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반니 에우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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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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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 시절

이름지오반니 에우베르 (Élber Giovane de Souza)
생년월일1972년 7월 13일
국적브라질
출신지파라나 주 론드리나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조건182cm
유소년팀에스테그랄 아르다빌 (1983 - 1988)
소속팀론드리나 EC (1989 - 1990)
AC 밀란 (1990 - 1991)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91 - 1994)
VfB 슈투트가르트 (1994 - 1997)
FC 바이에른 뮌헨 (1997 - 2003)
올랭피크 리옹 (2003 - 2004)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5)
크루제이루 EC (2006)
국가대표15경기, 7골

1 개요

브라질 역사상 가장 불행하며 과소평가 받는 스트라이커이자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용병 스트라이커 중 한 명.

본격 브라질 판 로이 마카이[1]

브라질 출신인 전 축구 선수. 90년대 중후반 분데스리가를 호령한 스트라이커로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남미 스카우터를 맡고 있다.

2 플레이 스타일

182cm의 다소 평범한 체격이지만 유럽형 스타일에 걸맞는 피지컬을 보여주었으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유연함과 간결한 테크닉을 겸비한, 분데스리가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국인 공격수. 운동능력이 폭발적이거나 테크닉이 화려하진 않지만 간결하고 정확한 퍼스트 터치 후의 아크로바틱한 슛팅으로 무수한 골을 만들어낸 정통 포워드였다. 80년대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였던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기록을 갈아 치울 정도로 득점 순도 또한 높았다.

그러나 하필 에우베르와 동시대의 브라질 스트라이들은 슛팅, 드리블, 테크닉 모든 면에서 탑클래스였기에 상대적으로 에우베르의 테크닉은 저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에우베르가 공격수가 부족한 현 시대의 브라질에서 뛰었다면 당장 주전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클럽 경력

3.1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VfB 슈투트가르트

18세의 나이에 AC밀란에 입단을 했지만 당시 후덜덜한 스쿼드를 보유한 AC밀란의 선수단을 비집기엔 너무 어렸고 결국 코파이탈리아에 1회 출장한 것을 끝으로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스위스 무대로 발을 돌린다. 1991년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에 입단을 한 이후 3년동안 69경기 출장을 해 41골을 넣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1994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한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실적 또한 대단했다. 87경기에 뛰면서 41골을 기록하면서 빅리그에서도 순도높은 득점력을 뽐내며 1996/97시즌 DFB포칼컵에 우승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는 리그에선 별다른 성과를 못내고 포칼컵 우승 시즌에 4위로 마감한 것이 최고의 순위일 정도로 에우베르의 클래스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질 못했다. 에우베르는 이에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클럽인 FC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을 한다.

3.2 FC 바이에른 뮌헨

1997/98 시즌 바이에른 이적 첫 시즌엔 미미한 활약을 선보였고 이 당시엔 뮌헨의 주력스트라이커인 카르스텐 얀커가 팀내 최다골을 기록하며 뮌헨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러나 1998/99 시즌엔 얀커와 똑같이 리그에 13골을 기록하면서 서서히 입지를 다졌으나 1998/99 UCL결승 명단에 제외되었다. 하지만 1999/00시즌 본격적으로 뮌헨의 주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면서 얀커를 밀어냈고 2000/01시즌엔 15골, 2001/02 시즌엔 17골로 클럽 커리어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 이 시즌에 바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득점 신기록까지 세우게 된다. 하지만 2003년 이 후 자신과 똑같이 국대에 저평가를 받은 로이 마카이가 영입되면서 리옹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2003/04 UCL에서 리옹과 뮌헨은 조우하게 되고 에우베르는 뮌헨 올림피라 슈타디온[2]에서 벌어진 원정경기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와 동시에 친정팀에 비수를 꽃게 된다. 2005년 잠깐 보루시아 뮌헨글라드바흐에 몸을 담은 후 자국리그인 크루제이루로 이적했고 6골을 더 넣은 뒤 2006년을 끝으로 은퇴를 하게 된다.

4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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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21세 이하 FIFA월드컵에 U-21 브라질 대표로 출전하여 4골을 넣는등 맹활약 했으며 특히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한국대표팀과의 8강전에서 두 골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그 골든제너레이션 세대인 포르투갈과의 결승 경기서 승부차기까지 가였고 두 번째 키커로 나서다 실축하면서 준우승에 머문다. 이 후 호마리우, 베베토 등 우주최강급 브라질 공격수들의 포스에 밀려 한 동안 국대와 인연이 없다가 98년 부상으로 빠진 호나우두의 대타로 승선해 어느정도 활약하게 된다.

특히 98년 A매치 6경기 6골이나 기록하며 경기 당 1골이라는 포스를 달리며 브라질 스트라이커 계보의 클래스를 보여주었으나 이 후 99년 평가전에 연이은 무득점 및 월드컵 지역예선 부진으로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영향력이 약화된다. 친선전에서는 어느정도 골을 뽑아냈지만 정작 중요한 월드컵 예선경기에선 단 1골도 넣지 못하였고 2001년 9월 경 아르헨티나와의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을 끝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면서 쓸쓸한 국대 커리어를 마감한다.

