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이를 접어 만든 학
이를 접기 위해 작은 규격으로 생산된 색종이를 학종이라고 부른다.
종이학을 여럿 접어 유리병에 넣으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그 기준이 대개 '천 마리'인 것을 보면 아래의 센바즈루에서 온 속설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90년대까지는 유리병이나 상자에 담은 종이학을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가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고 실용성이 없어 선물로서의 가치는 떨어졌다. 특히 연인에게는 괜히 주었다가 욕만 먹는 선물이 될 수도 있다.#
1.1 센바즈루(千羽鶴, 천 마리 종이학)
일본에서는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실로 연결한 것을 센바즈루(千羽鶴)라고 한다. 옛날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여겨졌으며, 입원한 환자를 위한 선물로 만들어지곤 했다. 한국에서 종이학 선물이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여전히 문병 갈 때 선물로 센바즈루를 종종 만든다.
현재 센바즈루는 반전 반핵운동과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인데, 이는 사사키 사다코(佐々木禎子, 1943~1955) 양의 샤연에서 비롯한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사사키 사다코는 2살이 되던 해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인해 방사능에 피폭되고 만다. 이후 12살이 되던 해인 1955년 2월 백혈병 진단을 받아 히로시마 적십자 병원에 입원한다. 8월에 나고야에서 문병을 온 고등학생들로부터 종이학을 선물받고 사다코는 종이학 접기를 시작한다. 여기에 다른 입원자들까지 동참하여 그 달 하순에는 천 마리를 넘겼다.[1] 당시 모든 것이 부족했던 전후 일본이었기 때문에 종이를 구할 수 없어 약 포장지로도 종이학을 접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다코는 10월 25일 숨을 거두고 만다.
사다코의 사후,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천 마리 학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물론 오키나와 평화 기념 공원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천 마리 학(千羽鶴)>, <종이학(折り鶴)>[2] 등의 추모곡들이 작곡되어 평화기념식에서 불리워진다.
2012년 8월 9일, 나가사키 평화 기념식전의 <천 마리 학> 합창 | |
平和への誓い新たに 緋(ひ)の色の鶴を折る 清らかな心のままに 白い鶴折りたたみ わきあがる熱き思いを 赤色の鶴に折る | 평화를 새로이 다짐하며 주홍빛 학을 접어요 께끗한 마음 그대로 하얀 학을 접어요 끓어오르는 열정의 생각을 붉은 학으로 접어요 |
平和への祈りは深く 紫の鶴を折る 野の果てに埋もれし人に 黄色い鶴を折りたたみ 水底に沈みし人に 青色の鶴を折る | 평화의 기도는 깊게 자주빛 학을 접어요 들판 끝에 묻힌 사람에게 노란 빛 학을 접어요 물 밑에 가라앉은 사람에게 푸른 빛 학을 접어요 |
平和への願いを込めて 緑なる鶴を折る 地球より重い生命よ 藍の鶴折りたたみ 未来への希望と夢を 桃色の鶴に折る | 평화의 바램을 넣어서 초록빛 학을 접어요 지구보다 중요한 생명이여 쪽빛 학을 접어요 미래에의 희망과 꿈을 분홍빛 학으로 접어요 |
未来への希望と夢を 虹色の鶴に折る | 미래에의 희망과 꿈을 무지개빛 학으로 접어요 |
1.2 관련 문서
2 드라마
종이학(드라마) 문서로.
3 전영록의 노래
- ↑ 미처 천 마리를 채우지 못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비극적이어서 그런지 이쪽으로 더 알려져 있다. 사다코의 유족들이 세운 비영리단체 SADAKO LAGACY에 따르면 천 마리를 넘겼다.
- ↑ 단, 두 곡 모두 동명이곡(同名異曲)이 존재한다. 오시마 미치루(大島ミチル) 작곡 <천 마리 학>과 우메하라 헤이시(梅原司平) 작곡 작사의 <종이학>이 원폭 피해자 추모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