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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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 대우 제우스(1997~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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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우증권 제우스의 엠블럼. 마스코트가 귀여운 편이라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1997시즌 유니폼. 올랜도 매직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역시 인기가 많았다.

1997년 실업 농구가 프로화되면서 대우증권 농구단은 연고지를 인천광역시로 삼고[1] 구단명을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 프로농구단으로 바꿨다. 대우증권 제우스 농구단은 1998년 독립 법인으로 출범하면서 구단명을 인천 대우 제우스 프로농구단으로 바꿨다.

첫 번째 시즌인 1997년 원년 시즌에는 도원체육관에서 경기를 치렀지만 자타가 공인하던 '오빠부대'라는 팀의 인기도에 비해 체육관이 심하게 좁고 낡은 점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당시 안습했던 사정이 있는데 도원체육관을 떠나고 싶어도 인천시내에 도원체육관을 대신할 만한 실내 경기장이 단 하나도 없었다(...).[2] 그러던 중 1997년 10월 인천 바로 옆인 부천시부천실내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1997~1998 시즌부터는 부천실내체육관으로 홈경기를 옮겨서 치렀다. 부천 홈경기는 팀이 전자랜드로 바뀐 후인 2006년까지 열렸다.

이 시절 대우 농구단의 성적은 인천 연고 농구단의 역사가 늘 그렇듯 6강까지만이 딱 어울리는 팀이였다 (...) 또한 전국구 인기구단이였다. 오빠부대 연세대의 멤버를 주축으로 만들어진데다가 수도권을 연고지로 두다보니 그 인기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2 인천 신세기 빅스(1999~2001)

1999-2000시즌2000-2001 시즌

당시 신세기 빅스의 원정 유니폼

그러나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재정 악화로 인해 농구단이 신세기통신으로 매각되어 인천 신세기 빅스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프로 초창기에 대우 제우스는 홈 경기장을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근에 있는 인천시립체육관(도원체육관)을 사용했는데, 이 체육관이 너무 낡고 협소해 홈 경기장을 새로 지은 부천시 중4동의 부천실내체육관으로 이전하여 홈 경기를 치렀다. 인천광역시가 연고지임에도 옆동네 부천시에서 홈 경기를 치르다 보니, 이 팀의 연고지가 경기도 부천시인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부천실내체육관에서 광고를 어떻게 했냐면, 부천, 인천 시민과 함께하는 SK 빅스로 광고하기도 했다(…). 분명히 인천광역시 연고 팀이건만 단지 체육관이 없어서..[3]

이 당시 성적은 널뛰기가 심했다 대우 제우스시절 PO에 진출했다가 1999-2000시즌에 15승 30패로 최하위[4]를 했다가 바로 다음 2000-2001시즌에 6강에 올라가고.. 시즌뿐만 아니라 매 경기마다 널뛰기가 심했다.

농구의 프로화 이후에는 정식 유니폼 기준 상하의 색깔이 다른 유니폼을 처음, 그리고 유일하게 사용한 구단이다. 홈은 흰색 상의에 주황색 하의, 원정은 99-00시즌까지 검은색 상의에 주황색 하의였다. 00-01시즌 부터 원정은 전면 주황색이 되었으나, 홈은 SK 빅스 시절까지도 흰색 상의, 주황색 하의를 유지했다.

3 인천 SK 빅스(20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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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통신SK텔레콤으로 합병된 이후에는 인천 SK 빅스로 구단명을 바꿨다. 그런데 SK그룹은 이미 나이츠 농구단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KBL의 "한 기업이 2개 이상의 농구단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위반하게 되어 문제가 되었다. 다만 이 경우는 모기업이 합병하는 바람에 불가항력적으로 한 기업에 2개의 프로농구단[5]을 운영하게 된 것이었으므로 두 구단 중 하나가 다른 기업에 매각될 때까지 두 팀을 유지하도록 했다. SK그룹 입장에서도 굳이 2개의 프로농구 팀을 운영할 이유가 없고 운영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둘 중 새로 SK그룹에 속하게 된 빅스를 팔고 기존의 나이츠만 계속 운영하기로 하였다.[6] 하지만 빅스 인수 의향이 있는 기업을 금방 못 찾았는지 2002~2003 시즌까지는 2개의 프로농구팀을 그대로 운영하고 2003년전자랜드에 매각하게 되었다.

4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2003~2009)

해체 위기까지 몰렸던 빅스는 2003년 8월 6일 인수대금 30억 원의 조건으로 대한민국 굴지의 전자제품 전문 유통업체이자, 고려제강의 계열사인 전자랜드에 인수되었다. 2003년 10월 1일 63빌딩에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농구단이 창단식을 가지고 공식 출범했다. 마스코트는 코끼리다.[7] 전자랜드가 된 이후에도 3년 2개월 동안 부천실내체육관에 머무르다가 2006-2007 시즌부터 홈 경기장을 새롭게 완공한 인천삼산월드체육관으로 이전했다.[8][9] 그런데 여기는 부천시 경계라는 것

2003-2004 시즌에는 최명도, 조동현, 문경은을 필두로 한 3점 돌풍에, 최고의 만능용병 앨버트 화이트와, 센터 제이슨 윌리엄스를 주전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4강 진출을 했으나 시즌 동안 유일하게 압도 당했던 TG삼보에게 패퇴했다.

