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니히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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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히토에를 입혀놓은 인형. 어떻게 이런 옷을 하루종일 입고 생활할 수 있었지?[1]

十二単

1 소개

쥬니히토에일본의 전통 여성 복식의 일종으로 헤이안 시대의 여성 정복 겸 궁중여관(宮中女官)의 의상이다. 이름대로 항상 12겹이었던 것은 아니고, 고대 일본에서 12는 '많다'의 의미에 해당하기 때문에 많은 옷을 겹쳐 입는 옷으로 인식되었다. 8겹에서 신분이 높아질수록 25겹까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안에 입는 기본 옷 위에 겹겹의 옷을 겹쳐 입으니 여름에는 그야말로 찜통이며, 옷 자체도 20~30kg 정도 나간다고 하니 신부로서는 죽을 맛. 일본 황실에서는 결혼식 때 이 의상을 입는다. 현대시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전통 혼례 때 입기도 한다.

2 구성 및 착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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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역할인 코소데와 하카마 위에 겹겹이 껴입은 옷들은 10겹이면 10겹, 5겹이면 5겹씩 각기 끈을 묶는게 정석이다. 1번 묶고 2번 묶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번거롭고 답답하여 옷매무새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자리외에는 헤이안 시대 여성들 대부분이 옷매무새를 다듬고 난 뒤 마지막으로 모의끈으로만 묶어 지냈다.[2] 특징으로 유사시에는 모의 끈 하나만 풀면 하카마 차림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화재시에 유용했다.[3]

앉아 있는 자세에서 몸만 빠져 나가면 겹겹이 쌓인 옷들은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명이 부실했던 시대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걸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를 '모를 벗어 놓은 껍데기(裳抜けの殻:모누케노가라)'라 하고, 겐지모노가타리에 등장하는 여성 우츠세미가 이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우츠세미(매미허물)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 나중엔 인술의 일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무협물사극에서도 이따금 등장한다. 매미가 가지에 허물만 벗어놓고 사라지는 것'과 같은 하여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핫토리 한조도 동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쥬니히토에를 입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코소데(小袖, 상의)와 나가바카마(長袴, 하카마의 일종)를 입는다. 미혼 귀족여성의 나가바카마는 자주색. 기혼 여성은 붉은색.
2. 히토에(単, 홑겹옷)을 그 위에 입는다.
3. 이츠츠기누(五衣, 홑겹옷을 5겹 겹친 것)을 그 위에 입는다.[4]
4. 우치기(袿)를 그 위에 입는다.[5]
5. 우와기(上着, 겉옷)를 그 위에 입는다.
6. 카라기누(唐衣, 짧은 겉옷)을 그 위에 입는다.
7. 모(裳, 뒤로 늘어지는 긴 치마)를 그 위에 또 걸친다(…).

이렇게 입은 옷의 무게는 대략 15~20kg. 이렇게 많이 껴입은 이유는 왜소한 체구를 크게 보이기 위함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옷이 무겁기 때문에 사뿐사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3 이걸 진짜 입었을까?

일단은, 입긴 입었다. 그러나 귀족들은 예복으로만 쥬니히토에를 입었고, 평소에는 평상복인 코우치기[6]를 입었다. 여름에는 더욱 간략한 차림을 하였고 옷감도 얇았으며, 부채도 종이부채로 가벼운 것을 사용했다. 또한 이 복장을 입어야 했던 궁중여관 역시 행사가 있을 때 외엔 소례복 차림으로 지냈다.[7][8] 그러나 쥬니히토에 차림 외에도 코우치기, 우치기 차림의 약식이 있으며 실내에서 편하게 지낼동안은 고소데를 안 입고 하카마만 입은 채 비치는 웃옷을 1~3겹 겹쳐 입는 정도로 간소화되었다. 따라서 여름, 겨울 상관없이 언제나 쥬니히토에 차림으로 지낸다는 것은 낭설일 뿐이다.

옷이 많기 때문에 옷을 어떻게 겹쳐 입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의 배합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계절에 따라 다르게 맞췄다고 한다. 약 200여 가지의 조합이 있었으며, 이를 센스있게 잘 코디해서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헤이안 시대 여인들의 중요한 패션감각이었다.

