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년 ~ 1600년 2월 17일

이탈리아도미니코회 수도자이자 철학자. "La Cena de le Ceneri"와 "De l'infinito universo et mondi"에서 무한 우주론과 지동설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말년에는 교황청에 의해 화형을 당한 순교자이다.

1 이론

조르다노 브루노는 지동설로 대표되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을 뒷받침하는 한편, 여기서 더 나아가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이는 당대 천동설지동설을 주창하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따르던 "우주는 유한하다"는 믿음에 반하는 생각이었다.

브루노는 천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들이 바로 항성이라고 주장하였고, 빛과 열을 발산하는 항성과 그 주위를 돌며 빛과 열을 받는 행성을 구분하였다. 또한 생명체는 지구가 아닌 곳에도 존재한다는 견해를 밝혔다.[1]

브루노는 그리스도교적 도덕관을 비판하는 한편, 성경은 도덕적 가르침을 위함이지 천문학적 함의가 아니라고 일축하기도 하였고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라 마술사라고 당대 기준으로는 상당히 담대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2 활동

브루노는 이탈리아를 벗어나 유럽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자신의 우주관과 종교관을 피력하였으나 큰 지지를 얻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3 죽음

브루노의 사상과 이론은 이단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교황청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론을 다수 포함시키게 되고, 교황청은 대천사의 성에 브루노를 가두고 고문하기 시작한다. 브루노의 종교관과 우주관은 당대의 종교적 믿음에 위배되는 부분이 많아 종교재판에서 여러 죄목이 적용되었고 브루노는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브루노는 1600년 2월 17일에 로마에서 화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4 평가

조르다노 브루노는 당대 기준으론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정론과 위배되는 이론을 펼친 사상가였다. 브루노를 과학자로 볼 수 있는가, 또는 근대 과학에 기여하였는가 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브루노는 자신이 몸담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고 사회 비판, 천문학적 의견 피력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쏟은 자유 사상가였다는 것이다. 브루노의 죽음이 기려지는 것은, 그가 종교적 도그마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고 이는 사상에 대한 억압의 폐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이자 역사적 교훈이기 때문일 것이다.

5 기타

코스모스(2014년도판 리부트) 의 제 1화(Standing Up in the Milky Way, 은하수에 서서)에 소개되었다.
  1. 조르다노 브루노를 다룬 글에서 마이클 화이트는 이렇게 지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그 생명체들이 신적 현상을 경험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에 당대에는 생각할 수 없는 주장이자 가장 위험한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