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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미국 월드컵의 영웅.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습.
그리고 조지 클루니 만큼 잘생긴 국회의원 시절...2015년 시절!!!그리고 쉰 살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
이름 | 호마리우 지 소우자 파리아(Romário de Souza Faria) |
생년월일 | 1966년 1월 29일 |
국적 | 브라질 |
신체정보 | 168cm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소속팀 | CR 바스쿠 다 가마 (1985~1987) PSV 아인트호벤 (1987~1993) FC 바르셀로나 (1993~1995) 플라멩구 (1995~1996) 발렌시아 CF (1996) 플라멩구 (1996~1997) 발렌시아 CF (임대) (1997) 플라멩구 (1998~1999) CR 바스쿠 다 가마 (1999~2002) 플루미넨시 (2002~2003) 알사드 (임대) (2003) 플루미넨시 (2003~2004) CR 바스쿠 다 가마 (2005~2006) 마이애미 FC (2006) 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2006) CR 바스쿠 다 가마 (2007~2008) |
국가대표 | 70경기 55골 |
1993 FIFA 올해의 선수상 | ||
수상 로베르토 바조 | 2위 호마리우 | 3위 데니스 베르캄프 |
1994 FIFA 올해의 선수상 | ||
수상 호마리우 | 2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3위 로베르토 바조 |
1994 FIFA 월드컵 | ||
골든 볼 호마리우 | 실버 볼 로베르토 바조 | 브론즈 볼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바스쿠 다 가마 영구결번 |
No.11 |
"그라운드에서 뭘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연습을 왜 해야 하지?"
"신은 나의 골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시기 위해 나를 창조하셨다."
1 개요
1966년 1월 29일생.브라질의 전설적인 前 축구선수. 그리고 현직 국회의원.
자칭(...) 커리어 통산 1000골 기록.
예나 지금이나 온갖 캐사기 유닛이 득실거리는 브라질에서도, 호마리우는 축구센스만큼은 천부적이며 독자적인 영역을 지닌 선수였다. 그러나 오늘날 팬들이 기억하는 호마리우는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최고의 악동이다.
2 선수 경력
<역대 공식 골 기록>
- 1위 - 요세프 바이칸 : 805골
- 2위 - 호마리우 : 772골
- 3위 - 펠레 : 767골
- 4위 - 페렌츠 푸스카스 : 746골
- 5위 - 게르트 뮐러 : 735골
- 6위 - 페렌츠 딕 : 576골
- 7위 - 우베 젤러 : 575골
- 8위 - 에른스트 빌리모프스키 : 554골
- 9위 - 에우제비오 : 552골
- 10위 - 제임스 맥글로리 : 550골
- 10위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550골
호마리우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넣은 55골. 이 중 18번째부터 22번째까지가 1994 FIFA 월드컵에서 넣은 것이다.
소년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13세 때 브라질의 유명한 CR 바스쿠 다 가마 유소년 팀에서 호마리우를 주목한다. 하지만 작은 키 때문에 뽑지 않았는데, 대신 입단한 오라리아(Olaria AC)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이자 결국 정식으로 오퍼를 넣는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브라질 대표로 참가해, 팀은 구 소련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호마리우는 득점왕을 차지한다. 전세계 스카우터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잠재력을 인정받은 호마리우는 즉각 유럽 무대로 진출하게 된다.
이 무렵 FC 바르셀로나는 막 요한 크루이프 체제를 꾸려 세계적인 선수들을 끌어모으던 시기로, 호마리우 역시 바르셀로나 진출이 유력했다. 그런데 도중에 거스 히딩크가 가로채서(...) 네덜란드 PSV에 입단한다. 히딩크는 호마리우 경기 비디오를 보고 어머! 저건! 사야해~를 시전했고, 올림픽을 마치고 리우로 귀국하는 호마리우를 공항에서 붙잡아 "이적설이 나오는 FC 바르셀로나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보다 PSV 아인트호벤이 더 낮은 클럽인건 사실이다. 그리고 라 리가보다 에레디비지에가 한수 아래인 리그인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무작정 빅 리그의 대형클럽으로 가면 적응을 못하고 벤치에서 허송세월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전에 검증이 된 리그인 에레디비지에에서, 그것도 챔피언스 리그도 나가는 PSV에서 뛰어서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이 너의 커리어에 더 좋을거다."라고 설득했다. 히딩크의 진솔한 설득에 호마리우는 마음이 움직였고 그 자리에서 당장 계약했다.
