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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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用熙
1917년 3월 23일 ~ 1997년 12월 4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학자, 미술사학자, 관료이다. 호는 동주(東洲)이다.
1917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독립운동가 이갑성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4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62년 서울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초창기의 문리과대학 정치학과가 자리잡는 데 기여하였고, 1950년대 중반에는 외교학과의 창설을 주도했다. 1949년에서 1975년까지 해당 학과의 교수를 역임하였다.[1] 한편 1960년에서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장을, 1956년에서 1967년까지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5년부터 1976년까지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산하에서 대통령정치담당 특별보좌관을 역임하였다.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국토통일원장관을 역임하였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아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1989년 세종연구소장을,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한편으로 예술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한국 고미술(주로 회화) 분야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1969년부터 잡지 아세아에 이동주라는 필명으로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미술사학 분야에도 활동한 이유는 1960년대 후반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으로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다 전공 활동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족으로 제14대(민주자유당-신한국당 전국구), 15대(신한국당-한나라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국회의원을 지낸 이재명 등이 있다.- ↑ 정치학과 교수 재임 시절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