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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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응(趙重應, 1860년 11월 4일 ~ 1919년 8월 25일)은 조선 말기의 관료이다.
정미칠적경술국적에 포함된 인물이기도하다.

한성부 출신으로 소론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유학을 공부했다. 1880년 전강유생으로 고종에게 경서를 진강했으며, 해외 관계에 관심을 가져 개인적으로 만주시베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북방남개론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친일 성향의 외교론이었는데, 이런 북방남개론이 문제가 되어 민씨 일가에게 쫓겨나 전라남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이후, 청일전쟁 전야에 의친왕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친일 행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1895년 을미사변에 관여하였으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일 내각이 붕괴되자 일본으로 십여 년간 망명하였다.

1906년 귀국한 그는 이완용 내각의 법부대신으로 입각하였고, 한일신협약과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큰 공을 세웠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에 관여했으며, 1909년 이등박문의 장례식에 내각 대표로 참여하기도 했다. 1910년 경술국치 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에 임명되었으며 이후로도 친일파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