당시 PSV는 히딩크의 지휘 아래 전년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클럽이었기에 더 메리트가 있었다. 그리고 호마리우는 PSV 시절 109경기 98골[1]을 찍으며 유럽 무대에서 확실히 통하는 캐사기 유닛임을 인증한다. 또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득점왕에만 2번 등극하는 등 유럽 최고 클럽들간의 대결에서도 최고의 공격수로 인정받게 된다.
매번 논란이 되던 기강문제도 PSV에서는 별일 없었다. 당시 일화로 히딩크는 기강을 잡기 위해 정해진 훈련시간에 1분이라도 늦으면 벌금과 함께 훈련에서 제외시켰다. 당연히 선수들은 일찌감치 와서 몸을 풀었으나, 호마리우는 매번 귀신같이 훈련 시작 1분 전에 도착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호마리우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히딩크의 손목시계의 시간에 맞춰놨기 때문(...). 이걸 알아챈 히딩크는 자신의 손목시계의 시간을 앞으로 돌려놨고, 결국 시간에 늦게 된 호마리우는 그 날 히딩크가 명단에 제외함으로써 당일 경기에 출전하지 못 했고 PSV는 2:0으로 승리했다. 호마리우 없이 팀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 당시 호마리우가 실력 향상에 관심을 두지 않고 딴 짓만 하고 돌아다녔고 이에 히딩크가 자극을 주려고 한 행동인데 경기 이후 일부러 3일 동안 말도 걸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을 무시하는 처사에 제대로 자극받은 호마리우는 며칠 뒤에 있었던 부쿠레슈티와의 챔피언스리그 2차전 회의에서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하며 해당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1차전 원정에서는 0:1로 패배한터라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전반 25분만에 3골 (...)을 기록하며 5:1 승리에 일조했다. 히딩크의 계획이 제대로 통한 셈이다. 두 사람은 경기를 끝나고 악수를 나누며 훈훈하게 마무리. 두 명의 사이는 지금도 매우 돈독하다.
1993년 마침내 호마리우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이 시기 바르셀로나는 한창 드림팀으로 리그를 호령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30골을 넣겠다고 호언장담한다.[2] 그리고 진짜로 33경기 30골을 넣어버렸다. 흠좀무.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하는데, 시즌 중반, 자국에서 리오 카니발이 열릴 때가 되자 축제에 가고 싶다면서 크루이프 감독에게 떼를 썼던 일이 있었다. 아직 치뤄야할 경기가 많이 남아 있어서 그의 휴가 요청은 말이 되지 않았지만, 크루이프가 오는 일요일에 있을 엘 클라시코에서 해트트릭을 하면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자 천하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해트트릭 + 1 어시를 기록하며 5:0으로 캐관광 보내고 당당히 리우행 비행기를 탔다. 그러자 레알 감독이 "이건 사기다. 호마리우는 만화에나 나올 법한 선수 아닌가!"하고 열폭 탄식했다고.
이런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호마리우는 사생활 문제가 심각했다. 한마디로 술과 여자를 끼고 살았다. 이런 광란의 밤(...)[3]을 보다 못한 요한 크루이프 감독[4]이 잔소리를 하자, '님하는 감독질이나 잘하셈. 내가 밤일을 하니까 골도 넣는 거심'하고 일축했다. 사생활과 무관하게 일단 시합에서 꾸준히 골은 넣어주니까 크루이프도 더 이상 강제하지 않고 넘어갔지만[5], 이런 썩은 근성 멘탈 문제는 계속해서 호마리우 경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다만 나중에 호마리우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장점을 최대로 끌어낸 감독은 크루이프라고 평하긴 했다. 과부 속은 홀애비가 안다고
198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호마리우는 우루과이전 결승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오랜만의 우승을 이룬 주역이 되었다. 파트너인 베베토는 대회 득점왕.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호마리우는 단 한 경기만 출전했다. 실력이야 나무랄 데가 없지만, 이미 팀 분위기를 망치는 놈으로 단단히 찍힌 상태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1992년에 감독 디스를 해서 아예 뽑히지도 못할 뻔했으나, 브라질이 지역예선에서 볼리비아한테 사상 처음으로 패배하는 등 졸전을 벌이자 감독이 백기를 들고 긴급호출을 받아서 비로소 참가할 수 있었다.
