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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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탈북자 중 가장 불행한 사람

- KBS 국제방송 러시아부분 PD

1960년 4월 2일 평양 출생 - 1997년 2월 25일 분당신도시에서 암살
김정일의 부인인 성혜림의 조카이며 김정남과는 사촌지간이다. 만경대 혁명학원에 다녔으며 1976년 5월17일 모스크바로 유학을 가게 된다.


또 다른 북한의 로열패밀리 출신인 강명도 경민대학교 교수의 설명

이한영의 이모인 성혜림김정일과 정상적인 결혼이 아닌 불륜이었기 때문에 북한사회에서 김정남의 존재는 비밀에 부쳐졌다. 하지만 김정일의 성혜림에 대한 애정은 식어버리고 인정받지 못한 관계였기 때문에 성혜림은 아들을 빼앗기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경성 질환으로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버리고 모스크바와 스위스를 전전한다. 성혜림이 사실상 내쳐지자, 성혜림 일가도 북한정권의 압박과 숙청의 위협이 가게 되었고 성혜림과 이한영의 어머니 성혜랑은 함께 북한을 탈출하고, 소련의 모스크바로 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어머니인 성혜랑과 이모 성혜림 등과 같이 생활하게 된다.

1982년 10월 비행기편으로 귀순의사를 밝히고 남한에 망명하였다. 1984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KBS 수습15기로 입사하여 국제방송국 러시아어 방송 담당 PD가 되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이씨는 러시아어 전문가로 활약했다.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북한의 실상들을 여러모로 폭로해왔다.


이한영의 망명 이후 북한 당국에서는 이한영에게 여러 차례 암살 위협을 가하였고 이한영은 거처를 옮겨다녔다. 그 뒤 남한 여성과 결혼하여 정착하였으나 북한 당국으로부터 테러와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 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아파트를 마련하고 정착하였으나 1997년 2월 15일 밤, 아파트 복도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권총으로 머리와 가슴을 저격당하여 10일 뒤 세상을 떠났다. 피격 당시 이한영의 대학 선배가 집 안에서 급히 뛰쳐 나왔지만, 이미 범인은 도주한 뒤였다. 이한영이 의식을 잃기 전에 한 말은 '간첩'이었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시의 공원묘지에 묻혔다.기사

1997년 의문의 피살을 당했는데, 당시 죽기 전 의식이 있을 때,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간첩"이라고 말했던 바도 있고, 피살 현장에서 북한제 권총에서 사용되는 탄피가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에서 보낸 간첩에 의해 피살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 당시 공안당국은 북한 사회문화부 소속 테러 전문요원인 일명 '최순호 조'가 암살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출처 그런데 주성하 기자는 이한영을 죽인 사람은 북한 사람이 아닌 러시아인일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이 때문에 도대체 그를 죽인 사람이 어떤 놈인지는 알 바 없다. 그리고 그 천하의 개쌍놈도 15년이 지난 2012년 공소시효가 만료되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다.지못미 여하튼 탈북자로서는 보기 드문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여, 가장 불행한 탈북자, 북한정권에 희생된 파란만장했던 사람이'라는 안좋은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2014년 10월 29일, TV조선 강적들 51회 평양 주석궁 미스테리편에서 이한영과 그의 어머니 성혜랑의 전화통화 음원을 방영하기도 했다.

그의 암살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의형제가 제작되었다.

참고로 북한 사람이니깐 '이'가 아니라 '리'인데, 원래 태어났을 당시에는 '리일남'이었고 북한에서도 '리일남'이었다. 한국에 오게되면서 '이'로 고쳤고, '한영'(韓永)이라는 이름은 한국에서 영원히 살라는 의미로 안기부에서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본인이 남한에서 등록했기 때문에 '이한영'으로 서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