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커리 테일러

미국 대통령
11대12대13대
제임스 포크재커리 테일러밀러드 필모어
공식 초상화
풀네임Zachary Taylor
출신정당휘그당
생몰년1784년 11월 24일 - 1850년 7월 9일(65년 7개월 15일)
재임기간1849년 3월 5일 ~ 1850년 7월 9일(1년 4개월 3일...)
서명
173cm

1 전반적 생애

1784년 버지니아의 부유한 농장주 리처드 테일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 민병대에 들어갔던 적이 있던 그는 교육을 마치고[1] 정식 군대에 들어가게 된다.

입대하고 터진 첫 전쟁인 미영전쟁에서 윌리엄 해리슨과 함께 인디애나를 원주민들의 공격에서 지켜냈고 막바지인 1814년에는 존슨 요새를 점령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이를 계기로 차근차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잡아 승진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지내던 그에게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밀명이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국경을 넘어서 멕시코군을 도발하라!"는 내용이었고 그는 그대로 했다. 이렇게해서 터진 전쟁이 바로 미국-멕시코 전쟁.

이 전쟁에서도 그는 뛰어난 실력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며 승장이 될 수 있었다. 원주민 핍박 전문인가 이러한 그의 인기를 높이 산 휘그당에서는 테일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정작 휘그당원 대다수는 전쟁에 반대했는데도 말이다. 어쨌건 마틴 밴 뷰런이 경선에서 자꾸 미끄러지자 독자 출마하여 민주당이 분열된 틈을 타 손쉽게 당선되었다.


그는 정치를 해본 적이 전혀 없었고 그간 1848년 이전에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나타내지 않아 사람들은 그가 어떤 대통령이 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으나 대선 출마가 기정사실이 되자 정치적 신념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기본적으로 군 출신답게 내셔널리스트였고, 주의 주권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미합중국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깨져서는 안된다는 연방파였다. 비록 경제적으로 휘그당이 원했던 국가의 기반 시설 확충, 보호무역은 반대했으나, 정치적으로 대통령은 헌법에 관련되지 않는 이상 거부권을 사용하면 안 되고 의회에 맡겨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으므로 휘그당에서 그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게 된다. 추대될 때도 휘그당 전당대회에서 대놓고 "비록 휘그당 후보로 출마하지만, 무소속처럼 행동할 것이며 휘그당을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여 휘그당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 당선 이후에 공개적으로 휘그당의 경제 정책에 대해서 침묵했지만, 사적으로는 대놓고 반대를 함으로써 자주 휘그당과 충돌했다.

테일러가 남부 출신이였고, 노예를 많이 부렸던 지주집안의 아들이였기 때문에 남부 유권자들은 그가 노예제 확대 찬성파일거라고 착각했지만, 사실 그는 노예 문제는 주에게 맡기자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제일 큰 관심사는 어떻게 협상을 해서 미국이라는 국가를 하나로 묶을지였다. 이는 남부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것이였는데, 남부는 캘리포니아 및 새로 편입된 영토와 주가 노예제를 합법화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고 싶어했기 때문이다.[2] 본인 역시 남부 출신이자 노예 소유주라서 남부가 노예제를 유지할 권리를 당연히 존중했고 노예제 자체를 반대한것은 아니였다.[3] 그러나 이런 중립적인 행동이 남부측에서는 배신으로 받아들여졌고, 점점 남부 출신 정치인들이 미국을 갈라 독립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자 이에 테일러사 남부를 달래기 위해 내세운 것이 헨리 클레이 등이 제시한 1850년의 타협안이다. 이 타협안 외에도 여러가지를 제시하는 한편 만약 정말 남부가 독립할 경우 본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내려가 반역자놈들은 다 목 메달아 주겠다고 강하게 나갔다.[4]