92년에 국가대표에서 탈락되었다가 93년에 다시 발탁된 이유.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2골을 넣겠다" 호언장담하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브라질을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역시 호마리우 다운 일화. #
이후 호마리우와 베베토의 투톱이 이끄는 브라질 대표팀은 첫 라운드부터 승승장구. 호마리우는 단연 최고의 활약을 한다. 매경기 골 아니면 어시스트나 페널티킥 획득 등등, 폭발적이면서도 능구렁이 같은 연계와 드리블 돌파 후의 패스나 피시니로서 호마리우는 대회 내내 브라질의 마라도나라고까지 불렸다.
이 대회 호마리우의 활약을 스탯 위주로만 요약한다면,
1차전 러시아전 - 결승골 1골, 페널티킥 획득.
2차전 카메룬전 - 결승골 1골, 드리블링으로 베베투의 추가골 기점
3차전 스웨덴전 - 동점골 1골
16강 미국전 - 드리블링으로 베베투의 결승골 1어시스트
8강 네덜란드전 - 선제골 1골
4강 스웨덴전 - 결승골 1골
결승전 이탈리아전 - 침묵
즉 결승전 이탈리아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했고 결승골과 동점골 및 결승골 어시스트 같이 순도도 만점인 활약도였다. 물론 공격포인트 이외의 플레이에서는 더 기여도가 높았던 게, 당시 브라질 주전 플레이메이커였던 10번 라이의 부진으로 호마리우가 2선에서 플레이메이킹까지 도맡으며 공격을 이끌었기 때문. 결승에서는 로베르토 바조가 이끄는 이탈리아 대표팀을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다. 가끔 호마리우가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수비진에 막혀서 부진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경기력은 비슷했으나 스탯이 없는 이 대회의 유일한 경기여서 그런 말이 나오는 듯.[6] 호마리우vs이탈리아
호마리우는 대회 최우수 선수로 뽑혔고 1994년 FIFA 올해의 선수상도 받는 등 절정에 올랐다. 하지만 발롱도르는 수상하지 못했는데, 이는 바로 다음 해인 1995년이 돼서야 비유럽 국적 선수의 수상이 가능해졌기 때문.[7] 만일 국적 제한이 진작에 풀렸다면 호마리우는 1994년에 무난히 발롱도르를 타거나 최소한 포디움(최종 후보 3인)에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브라질 귀국을 선언하고는 플라멩구 팀으로 이적했다.
2년 브라질 생활을 하고 스페인 발렌시아 CF로 이적했다.
1년 뛰고 브라질 플라멩구로 복귀.
1년 뛰고 발렌시아 복귀.
금방 또 플라멩구로 복귀... 장난하냐?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안습인 멘탈 때문에, 어느 팀으로 옮겨도 끝내 감독이나 동료와 불화를 일으키고 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생활을 반복했다.
결국 1998년 플라멩구로 복귀한 때를 끝으로 유럽 빅 리그에선 더 이상 호마리우를 볼 수 없었다.
1997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당시 최고의 선수로 등극한 21살의 호나우두와 콤비를 이루며 또다시 코파 아메리카의 우승을 이끈다. 호마리우는 대회 3골 기록. 당시 호마리우와 호나우두는 신구 조화를 완벽히 이루면서 스타일 면에서도 시너지가 폭발하며 컨페더레이션컵까지도 모두 휩쓸어버린다. 특히 결승전은 호마리우와 호나우두가 동시에 해트트릭을 하면서 호주를 6:0으로 아주 박살을 낸다. 호마리우와 호나우두의 전설의 더블 해트트릭 당시 호나우두는 바르셀로나에서의 활약으로 이미 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세계 최고의 선수였는데 그런 호나우두와 함께, 그것도 30대의 나이로 경기를 뛰면서 전혀 밀리지 않았던 선수가 바로 호마리우다. 사생활은 호마리우가 더 비범했는데 어째 더 장수했다.
