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해서는 2015년 네팔 대지진 문서를,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맵에 대해서는 네팔(오버워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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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 국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각형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로가 가로보다 더 길쭉하다. 오른쪽은 1962년 12월 12일까지 쓰인 국기. 표정에 불만이 가득하다. 프링글스.
सङ्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 | |
면적 | 147,181km² |
수도 | 카트만두 |
인구 | 31,551,305명(2015) |
인구밀도 | km²당 199명 |
통화 | 루피 |
GDP | 명목 213억 5600만 달러(2015) |
1인당 GDP | PPP 1,270$, 명목 751$(2015) |
시간대 | UTC +5:45 |
목차
1 개요
네팔어: नेपाल (Nepāl)
티베트어: བལ་ཡུལ། (Bal yul, 밸윌)
히말라야 산맥, 인도와 중국 티베트 자치구 사이에 위치한 나라. 정식 국명은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सङ्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이다. 수도는 카트만두(काठमाडौं). 공용어는 네팔어이다. 상당수의 인도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영어도 할 줄 안다. (동네 작은 식당 아저씨도 영어 할 줄 안다.)
네팔(नेपाल)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에서 온 것으로 그 의미는 '신의 보호를 받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에 있는 음식점에는 누군가 Never Ending Peace And Love 라고 나름 적절한 풀이를 적어놓았다고.
민족구성을 보자면 인도계가 대략 70% 이상이고 나머지가 티베트계 민족이다.
2 역사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유명한 룸비니(लुम्बिनी)가 네팔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네팔인들은 석가모니를 인도인이 아니라 네팔인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걸 두고 항상 인도랑 티격태격한다. 예전에 네팔에서 석가모니가 인도인이라는 설정을 한 인도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바로 상영관을 내려버렸다. 그런데 전국민의 80%가 힌두교 신자이고, 불교 신자는 10% 정도. 무슬림도 소수 있다. 다만 원래 힌두교는 다신교로써 여러가지 신을 포괄한다. 당연히 석가모니는 힌두교에서 주로 모시는 신 중 하나이고 심지어 특이한 경우 예수까지도 자신의 신으로써 모시는 힌두교 사원도 있다.
여러 작은 부족국가들이 나뉘어져 인도나 티베트의 지배를 받으며 지내다가 1768년 12월 21일에 통일 왕정국가가 되었다. 1814년 영국의 침략을 받았으나 구르카를 필두로 저항하여 영국과 종전협정을 맺게된다. 이 와중에 영토 일부를 영국에게 줬으나 독립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와 밀접한 연관이 큰 라나(राणा, Rana) 가문으로부터 100여년에 이르는 섭정으로 인한 허수아비 왕조로 전락했고, 1850년대부터 섭정직을 독차지한 라나 가문이 카스트 제도를 들이는 통에 혼란만 더 일으켜왔다.
시크족과 싱할라족 다음으로 세계 최강의 용병으로 꼽히는 구르카족이 바로 네팔의 3대 수입원 중 하나라는 말이 있다. 구르카의 명성과 역사에 대해서는 항목 참조. 미(美)의회 도서관 자료실 정보에 따르면 군사력 총합으로 세계 84위이다(...) 참고.
1950년대에서야 비로소 구르카계 샤(शाह, Shah) 왕조가 절대 왕정을 이루지만, 그마저도 왕비 및 여러 기득권에 라나 집안 후손들이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런 가운데 1972년에 즉위하여 1990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시행한 비렌드라 국왕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지위에 있었다. 반대로 왕비인 아이슈와랴는 라나 집안 사람이었고, 절대왕정 보수파를 대변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는 아주 최악이었다. 1998년 왕과 왕비 내외가 거리 탐방을 나갈 때조차 사람들은 왕비에게만 돌을 집중으로 던져 왕비가 큼직한 돌에 이마를 맞고 피멍까지 들기도 했다. 그 정도로 네팔 민중들이나 진보파, 좌익으로부터는 공적 1호로 왕비가 모든 미움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입헌군주제가 채택되었다 해도, 150년 가까이 네팔 기득권을 누려온 라나 집안 및 귀족들이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기에 네팔 경제 다수 부는 소수층만 가져갔고, 결국 모택동주의자(마오이스트)를 비롯한 저항세력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인도가 절대적 영향을 누리는 네팔에선 중국이 친모택동주의를 받드는 마오이스트들을 이용해 배후조종한다고 비난하자, 중국은 이들을 견제하고 네팔군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인도군이나 부탄군까지도 마오이스트들을 견제하고 적으로 삼았기에 이들 세력은 극히 미미했다. 지금은 사라진 월간잡지 지오에서 90년대 후반, 네팔까지 가서 마오이스트들 기지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몽둥이나 농기구와 화살까지 들고 훈련받으며, 실전에 쓰는 총기조차도 자기들이 만든 1발짜리 권총이 휴대무기일 정도로 최악이었다. 그런데, 겨우 몇 해 안 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취재하러 올때는 차원이 달라졌는데, AK-47로 무장한 군인들 투성이에 로켓포, 수류탄같이 네팔 정부군급으로 무장이 달라졌다. 때문에 네팔 왕실은 중국이 지원한 것이라고 여겨서 중국이 이를 달래고자 중국 무기들까지 지원했었다... 그런데 막상 마오이스트들이 합법적 정권을 열자 중국이 더 환영하는 걸 보면...
