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꿈

삼국유사(三國遺事) 제3권 탑상(塔像)편에 실린 대표적인 꿈 이야기로, 조신몽(調信夢)이라고도 한다. 우리 고전 문헌에서 일장춘몽 속의 허무한 인생을 그린 원조격 작품이니, 중국의 한단지몽(邯鄲之夢), 남가일몽(南柯一夢)에도 못지 않게 우리 조상님들 또한 꿈 이야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이 플롯은 우리 국문학사상 전기체(傳奇體) 소설의 효시라 일컫는 조선시대 매월당 김시습금오신화(金鰲新話)에 실려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 (용궁에 놀러갔는데.. 아시발꿈..) 에도 그 편린을 엿볼 수 있으며, 조선 중-후반기에 이르러 아시발꿈과 모에속성을 가미하여 완성도를 높인 작품이 서포 김만중구운몽 되시겠다.

하지만 꿈 속에서는 세속적 욕망에 의외로 충실하고, 일장춘몽은 그저 형식적인 교훈 정도로만 보이는 후대의 몽자류 소설과는 달리 조신의 꿈은 불교적인 주제를 잘 담고 있는 비극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은 신라승려 조신(調信). 조신은 본디 세규사(世逵寺)에 있었는데, 절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오늘날의 강릉시)에 있어 조규가 파견되어 장원을 관리했다. 조신은 명주 태수[1] 김흔공(金昕公)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낙산사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그 여인과 맺어지게 해주십사 하고 남몰래 기도하였다. 땡중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연분이 맺어지기는커녕, 혼사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들릴 뿐이었다. 조신은 불당에서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는데 그런데 웬일인가, 사모하던 낭자가 제발로 절에까지 나타나 조신을 찾아오지 않는가.

그 낭자 또한 부모가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조신에게 연정을 품고 과감히 집을 나왔으니... 딸자식 키워봤자 소용없다는 또 하나의 전설을 만들어낸다. 낭자의 혼인 상대 입장에서는 영락없는 네토라레 (…).

눈맞은 남녀가 사랑의 도피 끝에 자식 낳고 수십 년 동안 알뜰살뜰 잘 살았다..면 해피 엔딩이요, 여기서 깨어난다면 아시발꿈의 전형적인 패턴이겠지만, 인생이란 게 생각만큼 녹록하지 않았다.

두 남녀는 40년간 같이 살면서 자식들 5명을 낳았으나 집은 서발 장대 거칠 것이 없는 판이었다. 나중에는 그 보잘것없는 누옥도 잃고 온 가족이 함께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기를 10년간 했다. 어느날 고갯길에서 큰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자 부부는 대성통곡을 하며 시신을 길 옆에 묻은 뒤, 남은 가족들은 우곡현에서 초가집을 짓고 구걸로 먹고 살았다. 부부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든데, 어느날 10살 된 딸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다가 에게 발목을 물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는 이 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던 중, 아내가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아름답고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입니다. 그러나 병은 깊어가는데 굶주리며 추위에 떨기를 피할 수 없으니, 이제는 보잘것없는 음식이라도 제대로 빌어먹지도 못하여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해도 돌보지도 못하는데 언제 부부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얼굴이며 밝은 웃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언약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지나갔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 다 함께 굶어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되지만,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르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 [2] 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고 하는데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다. 새벽빛이 희뿌옇게 밝아오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에 새하얗게 세어버렸다. 마치 한평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듯 세상사에 뜻이 사라지고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또한 자기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

조신이 가는 길에 꿈속에서 큰아이를 묻은 곳에 들러 땅을 파보았더니 돌로 만든 미륵이 나왔다. 조신은 미륵상을 물에 씻어 가까운 절에 봉안하고, 세규사로 돌아와 자기가 맡았던 소임을 내려놓았다. 그 뒤 정토사(淨土寺)를 세우고 선행을 하며 살았다. 그 뒤 조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과연 불교 사상에 기반을 둔 삼국유사의 집필 취지에 부합하는 불교식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지은 이야기라 하겠다.

춘원 이광수가 이 작품을 대단히 좋아해서 장편 을 썼다. 원작 소설의 배경은 똑같이 신라 시대. TV 문학관에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각색을 대단히 잘했다고 평가받는다. 마지막에 나오는 훈남이 임성민..

신라 시대를 무대로 한 영화판도 존재하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이 신영균이 주연한 조신의 꿈 버젼이고 리메이크판으로 안성기, 황신혜가 나온 '꿈'이 있다.

현실-꿈-현실의 플롯을 가진 소설이 후에 금오신화를 포함해서 많이 등장하고 구운몽에서는 확연히 오마주를 담은 것을 볼 때, 이 이야기는 당시에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듯하다.
  1. 太守, 옛날 중국의 지방관(地方官)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도 한때 이 관직명을 사용했었다.
  2. 헤어지자고 말하는데 기뻐하다니, 아무래도 힘들게 살아오면서 마음이 어느 정도 변해버린 듯. NTR하기 전에는 간절했던 마음도 성공하고 나면 갈대처럼 바뀐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