당시 브라질의 나이키 투어가 이 둘을 필두로 한 마케팅이 절정에 오른 시기. #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회 4달 전에 큰 부상을 당하며 결국 최종 엔트리에 뽑히지 못한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호마리우는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선다. 브라질 대표팀은 전년도 컨페더레이션컵 부진으로 감독을 경질하고도, 여전히 지역예선에서 헤매서(...) 호마리우를 발탁하라는 여론이 거셌다. 방탕한 사생활과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는 원흉이었던 노장 호마리우의 발탁은 브라질로서도 모험이었으나, 당시 브라질의 룩셈부르고 감독은 결국 호마리우를 발탁하는 결단을 내린다. 호마리우는 발탁되자마자 첫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베네주엘라를 대파하는 주역이 된다. #
그러나 결국 룩셈부르고 감독도 경질되고 새로운 감독이 된 스콜라리는 호마리우를 2경기 정도 기용하고 끝내 다시는 부르지 않는다. 호마리우는 TV에 출연해 찌질 발탁을 호소하는 언플을 해대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서(...) 권했지만 스콜라리 감독은 끝내 최종 엔트리에 뽑지 않았다.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스콜라리 감독 성향이 팀 분위기를 망치는 놈은 질색이었으니. 사실 브라질 국민이야 극성이었지만, 타국의 반응은 호마리우 아직 은퇴 안했냐(...) 정도였다. 세계의 관심사는 '호나우도가 얼마나 제 컨디션을 발휘하는가'였고, 호마리우는 이미 아웃오브안중. 오히려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한 아모로소 탈락이 논란거리였다. 지못미.
결국 2004년 38세 나이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도 그런 게 브라질에서 호마리우의 위상은 호나우두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보다 위면 위지 아래가 아니다. 유럽에서 커리어를 대부분 쌓은 호나우두에 비해 호마리우는 자국에서 뛴 시기도 길고, 월드컵도 한 번 들어올린 데다 월드컵을 제외한 이런저런 국제대회에서 호나우두보다 많은 활약을 했다. 90년대 브라질 대표팀 공격수는 사실상 호마리우다. 다만 이 명제에 오류가 있긴 있다. 거의 온전히 9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호마리우와 달리 호나우두는 90년대와 00년대를 걸치는 측면이 있어서. 뭐 그렇다고 해서 브라질에서의 위상이 호나우두 > 호마리우인 것은 결코 아니다. 둘 모두 역대급 축구선수로써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기도 하고. 하지만 인기 측면에서도 호나우두와 호마리우는 설문조사에 따라서 서로를 넘었다 떨어졌다 하고 있다. 한국에서 워낙 호나우두의 위상이 압도적이고 널리 퍼져서 그렇지 브라질내에서는 그 둘의 위상은 비슷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나누자면 펠레가 정상에 있고 그 다음이 지쿠, 호마리우, 호나우두, 가린샤 등등..
이후 개인 통산 1000골을 넣기 위해 2003년엔 카타르, 2006년엔 미국, 호주에서 뛴 경력도 있다. 호주(4경기)와 카타르(3경기)에선 대충 하고 금새 나왔지만 미국에선 19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도 차지했다. 그리고 2007년 5월 20일 자칭 1000골을 기록했음을 선언한다. FIFA에서는 1000골을 축하하긴 했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유소년 축구나 친선경기 등에서 넣은 골도 포함해서(...) 집계했기 때문이다.[8]
2007년 바스코 다 가마[9]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2008년 4월 은퇴를 선언했다.
바스코 다 가마 시절에는 2000클럽 월드컵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골을 넣으며 3:0으로 완전히 떡실신을 시킨 적이 있다. 사실 바르셀로나 시절에도 호마리우는 1995-96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조별 라운드 2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으면서 팀의 1승 1무를 이끈 적도 있지만. 아무튼 천재는 늙어도 천재다. #
그런데 깜짝 복귀를 선언하지 않나, 탈세 혐의로 법정에 서질 않나, 2009년 9월엔 정치인으로 변신한다는 뉴스까지 떴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엔 자기 아들을 방출했다는 이유로 바스코의 유소년 코치에게 폭언을 퍼부으면서 1000골 기념으로 세워진 자신의 동상 전복 운동까지 유발하고 있다. 하여간 은퇴한 뒤에도 여전히(...) 떠들썩하다.
2009년 자신의 아파트를 팔아 빚을 청산하는 김에 사회당에 입당하고[10] 2010년 선거에서 상원의원(리우데자네이루 주 선거구)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 개최에 따른 무리한 경제적 투자를 비난하고 있다. 비난을 삼가고 무조건 개최만 하면 짱이라능~ 이 발언을 한 펠레를 두고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비슷한 이유로 호나우두와 약간의 마찰이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호나우두와는 '오해가 있었다능' 이라며 좋게 좋게 넘어갔다.