그러나 2001년 6월 1일 갑자기 비렌드라 국왕의 장남인 디펜드라 왕세자가 왕궁 파티석상에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 국왕과 왕비, 누이 등 왕족 9명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디펜드라 왕세자는 혼수상태에서 3일 후 숨졌다. 그래서 이 3일간은 디펜드라가 왕위를 자동 승계하여 재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왕세자가 결혼에 반대하는 국왕 부부에게 불만을 품고 저지른 소행으로 발표되었다. 왕세자는 파스후파티 라나 전 외무,재무장관의 딸 데브야니 라나와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왕비가 라나는 인도계라고 반대했다는 것이다.[3] 일설에 따르면 왕비가 왕세자가 35세 이전에 결혼하면 요절할 것이란 점성사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를 그대로 믿지 않으며, 피살된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인 갸넨드라가 왕위 찬탈을 노리고 배후에 개입하였을 거라 의심하고 있다. 갸넨드라는 현장에 없었으며, 갸넨드라의 아내와 아들은 현장에 있었으나 모두 살아남았다. 또한 국왕과 왕세자 등 왕족 10명이 숨진 중대한 참사인데도, 속전속결로 장례가 치러진 점도 의심을 샀다. 왕정 폐지 후 네팔 정부는 이를 재수사하기로 했다. 디펜드라가 자살한 게 맞느냐는 의혹까지 있다.
갖가지 의혹 속에 국가평의회는 형식적으로 디펜드라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다음에 비렌드라 국왕의 동생 갸넨드라 샤를 섭정으로 지명했고 갸넨드라는 곧 왕위에 올랐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왕실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데다가, 이전부터 선왕과 달리 갸넨드라 왕은 상류 보수층들만 끼고 놀았기에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못받았고 거만한 성품으로 인해서 인기가 없었다. 더욱이 뒤를 이을 게 뻔할 파라스 왕자도 네팔에서 인기가 최악이었다. 이 왕자는 술 먹고 깽판 부리기로 악명을 떨쳤다. 심지어 음주운전을 하다가 무고한 사람까지 치어 죽였는데, 피해자가 네팔에서 인기 많은 대중음악가였고, 이걸 덮으려고 하다가 들통나면서 더더욱 욕먹었다. 그런 왕자가 왕이 된다면... 네팔 사람들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네팔 왕실에 등을 돌리면서 최악이던 마오이스트(마오쩌둥 주의자)들은 졸지에 무시못할 세력으로 커져갔다.
이후로 네팔 정부군 상당수까지도 왕실에 등을 돌리고 이들이 마오이스트들에 넘어오면서, 열악한 게릴라전을 벌이던 이들이 전문적 군인들이 훈련시키고 무장 수준도 장난 아니게 달라져서 네팔 정부군이 고전하게 된다. 그러자 미국까지도 네팔군을 지원하고 나섰지만, 민심이 등을 돌린 정부군보다도 마오이스트 세력은 나날이 커져갔다. 이러다 보니, 내전은 이전과 너무나도 다를 정도로 장난이 아니게 달라졌고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규모도 커져가며 경제등급 악화에서부터 네팔 경제와 외교 여러 모로 타격이 컸다.
게다가, 이런 혼란을 수습해야 할 갸넨드라 왕은 집권 초기부터 어용내각을 앞세우고 공포정치를 일삼았으며 되려 2005년 절대왕정을 부활시키면서 민심만 폭발시키게 만들었고 이 혼란을 틈타 마오이스트들이 대도시 부근까지 진격해 전투를 벌였으며, 이런 혼란을 막겠다고 벌인 선거조차도 야당을 탄압하면서 왕당파들이 절대적 압승을 거두자 더더욱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린 꼴이 되었고, 야당 전 세력에서부터 진보, 좌익, 심지어 우익온건파들조차도 이들과 손잡고 왕정 타파를 주장한다. 결국 이런 절대왕정 부활 2년도 안가 왕은 모든 권력을 이양한다고 물러나야 했고, 2007년 12월 25일 마오이스트와 정부가 사실상 왕정폐지에 합의했으며 5월 29일의 선거에서 마오이스트 정당이 압승하면서 239년만에 왕정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되었다.