5 평가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의 전당에 들 정도고 분데스리가 역대 베스트 일레븐의 단골이며 역다 분데스리가의 자국,외국 선수 역대 베스트일레븐을 넘어 유럽무대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당시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테크닉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것은 브라질 축구의 기준이였고 일반 축구팬들은 저 정도 테크닉이면 무난하지 라고 말할 정도로 그가 활약을 했던 시기의 브라질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들은 그만큼 모든 면에서 탑클래스였다. 만약 2014년대 브라질 대표팀의 스쿼드라면 네이마르와 함께 대체불가의 존재가 될 정도로 기량만큼은 뛰어났다.[3]

그러나 그가 전성기를 열릴 당시의 브라질은 호마리우, 베베토, 호나우두, 히바우두 같은 역대급 포워드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에우베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나마 호나우도의 부상시즌에 틈틈히 기회를 잡았고 나름 골결정력도 나쁘진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우루과이전과 아르헨티나전과 같은 중요경기에 존재감 없는 모습으로 월드컵 무대도 못 밟아본 안타까운 케이스.[4]

아이러니 한 것은 2002FIFA 월드컵 우승팀인 브라질은 역대 최약체의 팀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이는 천운이 따라주는 대진운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브라질의 스쿼드의 굴기가 공격수에게 무게가 치중된 이유도 있다. 94년도는 호마리우와 베베토가, 98년도에는 호나우도가 엄청난 포스를 보였다. 다만 미들진과 수비진의 경우 라이벌 국가들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 감이 없잖아 있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이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메멧 숄, 에펜베르크, 노보트니, 뵈른스가 최상의 컨디션일 경우 그 암흑기라 불리는 독일에게도 밀릴 정도였다.[5]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경우에는 호나우도가 부상여파로 전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히바우도도 슬슬 30줄이니 에우베르를 서브 대체선수로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 감독인 스콜라리는 수비 위주의 전술을 구축했기 때문에[6] 에우베르의 경우 이와 맞물려 대표팀에 발탁이 안 된것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역예선에서 아르헨국대만 오면 너프되는 이과인처럼 부진했던 이유도 있지만.

6 경력

6.1 대회 우승

  •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1991/92 - 1993/94)
    • 스위스 컵 (1) : 1993/94
  • VfB 슈투트가르트(1994/95 - 1996/97)
  • FC 바이에른 뮌헨(1997/98 - 2002/03)
  • 올랭피크 리옹(2003/04 - 2004/05)
    • 리그앙 (2) : 2003/04, 2004/05
    • 트로피 데스 챔피언스 (1) : 2004

6.2 경기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리그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89론드리나브라질 세리에 B--------
1990론드리나브라질 세리에 B--------
1990/91AC 밀란이탈리아 세리에 A--------
1991/92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스위스 슈퍼 리그219------
1992/93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스위스 슈퍼 리그2111------
1993/94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스위스 슈퍼 리그2711------
1994/95VfB 슈투트가르트독일 분데스리가23810----
1995/96VfB 슈투트가르트독일 분데스리가331610----
1996/97VfB 슈투트가르트독일 분데스리가311763----
1997/98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811652283
1998/99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113522393
1999/00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6143200123
2000/01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27151000166
2001/02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0173110116
2002/03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3321661282
2003/04FC 바이에른 뮌헨독일 분데스리가41--10--
2003/04올림피크 리옹프랑스 리그 앙2710000093
2004/05올림피크 리옹프랑스 리그 앙31----00
2004/05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독일 분데스리가000000--
2005/06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독일 분데스리가40100000
2006크루이제루브라질 세리에 A4018000000
  1. 엄연히 클래스 면이나 실력면이나 파비아누, 프레드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였다. 물론 에우베르만큼의 실력을 지니다가 브라질 국대와 인연이 없는 스타들도 있다. 당최 브라질 자체가 축구의 나라니... 하지만 이 선수들은 대부분 자기관리 실패 및 사생활 문제로 인해 오히려 자업자득이였고 에우베르는 자기관리가 충실한 편이었고 사생활도 모범적이었다. 그러나 하필 에우베르의 전성기인 90년대 초중반 에우베르의 국가대표 경쟁자는 호마리우, 베베토, 호나우두, 히바우두라는 90년대 최강의 공격수들이었다.
  2. 2004/05 시즌까지 홈 구장으로 활용한 후 다음 시즌부터 푸스발 뮌헨 아레나를 홈 구장으로 사용
  3. 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최전방을 지킨 프레드, 조 등과는 비교불가 수준이며 10년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원톱으로 라리가에서 준수한 스코어러였던 파비아누 역시 에우베르에겐 미치지 못한다.
  4. 차범근은 브라질의 축구선수층이 두터운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에우베르가 한창 활약하면서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당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국가대표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가 씩 웃으며 "브라질 국민들은 나라는 선수가 있는지도 모를 걸?"하고 답했다고 한다.
  5. 건조한 입발림이 아니다. 적어도 위에 언급한 독일선수 네 명은 최전성기 시절 각각 소속팀을 유럽클럽대항전에 결승에 올려놓을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다만 한 명은 성질머리로, 나머지 3명은 유리몸으로 기량이 빨리 하락했기 때문이지....
  6. 브라질 특유의 4-2-2-2 전술이 나닌 쓰리백의 3-4-1-2의 포지션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