한몫했다


3.3 kt wiz

2013년 12월 16일에 같이 두산을 떠난 김민재 수비코치와 함께 신생 팀 kt wiz의 창단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현대 해체 후 7년 만에 수원으로 컴백!

kt의 리그 참가를 앞두고 2014 시즌 후 보호선수 외 전력보강선수 지명 때 넥센 히어로즈에서 사실상 포기하고 풀어 버린 싸융짱문오의 핵심장시환의 제구력을 끌어올리며 데뷔 첫 승을 올리게 해 주고, kt 불펜의 한 축으로 바꿨다. 포수 출신의 조무근김재윤을 리그 수준급 필승조 중간계투 투수로 키워 내는 등, kt에서도 명 코치 어디 안 가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발굴·육성했다고 알려진 선수들의 경우에 공통적으로 1군 안착 이후에는 성장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진정 1군 투수코치의 성과인지는 의문이 있고, 유명세에 비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과를 남겼는지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16시즌 들어와선 한박자 이상 느리거나 선수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교체하는 짓을 남발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투수교체 타이밍,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신인 투수들 문제 등으로 인해 슬슬 비판의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다. 정명원 코치 등판! => 투수 실점 ㅋㅋㅋ ㅠ.ㅠ
사실 현대유니콘스 말기의 1군 투수코치 시절에도 투수진 운영에서 그다지 평이 좋지는 않았다.

1군에서 정명원 코치의 지도를 받는 투수들을 보면 공히 변화구를 중심으로 유인구 위주의 피칭을 하면서 타자와 정면승부 보다는 상황을 피해가려는 경향이 드러난다. 흔히 2볼을 내주고 시작하고 2스트라이크 이후에 세번째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대개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좋지 않고 풀카운트 상황이 쓸데없이 자주 발생하며, 그 결과로 투구수가 불필요하게 늘어나 선발 투수진의 이닝 소화 능력이 떨어지며 계투진도 사사구를 남발하면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곤 한다.

투수진 운용을 보면, 길게 던질 투수와 짧게 던질 투수에 대한 배치 계획이 없이 당장의 상황에 급급해 여러 투수를 잇달아 투입하며 계속 실점하다가 결국 남은 투수가 없어 그대로 방치하는 무계획한 행태가 종종 나타난다. 결국 전체 투수진의 과부하를 초래하면서도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투수진 운용에 관한 최종 결정은 감독의 권한이므로 이것을 전적으로 투수 코치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으나, 이와 같은 현상이 내내 지속되는 점에서 1군 투수 코치로서 보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말하기 어렵다.

한편, 두산에서 kt로 이적할 때 이미 kt 차기 감독으로 약정되었다는 풍문이 있었고 실제 16시즌 kt가 연거푸 최하위에 머무르자 조범현 감독의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정명원 감독을 주장하는 의견도 간혹 보인다.
의아한 점은 투수진이 부진한 경우에는 대개 총책임자인 감독은 물론 투수코치도 함께 비판받는 것이 통례이나, 유독 정명원 코치의 경우는 그러한 비판 여론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조범현 감독은 본래 투수진 운용에 약점이 있다는 것이 통설이었고, 정명원 코치의 위상으로 볼 때 투수 운용과 관련하여 상당한 영향력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정명원 투수코치만 비판을 면하고 있는 상황은 꽤 부자연스러운 형국이다.

성적부진에 대해 코칭스탭을 비판하는 경우에 보통은 거론되지 않는 수석코치나 심지어 1군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차명석 코치까지 뜬금없이 거론되는 경우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1군 투수진에 직접 관계하는 정명원 코치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다시피 한 점은 정상적인 여론의 흐름인지 상당히 의구심이 있다.

굳이 이런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현대시절부터 시작해서 수도권 팀인 넥센과 두산에서 워낙 평이 좋았고, 반대로 kt 팬들의 화력은 약한 반면 이들 사이에서도 NC에 비해 많이 얇은 kt의 뎁스에 대한 인식이 강해서일지도. 또 정명원 코치는 넥센과 두산에서 자신의 권한 탓이든 감독의 철학 탓이든 투수혹사와 조금 거리가 있었던 반면 조범현 감독 쪽은 전력이 있기도 하다.

4 그 외

동생인 정학원도 야구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이쪽은 내야수로,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특별 우선 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1995년까지 활동했다.

그가 노히트 노런을 찍은 1996년에 태어난 차남 정동규 군이 마초 상남자같은 아버지와 달리 상당히 미남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모델이며, 모델 에이전시인 에스팀 소속. 현재는 배우가 되기 위해 배우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아빠와 아들의 인터뷰]

