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록

KBS 가요대상 대상
조용필, 정수라
어제, 오늘, 그리고
도시의 거리
(1985)
전영록, 정수라
내 사랑 울보
난 너에게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전영록, 정수라
내 사랑 울보
난 너에게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MBC 가요대상 대상
조용필
허공
(1986)
전영록
하얀 밤에
(1987)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이름전영록(全永祿)
출생1954년 3월 26일, 서울특별시
신체165cm, 55kg, A형
가족4남 1녀 중 차남, 슬하 2남 2녀
학력영락고등학교
종교불교

1 개요

아이돌의 원조

대한민국가수, 배우이자 파문전사.

2 소개

가족이 참 대단하다. 아버지는 배우 故 황해 , 어머니는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원로가수 故 백설희[1], 그리고 그의 전처 배우 이미영, 전 손위처남은 개그맨 이창훈. 그의 장녀 전보람티아라의 멤버,[2] 그의 차녀 전우람은 디유닛의 멤버. 전유빈, 전효빈이라는 아들 둘이 있는데 나이가 아직 누나들에 비해서는 너무 어려서 그런지 잘 안드러난다.

1971년 기독교방송 영 페스티벌로 첫 방송을 타지만, 본격적인 활동은 1973년 MBC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저 드라마에서 삽입곡 '편지'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75년 가수로 본격 데뷔한다. 이후 임예진, 김보연 등과 짝을 이뤄 청춘 영화의 주인공으로 단골 출연한다.

1980년대엔 남자 가수 중 조용필의 뒤를 이어 이용, 김수철 등과 함께 2인자 그룹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전영록은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을 히트시키며 청소년들, 특히 여중고생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했다. 여러 모로 한국 가요계에 아이돌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80년대 중반 중에서도 앞 쪽의 히트곡이며, 86~88년에는 '그대 우나봐', '내 사랑 울보', '하얀 밤에', '저녁놀'로 가수로서는 최절정기를 맞는다. 특히 86년과 87년 2년 연속으로 'KBS 가요 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86년까지는 남녀가 나뉘어져 있어서 남자 대상, 87년은 통합 대상)

특종 TV연예에 등장한 신인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평가했던 4명 중 한 명. 나머지 세 명은 작곡가 하광훈, 작사가 양인자, 연예평론가 이상벽으로 전영록은 해당 방송에서 '평가는 팬들 몫'이라고 했는데[3] 그날 이후 한국 가요계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통에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비유하며 두루뭉술 호의적으로 평가한 데다가 애초에 팬심으로 먹고 살지 않는 이상벽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방송상 보여준 깐깐한 평가에 대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군대에서 보직은 통신병이었다고 한다.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일기 시작하자 황해가 군대, 그것도 빽써서 전방으로 보내버렸다고.

한편 당랑권 유단자[4][5]로서의 능력을 살려 액션연화 돌아이 시리즈[6]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영록 본인의 너스레에 의하면 자기처럼 키 작은 스턴트 배우가 없어서 본인이 모든 액션 장면을 연기했다고 한다. 다만, 이두용 감독이 이 영화는 막싸움이야.라고 해서, 실제 액션장면에서 당랑권은 흔적도 없으니까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하지만 한국판 람보를 만들겠다며 나온 전쟁 액션물 독불장군은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한편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일면도 있었으며 자신의 노래만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지애의 얄미운 사람[7], 이지연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등이 작곡한 히트곡 중 일부. 인기 탤런트이면서 당시 라디오 DJ였던 김희애가 불렀던 나를 잊지 말아요도 전영록이 만든 곡이다[8].

1990년대 들어선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예전의 인기는 누리지 못하지만 간간이 콘서트와 뮤지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에 역행하는 초동안[9]으로 유명하다. 미소년-미중년-미노년 테크?

3 그 외

대단한 영화 마니아로 한때 3만개가 넘는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런 취미를 살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업 프랜차이즈를 시작했으나,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보급된 인터넷 때문에 비디오 대여업은 망할 수밖에 없었고, 그의 사업도 실패하고 만다.

사업 실패로 한동안 칩거하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미영씨와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했지만 2000년대 들어 라디오 진행자로 다시 나오고 있다.

연기, 노래, 작곡, 라디오 DJ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방송에서 대장암과 직장암으로 투병했었지만 친구 이홍렬 덕분에 극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업 실패 및 직장암에 비견되는 트라우마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게 티아라 화영 트위터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장녀 전보람걸그룹 가수로서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보람이 안그래도 지나치게 작은 키때문에 연예계에서의 활동에 한계가 있는데 이것마저...

아기공룡 둘리에서도 둘리가 고길동과 TV를 보면서 말다툼을 하다가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둘리가 전영록을 오빠가 아니라 언니라고 부른다(...). 그러나 실제로 언니는 동성의 손위형제를 부르는 말로, 수컷인 둘리가 전영록에게 할 시에는 틀린 말은 아니다.
  1. 초창기에는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 백설희가 '노래를 해야지'라고 하고, 노래를 하겠다고 하면 황해가 '노래는 무슨 노래냐'라고 했다고. 그래도 방송 데뷔에는 가족들 유명세가 좀 끼어 있기는 했다.
  2. 현재 이들은 뮤지컬에 나란히 출연하고 있다.
  3. 시나위로 록 밴드 활동을 했던 서태지에 대해 호의적으로 말해주었지만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온데 대한 평은 팬들에게 맡기겠다는 뉘앙스
  4. MC 임성훈이 사형이라고 한다. 전영록의 말로는 임성훈은 창술, 자신은 봉술과 권법을 배웠다고...
  5. 국내 당랑권의 초기 계보는 화교로 태극매화당랑권의 임풍장, 매화당랑권의 강경방으로 시작되고, 임풍장의 제자가 홍문탁이다. 임성훈과 전영록은 이 홍문탁에게서 당랑권을 배웠다고 하니 정통무술을 제대로 배운 것이다. 2010년대 기준에서도 한국내 당랑권 최고수하면 홍문탁과 화교로 한국에 들어온 이덕강이 손꼽힌다.
  6. 전영록은 이 영화 시놉시스를 군대에서 썼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도 있다. 군대에서 자기 별명이 돌아이였다고.
  7. 그런데 이게 김일병송에서 음색을 따왔다고 본인이 밝혔다. 소령, 중령, 대령은 아아 얄미운 사람
  8. 참고로 전영록은 자신이 만든 노래를 다른 가수들(특히 여가수)에게 주는 경우 노래 중간에 화음을 넣어주는 역할을 종종 한다.
  9. 코미디언 이홍렬과 동갑이자 중학교 동창으로 친한 사이이다. 근데 전영록이 워낙 동안이라서 친구인 이홍렬에게 "야~ 야~" 거리는거 보고 주위에서 기겁하며 "윗 사람을 왜 그렇게 함부로 부르냐?" 놀라면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티비에 나와서 말한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