하지만, 네팔에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인도 측은 마오이스트 정권을 안 좋게 여겼다. 인도 동부 차티스가르 주 및 웨스트벵골 주 여러 주에도 낙살라이트 Naxalite라고 불리는 마오이스트 반군이 있는데 이들도 장난이 아니다. 2009년만 해도 이들 테러에 민간인과 경찰을 합쳐 인도에서 906명이 죽었다. 참고로 화약고인 잠무 카슈미르에서 그 해 사망자가 민간인, 군인 합쳐서 132명이라는 걸 생각하면 내전급이다. 이런 상황때문에 인도는 네팔에 여러 혼란이 계속되는 것도 두고보고 있다. 마오이스트 측은 중국에게 더 매달리지만, 이걸 환영하면서 중국도 정작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마오이스트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던 미국이나 인도 눈치 때문에, 왕정복고 어쩌고 하는 뻘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갸넨드라 국왕 일가는 폐위되어 카트만두 근교 별장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뭐 권력으로 밀려나서 좌절할지 모르지만, 모아둔 돈과 인도 및 여러 상류층과의 협약으로 여전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데도 별다른 물의를 빚지 않고 내쫓기 무섭게 마오이스트 운운하며 왕정 복고 논란까지 나오고 있는 판국이니 네팔 민심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 현재 네팔의 의회에서도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정당이 4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왕정복고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4월 25일에는 네팔 동부에서 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관련기사 이후 자세한 정보는 2015년 네팔 대지진 참조.
2.1 역대 국왕 (1768 ~ 2008)
01대 : 브리트비 : 1768년 9월 25일 ~ 1775년 1월 11일(6년)
02대 : 프라탑 : 1775년 1월 11일 ~ 1777년 11월 17일(2년[4])
03대 : 라나 : 1777년 11월 17일 ~ 1799년 3월 8일(폐위, 21년)
04대 : 기브란 : 1799년 3월 8일 ~ 1816년 11월 20일(17년)
05대 : 라젠드라 : 1816년 11월 20일 ~ 1847년 5월 12일(30년)
06대 : 수렌드라 : 1847년 5월 12일 ~ 1881년 5월 17일(34년)
07대 : 프리트비 : 1881년 5월 17일 ~ 1911년 12월 11일(30년)
08대 : 트리후반 : 1911년 12월 11일 ~ 1955년 3월 14일(43년[5][6])
09대 : 마헨드라 : 1955년 3월 14일 ~ 1972년 1월 31일(17년)
10대 : 비렌드라 : 1972년 1월 31일 ~ 2001년 6월 1일(29년)
11대 : 디펜드라 : 2001년 6월 1일 ~ 2001년 6월 4일(56시간)
12대 : 갸넨드라 : 2001년 6월 4일 ~ 2008년 5월 28일(7년)
왕위요구 : 갸넨드라 : 2008년 5월 28일 ~ 현재
2.2 역대 의회 (1959 ~ 현재)
의회(1959~1960)
1959년 2월 18일에 네팔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를 실시하여 국회의원 109명을 뽑았다. 투표율은 42%였고 NCP[7]가 74석을 차지하였다.
무정당 판차야트 1기(1961~1980)
1960년 12월, 당시 국왕인 마헨드라는 민주주의를 네팔에 어울리지 않는 외래사상으로 간주하고 직접 통치를 선언,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와 내각을 해산했다.
ㅇ NCP(네팔의회당)와 공산당 등 모든 정당은 불법화하였고, 독재에 대한 불평과 비판을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등 언론출판의 자유도 완전히 억압하였다.
ㅇ 마헨드라 국왕은 자신이 수상과 내각을 구성하고 의회의 기능을 대신하는 ‘무정당 판차야트[8] 체제’를 도입하였다.
ㅇ 판차야트를 소집하고 폐회할 권한이 국왕에 있고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회의 감독하에 있기 때문에 의회(판차야트)는 당지 명목상의 기구로 전락해버렸다.