그런데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4강전에서 독일에게 미네이랑의 비극을 당하며 1:7이라는 환상적인 대패로 털리면서 월드컵 개최 지지 정계인사들이 좌불안석이 되고 비난을 당하는 거랑 달리 부정적으로 보던 호마리우는 반사이득을 받게되었다는 평. 물론 그도 조국이 저렇게 크게 대패하는 게 좋을 턱이 없을 테지만. 여하튼 2014년 선거에서도 63%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골 에어리어 안의 천재- 요한 크루이프
괴수 골잡이. 시대를 불문하고 올스타 일레븐을 뽑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명단에 올리겠다- 디에고 마라도나
말 그대로 게으른 천재의 전형. 축구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골넣는 감각만큼은 손에 꼽을 정도로 괴물같은 결정력을 가진 선수였다. 공격수마다 장기가 있고 개성이 달라 딱히 어느 누가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1990년대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호마리우를 꼽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플레이 스타일이 한마디로... 참 쉽죠.
축구를 쉽게쉽게 했다. 트래핑은 당대 최고를 논할 만했으며 볼컨트롤은 무척 뛰어났고 드리블과 스피드, 균형감각도 뛰어났다. 이렇게 제반조건이 뛰어난 선수라도 활용을 어찌 하느냐가 중요한데 호마리우는 크루이프 말대로 골 에어리어 안, 즉 골을 노리는 상황에서는 재능으로 똘똘 뭉친 모습을 보여줬다. 호마리우는 그의 장기인 포킹, 소위 꼬발로 공을 툭 차서 넣는데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일반적인 슈팅 역시 뛰어났으며 그는 양발로 모든 옵션들을 자유자재로 선택해서 쑥쑥 집어넣곤 했다. 이따금씩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골을 넣는 게 어이없이 느껴질 정도로.[11] 이 재능으로 이따금씩 헤더를, 역시 상황에 맞게 방향을 크게 바꾸는 헤딩, 방향만 바꾸는 헤딩, 툭 띄우는 헤딩, 바닥에 찍는 헤딩 등을 선택해 가며 간단하게 넣었다. 비록 키는 170이 안 됐지만, 수비수의 사각이나 빈 공간을 잘라들어가며 경합을 하지 않거나 적게 하는 식으로.
그야말로 존재 자체가 축구에 대한 신성모독으로 느껴질 정도. 벙찐 골키퍼와 수비수를 비웃듯 여유만만한 골 셀레브레이션은 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슈팅 상황을 설계하고 슈팅 타이밍을 쥐고 흔드는 능력은 정말 만화에나 나올 것처럼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
보고있자면 정말 축구 대충대충하는 것 같다...
무슨 '교본'이니 '무결점'이니 하는 찬사조차 어림없는,[12] 어딜 봐도 천부의 재능 그 자체였고, 그의 불성실한 자세나 축구관이 그 재능에 걸맞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비상식적인 타이밍에 여유만만하게 톡 차서 골대 안으로 공을 밀어넣고 돌아서는 호마리우라는 캐릭터로서는 어울리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면 마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만 강력한 선수 같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지나치게 강했을 뿐 바깥에서도 여유롭게 뿌리고 받고 돌파하는 능력도 있었다. 오히려 골이나 개인기 위주의 하이라이트와는 달리, 박스 아래 2선에서도 방향전환과 연계 플레이로 주변 팀원들의 플레이도 살리면서 전진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소위 바르셀로나 전술에서 메시의 제로톱의 역할을 호마리우는 당시 브라질과 바르셀로나에서 이미 시전한 셈. 사실 작지만 강하고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라는 측면에서 호마리우와 가장 플레이 스타일이 유사한 선수는 메시보다는 세르히오 아구에로지만, 이 아구에로 조차 호마리우랑 비교하면 축구를 힘들게 한다는 느낌이 들정도.. 사생활이랑 월드컵 활약은 안 닮았다
3.1 기타
인터넷이 발달한 덕분에 각종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요즘 젊은 축구팬들에겐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호마리우가 활약하던 당시 로마리오라고 창씨개명 불렸다. 애당초 모든 축구기사는 '수비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 두 마디면 끝나는 소설가 기자에게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포르투갈어든 발음따윈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까. 아마 80년대 중반 이전에 태어난 축구팬들 중엔 94년 월드컵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로마리오"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94년 월드컵 중계 조차도 당시 외래어 표기법을 그대로 읽은 결과 로마리오로 읽혔다.[13]
여담으로 90년대 후반 호나우두조차 유명 일간지에서 로날도(...)로 이름을 날렸다. [14] 이즈음 비로소 브라질 포어에선 어두 Ro가 구개수음인 호 비슷한 발음을 낸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후 어미 do가 '두' 비슷한 발음을 낸다[15]는 지적을 받아들여 현재 바뀐 표기법에 따르면 각각 '호마리우' '호나우두'로 표기한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며 축구선수가 된지라, 1994 월드컵을 앞두고 아버지가 괴한에게 납치당했을 때 축구선수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정부 및 갱단까지 나서서 납치범을 찾았다. 그 덕분에 쫄아버린 납치범들이 알아서 아버지를 풀어줬다. 순순히 아버지를 넘기면 은퇴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포포투 인터뷰에 따르면 존경하는 축구 영웅 같은 건 없었고, 있다면 오직 우리 아빠라고 할 정도.
