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정당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
국민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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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1995년 12월부터 1997년 11월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정당으로, 現 새누리당의 옛 이름이다.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가장 짧게 존속 했던 여당 가운데 하나로, 비슷한 예로는 열린우리당(3년 9개월), 대통합민주신당(6개월)이 있다. 그런데 대통합민주신당은 사실 대통령이 입당한 적은 없어서 여당이라고 하긴 어려우므로 가장 단명한 대통령 소속당으로 볼 수 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다수파는 여전히 민주정의당 출신의 민정계였는데, 1995년 12월 김영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여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전격 구속했다. 12.12 군사반란의 주요 가담자 허삼수, 허화평, 유학성 등이 그때까지 민자당 국회의원 신분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정말 흠좀무한 일.

그리고는 자신이 노태우와 함께 만들었던 민주자유당의 간판을 내려버리고, 김영삼 정부의 국정 슬로건이었던 신한국 창조에서 따온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고친다.[# 로고] 또한 개혁노선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이는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도 취한 태도였다. 어찌보면 좋은 현상일지도 모르나 이 현상은 철새 국회의원의 대량 생산 원인이 되었다.

1996년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수도권에서 선전했음에도[1] 전두환, 노태우 구속의 역풍을 맞고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자유민주연합무소속에게 대거 의석을 내주는 바람에 과반수 확보에 일단 실패했으나, 선거 후 자민련과 민주당,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와 과반수를 확보하였다.[2]

12월의 크리스마스 노동법 "날치기"(직권상정) 파동[3]1997년 외환 위기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1997년 11월 민주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된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9명의 후보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하여 9룡이라고 시사이슈가 끊이지 않기도 했다. 마침 명사극 용의 눈물이 인기리에 방영될 때라서, 이들을 다룬 만평 중 용의 눈물 버전으로 된 9룡 풍자도 꽤나 등장했었다.


2 역대 선거결과


3 관련 항목

  1. 모래시계 검사로 떴던 홍준표,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등 정치 신인들을 대거 공천하고 야권이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1995년)으로 분열한 영향이 컸다. 대략 수도권에서 30여개의 선거구가 야권 분열로 승패가 뒤집혔으며, 심지어 야권 단일화를 가정한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는 야당에게 1당을 내줄 수도 있었다.
  2. 이 때문에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훗날 김대중과의 관계가 틀어졌음에도 이회창에 대한 적개심을 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불과 2년 만에 김대중 정권이 거꾸로 한나라당(신한국당의 후신) 의원 영입을 통해 정계개편을 인위적으로 감행할 때는 이에 반발하던 하순봉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향해 구천서 자민련 원내총무가 "우리는 원금 받으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일갈하는 굴욕적인 상황도 있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3. 그냥 "날치기"라고 하면 와 닫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비정규직법이 이 때 통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