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견미

林堅味
(? ~ 1388년)

1 생애

고려 말기의 인물. 임언수의 아들. 평택 임씨.

평택 사람으로 우다치에 소속되었다가 공이 있어 중랑장이 되었는데, 홍건적을 피해 공민왕을 호송해 피난했고 이 때 각 도의 군사를 징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관원들은 이를 응하지 않았다. 이에 임견미가 울면서 왕에게 건의했고 홍건적이 평정되자 1등공신이 되었다가 계속 승진해 밀직부사가 되었으며, 흥왕사의 변을 꾸민 김용의 죄를 밝혀낸 공로로 조정의 중요 인물로 자리잡았고 우왕이 즉위하고 지문하성사, 평리 등을 거쳤다.

내재추를 설치하면서 왕명의 출납을 홍영통, 조민수 등과 함께 일을 맡아 모든 일을 내재추를 거쳤는데, 우왕이 부른 적이 있었지만 아프다고 나아가지 않다가 다시 불러서 나갈 정도로 교만했다. 수문하시중에 올라 정방제조가 되었고 임견미가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러 홍영통, 조민수는 인사행정에 관여할 수 없었다.

그의 친족들도 그의 권세로 인해 멋대로 행동했고 우왕이 임견미의 행동에 못마땅해 임치에게 알려주자 임견미는 병을 핑계로 퇴직을 청해서 허락받아 평원부원군에 봉해지면서 궁중의 술을 하사받았는데, 시중으로 복직해 실록의 편수를 주관했다.

1384년에 북원에서 고려로 사신을 보내 명나라에서는 여진족을 통해 사신을 잡으려고 했는데, 김득경이 여진족을 공격해서 물러가게 했다가 명나라의 문책을 받게 되었다. 집에서 연회를 열어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신인 정여를 후하게 대접하고 김득경을 체포해 명나라로 압송하기로 했는데, 임견미는 이 사건에 대해 허물을 쓰라고 했지만 김득경은 도당의 공문대로 시행해 끝까지 숨길 수 없다고 했다. 임견미는 하륜의 충고로 자객을 보내 김득경이 철주에 도달했을 때 죽였다.

아버지 임언수가 죽어 상을 치룰 때 문하시중에 임명되고 의복 한 벌을 하사받았으며, 이인임, 염흥방과 함께 노비들을 동원해 토지를 가진 사람의 토지를 탈취했다. 임견미는 영삼사사가 되었지만 조반의 토지를 빼앗은 일로 인해 권력을 전횡한 일이 조정에서 공론화되면서 몰락하게 되는데, 최영, 이성계의 군사가 집으로 오자 이에 항거하면서 사람을 시켜 자기 일당들에게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기병에게 차단되었고 남산을 올려보고 무장한 기병들이 늘어선 것을 알고 저항을 포기해 체포되면서 예전에 염흥방과 함께 최영을 죽이려고 한 적이 있다가 이인임이 말린 일로 인해 광평군(이인임) 때문에 망했다고 탄식했으며, 결국 자신의 일당들과 함께 사형되었다. 이 사건은 무진피화(戊辰被禍) 혹은 정월지주(正月之誅)라고 불렸고 고려사의 임견미 열전에 따르면 당시 이 반란을 주도한 임견미, 반익순, 염흥방, 도길부의 아내와 그 자손들은 모두 죽은 데다가 재산도 몰수되었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딸 등은 관비가 되었고 당시 처형된 사람이 1천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인임은 그를 질투가 심하고 음흉하지만 말재주가 뛰어나 이임보에 비교하였다. 이인임의 심복으로 활동하면서 문신을 싫어해 염흥방을 쫓아냈지만 그 집안이 대대로 벼슬한 집안인 것을 알고 혼인할 것을 청해 염흥방이 자기 보신을 위해 이인임, 임견미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게 되었다.

2 창작물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악역 연기의 대가 정호근이 열연. 역사대로 이인임의 오른팔로 권세를 부리다가 이인임의 몰락과 함께 처형당한다. 정호근의 악역 연기 포스가 물씬 풍기는, 작중 몇 안 되는 평면적 악역. 도당에서 주로 최영, 이성계에게 얄밉게 한 마디씩 톡톡 던져서 화를 돋구는 것이 특징. 분명 나쁜 놈 소리인데 보고 있자면 재미있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길태미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배우 박혁권이 길태미의 쌍둥이 형인 가상인물 길선미와 1인 2역을 펼치며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