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

1 소개

張綠水, ? ~ 1506

조선 연산군의 후궁.

2 외모

외모 자체는 평범하여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동안이라 서른이 넘은 나이(그 시대에는 중년이다)에도 10대 소녀와 같은 얼굴이었으며, 연산군이 원하는 것을 잘 알아 비위를 잘 맞추어 주었다고 하는데... 기록을 보면 연산군의 아명을 부르며 때리고 꼬집고 조롱했다고 하니 대체 저게 어떤 식으로 비위를 잘 맞춰준 건지 의문이다(...) 나한테 이런 건 니가 처음이야! 이건가? 그냥 약한 마조히스트였을수도 있다 연산군의 마더콤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장녹수와 연산군을 다룬 작품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을 어린아이를 대하듯 달래주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

3 생애

3.1 출생

실록에 의하면 장녹수의 아버지는 문의현령을 지냈으며 언니는 내수사의 공노비였다. 따라서 얼녀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보로 유명한(...) 제안대군의 가노로 춤과 노래에 능했다고 한다. 시집을 두 번 갔던 유부녀에 아이까지 있었다.

3.2 기생에서 후궁으로

어떤 경우인지 일이 잘 풀려서 연산군의 눈에 띄어 입궐했다. 처음에는 종4품 숙원에 봉해졌고 그 후 종3품 숙용까지 간다.

3.3 악행

이러한 연산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이런저런 권세를 휘둘렀다. 뇌물을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고 등등. 하지만 의외로 장녹수의 악행은 기껏해야 이게 전부다. 뇌물 받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 축적은 당시 관료들에게도 어느 정도 관행처럼 용인되던 일이었다. 물론 출신을 고려해 보면 엄청난 편이긴 하지만 당시 관료들보다 유독 많이 부정축재를 한 것도 아니었으며 조정 요직에 자기 일족을 심지도 않았다. 형부 김효손이 당상관에 오르긴 했지만 이것도 거의 연산군 말년에 가서야 이루어진 일이고 제대로 출사한 사람은 이 한 명 뿐이었다. 물론 조정 관료들이 장녹수 집을 짓는 걸 감독하기도 했지만, 이건 연산군이 관료 길들이기 식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어쨌든 당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만 해도 원성을 사기에는 충분했다.

1504년에는 궁녀 전향, 수근비가 뜬금없이 장형 80대씩을 맞고 유배된 이후 능지처참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심지어 이들의 분해된 머리와 사지를 순회공연하듯 돌려가며 전시하는 대역죄와 맞먹는 처우를 할 정도였는데도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처우를 받았는지에 대한 전말이 불명확하다. 다만 이들의 미모를 질투한 장녹수의 모함으로 발생했다는 사관의 추측만 전할 뿐이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1505년에는 기생 옥지화가 장녹수의 치마를 밟은 죄로 가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효수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였으니 이미 연산군이나 장녹수나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연산군의 의중을 잘 알았는지 반정 일주일 전인 8월 23일, 잔치를 즐기던 연산군이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人生如草露, 會合不多時)"이라고 시를 읊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녀와 전비만이 통곡을 했다고. 이에 연산은 둘을 안으며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변고가 있겠느냐? 하지만 만약 변고가 있으면 너희는 무사하지 못하겠지"라고 같이 울었다고 한다.

3.4 중종반정 이후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몰락하자 장녹수는 반정세력에 의해 연산군의 또다른 후궁인 전비, 백견 등과 함께 군기시 앞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그녀의 시신은 처형된 그자리에 그대로 버려졌고 분노한 군중들이 장녹수와 전비 시신의 생식기에 돌을 던지면서 "나라의 고혈이 모두 여기로 빨려들어갔다!"라고 외쳤으며 군중들이 던진 돌에 순식간에 돌무덤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실록의 기록은 이렇지만 생식기에 돌을 던지는 게 워낙 노골적이라서 그냥 시신에 돌을 던졌다고 묘사한 책이 많다.

4 대중 매체에서

버라이어티한 연산군 시대를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 연산군을 다루는 사극에서는 반드시 주요인물로 등장할 뿐 아니라 타이틀로 직접 나선 적도 있다. 워낙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연산군의 정실 부인인 폐비 신씨조차 제치고 연산군의 진짜 아내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1]

연산군 시대가 워낙 사극화가 많이 된 만큼 연산군과 단짝인 장녹수도 사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어째서인지 최후를 실록 그대로 그려낸 사극은 단 한 편도 존재하지 않았다. 본시 군기시 앞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참형이 집행되고 시체가 거리에 전시된 이후에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졌는데 어째 사극에는 장녹수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돌 맞고 죽는 걸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반정군이 그 자리에서 척살해버리는 식으로 처리되는 게 대부분이다. 더불어 위에 언급한 전향, 수근비[2], 옥지화 등의 사건은 극적인 요소가 충분함에도 사극에서 줄줄이 배제되고 있다.

4.1 소설

숨덕부의 저자인 오버정우기가 정사와 야사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장녹수의 삶을 녹수별곡이라는 제목으로 그려냈다. #

4.2 사극

장녹수(드라마) 항목으로.

4.3 영화

영화 왕의 남자 에서 배우 강성연이 연기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이 "연산군을 홀린 여자이니 요염하게 등장할 것" 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중간중간마다 개년 요부 같은 연기를 잘했다는 호평도 있었다.

2014년 민규동이 감독한 간신(영화)에서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차지연이 연기했다. 극중 창소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이 사람.

4.4 노래

사극 장녹수의 주제가. 작사 박성훈, 작곡 임택수, 노래 전미경.



사극 사상, 아니 아마도 한국 드라마 사상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주제가 중 하나일 것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에 그야말로 미칠 듯한 인기를 누렸으며 드라마가 종영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래방 인기가요 리스트 등에 이름을 올릴 정도.[3] 드라마 장녹수를 못 본 사람이라도 웬만하면 이 노래는 알거나 최소한 어디서 들어보긴 했을 것이다.

애절하면서도 한국 전통적인 멜로디 탓인지 색소폰 연주자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다. 나이 지긋한 연주자가 공원이나 지하철 역 등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광경을 목격한 위키러들도 많을 것이다.
  1. 다만 연산군과 중전과의 관계는 실제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2. 사극 장녹수, 왕과 비에서는 이상하게 역사와는 달리 장녹수의 모함으로 죽기는 커녕 연산군이 유배될 때도 따라가 임종까지 지키는 역할로 나온다.
  3. 확인 결과 2013년 노래방 인기가요 리스트에도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