4 특징

쥬니히토에는 무겁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홑겹의 옷을 겹쳐입는 구조이기 때문에 생각한 것보다는 옷감이 가볍다. 특히 소례복 차림의 코우치기 따위를 입을 때는 옷감이 널럴하고 바지통도 넓어 현대 기모노보다는 편하고, 산모 역시 제약이 없기에 몸집이 커도 작아도 입을 수 있었고, 옷감의 폭이 넓고 여유와 풍요의 시대답게 옷이 활동성보다는 느긋히 앉아 편안함을 도모하는것에 가깝다고 해석된다.[9]

쥬니히토에의 흔적은 무가가 권력을 잡으면서 무가식의 '격식차림'으로 쳐지는 '우치카케(打掛け)' 로 대신되어갔다. 옷감소모가 비교적 적으며 품위있고 한겹만으로 예장이 되며 활동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10]

현대의 쥬니히토에는 일본 황실의 결혼예복이며 동시에 특별행사에 사용되는 옷으로 사용된다. 단, 보통 황족이 아닌 이상 전통 일본식 결혼식에는 순백색의 우치카케를 입거나 이로우치카케를 입으며 쥬니히토에를 고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11]

5 실제 착용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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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히로히토 황태자의 비(妃)로 간택되어 결혼식을 올리는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훗날의 고준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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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황후의 큰며느리 쇼다 미치코(왼쪽, 1959년)와 작은며느리 쓰가루 하나코(津輕華子, 오른쪽, 1964년)[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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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 황후의 큰며느리 오와다 마사코(왼쪽, 1993년)와 작은며느리 가와시마 키코(오른쪽,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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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코 황후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공주(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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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고로 위의 인형 같은 경우에는 옷이 구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솜을 누빈다.
  2. 헤이안 시대 관련 자료를 보면 대례복과 궁중무희의 옷차림은 모두 깃이 V자로 한 겹씩 일일히 여며져 있는데 비해 소례복, 평상복으로 보이는 코우치기 등은 그저 겹쳐서 한번에 여미거나 여미지않은 상태이다.
  3. 헤이안 시대는 딱히 소방과 도둑에 대한 경비가 좋지 않았다. 덴노의 궁중까지도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불이 나곤 했다-태평성대의 시대, 경비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4. 5벌의 배색이 이루는 카사네노 이로메(襲の色目)라는 색채 구성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로 착장자의 센스가 판단된다고 할 정도. 뭐 매뉴얼의 나라 일본답게 나중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수십가지 등장하지만. 꼭 홑겹은 아니고 안감의 끝단이 겉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서 10겹으로 보이게 하기도 한다.
  5. 이츠츠기누의 배색과는 구별되는 1겹으로 액센트를 주는 역할. 사실 이츠츠기누도 우치기를 5겹 입는 것이다.
  6. 쥬니히토에에서 이츠츠기누와 카라기누와 모를 뺀 상태.
  7. 사이시(금색머리장식)를 꽂고 '올려 빗은 머리'로도 종종 번역되는 그 스타일은 행사가 있을 때외엔 여관(뇨보)도 보통은 하지 않는다.
  8. 길게 기른 머리도 포함되었는데, 신분이 높을수록 머리를 길게 길러서 바닥까지 닿게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예에 맞는 차림이었다고 한다(또한 이렇게 긴 머리는 당시 미인의 기준이기도 했다는 설도 있다). 반면 신분이 낮으면 머리를 짧게 잘랐고, 출가할 때는 이 긴 머리를 어깨 언저리에 닿게 잘라서 신분을 버렸음을 표시했다.
  9. 헤이안 시대가 끝나고 전쟁이 잦아질수록 여성들의 옷은 슬림해지고 묶고 올린 머리로 바뀌어갔다.
  10. 그러나 각광받던 실용성과 달리 우치카게에 부리는 호화스러운 직물과 장식들로 후에 실용성이 아닌 값비싼 사치품으로 변해갔다.
  11. 맨위 사진의 머리 모양은 오스베라카시(大垂髪)라고 하는데, 에도 시대 중기부터 성립된 이후 공가(公家)의 귀족부인과 여식들, 황실 여인들이 주로 하고 다녔다.
  12.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의 아내. 자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