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명 테이 토와(テイ トウワ)
한국명 정동화(鄭東和)
일본과 미국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DJ로, 현재 시부야계의 기반을 다져놓은 인물이다.
1 상세
재일 한국인 3세. 국적은 한국이다. 테이 토와라는 이름은 한국 이름인 정동화를 음독해서 읽은 것이다. 성과 이름의 순서를 바뀌는 영어명에서는 Towa Tei라고 쓰는데, 빌보드 싱글 차트 4위를 했던 무렵 이 영어명이 언론을 통해서 한국에 대대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토와 테이로 굳어진 모양[1]. 일단 위키 규정상 이 항목의 항목명은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토와 테이 쪽으로 작성.
어릴때부터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고, 그 방면으로도 재능이 충만했다. 16살쯤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진행하던 '사운드 스트리트'라는 라디오 방송에 보낸 자작곡 데모테잎이 전파를 탔다. 그리고 23살때 미국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갔는데, 그 곳이 그 유명한 파슨스 디자인대학교[2]였다.
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클럽을 전전하며 DJ 생활을 하다가 26살 때 클럽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만든 3인조 일렉트로니카 그룹인 Deee-lite를 조직한다. 그것이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게되어 그래픽디자인 공부를 아예 관둬버리고 음악에 매진.
그 뒤 일본으로 귀향하여 1994년 DJ로서의 정식 1집 앨범인 'Future Listening!'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는 피치카토 파이브의 마키 노미야, 베벨 질베르토 등의 중견급 세션들이 참여.
1997년에 발표한 'Sound Museum'에서는 카일리 미노그가 뜬금없이 참여해서 GBI란 곡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주었다. 이후의 앨범들 역시, 당시 인정받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참여하였고, 일본의 일렉트로니카 시장이 부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장이 되었다.
이렇게 서술된 바와 같이 시부야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을정도로 여러 아티스트와 많은 협업을 해왔고, 시부야계의 뿌리와 같은 인물이다. 2012년을 기점으로 음악인생이 25주년이 되었으므로 그 자체가 역사인 인물.
음악적 색체는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있다. 시도 해보지않는 장르가 되려 드물게 느껴질 정도인데, 단순한 전자음악에서 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힙합, 보사노바, 명상음악 등 여러가지 시도를 한다. 1집 때는 인도악기인 시타르를 직접 연주해보이는 퍼포먼스도 했었다. 멜로디나 리듬 부분에서는 브라질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다.
디자이너 경력이 있는 만큼 앨범 자켓 디자인도 본인이 직접한다. 최근에는 실크 스크린에 맛들여서 그걸로 뮤직비디오까지 찍어버렸다.
2 기타
손을 가위 모양으로 만들어 턱에 갖다대는 포즈가 트레이드 마크. 그외에도 바가지 머리와 커다란 뿔테안경이 유명하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고는 하는데, 살던 동네만 보면 영락없이 하렘가 빈곤층에서 자라난거나 다를바가 없다. 덕분에 학교에 가면 자기보다 못사는 애들[3]이 우글거렸던지라 재일한국임에도 별로 열등감 없이 자랐다는 모양.
아버지는 건설 설계사였고, 동생인 정수화(Shuwa Tei)(テイ シュウワ)는 건축가이자 일본 디자인계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다. 인텐셔널리스라는 회사의 대표. NTT 도코모용으로 나왔던 휴대전화 N705i의 디자인을 맡아 한 적이 있는데, 이 핸드폰에는 형인 토와 테이가 작곡한 착신멜로디(곡 제목이 별도로 없고 나중에 N705i라는 이름으로 디지털싱글로 나왔다)가 들어가 있다. 말 그대로 형제가 만든 핸드폰.
아사쿠라 다이스케, 무카이야 미노루와 더불어 YAMAHA의 장비를 애용하는 뮤지션 중 하나. 한때는 엔도스먼트도 받았지만 요즘은 Korg나 Roland등 다양한 장비를 쓰는 것 같다.
내한도 몇 차례 했는데, 소문에 따르면 한국의 클럽 문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5년에 페르소나 4 댄싱 올 나이트 리믹스로 참여. Heartbeat, Heartbreak의 리믹스를 맡았다. 메인 캐릭터는 도지마 나나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