ㅇ 최초의 판차야트 선거조차도 마헨드라 국왕이 사망할 즈음인 1971년에야 실시되었고, 그나마도 보통선거가 아니었다. 국왕이 16명을 임명하였고, 각종 단체가 뽑은 대표 15명[9]에, 지역 대표 90명, 그리고 대학 졸업자[10]에게 만 투표권을 줘서 4명을 뽑았다.[11]
무정당 판차야트 2기(1981~1990)
1979년 4월에서 5월에 걸친 네팔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12]에 당시 국왕이던 비렌드라가 1980년 다당제와 무정당 판차야트 가운데 어느 것을 국민이 선택할 것인지 투표에 부의하였는데, 투표 참여자의 54%가 판차야트를 지지하였다.[13]
새 판차야트[14]의 임기는 5년이었고 1981년과 1986년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든 후보가 무소속으로 등록해야 했던 이 선거에 네팔의 정당들은 참여를 거부했다.[15]
의회(1991~2002)
1990년 네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국왕 비렌드라는 정당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고, 국왕이 임명하는 의원을 폐지[16]하였다. 1991년, 1994년, 1999년 세 차례의 총선에서 30년을 견딘 근성의 네팔 의회당과 역시 30년을 견딘 네팔 공산당이 번갈아 1당을 차지하며 양당 체제를 구축하였고, 국가민주당은 제3당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임시의회(2006~2007)
국왕 비렌드라가 아들에게 피살된 뒤 왕위를 계승한 갸넨드라가 헌법을 폐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독재 정치를 하고 이에 반발하는 마오이스트가 내전한 끝에, 2006년 민주화운동(Loktantra Andolan) 승리로 구성된 임시의회[17]가 임시 헌법을 만들어 그 때까지 존재하며 상원 역할을 하던 국왕 주도의 국가 회의를 폐지하고 단원제 국회를 만들었다.
이 임시의회는 위의 한 문장으로 끝내기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였는데, 통합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의 의원인 비디아 데비 반다리가 올린 의원의 3분의 1 이상을 여성으로 선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이다.
의회(2008~현재)
임시의회가 만든 임시헌법에 따라, 새 의회는 정원 601명으로 지역대표 240명[18]과 비례대표 335명, 의회 임명 26명으로 구성되었다. 2008년 4월 10일 실시된 총선에서 마오이스트는 229명[19][20]을 당선시키며 제1당이 되었고, 전통적인 양당이던 네팔 의회당이 115석, 네팔 공산당이 108석을 얻었다.
왕정을 지지하는 국가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자 없이 비례대표 단 4명 만이 당선되어 네팔의 왕정 폐지는 시간 문제가 되었다. 결국 2008년 5월 28일 개회한 새 의회는, 첫 의제로 왕정 폐지를 올리고 찬성 560, 반대 4로 왕정을 폐지해버린다.
2.3 왕정 폐지 이후
마오이스트 정부도 네팔에선 잠깐 인기를 끌었다 뿐이지, 언제라도 전복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동안 왕정에 대한 반발이 거셌음과 동시에 마오이스트가 벌인 횡포가 엄청났기에 일부 사람들에게 마오이스트 정부도 증오를 받기 때문이다.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에서도 봐도 알겠지만 외국 나가서 고생해 돈을 많이 벌어왔다면 집에 몰려가 돈을 내놓으라며 온갖 협박에 심지어 납치, 약탈까지 벌이던 사건들이 꽤 많았다. 이에 대해 마오이스트 수뇌부는 일부 드립 및 가짜 마오이스트라고 했지만 고위간부들도 연루된 상황이라서 반마오이스트 정당이나 여론에서 신나게 비난했고 수뇌부는 데꿀멍했다.
마오이스트의 횡포를 조금만 알 수 있는게 국내 여행가인 임현담의 <가르왈 히말라야>라는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도 나온다.
"인도에서 네팔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마오이스트들의 약탈로 재산을 잃고 인도로 달아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네팔인은 해외에서 10년 넘게 죽어라 일하면서 2천만 원이 넘는 돈을 벌어오자 절반을 내놓으라며 집으로 찾아와 기르던 소를 쏴죽이는 마오이스트들 때문에 고생하다가 한 마오이스트 병사에게 장작을 던져 화상을 입히고 죽어라 달아난 끝에 겨우 인도로 피했다는 사람이나 반대로 돈도 없음에도 마오이스트에게 징발로 아이들을 짐꾼으로 빼앗긴 이들 같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네팔 현지에서 마오이스트에 대하여 질문하면 무척 분노하는 반응이 흔하다."
