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앙 스님
슬램덩크의 작가
1 상세
井上雄彦. 일본의 만화가이자 화가이다. 1967년 1월 12일생으로 본명은 나리아이 타케히코(成合雄彦). 대표작은 슬램덩크와 배가본드, 리얼 등.
초, 중학교 시절에는 검도부에 속해 있었지만, 고교 입학후에 검도부에 친형이 있어서 쑥스러운 것도 있고 구기 종목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농구부에 입부. 처음에는 농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친구에 의해 어쩌다보니 들어갔다는 발언도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권유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이 친구 덕분에 이노우에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친구에게 감사해야 할 듯. 이후 농구부의 주장을 맡게 되고, 키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포지션은 가드를 맡았다고 한다. 이후 작품 활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고교 시절이 이노우에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이다. 고교 3학년때, 예대 진학을 목표로 미술학원에서 여름강습을 받지만, '돈이 든다'는 이유로 진로를 변경, 가까운 쿠마모토 대학에 진학한다.
21세때 주간 소년 점프에 투고한 작품이 편집자 나카무라 타이조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상경하게 되고, 당시 시티헌터를 연재하던 호조 츠카사의 문하에서 입문. 어시스턴트로 10개월 정도 근무하면서 만화의 기초를 배웠다. 그러다 1988년 비연재 단편 '카에데 퍼플'[1]로 데즈카 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여 1989년 스토리 작가 와타나베 카즈히코와 함께 카멜레온 자일을 최초 연재했으나 큰 호평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 연재한 슬램덩크가 단행본 판매 1억부를 돌파하며 1990년대가 낳은 최고의 만화가로 등극한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 위주로 시작했지만 점점 농구에 대한 애정이 커져갔고, 자신의 농구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그린 작품이 슬램덩크. 농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당시 만화에 온 자본이 집중된 사회구조와 맞물려(당시 드래곤볼의 영향으로 점프가 600만부를 찍어 기네스에 오르는 시대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단행본 판매수 1억부가 넘었을 때는 일본 6대 주요 일간신문 1면에 자비 1억 6000만 엔을 털어 감사 광고를 싣기도 했다.# 그리고 농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자 스포츠 장학금의 설립을 구상하고, 마침내 2006년에 '슬램덩크 장학금'을 설립했다. 대상자는 프로농구 선수를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으로, 미국의 프렙스쿨로의 유학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획으로 "그로부터 10일 후…."란 슬램덩크의 후일담을 한 폐교에서 칠판에 도우미 없이 혼자서 이틀만에 그려냈다. 이후 사흘간 팬에게 일반 공개되는데, 표면에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쉽게 지워지는 그림이었고, 팬들의 관람에 방해가 된다 하여 경비원도 두지 않았지만 전시 기간 동안 한 군데도 훼손되지 않았다.
2 화풍
전체적으로 데포르메가 적은 인체를 그리며 데포르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곡선보다는 직선적인 묘사가 주가 되는 남성적인 작화도 특징. 배가본드의 연재를 하며 히라타 히로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선 묘사 등에서 히라타의 영향이 보이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만화는 미즈시마 신지의 도카벤, 그 외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이케가미 료이치의 '오토코구미'(작품명), 코바야시 마코토 등의 이름을 들고 있다.
대단한 데생 능력으로 유명한데, 3~4미터짜리 벽화 정도는 별다른 계측 장비 없이 그 자리에서 그려내는 등, 그림실력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그와 더불어 연출 기법과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게 탁월하다는 평.
그러나 데뷔 초반의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결코 그림을 잘 그리는 만화가가 아니었다.[2] 그러나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지금의 데생 능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엄청난 노력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면 그릴수록 앞으로 갈수록, 보이는 것은 내 부족함 뿐이다'라며 자신을 더욱 더 채찍질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완성형에 가까워보였던 슬램덩크 후반부와 달리, 베가본드 후반부를 보고 초반부를 다시 감상한다면 작가의 작화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그걸 다시 극복해내서 베가본드가 진행될수록 이젠 트레이싱 없이 2차성장을 해낸 것이다.