2 사망

이 타협안을 놓고 의회에서 옥신각신하던 중 독립기념일날 테일러는 갑작스럽게 쓰러졌다. 하필 그 날은 몹시 더운 날이었는데 체리우유를 과식했다 탈이 나고 만 것이다.(정확히는 위장염이었다고.) 그리고 5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미국에서 독살설이 도는 대표적 대통령이다. 거기다 테일러가 타협안에 반대하고 있던 것도 한 몫했다. 하도 소문이 끊이지 않자 1991년 유해를 부검했다. 결과는 자연사였다. 그럼에도 이 밑밥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강직한 성품에 추진력을 갖추기는 했지만, 오래살았다면 앤드류 잭슨 2기 정도 되었을 것이다. 본인도 남부 출신에 노예 소유주라 북부의 노예제를 없애자는 주장에는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군 출신에다가 열렬한 연방주의자였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을 계속했다면 임기 내에는 적어도 링컨 시절같은 피비린내나는 내전은 없었을 것이라는게 중평이다. 그러나 앤드류 잭슨이 예언했던 것처럼 노예문제는 구실에 불과했고, 어쨌든 분리독립하고 싶어했던 남부가 언젠가 독립할것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기 때문에 시기만 늦춰졌지 남북전쟁은 피할수 없었다. 그래서 음모론이 나왔던 것이고.

이렇게 휘그당의 두 대통령이 모두 군인 출신으로 취임 직후 병사하면서 휘그당은 빠르게 몰락하고 민주당이 다시 8년간 대통령을 배출하게 되며, 결국 링컨 때 휘그당은 공화당으로 재창당되게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지만 테쿰세의 저주 대상이 아닌데도 임기 중에 사망한 유일한 대통령이다.하지만 얼마나 원주민들의 증오를 받았겠나? 멕시코도 함께..

3 일화

평생 군인으로 지낸 것 때문이었는지 죽는 순간에도 제법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I have always done my duty, I am ready to die. My only regret is for the friends I leave behind me."
(나는 항상 내 의무에 충실했으며,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게 걱정이 하나있다면 내가 떠난 후 남을 친구들이다.)

전쟁 등으로 명성을 높여서 얻은 별명은 "Old Rough and Ready".(거칠고 노련한 준비된 지휘관.)

제퍼슨 데이비스와도 접점이 있다. 항목 참조.

초상화에서는 주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정작 군인 시절에는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병영에서 군복을 입는 것을 싫어했고 사복 상태로 있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한 일화를 들면 테일러의 부대에 새로 부임한 신임 장교가 늙은 촌부의 모습으로 술을 먹고 있는 테일러를 알아보지 못하고 테일러에게 "요즘 인디언들 때문에 고생이 많지? 내가 다 무찔러 줄게"라고 떠벌렸는데 테일러는 그 장교의 장단을 맞춰주며 "그래 주시면 정말 고맙습죠"(...)라고 응수했다. 다음날 그 장교가 지휘관에게 인사를 하러 지휘관실을 찾아오자 군복을 입고 있던 테일러를 보고 깜짝 놀라 데꿀멍하며 사죄했지만 테일러는 웃으면서 "처음 보는 사람을 옷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네. 친구"라고 충고를 해 주고 넘어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해군 사령관인 데이비드 코너 제독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코너 제독은 테일러와는 달리 복장에 대해 상당히 엄격한 군인이었다. 그래서 테일러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모처럼 군복을 FM대로 입고 코너 제독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막상 코너 제독을 만나자 테일러는 깜짝 놀랐는데 그 이유는 코너가 테일러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가벼운 사복 차림으로 테일러를 만나러 왔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멍때리고 있다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서로에게 사과를 했다고. 과잉배려
  1. 당시 그가 살던 곳은 켄터키와 인접해 있었는데 그곳에는 아직 학교가 없었기에 그는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2. 서부 신개척지에는 남부인들보다는 북부인들이 주로 진출했기에 노예제에 반대하는 성향이 강했다. 주에 알라서 맡기면 새로 생겨날 주들은 모두 노예제에 반대했을 것이다.
  3. 이런 경향은 상당히 흔한 것이었다. 당장 제퍼슨만 봐도...
  4. 앤드류 잭슨과 비슷한 성향인데, 앤드류 잭슨 역시 남부 주들에게 동정적이였으나, 자꾸 찡찡대면서 독립하려고 하는 주들에게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