펠레의 저주를 당했다는 글이 있으나 전혀 아니다. 되려 엉터리로 누가 조작한 가짜. 펠레의 저주 항목 참조할 것.
현재 브라질에서 정치인으로 활동중이다. 그리고 무려 29살 연하의 여자친구와 열애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그런데 새로운 애인은 호마리우 친딸의 친구라고(...)기사
4 어록
자뻑이다 못해 나르시스트로 보일 만한(...) 그의 화려한 어록. 사실 어록만 올리는 이유는 기행이 여기에 다 못쓸 정도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바르샤 입단 후 93/94 시즌 개막 전)"올 시즌은 리그에서 30골 이상을 기록하겠다."- 실제로 30골 기록, 리그 득점왕 수상
(1994 월드컵 개막 전) "이 월드컵은 내 대회가 될 것이다"- 실제로 우승, 골든볼 수상
"합숙소는 섹스 못하는 것을 빼면 훌륭한 곳이다"
"당신이 내 꼰댄가?" - 크루이프에게 한 말(...)
"크루이프는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했어. 나는 했지(...)."
"저는 호나우두보다 골에 대한 눈이 더 뛰어납니다. 그리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위치 선정도 그보다 뛰어나죠"
"난 축구 역사상 3번째로 뛰어난 선수"
"지코가 뭘 우승한 적은 없잖아."- 브라질 역대 2번째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지코와의 비교에 대한 답변
"나는 카레카와 베베토를 합한 것보다 낫다."
"에드문두와 함께 뛰지 않는 게 바로 내 꿈이다."- 에드문두는 바스코 다 가마에서 호마리우와 투톱 공격 콤비
이놈도 성격 더럽기론 호마리우에 뒤지지 않았으니..
"그라운드에서 뭘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연습을 왜 해야하지?"
"신은 나의 골들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시기 위해 나를 창조하셨다."
"나는 너무 많이 자면 득점을 못 올린다. 그게 내가 밤과 친구인 이유다."- 호마리우가 거의 모든 대회에서 득점 선두를 달릴 당시 여러 나이트클럽에서 목격된것을 묻는 질문에
"내가 밤을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밤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안타깝게도 모든 걸 봐야 한다."
"난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내가 뛰는 것에 대해 행복해야 한다"
"입 다문 펠레는 시인이다. 필드 위의 그는 영원한 우리의 아버지이고... 하지만 바깥에서의 그는 입에 축구화를 쳐박아야 한다."- 펠레가 언론에다 호마리우의 은퇴를 종용하자
"나는 돈과 같다. 사람들은 결국 날 좋아하게 된다"
"득점자는 언제나 칭찬 받아야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내가 찬 공은 우리 엄마도 막을 수 있는 슛이었다"
"내 후계자는 보이지 않는다. 펠레는 오직 펠레 하나였고, 마라도나도 오직 하나뿐이었다. 호마리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페널티 에어리어에서라면 내가 역대 최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독이 될 거냐고? 웃기는 소리, 난 아마 나같은 놈을 절대 참을 수 없을 것이다"알긴 아네허재??
"난 결코 운동선수였던 적이 없다. 만약 내가 훈련을 제대로 했다면 아마도 난 지금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지금만큼 행복하진 않았겠지."
"브라질 대통령은 룰라가 아니라 FIFA이다. 그들은 다른나라를 세웠고 그 나라의 운영자금을 브라질서 뽑아쓰고 있다."
5 호마리우에 대한 말말말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호마리우는 1986년 월드컵의 마라도나와 같은 영향력을 가졌었다. 두 선수 모두 거의 혼자의 힘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제 마라도나가 은퇴했으니 그가 세계 최고의 선수이다."- 마리우 자갈루 -
"페널티 박스의 황제"- 카를로스 아우베르투 페헤이라 -
"호나우두는 호마리우의 엄청난 팬이었다. 월드컵 당시 미국에서 그는 호마리우를 따라다니는데 온 시간을 보냈다.""호마리우가 내게 찾아와서 '이 놈 좀 어떻게 해 봐요. 나를 가만 놔두질 않아' 라며 투덜거릴 정도였다."
