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발

저시발
李時發, 1569~1626

기분이 당황스러워서 이 항목을 쳤는데 있어서 더 당황스럽다

얼핏 들으면 욕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존하는 이름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이씨, 호는 벽오(碧梧)이며 20세에 나이에 급제,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조직했으며 이항복의 추천으로 공을 인정받고, 류성룡을 도와 왜군을 무찔렀으며 그 외에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고 군량조달에 힘썼다.

광해군 당시 인목대비 폐위에 반대, 낙향하나 왕의 특명으로 평안도의 민심을 바로잡고 강홍립의 투항으로 흉흉한 북방의 방비를 튼튼히 지킨다.

인조반정 후 '이괄의 난'을 진압했으며 오랜 실무 경험으로 호란이 일어날 것을 예견해 훗날 병자호란의 중심이 되는 남한산성을 보수 중 병사한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자식들도 모두 고관에 오른 명문 집안.

그는 중국어와 군사, 행정실무에 모두 능한 유능한 관료로 항상 난리의 정점에 선 그였으나 국사책에 실리지 못한 이유는 역시 이름...

여러모로 왕자지, 김자지와 같은 케이스라 보면 된다.

참고로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를 보면 젊은 시절에 김구가 이시발이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구절로 보아 백 년 전까지는 그 이름이 욕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아이러니하게도 이름 하나로 재조명받은 독특한 인물로 혹여라도 이름 한 가운데강세를 넣서 읽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