2004-2005, 2005-2006 시즌은 최하위.
특히 2005-2006 시즌은 시즌 내내 막장으로 흘러가고 압도적인 꼴찌를 하다가 결국 8승 46패로 한 시즌 최다패 기록을 세웠다. 평균득점이 81.5점인데 비해 평균실점이 무려 91.1점으로 평균득실차 -9.6이라는 참으로 어마어마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2006-2007 시즌은 초반 반짝 3위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지만 선수들의 뒷심 부족과 상급 용병이였던 키마니 프렌드가 시즌 아웃 되면서 무너지고 9위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인천 삼산월드 체육관으로 이전했다. 참고로 부천체육관에서의 고별전은 최명도의 은퇴식이 있었으며, 동점 버저비터 3점슛으로 연장에 돌입해서 연장에서 역전승을 하는 극적인 스토리로 마무리했다. 부천에서의 정규리그 성적은 총 107승 100패

2007-2008 시즌까지 4시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 무대에 전자랜드의 이름이란 없었다. (10-10-9-7) 2007-2008 시즌은 중위권 싸움이 치열해서 SK, LG와 함께 29승 25패를 했으나, 결국 SK와 LG에 3팀간 상대 전적에서 밀리면서 PO 진출에 실패했다.

2008-2009 시즌에는 초반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가 서장훈을 영입하는 대신 강병현을 내 주는 맞트레이드를 단행, 이후 5라운드 전적 8승 1패를 기록하는 등 팀은 상승세를 탔고, 창원 LG 세이커스안양 KT&G 카이츠와의 포스트시즌 경쟁 끝에 세 팀 모두 동률이 됐지만, 다득점에서 세 팀중 2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포스트시즌 막차에 합류했다. 그러나 포스트시즌 6강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 총전적 2승 3패로 패해 결승진출에는 실패했다. 전자랜드는 KCC의 호구.

사실 팀명이 바뀌게 된 이유는 팀명이 엉터리 영어였기 때문이다. 슬램덩크의 Slam에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er'을 붙여 Slamer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렇게 쓰면 원래는 '슬레이머'라고 읽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슬래머'라는 발음을 가진 'Slammer'은 감방, 교도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검은색 교도소
  1. 프로농구의 경우 프로야구와 달리 연고지 설정 과정에서 기업의 역사나 연고지가 대부분 고려되지 않았다. 그나마 모기업과 연고지의 밀접도가 높은 사례라면 수원에 연고를 뒀던 수원 삼성 썬더스 정도 뿐. 그러나 이 당시 인천은 대우그룹과 어느 정도 연고가 있던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대우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우자동차의 본거지가 인천 부평이었고 또 다른 대형 계열사 대우중공업 역시 인천에 사업장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 출범 전 전국체전이나 코리안리그에 출전할 때는 부산 대표로 나간 적이 있다(...).
  2. 사실 인천시내에는 선인체육관이라는 매머드급 체육관이 있긴 했다. 그러나 체육관 내 농구코트가 2개씩이나 있는 등 전체적인 크기가 너무 크고 아름다워서 프로농구 경기를 열기에는 부적합하다는 단점(...)이 작용해 경기장으로 선택되지 못했다. 선인체육관도화지구 개발을 위해 2013년 8월 폭파 해체됐다.
  3. 단, 부천체육관이 인천광역시 부평구 경계에서 그리 멀지 않다. 10분만 걸으면 바로 인천광역시이며, 현재 사용 중인 삼산동 월드체육관과 부천실내체육관도 거리가 상당히 가까운 편.
  4. 역전패가 16번이었다 당시 모 시사프로그램에서도 뒷심부족의 예로 이 팀을 거론할정도로...
  5. KBL 홈페이지에서 1999년 11월 ~ 2003년 3월 사이의 경기 결과를 보려고 하면, 둘 다 똑같이 SK로 나온다. 1999~2000시즌부터의 기록이 이렇게 된 건 신세기의 기록이 SK 빅스로 인계되기 때문. SK가 두 팀과 경기하는 것은 물론, SK vs SK까지도 볼 수 있다!!
  6. 이 과정에서 당시 SK 빅스는 전국구 인기구단이였고 그에 반해 SK 나이츠는 연고지 이전으로 팬층이 줄어서 나이츠를 매물로 내놓으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서울연고지를 포기할 수 없어서 SK 나이츠를 안고 가기로 결정했다
  7. 전자랜드의 모회사인 고려제강의 심볼 동물이 코끼리라고 한다.
  8. 정확하게는 2006년 12월 3일 오리온스전부터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을 사용했다.
  9. 여담으로 2000년대 초 코리아텐더라는 괴기한 이름을 지닌 농구단이 등장하면서 경기장 내 전광판에는 모기업 이름 대신 팀명으로 팀별 연고지 이름을 썼다. 문자 칸이 세 글자에 국한된 당시의 전광판 시스템 탓에 모기업 이름을 그대로 쓸 경우 코리아텐더는 '코리아'라는 이름을 쓸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국가대표팀 취급 그런데 전자랜드만큼은 인천 팀이었음에도 부천체육관에서 경기를 했기에 '인천'이라는 이름을 홈경기 전광판에 새기지 못하고 '빅스', '슬래머'라는 명칭을 부천체육관 전광판에 새겨야 했다. 그러나 체육관 이전 이후에는 '인천'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