3 논란
3.1 트레이싱 논란
슬램덩크를 그리며 NBA 화보를 트레이싱한 전례가 있다. 상세는 슬램덩크 항목을 참고.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인터뷰에서 잠깐 언급했을 뿐,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크게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비단 이것만으로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으나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정작 슬램덩크가 표절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엄근진한 태도로 일관하는 내로남불의 표본인 행동을 보여준 점에 있다. 에덴의 꽃이라는 순정만화 연재분에서 몇 컷 정도 자신의 작품 구도를 비슷하게 도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행동에 나서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내고 해당 작품 및 작가가 기존에 출판한 전 작품을 절판 조치하는 사태를 야기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이는 본인에게 상당한 오점으로 남을만한 행동이이며 지금도 까들의 주요 비난거리가 되고 있다.
3.2 우익논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위대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의 수가 많은 군대다. 이것은 긍지다'라는 트윗을 리트윗한 건으로 한국에서 우익이니 혐한이니하며 논란이 되었다.
다만 이것을 일본 우익사상과 연관짓기에는 애매하다. 애초에 구일본제국 시절 일본군을 찬양한 것도 아니고, 이런식으로 자위대가 전쟁을 하지 않는 군대임을 강조하며 그것에 긍지를 갖는 부류는 보통 일본의 평화헌법 준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 한마디로 평화헌법의 폐지와 집단자위권 부활을 외치는 일본 우익과는 정반대의 노선인 셈이다.
후술돼있지만, 개인일정으로 한국에 찾아와 동대문 뒷골목에서 삼계탕을 먹으면서 그걸 또 맛있다고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모습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일본 우익인사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4 기타
- 스토리를 짤 때는, 자신은 어떠한 긍정적인 요소를 넣지 않는 작품은 읽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에 조금씩 긍정적인 요소를 추가한다고 한다. 예로 사람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배가본드의 경우에도 엑스트라들에게 백스토리를 조금씩 넣어주는 이유가 위에 캐릭터를 다룰때 성향에 결합되어 단순한 개죽음으로 표한하기 싫어서라고.
-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는 편이다. 예로 인터뷰에 물어보는 사람이 캐릭터의 이름을 못 기억할때 작가가 아 그 캐릭터 하고 자주 설명하고, 슬램덩크에 나온 수많은 캐릭터 들의 이름도 아직까지 외우고 있는 모양. 본인이 밝히기를 자신의 만화속 캐릭터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면 중 하나를 극대화 시키거나 끄집어내서 만들기에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 애착을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윤대협같은 경우는 본인도 이 캐릭터 생각을 잘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캐릭터를 너무 감싸고 돌지도 않는것이 강백호의 경우 결국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복귀 하더라고 이전의 역량을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작가가 강백호에 대한 애정이 없다거나 한 것이 전혀 아니다. 강백호가 만화 내용 중에 안감독에게 자신을 투입하는 것을 강행해 달라고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영광의 시대가 지금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안감독 뿐만 아니라 분명히 강백호도 자신의 부상 심각성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경기에 계속 나가다가 농구를 평생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한 말이다.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재기 가능성마저 던진 것이다. 그런데 속편이나 작가의 말로 갑자기 다시 재기한다면 그 순간에 대한 작가의 설정과 미학이 모두 파괴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던 것이다. [3]
- 슬램덩크의 TV애니메이션을 보고 실망한 전례가 있어 그 이후로는 자신의 작품이 애니메이션화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지간하게도 맘에 들지 않았는지, 리얼의 한 대목을 통해서 슬램덩크의 애니메이션을 깠다. 6000만부가 넘은 배가본드에도 수없이 애니메이션화 오퍼가 들어왔지만 본인이 거절.
