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책략

朝鮮策略, (영어)Korea Strategy (1880년 경)

1 개요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조선에서 쓴 책이 아니다.

청나라 말, 황준헌(黃遵憲(황쭌셴); 1848년 ~ 1905년)이 쓴 책으로 원제는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지만 앞의 '사의'를 생략하고 ≪조선책략≫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강화도 조약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와 변혁을 맞이하게 된 조선에게 조언하기 위해 지어진 외교 관련 저서이다.

2 내용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이 국제법 서적인 만국공법과 함께 들여온 책이며, ≪조선책략≫은 당시 일본 주재 청나라(이하, 청) 공사관의 참찬(參贊; 오늘날의 서기관)이었던 황준헌이 김홍집을 만났을 때 건네준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간단하게 줄이면 "러시아는[1] 청과 조선에 위협적인 애들이니 청과는 당연히 친하게 지내고 일본도 가까운 애들이니 결속해야 하고 미국애들과도 연결해서 러시아와 맞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친중국(親中國)ㆍ결일본(結日本)ㆍ연미국(聯美國). 더 줄이면 러시아 개새끼 해봐 이 관점은 일본을 견제하려는 이홍장의 판단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근거로 미국은 정의의 나라니까 조선을 이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했는데, 여기엔 '애초에 미국은 영국의 폭정(暴政)에 반발하여 독립 및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열강)가 남(조선)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성격을 갖고 있다'라는 부연설명도 적혀 있다. 국제정치에 정의가 어딨냐는 건 둘째치고, 당시 미국은 그냥 먼로독트린(1823)을 깨고 식민지 개척에 손을 뻗기 전이었을 뿐이다. 일본을 통해서 조선과 수교하려했던 미국과 조선의 수교를 대신 중계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우위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 책의 진짜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비켜 이 바닥의 주인은 나야 실제로 청의 주선 하에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고 이후 여러 국가가 청을 통해서 조선과 연결되니, 이 책의 의도가 어찌됐던간에 청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상황 전개였던 셈이다.

3 영향

내용은 이렇게 간단했지만 조선에 미친 파급력은 상당하여, 조선의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조선책략≫은 필독서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1880년 12월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1881년 5월에 별기군(別技軍)을 설치하였고, 1881년에는 청나라에 근대식 병기 제조, 사용법을 배우러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하고, 일본에는 근대적 일본문물을 시찰하러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2]을 파견하는 등 개화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본 위정척사파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악을 쓰며 만인소를 쓰는 등 대단히 불쾌하게 여겼다. 대표적으로 이만손(李晩孫; 1811년 ~ 1891년)은 영남만인소를 통해,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딱히 악감정도 없고[3] 미국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데, 이를 공연히 적으로 돌렸다가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처럼 외래문물 도입 등의 개화 정책은 이를 반대하던 양반 유림 세력들에게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개화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갈등은 결국 임오군란으로 폭발하게 된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내용은 틀리게 되었다. 청은 청일전쟁 이후 물러나고 미국은 관심도 별로 가지지 않았고 러시아는 러일전쟁이후 발을 빼고 결국 일본이 먹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계는 단지 조선책략뿐 아니라 그 몇십년전 고종이 즉위하고 몇년 안가서 남종산등이 대원군이 보낸 편지에서 러시아가 남으로 내려오니 프랑스와 수교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걸로 보아 조선책략 이전에도 경계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가 이것으로 증폭된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덕분에 일본은 경계 않고 답없이 러시아만 경계하는 이가 생겨 문제되긴 했다.[4]
  1. 조선은 조선책략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 주선으로 러시아 견제목적으로 러시아와 경쟁국인 영국과 1882년 4월 수교 하였다.
  2. 한국사 용어 수정안에 따라 조사 시찰단(朝士視察團)으로 바뀌었다. 신사 유람단이라는 명칭은 외래문물 도입에 반발하는 세력을 속이기 위한 위장용 명칭이었다. 직역하면 '신사들의 (해외)여행 모임'이 된다.
  3. 실제로 나선 정벌 이후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4. 대표적으로 독립협회가 있는데 이들은 러시아를 죽어라 싫어했다. 다만 이 시기는 아관파천으로 인해 러시아가 고종을 지켜준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이권을 침탈했으므로 러시아를 싫어하는 게 당연하다. 일본은 고종을 데려오려고 애쓰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