게다가 마오이스트들은 이전부터 파업 같은 반정부 활동을 강제로 참여하게 하여 파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나 문을 연 가게들을 상대로 무력을 벌이는 일에서부터 셰르파로 일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이란 명목을 마구 돈을 뜯었던 일도 벌였기에 마오이스트에 대한 불신감은 자업자득이다. 선거에서 이겼으나 마오이스트 정권도 경제정책에서 무능하기는 마찬가지고 사람들은 이건 왕정이나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이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로 친중 정책이 오래 지속될지는 의문. 뭐 마오이스트가 독재정권이라면 계속 이어지겠지만 과반수를 확보한 상황은 아닌지라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반대파(네팔국민의회당,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 등등)가 득세할 건 뻔하다. 중국으로서도 이웃 나라인 네팔을 계속 친중으로 묶어두고 싶지만 마오이스트 정권의 뻘짓으로 불안한 걸 두고 봐야 하는데 반대파들이 친인도나 친러, 친미적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사상 처음으로 불가촉천민으로서 국회의원이 된 골체 사르키는 마오이스트조차도 고위 카스트들이 간부로 이뤄져서 왕정주의자랑 차이가 없는 모순주의자로 비난했는데 불가촉천민들에겐 마오이스트나 왕정파나 차이가 없다고 뜻을 같이했다. 2011년 한국여행자가 네팔 현지인들에게 물어본 마오이스트 정권 인기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결국 2010년 총리가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 총선에서 마오이스트당은 의석의 반이상[21]을 잃으며 대패했고 네팔국민의회당과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연정하여 수실 코이랄라(सुशील कोइराला) 네팔의회당 총재를 다음 총리로 선출했다.
그리고 충공깽인 건, 공화제로 전환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헌법이 없다는 점. 정확히 말하면 1990년의 왕국 헌법을 대신해 2007년에 제정된 임시헌법으로 때우고 있는 형편이며, 2015년까지도 정식 헌법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22][23] 가장 큰 쟁점은 연방구획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거라고 한다.[24]
파일:JL0HmLz.jpg
헌법 제정 시한인 2015년 1월 22일에 헌법 초안이 의회에 상정되지 못 하게 난동을 부리는 마오이스트 의원 때문에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 못지 않은 국회 공성전이 벌어지고, 결국 헌법 초안은 상정되지 못 했다.
2015년 9월 20일 헌법이 공표되었다.#
2015년 10월 12일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의 샤르마 올리 총재가 네팔 38대 총리로 취임했다.#
2015년 10월 28일 통합마르크스레닌주의 네팔공산당의 비디아 데비 반다리 부총재가 네팔 2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네팔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다.#[25][26]
3 정치
네팔은 단원제 의회로 의원 정원은 601명이다. 지역구에서 240명, 정당 비례로 335명을 뽑고, 임명직 의원이 26명이다.
총선에 봉쇄조항이 없어 소수 정당이 의회에 많이 진출해있다.[27][28]
대통령과 총리는 의회에서 뽑는다. 총리가 정부 수반으로서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은 의전상의 국가원수직을 수행한다.
2015년 제정된 헌법은 의회에 여성 의원을 1/3이상, 대통령과 부통령 중 한 명은 여성, 정부와 위원회에 여성을 반드시 포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국회 의장과 대통령도 여성이다.[29]
여담으로 네팔의 많은 정당 중 통일교 교리 당 이념 삼는 ‘네팔가정당’이 있는데 평화재건부 장관 배출되었으며,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네팔노동자농민당이 있다는 것이다. #
4 경제
- 네팔/경제 항목 참조.
5 시간대
네팔 표준시간은 희한하게도 UTC+05:45를 사용한다. 사용하는 자오선은 86°15' E. 인접국인 부탄이 UTC+06, 인도가 UTC+05:30을 사용하는 것을 감안하면, 정수차 시간대를 추천하는 국제규약상으로는 UTC+06, 교역 등의 이유를 생각하면 인도와 마찬가지로 UTC+05:30를 사용하는 편이 이치에 맞지만, 네팔은 그 어느 쪽을 채택하기도 거부하였다. 특히 인도가 사용하는 82°30' E 자오선은 네팔의 서쪽 상공을 통과하는데도 이를 거부하였다.
이것은 네팔이 인도와 자존심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1956년에 네팔이 표준시를 채택하면서, 의도적으로 인도가 사용하던 시간대를 피하려고 조치한 것이다. 덤으로 네팔이 사용하는 86°15' E 자오선이 국토의 정중앙에 가깝기도 하다.
6 자연과 환경
그 유명한 에베레스트가 이 나라에 위치하고 있다. 평균 고도가 1,350m일 정도로 높은 산이 많은지라 한국의 산을 산이라고 소개했다가는 "저런 건 네팔에선 앞동산이라고 하는 거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당장 내가 서있는 곳이 3,000m인데 그런거 산이라고 치기는 커녕 보이지도 않는다 허영만이나 서나래의 만화에 따르면, 대충 7,000m 이하의 산들은 이름도 안 붙여 준다고 한다(…).[30] 산지를 안내하는 셰르파들도 굉장히 번창했다.