- 자신의 작품의 2차 창작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자신의 작품에 손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듯. 심지어 강백호의 머리를 민 것이 동인녀들이 동인지를 못 그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루머도 있다. 슬램덩크 연재 종료후 자신의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데, 본인의 말로는 소년점프에서 슬램덩크 캐릭터를 상품화할때에 강백호는 저런데 어울리지 않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돈. 실제로도 많은 만화가들이 저런 핑계를 대며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본인의 저작권을 관리한다. 만화가가 법인 설립시 가장 서류에 써내기 좋은(=실제로는 아무런 일을 안 해도 유령회사라 증명하기 어려운)업무이면서 만화와 관련있는 업무가 저작권 관리업무이기도 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기 작가들은 본인 명의의 저작권 관리 회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물론 최고의 이유는 세금. 법인세와 소득세는 아시다시피 금액 차이부터가 어마어마하다. 이런 식의 대표적인 페이퍼컴퍼니로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버드 스튜디오나 코노미 타케시의 TK WORKS 등. 이노우에는 IT 플래닝이란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를 가지고 있다.
- 09~10년에 전시회 "이노우에 타케히코 최후의 만화전" 을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개최. "최후의 만화전" 이라는 타이틀과 내용이 거의 배가본드에 관련된 것이었던 것, 배가본드의 향후 전개를 눈치채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배가본드가 그의 마지막 출판 만화가 될 거라고 짐작되는 상황.(반쯤 취미 생활인 리얼은 예외로 치고) 인터뷰 등으로 미루어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것이 희망인것 같다.[4]
- 다만 본인의 건강 악화로 안그래도 부정기 게재였던 배가본드의 연재가 더 기약없이 미뤄짐에 따라 2010년 완결은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었다.
- 2011년 11월 9일, 2012 런던 장애인올림픽 휠체어농구 지역예선전을 취재를 위해 일본대표와 함께 방한했다(장애인들과 같이 합숙하면서 참고). 리얼의 연재를 위한 취재목적인 모양.
- 방한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닭 한마리'라는 짧은 글과 함께 닭요리 사진을 올렸는데, 한국의 한 트위터리안[5]이 그 사진을 보고 한국, 그것도 동대문으로 장소를 추측해내고, 근성으로 동대문을 뒤져서 찾은 후(!) 기념사진을 찍은 일화도 있다(참고).
- 그리고 닭한마리 일화(…)에 고무된 또다른 팬은 기어이 경기장까지 직접 찾아가 사인을 받은 일도 있었다(참고).
- 부모님이 어린 시절 이혼하여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 슬램덩크 연재시절에는 점프만화는 거의 안 읽었다고 한다. 단, 유일하게 로쿠데나시 블루스는 즐겨 읽었다고 한다. 슬램덩크를 봐도 영향을 좀 받은게 보인다.
5 대표작
- 카멜레온 자일-2권 완결.슬램덩크가 출간 된 뒤 함께 출간되었다.
- 슬램덩크-31권 완결. 누계 1억 2천만부 발행.
- 리얼-14권, 연재중. 누계 약 1400만부 발행.
- 배가본드-37권, 연재중. 일본내 누계 6천만부, 해외 약 2200만부, 합계 8200만부 발행.
- 버저 비터-웹 연재. 4권 완결. 국내에도 출간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 절판되었다.
- WATER, MUK[6]-화보집.
- 페피타-이노우에 가우디를 만나다
- 공백-인터뷰집
- 만화가 시작된다-인터뷰집
- ↑ 이 작품에서 서태웅(루카와 카에데)가 최초로 등장한다.
- ↑ 데뷔작 카에데 퍼플과 카멜레온 자일 초반부를 보면 인체비례는 물론이고 펜터치나 표현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 티가 팍팍난다. 그러나 자신의 아주 초기 작품이 그렇다는 의미일 뿐 슬램덩크 초반에서도 이 작가는 상당히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렸었다.
- ↑ 참고로 강백호의 진짜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 곧 벚꽃을 의미한다. 작가가 벚꽃의 이미지를 슬램덩크 이전이나 이후에도 계속 자기 작품에 넣으며 좋아했던 걸로 보아 강백호에게 그 강하게 빛나고 잔잔하게 막내리는 청춘이라는 설정을 한 것이이고, 이것이야말로 강백호라는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진심어린 애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 ↑ 2000년대 중반에 한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는 그냥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 '360 Sounds'의 멤버 'Make-1(메이크 원)'. 과거 CB Mass 1기이자 Leo Kekoa, 한남잭슨과 함께 Ill skills로 활동한 1세대 힙합 뮤지션이다.
- ↑ 일본판은 S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