- 카를로스 아우베르투 페헤이라 -
"그는 우표만한 크기의 좁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해낸다"- 둥가 -
"골 에어리어의 천재. 그는 열심히 하지 않고도 위대한 일을 해내는 드문 능력을 지녔다."- 요한 크루이프 -
그 스승에 그 제자..
"브라질은 그가 없이는 결코 월드컵 우승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 -
"그는 내가 함께 일해온 선수 중 가장 흥미로운 선수이다. 그는 만약 내가 큰 경기에 앞서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안심해, 코치. 내가 득점해서 우리 팀이 이길 테니까.' 놀라운 것은 그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십중팔구 그가 골을 넣고 팀이 정말 승리했다는 것이다."- 거스 히딩크 -
"그의 컨디션이 최상이면 그는 막기가 불가능하다. 그 유례가 드문 선수. 심지어 2000년 당시 클럽 월드컵에서도 그가 얼마나 탁월한 테크닉과 골을 향한 눈을 지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벌써 그의 전성기를 지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야프 스탐 -
"이 녀석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아마 그의 태도가 일으킨 감독들과의 문제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는 이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야. 그는 엄청나게 빨랐고 선수들을 제치며 드리블할 수 있었고 피니쉬에 관해서라면 둘째라면 서러웠지. 또 그는 수비수들이 바보로 보일만큼 공을 뺏어내기가 어려웠어. 유일무이한 재능이야."- 오스발도 아르딜레스(아르헨티나와 토튼햄의 레전드)
"믿을 수 없는 피니셔."- 디에고 마라도나 -
"그와 같은 스트라이커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으며 그는 재고의 여지없이 내 드림팀에 포함될 것이다."- 디에고 마라도나, 자서전에서 -
(여태까지 눈으로 본 최고의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마도 반 바스텐이나 호마리우 중 하나겠지."- 디에고 마라도나, Placar지 인터뷰에서 -
(호마리우의 클라시코 해트트릭 일화를 듣고) "정말 불공평한 이야기이다. 호마리우는 만화에서나 나오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호르헤 발다노 -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이며 페널티 에어리어의 위대한 예술가이다."- 로베르토 바조 -
(여태까지 함께했던 최고의 파트너로 호마리우를 꼽으며) "그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가 그랬던것처럼 내 패스를 활용할 수 없었다."- 미카엘 라우드럽 -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 그는 종종 경기 중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골 기록을 보면 도저히 논쟁이 불가능했지. 그는 무에서 골을 창조해내는 선수야. 그의 피니쉬는 비범했고 나는 종종 그가 탁월한 수비수들을 시체를 지나는 것 같이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었지. 오늘날 그와 같은 선수는 없어."-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
"그에게 한 뼘의 공간만 내줘봐. 아마 그는 수비수들을 돌아버리게 할 걸? 그는 예외적인 테크닉과 10-15미터 내에서의 폭발적인 스피드를 지녔어. 그는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고 침착하게 골문을 가를 수 있었어. 모든 게 그에겐 너무 쉬웠지. 즐겨라, 즐기게 놔둬라. 그게 그의 철학이었지. 대단한 개성이야."- 알베르 페레(드림팀 시절 바르셀로나의 동료) -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던 것이 바로 그를 TV에서 보던 1994년이었다."- 호나우지뉴 -
"빠르고 기술적이며 골 앞에서 치명적인 마크하는 것이 고통 그 자체인 선수. 스티브 브루스와 게리 팔리스터는 그와 같이 발 빠른 선수와는 맞서 본적이 없다고 했어.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의 그 밤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지. 그는 2골을 넣었고 우리를 갈가리 찢어놨어."- 데니스 어윈(맨유의 레전드) -
"호마리우는 아마 내가 대적한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선수였을 것이다."- 게리 네빌 -
"그는 마치 번개와 같았다. 정말 보고서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호마리우는 당신이 알아채기도 전에 크루이프 턴을 하고 지나갔다. 그는 상대 선수들을 죽은듯이 지나가 결국 골문을 가르곤 했다. 그는 진정한 오만함과 으스댐을 지녔었다."- 라이언 긱스 -
"내가 지도한 최고의 선수? 바로 호마리우가 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에게서 무엇이든지 기대할 수 있었다. 그의 테크닉은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골을 터뜨렸다. 흥미롭게도 그가 넣은 대부분의 골들은 발가락 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호마리우가 하는 짓은 꼭 어린아이 같다. 이놈은 먼저 인간이 되야 한다."- 요한 크루이프 -
- ↑ 리그만. 기타 대회까지 합치면 100득점이 넘는다.