지구상에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이 중에 8개가 네팔에 있다. 1위 에베레스트(8,848m), 3위 칸첸중가(8,586m), 4위 로체(8,516m), 5위 마칼루(8,463m), 6위 초오유(8,201m), 7위 다울라기리 1(8,167m), 8위 마나슬루(8,156m), 10위 안나푸르나(8,091m) 가 네팔에 있으며 2위 k2(8,611m), 9위 낭가파르바트(8,126m), 11위 가셔브룸 1(8,080m), 12위 브로드피크(8,047m), 13위 가셔브룸 2(8,035m)는 파키스탄에 있고 14위 시샤팡마(8,027m)는 중국에 있다. 하지만 14좌 모두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봉우리다.[31] 네팔과 파키스탄의 봉우리들은 대부분 중국과 경계에 있다.
카트만두를 제외하면 개발이 잘 되지않아 자연 그대로 깨끗한 편이다. 국립공원 근처로 가면 공기가 너무 맑아서 다양한 생물들과 맑은 공기를 먹고 자란 한국에서보다 크기가 더 큰 생물들(바퀴벌레, 거미같은...)을 볼 수 있다. 카트만두의 경우 한국 나이드신 어른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거리모습을 볼 수 있는데 군데군데 망가진 포장도로, 구정물, 버려진 자동차 프레임, 쓰레기들, 오래된 타타 차에서 나오는 검은 매연들이 즐비하다. 타 지방 출신 현지인들도 카트만두 가서 수돗물이나 우물물 마시면 설사한다고 한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왕래하는 터멜의 경우는 깨끗한 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곳곳에 쓰레기들이 버려져있고 길가의 거지들이 많이 도와달라고 붙잡는다. 이들은 마트에 들어가서도 끝까지 따라오는데 한 번 이들에게 무언가를 사주거나 돈을 주게 되는경우 옆에서 보던 다른 거지들도 붙게 되므로 아예 처음부터 주지 않는게 좋다. 화장실을 갈 경우에는 꼭 휴지를 가지고 들어가자. 이곳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대체로 물을 받아서 닦는 식으로 뒤처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실에는 바가지 하나와 수도꼭지 그리고 구식 변기밖에 없다. 현대식 좌변기를 볼 수 있는 곳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시설 좋은 호텔같은 곳을 가면 볼 수 있다. 공항 화장실의 소변기 마저 90년대 벽에다가 볼일을 보는 듯한 그 소변기와 같으니...
여러가지 기술 미흡 및 자본 문제와 건기에 보충할 전력 보충 문제로 정전이 하루에 10시간 정도 매일 일어난다. 정전 시간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을 정도(...) 그리고 의외로 수도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해마다 눈이 많이 녹는다고 환경문제가 계속 거론되고 있으며 물이 어디에나 풍부한게 아니라 아주 황무지같은 곳도 많다. 그래서 마을마다 공동 수도(우물) 혹은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가 있고 개인수도는 흔하지 않다. 절대로 목이 마르다고 이걸 마시면 안된다. 해외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현지인이 아니기에 물갈이를 할 확률이 높다.
아닐 것 같지만 악어와 코뿔소(!)와 코끼리도 산다. 네팔에도 밀림과 초원이 있다. 오죽하면 네팔 여행사 대표가 한국에서 홍보하면서 "네팔에는 에베레스트와 산만 있는 게 아닙니다"라며 밀림과 코끼리와 늪지도 있다는 열변을 토한 바 있다.(게임 파크라이4에서 이것이 매우 잘 표현 되어 있다) 네팔의 이 밀림지대는 치트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정글에 철조망을 넘어(혹은 기어서) 들어가면 이들을 볼 수 있는데 (물론 불법이고 목숨을 건 행위이다.) 랍티 강 같은 큰 강에서는 악어(수영하다가 봉변당한 사람들도 있다.), 목욕하는 코뿔소들을 흔하지는 않지만 볼 수 있고 더 깊이 정글 속으로 들어가면 야생코끼리와 표범이나 여러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잠시 이 철조망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위에서도 언급했던 전기 문제로 인해 낮에는 전원이 안들어와있고 높이도 2m 정도밖에 되지않기에 3m를 점프하는 야행성 호랑이들이 가뿐히 넘을 높이다. 가끔씩 국립 공원의 호랑이들이 마을로 나와 사고가 나기도 한다.
참고로 치트완 국립공원 쪽에서 코끼리를 타고 정글에 들어가는 체험과 배를타고 악어를 볼수 있는 네팔의 자연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비용은 약 500네팔루피[32] 정도라고 한다.[33]
7 외교 관계
외교적으로는 이웃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와 더불어 절대적으로 인도에 의존했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임에도 인도 귀족들이 와서 네팔 정계와 경제를 삼켰고, 2000년대까지도 네팔 경제 대부분을 인도계가 쥐고 있었다. 네팔 사람들 상당수가 인도가서 일하기도 하지만, 이들이 인도에서 받는 대우는 아주 최악이다. 엄청 낮은 월급에, 그마저도 안주는 것. 게다가 구타와 폭력, 사기에 휘말리는 게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다른 나라도 해당사항이 많을듯.
