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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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와 가장 근접한 청초육사(고추잡채)한국에만 존재하는 당면 있는 잡채

1 정의

한국: 雜菜
중국: 雜燴 / 杂烩, záhuì, 자후이, 잡회

난... 임금 잡채다!!!
야채를 생으로 내놓거나 간단히 조리한 음식류 전반을 일컫는 이름.

본디 중국에서 기원한 음식으로, 이름 그대로 잡다한 재료를(雜, 잡) 모아 볶은(燴, 회) 요리이다. 다만 고기가 잡다하게 모일 일은 많지 않았으니 거의 대부분이 채소일 뿐. 따라서 채소만 잡다하게 모여 있으면 잡채이니 이것 말고 다른 형식 같은것은 없고 이에 지역별로 잡채의 정의가 다소 달라진다. 간단하게는 어떤 채소가 들어가느냐가 달라지고 이걸 어떻게 조리하느냐[1]도 지역 특색을 많이 탄다. 특히 기름을 좋아하는 광동 지방에서는 잡채를 재료를 고르게 익힐 수 있도록 일정한 크기로 채썰어낸 뒤 땅콩기름이나 돼지기름을 붓고 냄비에 볶아 내어 주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흔히 알려진 중국 요리로서의 잡채이다.

여하튼 상당히 단순한 만큼 중국에서는 (비록 그 스타일은 제각각이지만) 지역을 막론하고 상당히 대중화된 반찬으로, 한국에서도 김치를 요리가 아닌 당연히 밥상에 있어야 하는 기본 셋팅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잡채 역시 중국에서는 본래 요리로서 취급하지 않는다. 일례로 중국의 식당에서는 메뉴에 잡채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름있는 음식점의 경우에는 경장육사나 청초육사, 지삼선과 같은 대중적인 야채 요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주문 자체를 하는 일도 드물다. 한국에서 김치를 따로 메뉴판에 적어두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음식점의 맛의 척도는 잡채로 구분한다고 할 정도로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또한 상기했듯 지역색도 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사용 가능한 채소의 종류가 바뀔 수 있다보니 중국에서 잡채를 달라 하면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우리가 잘 아는 고추 같은 것이 가득한 잡채도 있는 반면 지방에 따라서는 생 머위고수잎이 잔뜩 들어간 잡채가 나오기도 한다.

그 외 오키나와참프루도 채소가 주가 되어 여러 가지 재료를 볶아 만드는 요리이다. 오키나와식 잡채라고 할 수 있는 요리로 고야(여주)나 스팸을 재료로 쓰는 경우도 있다.

필리핀 요리 중에 판싯(Pancit)이라는 게 있는데, 한국의 잡채와 제법 흡사하다고 한다.

2 한국에서의 잡채

잡채는 조선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졌는데, 잡채가 대중적인 요리였던 중국과는 정반대로 조선에서는 진귀한 궁중요리의 하나로 전해졌다. 이는 조선식 잡채의 조리 과정이 중국식 잡채와는 클래스가 다른 수준(...)이였기 때문인데, 중국의 잡채는 상기했듯 그냥 아무 야채나 대충 썰어 그냥 먹든 볶아먹든 하여튼 야채만 다양하게 많이 섞으면 땡인 반면, 조선식 잡채는 팔도 전역에서 진상되는 수많은 나물재료와 갖가지 채소와 고기 등 온갖 귀한 재료들을 상당량 사용하는 식인지라 한번 준비하는데 재료마다 따로 손질하여 준비하여야 하므로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는 음식이였다. 여기다가 조리법도 간편한 조리법인 기름에 볶는 식도 아니고 고생 많이 들어가는 찜이나 삶음 과정을 거친 후 젓가락으로 잡기 좋게 얇고 길게 썰어내어 그 모양을 가지런히 내어 놓는 등 모양새 내는데도 상당히 정성이 많이 가는 음식이였다.

흔히 조선시대에 잡채에 대하여 단순히 재료를 각각 구별하여 썰어넣는 요리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본래 잡채라는 요리는 대동법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공물로서 전국 팔도에서 진상[2]된 공물을 각 나름대로 재료에 맞게 다듬어 올리던 요리이다. 이 요리의 의미는 임금이 수라를 들 때 미리 각 지방의 특산물인 공물이 반드시 진상되어야 함에도 수라상에 오르지 않거나 질이 나쁨을 보고 그 형편을 짐작케 하기 위하여 즉, 공무 시간이 아닌 밥을 먹는 중에도 국정을 살피고자 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이 식사를 하던 중에 몇몇 재료가 빠지거나 그 맛이 소홀한 경우에는 수라를 물리고 그 지방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는 재료가 진상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그 지방에 특산물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 각 지방의 풍흉이나 지방관의 실책에 의한 서민들의 고충을 짐작케 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다만 그놈의 탐관오리들의 방납때문에 큰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지만...[3]