- ↑ 이 때 드림팀이 유명한 원조(1기) 드림팀이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멤버들의 면면이 후덜덜하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잘 알고 있다시피 3기 드림팀이라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이었던 과르디올라가 바로 이 1기 드림팀 멤버이다.
- ↑ 호마리우 자신도 밤은 언제나 나의 편이라는 말을 했다.(...)
- ↑ 네덜란드의 축구 전설인 요한 크루이프.
근데 이 아저씨도 현역시절 사생활 참 화려했는데.(...) - ↑ 여담으로 이 당시 바르셀로나에는 호마리우 한명으로도 골치아픈데 역시 FW이자 희대의 또라이 'Crazy Boy'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가 있었다(...) 2010년대로 비유하자면 안토니오 카사노와 마리오 발로텔리가 한 팀에 있는 거라고 보면 된다.
으악어? - ↑ 이탈리아는 결승전에서 코스타쿠르타가 나오지 못했지만, 스페셜 하나 만들고 간 바레시와 그 경기 MoM이었던 말디니가 있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 ↑ 1995년은 조지 웨아가 수상했다.
- ↑ 사실 유스 골기록을 정식으로 넣기 좀 그런게, 유스 경기는 수준차이가 나면 스코어가 넘사벽으로 나기 십상이다. 메시 같은 경우는 유스에서만 900골을 넣었다. 고작 90년생인 보얀 크르키치도 유스를 비롯한 비공식 기록을 합치면 1000골 넘게 넣었다(...).
- ↑ 이 시기 호마리우는 감독 겸 선수로도 뛰었다.
- ↑ 나름 자산가에다가 탈세까지 한 전적까지 있으면서(...) 사회당에 입당했다니 뭔가 이상해보이지만 이건 역사적인 요인으로 인해 브라질 주요정당들의 명칭이 좌파판(...)이 되버린 탓이고
주요정당들의 정당명만 본다면 브라질이 소련급 국가로 보인다실제 성향은 그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가령 브라질 사회민주당은 우파정당으로 분류된다. 창당초기엔 좌파성향이 있었지만 카르도주 대통령 당시에 우파정책을 펴면서 성향까지 우향우되었고 그 영향이 현재까지 남아있어서이기 때문, 참고로 포르투갈 사회민주당도 비슷한 이유로 우파정당으로 분류되고 있는 중) 사회당은 그 가운데서 중도파 정도에 속한다. - ↑ 어떻게 간단히 넣는지 패턴 중 하나를 설명해 보자면 공 몰고 슬금슬금 하다가 치달 한 번 하면 당연히 반응을 보고 역방향으로 움직여야 되는 수비수보다 공을 다시 한 번 건드리기 전까진 앞서게 되고 제한적이나마 슛각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꼬발로 툭 차던 세게 후려차던 골키퍼 나온 거 보고 찍어서 띄워차던 아무렇게던지 골을 넣는 패턴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보통은 슛각이 제한되고 수비수의 몸싸움에 자유스럽게 슈팅하기 어렵고 골키퍼 역시 슛각을 제한시키는 위치를 잡아서 성공하기 어렵고 공격권 넘어가기 십상이다. 호마리우는 공을 발에서 적게 띄우는 볼컨트롤 능력으로 애초에 수비수가 지나치게 접근하긴 어려웠고, 여기에 움직이는 박자를 수비수의 예상과 어긋나게 만들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자기 말대로 이렇게 딱 한 순간 열린 슛각에서 어떤 슈팅을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 ↑ 그렇다고 해서 교본 등의 수식어보다는 우월하다기엔 조금 무리인 게, 교본 소리 듣는 반 바스텐은 호마리우와는 다른 의미로 무시무시한 스트라이커다.
- ↑ 하지만 당시의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로마리우'가 맞았다. 당시 포어를 하는 사람들이 포어 r이 ㅎ에 가깝다며 바꿔 부른 것이다. 포어 외래어 표기법이 새로 만들어진 뒤로는 이 의견이 반영되어서 ㅎ으로 옮긴다.
- ↑ 사실 영어권에서는 다 이렇게 부른다. 영어권 해설방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영어로 쓰인 이름을 그대로 불렀기에...
- ↑ 포어에서는 모음 법칙때문에 끝에 오는 '오'가 '우'로 발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