그러나 중국이 인도를 견제하며 네팔에 경제적 지원을 해줬고, 네팔 마오이즘 반군이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으면서 친중국 성향으로 가고 있다. 굳이 이 기사 말고도 '네팔 중국 티베트'라고 세 검색어를 넣어서 뉴스 검색해보면 네팔이 얼마나 친중국화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네팔 민중들은 별로 중국에 대하여 친근함을 가지지 않는데 중국인 이민자들이 네팔에 와서 장사하는 게 조금씩 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네팔은 산업화된 경제가 아니라 실업자가 굉장히 많은 나라이니 외국인이 와서 장사하는 걸 아니꼽게 볼 수밖에. 안 그래도 티베트 망명자들도 차별많이 당하는 곳인데 이젠 중국인 숫자가 늘어나는 걸 더더욱 신경쓰는 분위기라고.
네팔 정부가 친중국 자세인 것도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가시적인 경제성장이 별로 없는 게 아무래도 여기도 윗 정치인들이 참 썩은 모양. 결국 위에 정치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선거에서 마오이스트 정당은 참패했고 친중 노선도 타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인도가 네팔에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인도와의 갈등도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 사회
8.1 민족
네팔의 민족은 크게 아리안 계열, 몽골리안 계열, 그리고 토착민 계열이 있다.
아리안 계열은 전형적인 인도 사람들과 비슷한 주로 브라민(네팔에서는 브라만을 브라민이라고 부름)과 체트리 사람들이고 몽골리안은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 토착민 계열은 피부가 매우 검은 흑인과 같은 사람들을 포함한다. 네팔에도 카스트 제도가 존재한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야는 아리안 계열이다. 브라민은 순수 아리아 계열. Acharya(어쩌랴가 아니라 어쩌레), Adhikari, Bhatta, Bhattarai, Gautam, Ghimire(기미레), Poudel 등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이 계층이다. 체트리는 크샤트리야 아리안 계열 중에서 브라만과 타 민족 혼혈의 사람들이 속한다. 이들은 브라만 사람들과 같은 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주로 Chhetri(체트리)라는 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크샤트리야 보다는 체트리라고 한다. Basnet 이나 Karki 같은 체트리 고유의 성도 존재한다. 바이샤 계급에는 Shrestha(발음은 슈레스트에 가깝다. 슈레스타, 쉬레스타가 아니라), Newari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네와리족 계열로 네팔의 상업을 주도하는 세력들이 많다. 한 예로 상당수의 로컬버스에서 광고로 볼 수 있는 Shrestha 여행사라는 곳도 있다. 미망인들이나 이혼녀들이 돈 많은 네와리 계열 남자와 재혼하는 경우도 적잖게 볼 수 있다. 수드라에는 토착민 계열이 주로 속하는데 피부색이 많이 까만 사람들이 주로 이 계열에 속한다. Nepali, Sunar, Pariyar, B.K.(Bishwakarma) 등의 성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네팔 내에서 카스트 제도를 거의 따지지 않아(공식적으로 폐지. 지방 일부에서만 '뼈대깊은' 브라만들만 따진다) 서로 다들 친하게 지내다보니 이들은 계급이 낮아도 무난하게 잘 지낸다. 가끔씩 이들 중 외국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있는데 정말 유명한 한 사람은 좋지않은 방식으로 미국에서 성공(?)했다. 이 외에도 몽골리안 계열로 Tamang, Rai, Limbu, Magar, Gurung, Sherpa 등이 있다. 이들은 산간지역 출신 사람들이 많다. 특히 그 유명한 구르카 용병(네팔 사람들은 고르카 라고도 많이 부른다.)의 3대 기원의 성씨 중 2(Magar, Gurung)이 바로 이쪽 계열이다. 몽골리안 계열이다보니 생긴건 한국, 중국, 티벳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특히 Tamang(따망)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많이 비슷하게 생겼다. 이들 중에서도 여러 갈래로 또 나뉘는데 Tamang의 경우 Lama Tamang이 있고 Magar 같은 경우에는 Pun Magar(뿐 머거르), Rana Magar(라나 머거르), Thapa Magar(타빠 머거르) 등이 있다. 이 몽골리안 계열들은 비 힌두교 출신이라서 카스트에 넣지 않지만 굳이 넣자면 바이샤보다 아래지만 수드라보다는 위인 그런 위치다. 이들 외에 다른 민족 계열로 Tharu (타루)족인 Chaudary 혹은 Mahato 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네팔의 성씨는 민족을 의미한다. 같은 성씨면 같은 민족이나 민족 출신을 의미한다. 어찌보면 한국의 성씨 혈통과 비슷하지만 네팔의 경우 민족이 다른, 즉 성씨가 다르면 외모도 좀 차이가 있다. 외모를 보고 성씨나 카스트를 맞출 수도 있다.