이렇게 재료도 많이 필요하고, 재료마다 따로 관리를 해주어야 하고, 조리 과정도 녹록치 않고, 특히 방납의 폐단으로서 사실상 각 지방의 상황을 알기 어렵고 결국 대동법이 시행된 직후에는 고급스러운 음식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보통 반찬으로서 전래되었고 결국 일정시대 이후에 그러한 싸구려 이미지가 계속해서 내려온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전 서술에는 6.25 이후에 당면 잡채가 등장한 것 처럼 되어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당면 잡채는 식민지 시기에 등장한 음식이다. 잡채의 핵심이 되는 당면과 일본식 간장은 모두 식민지 시기에 등장한 것이다. 실제 당면 잡채는 일본식 간장이 없이는 절대로 맛과 색을 낼 수 없다. 식민지 시대 신문에서도 오늘날과 유사한 잡채 제법이 확인된다. # [4].만두순대에 당면을 넣게 된 것과 유사한 경로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원조 한국식 잡채는 원래 간을 하지 않고 대신 수라간에서 준비한 간장과 초장[5]을 이용해 알아서 찍어드시는 방식이였으나, 지금의 당면을 이용한 잡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당면 특유의 텁텁한 맛이 강하기 때문에 소금이나 참기름 간을 하여 오늘날의 "무침"의 형태가 되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한국 잡채를 국수의 일종으로 분류한다. 물론 지금도 면이 없는 잡채가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주시콩나물잡채를 들 수 있다.

이렇듯 양국의 잡채는 이름과 야채가 많다는 점만 같지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된 상황이라, 한국어 위키백과 '잡채' 항목에 해당하는 다른 언어판 항목도 전부 한국식 잡채만을 다루고 있다.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아예 잡채 항목 - 채소로 리다이렉트됨조선식 잡채 항목을 따로 만들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한국을 조선으로 부르는 나라라 그런지 항목명이 저렇다.

계절과 상관없이 하루만에 쉬어버리므로 그 날 해서 그 날 다 먹어치워야 한다.

인터넷에서 잡사용어로도 쓰인다?

3 중화요리점의 잡채

우리나라의 중화요리점에서는 고추잡채를 주로 취급한다. 고추나 피망 등의 야채 + 야채와 결을 맞추어 썬 돼지고기를 기름에 볶아내는 중국 요리 '청초육사'가 그 원형이다. 한국식으로 맛이나 형태가 다양하게 어레인지되곤 하지만, 원 요리인 청초육사의 핵심은 '푸른 야채 + 고기의 볶음조리'에 있으므로 의외로 원형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일정시대에 어레인지된 잡채와 또다시 이종교배를 거친 범아시아적 혈통을 자랑하는 요리로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영업하는 중화요리점에서 잡채밥을 주문하면 당면이 들어간 잡채밥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7, 80년대 전후로 한국에서 상당히 유행했던 음식이었기 때문. 이는 상기했듯 단순화 되었다고는 하나 근본적으로 조리법도 손이 가는 잡채의 특성상 당시 잡채는 특별한 명절날이 아니면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왜냐하면 잡채는 일단 당면을 뽑은 후에 이를 찌거나 삶아낸 후 다시 간장과 후추로 양념한 다음 따로 볶은 나물과 고명을 섞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더불어 유행했던 중국집 메뉴는 갈비탕.

잡채밥이 유명해진 이유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주범인 김승일의 최후의 식사가 잡채밥이기 때문이다.[6]

현재 한국에서 잡채밥을 주문할 때 당면이 싫다면 고추잡채밥을 주문해야 한다.

미국식 중화요리의 일종인 찹 수이는 이 잡채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1. 심지어 생야채를 그대로 썰어 내어 놓아도 잡채에 해당한다.
  2. 누군가 진상이라는 단어를 삭제하였는데 본래 진상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니다. 진상의 의미는 위키가 아닌 국어사전을 참고할 것.
  3. 실제로 탐관오리가 방납을 자행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 잡채 때문이라는 민간학자들의 의견이 존재한다. 적어도 직소를 올리지 못하는 농민들을 속이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공납을 올려서 잡채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끔 속여야만 했기 때문. 물론 그 전에 정치적인 혼란을 통해 조선 말기에 외척세력의 집권이 자행되지만 그럼에도 선정을 펼치지 못하고 대동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방납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다. 임금이 잡채를 매 끼니마다 먹어도 늘 팔도의 작물이 풍족했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눈치채지 못한 것. 지존이라는 임금에게 올릴 공물인데 누가 감히 질이 좋지 않은 식재료를 올리겠는가.
  4. 실제로 외국에서는 잡채를 면요리로 취급한다. 한식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메뉴 중의 하나다.
  5. 초장 또한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었는데 본래 조선 시대 임금에게 진상되는 수라에는 두 종류의 밥 뿐만 아니라 임금의 기호에 맞게 초장과 간장이 동시에 진상되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초장은 물리시고 결국 세자가 잡곡밥과 함께 먹는 경우가 많기는 했지만.
  6. 이는 공범인 마유미의 증언에 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