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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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팔 노동자가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행려병자로 오인받아 6년 4개월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갇혔던 사건.

2 상세

1992년 당시 36세였던 여성이주노동자 찬드라는 합법적인 단기 근로용 비자를 받고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로, 서울 광진구의 한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1993년 찬드라는 동네 분식점에서 라면을 먹은 후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갑을 가지러 다녀오겠다고 주인에게 설명을 했는데, 주인은 한국어가 서툴고 행색이 꾀죄죄하다는 이유로 찬드라를 무전취식 행려병자로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에 연행된 찬드라는 여전히 서툰 한국어로 어떻게든 상황을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경찰도 단순히 용모만 보고는 찬드라를 행려병자로 간주하고 청량리의 한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렸다. 여기서도 찬드라는 자신이 네팔사람이며 일하던 공장에 가면 여권과 비자가 있다고 열심히 항변했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고, 결국 병원에서 임시로 '선미아'라는 이름까지 받은 후 억지로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결국 2000년이 되어서야 담당의사는 찬드라가 정신병자가 아니라 네팔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았고,[1] 2000년 3월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네팔로 돌아갔다.

3 사건 이후

네팔에 있던 찬드라의 가족도 이 소식을 전해들었으며[2] 찬드라의 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몸져 누웠다가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박찬욱 감독은 2003년 이 사건을 토대로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에서 '평화와 사랑이 끝나지 않는 곳, 네팔로의 여행.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Never Ending Peace And Love)' 라는 파트 영화를 제작했으며, 마지막에 실제 찬드라를 찾아가 촬영하기도 했다. 이후 이 사건을 다룬 '말해요, 찬드라'라는 책이 발간되었다.

사건 이후 한국인들이 성금 1800여만 원을 모아 찬드라에게 전달하고 미안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지만 찬드라 본인은 "내가 못 배워서 일어난 일"이라면서 대인배스럽게 넘겼다고 한다.

그밖에도 2002년 초반, 언론에서 인권단체들이 정신병원과 한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하여 보상금으로 2861만 원을 받아내 그녀에게 전해줬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네팔에서도 이게 화제가 되었던 건 당연하지만 우습게도 보상금이 더 화제가 되어서인지 별별 사기꾼에 친척들이 보상금 좀 나누자고 찾아오거나, 심지어는 모택동주의자 반군까지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와 보상금 반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네팔에서 한국 식당 소풍이라는 가게를 운영하던 한국인이 그녀의 지인들을 통하여 들었던 이야기라고(지인은 한숨쉬면서 "그 돈을 거저 얻은지 아는 바보들이 참 많아요...무려 6년이나 정신병원에 갇혀서 말도 안 통하는 생활 끝에 받아낸 작은 보상을 그저 탐만 내니..."라고 한국인 사장에게 한탄했다고). 네팔의 평균 소득은 4인 가족 월 평균 1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2800만원이면 네팔에서는 어마어마한 돈이긴 하지만 마오이스트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고 여러 모로 고생한 걸 생각하면 돈만 줘서 다 해결되었다고 보긴 어렵다.설마하니 돈만 주면 장땡이라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결국 이런 사람들이 지겨워서인지 찬드라 쿠마리는 잠적해버렸기에 네팔에서도 도무지 행적을 알 수가 없다고.

이와 비슷한 사건으로 러시아 정신병원에 갇힌 헝가리 남자 토머 언드라시 사건이 있다. 이 쪽은 더 끔찍하다. 53년동안 갇혀있었으니...

조금 늦었긴 하지만 정신병원과 요양시설 등 수용시설에 억울하게 수용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인신보호관 제도가 2013년 법무부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런 억울한 사례가 좀 더 예방되고 감소할 것이다.
  1. 병원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라고 생각해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다. 문제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가 방글라데시 국적. 당연히 말이 통할리가 있나….
  2. 그 이전까진 정신병원 감금이 아니라 단순 실종으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