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캠벨

(조셉 캠벨에서 넘어옴)

1 개요

Joseph John Campbell(1904.03.26~1987.10.30)

미국의 신화학 작가, 교수. 비교신화학과 비교종교학에서 정점의 위치에 올랐으며 그의 저서들은 신화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 집어드는 필독서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물론 이후 비교신화학에서의 연구가 계속 진척되어 감에 따라 현재 캠벨의 학문은 주류 학계와 상당히 거리가 벌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캠벨의 신화학에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이 융의 분석심리학인데, 그 융 역시 현재 주류 학계와는 거리가 멀어져있으니 캠벨의 책을 읽을 때도 주의를 요해야하겠다. 융과 마찬가지로 학술계 이외에 창작이나 예술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생애

뉴욕에서 태어날 당시 캠벨의 집안은 상위 중산층 가정이었으며 미국에서는 드문 가톨릭 가정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캠벨은 어느 날 아버지가 데려간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보게 된 아메리칸 인디언의 민담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맨해튼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특히 박물관 한 켠에 있는 토템 기둥에 매료되었다고. 그는 곧 인디언 사회의 여러 측면에 공통적으로 신화가 엮여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신화에 대해 가장 많은 관심을 쏟게 된다.

1921년 코네티컷의 캔터베리 스쿨을 졸업한 캠벨은 다트머스 대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중세 문학 석사, 1927년 영어 문학 석사 학위를 수료하는 동안 자신이 어렸을 적 즐겨 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담과 아서 왕 전설에 나오는 많은 주제들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캠벨은 1927년 콜롬비아 대학을 비롯한 파리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특히 파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선 중세 프랑스어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였다. 특히 1924년 미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동안 선상에서 만나게 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금강경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힌두교인도 신화에도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 분야가 넓어지자 기존의 전공이었던 중세 영문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박사 학위 과정을 중단한다. 이후 대공황이 닥쳐오자 5년 동안 무직 상태에서 독서에 열중하였는데, 본인은 훗날 기본 독서와 공부는 이 시기에 거의 다했다며 회고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소설가 존 언스트 스타인벡[2]과 해양생물학자 에드워드 플랜더스 로브 리케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이후 뉴욕 세라 로런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전4권)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교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식도암 합병증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저서들은 물론 1900년대 중반의 학문적 성과에 기반해있다는 시대적인 한계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창작 지망생이나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으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나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 역시 그의 저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첫 번째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과 사후 출간된 대담집 <신화의 힘> 등이 특히 밀리언셀러로 유명한데, 아마존에 들어가봐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미국에서 인기가 대단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들이다. 그 외에 <신의 가면> 4부작과 <신화와 함께 살기> 등도 유명하며, 조지프 캠벨 재단에서는 그의 유고와 강의안, 대담집 등을 정리한 유작을 계속 출판하고 있는 중이다.

3 기타

캠벨은 신화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각 분야의 대가들을 소개 하였다.

문학 -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과 더불어 캠벨이 가장 좋아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캠벨은 그의 대작 <율리시즈>와 <피네간의 경야> 등에 평생 매료되었다. 사실 신화학자이기 전에 영문학자였던 캠벨은 그의 동료와 함께 <피네간의 경야를 여는 곁쇠>라는 해설서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는 <피네간의 경야>에 대한 최초의 해설서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신화학 - 제임스 프레이저[3]

미술학 - 파블로 피카소

인류학자 - 레오 프로베니우스
독일의 민속학자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역시 일반 대중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탐험대를 이끌고 돌아다닌 탐험가였다. 캠벨은 이 사람에 저작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봤으면 했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자 서점 주인한테 사정을 적은 편지를 보냈는데, 그 서점 주인은 캠벨이 원하는 책을 모조리 보내며 나중에 일자리를 구하거든 그 때 책값을 지불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철학자 - 프리드리히 니체

역사학자 - 오스발트 슈펭글러

<서유럽의 몰락>의 저자 역사를 인간의 생애 주기에 비유했으며, <역사의 연구>를 쓴 토인비에게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캠벨이 즐겨 인용하는 작가 중 하나였으며, 나중에 아내가 되는 자신의 수강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 <서유럽 몰락>을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1. 인도의 종교철학자
  2.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의 저자. 캠벨과 지내는 동안 로빈슨 제퍼슨, 존 듀이, 오스발트 슈펭글러 등을 같이 공부하였다.
  3. 황금가지를 쓴 인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