5 연도별 주요 기록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89태평양 돌핀스38
(5위)
139⅓1146
(5위)
02.45
(4위)
1264968
19901527⅓24207.57441611
199149
(2위)
13212614
(3위)
02.25
(4위)
1034060
1992738⅓31003.52381420
19932601201.50413
199450
(2위)
105⅔4240
(1위)
01.36772274
199552
(1위)
1039719
(4위)
01.75682659
년도소속팀경기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1996현대 유니콘스53
(3위)
978526
(1위)
01.58644559
199755115⅔21028
(2위)
03.501012671
199828184
(3위)
14
(5위)
8001.86
(1위)
14165123
19993084⅓54704.06923652
2000166152003.98752534
통산(12시즌)3951093⅔7554142
(8위)
02.56
(3위)
933365634
  1. 넥센에서는 2008~2010년 동안 재활코치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
  2. 이 시절 전지훈련에서 제구를 잡아줄려고 공이 벗어날 때마다 김성근 감독이 싸대기를 날렸다는 야사가 전해지나, 진위는 확인불명이다. 본인들도 (당연히) 언급하지 않고, 확실한 증언도 없고, 누가 이걸 물어볼 만한 용자도 없고(...) 본 설에 따르면 200~300개씩 던지는 제구 훈련을 하면서 포수 미트에서 10cm 이상 벗어날 때마다 한 대씩 맞았다고. 실제로 김성근이 2000년 삼성 2군 감독 시절에 영쑤, 정노예 등이 제구가 안 될 때마다 죽빵을 후려갈겨 가며 틀을 만들었다.
  3. 현대 유니콘스태평양 돌핀스를 공식적으로 인수하여 역사를 승계한다. 단, 넥센 히어로즈는 해체 후 재창단이므로 공식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와는 관련없는 팀이다. KBO 연감 참조.
  4. 당시 경기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몸맞은 공을 던지고도 삼성투수 이상훈이 전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현대 타자들에게 '뭘 봐, 불만있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 고의적 빈볼이라는 심증을 굳히기에 충분했다.
  5. 삼성측의 처사에 분노한 정명원이 자진해서 등판한 것이었다. 애초부터 보복성 빈볼을 염두에 두고 나갔다는 의미.
  6.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정명원의 릴리즈 포인트, 투구후 착지 각도가 모두 왼쪽으로 치우처져 있어서 명백한 고의 빈볼임을 알수있다.
  7. 정규 시즌이 아닌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나온 기록이므로 비공인 기록으로 남는다. 비슷한 예가 2004년 한국시리즈배영수의 10이닝 노히트 노런이 있긴 한데,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 비공인 기록으로조차 남지 못했다.
  8. 1998년 정명원이 평균자책점 1.86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차지한 이후로 1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선발 투수는 2010년의 류현진(평균자책점 1.82)뿐이다. 다만 저 쩔어주는 평균자책점에도 불구하고 승수가 겨우(?) 14승에 패수는 8패나 되는데, 타선 지원이 다소 빈약했던 감이 크다. 당시 현대 타선이 박재홍-스캇 쿨바-김경기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에 박종호, 박경완 등 괜찮은 타자들이 포진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당시 마무리였던 조 스트롱이 워낙 작가질을 많이 해서 승리도 몇차례 날아간 점도 감안해야 할 듯.
  9. 후덜덜한 점은 선발이면서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보다 평균자책점이 낮았다. 물론 그 해 해태는 기적적으로 5위를 기록했다. OB가 마지막 게임에서 기적 4위를 하는 데는 3회에 나온 임창용을 탈탈 털어 버린 바가 크다. 0,03의 차이로 정명원의 우위.
  10. 이 때 박정현은 시즌 중 쌍방울에 트레이드 되었고, 최창호시즌 중 LG 내야수 박종호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는데, 하필 1998년 한국시리즈 상대 팀이 LG였다. 후에 최창호는 '그토록 염원해 왔던 우승이 이루어졌는데 내가 앉아 있어야 할 곳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내가 원했던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이런 상황이 만들어져서 너무 화가 나더라' 라고 회상했다.
  11.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 3인방은 18승을 거두며 공동 다승왕을 거두었다. 그렇다보니 4선발과 5선발이 이래저래 등판횟수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12. 2001년에 은퇴식을 프런트로 전업한 염경엽과 [같이했다].
  13. [기사] 참조
  14. 이 시기에 2군에서 임창민과 전유수, 이태양 등을 키워냈다.
  15. 김상진은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또한 SK코치로 있으면서 실적이 나름 있었던지라 팬들이 김상진의 복귀를 원했던 것이다.
  16. 자기가 쪽팔렸는지 실제 해설중 정명원 코치를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두산을 저주하는 모양인데, 돡갤에서는 "투수진 망쳐놓은 게 누군데"라고 윤석환을 디스하고 있다. 꼭 모양새가 2012년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 경기 때 차범근 해설 같네...
  17. 임태훈은 허리가 고질적으로 아프므로 이를 정명원의 잘못으로 볼 수는 없을 듯.
  18. 두산 팬들은 등가교환이라고 치고 있다. 우선 조계현+윤석환 조합 때 빛을 발했던 김선우, 임태훈, 고창성이 무너진 것에 대해 씁쓸해하면서도, 이용찬, 노경은, 김승회, 홍상삼 등이 환골탈태한 것을 보면 일단 투수진이 확실히 나아졌다. 특히 노경은이용찬은 그야말로 토종선발 개막장의 역사를 지닌 2000년대 두산의 빛이요 소금이 되었으니... 그리고 앞의 셋은 투코보다 혹사와 나이 문제로 부진한 탓이 크다.
  19. 김진욱 감독이 경질된 이유가 가을야구에서의 투수 운용이었고, 이에 대해 프런트 및 팬들의 질책을 김진욱 감독이 전부 지게 되자, 투수 전권을 쥐고 있던 정명원에게 상당한 중압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넥센에서 나왔을 때 정명원을 받아 준 장본인도 김진욱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런트의 행보와 실제 투수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팬들의 비난이 김진욱에 집중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그 비난은 정명원이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향한 것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20. 조원우는 친정팀인 SK를 거쳐서 고향연고팀인 롯데 감독으로 갔으며, 김민재는 정명원과 같이 KT로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