8.2 치안
이웃나라 인도와 달리 네팔의 치안은 자주 시위와 문제가 발생하는 카트만두를 빼면 좋은 편이다(카트만두도 그렇게 위험하지 않음). 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대체로 잘 해주는 편. 하지만 이곳도 사람사는 곳인만큼 나쁜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종교 활동에 있어서 특히 그런데, 물감 축제를 할 때 종교가 다른 사람이 오면 보통은 그냥 물감이나 물만 맞을걸 돌로 맞을수도 있다. 지방에서는 동네 공산주의자 깡패들만 조심하면 된다. 이들은 외국인에게 왠만해서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 년중에서 마약(양귀비 아편)이 허용되는 날이 있는데 이 날은 외출을 삼가는 편이 좋다. 이 외의 경우에는 로컬버스나 투어리스트 버스를 여행자 혼자 타도 큰 문제는 없는 편이다(카트만두에서도. 대신 바가지를 감수해야 한다). 산간지방에서 내려와 평야의 정글, 국립공원 쪽으로 갔을 경우에는 야생동물들을 조심하여야 한다. 농담이 아니고 허술한 펜스를 벵갈호랑이와 같은 종의 호랑이가 넘어오고 강가에서 수영을 할 때는 악어나 뱀에 공격당할 위험이 있다. 이런 몇 가지 경우를 빼면 안전하다. 하지만 안일하게 생각하지말고 초행길이라면 항상 조심하는 특성을 갖자.
저렇게 여행자제, 철수인 것도 전부 지진때문이다. 난리가 보통 난리가 아니다보니 사회가 뒤숭숭해서 그런 것.
8.3 위생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좋지 않은 편이다. 수도인 카트만두에서조차 그렇다. 물이 부족한 사정상 같은 옷을 며칠동안 입고 나서야 빨래를 하고 화장실의 경우 뒤처리를 할 때 손과 물을 사용한다. 그리고 변기 물 내리는 시스템이 레버로 되어있는게 거의 없기에 물을 받아서 변기에 쏟아붓는 식으로 물을 내린다. 식당의 경우 완전 고급 식당이 아닌 경우에는 위생을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조리 과정도 굉장히 오픈 되어있는 곳도 있는데 특히나 여름철에는 굉장히 안 좋다. 길거리의 오래된 타타 차의 매연, 엄청난 파리떼들 등이 조리 과정에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게되면 네팔에서 맛난 거리 음식 혹은 서민 음식을 먹기 힘들게 되므로 그나마 깨끗해보이는 곳으로 가서 그냥 위의 소화 능력을 믿자. 정 못 먹겠으면 그냥 고급 식당에서 먹는 것도 좋다.
길거리 위생은 매우 지저분한 편이다. 금가고 이곳저곳 구멍이 파인 포장도로, 구정물, 버려진 자동차 프레임, 쓰레기들, 오래된 타타 차에서 나오는 검은 매연들이 즐비하다. 수도인 카트만두가 정말 심한데 이렇다보니 지하수에도 이게 스며들었는지 타 지방 출신 현지인들도 카트만두 가서 수돗물이나 우물물 마시면 설사한다고 한다. 그나마 여행자들이 많이 왕래하는 터멜의 경우는 깨끗한 편이다.
9 스포츠
스포츠로는 뭐 알려진 게 없다. 축구엔 마티어스 메모리얼 A 디비전 리그라는 1부리그 및 2부 리그(메모리얼 B)까지 갖추고 있긴 하지만 약체급이라서 AFC프레지던트컵에 나가지만 여기서도 뭐 내세울 성적이 없다. 게다가 재정난 및 여러 사정으로 1990~94년, 2007~08년까지 아예 리그가 열리지 못하는 열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대회 성적도 초라하여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예선전에서는 한국에게 0-11로 졌다. 이 경기에서 황선홍에게 8골을 내 주며, 한국 국가대표 개인 1경기 최다 골 기록을 만들어 줬다. 이 기록은 9년(...)이나 유지되다가, 2004년 아시안컵 지역예선(2003년에 치름)에서 한국에게 0-16으로 지며 한국축구 사상 최다골차 승리 기록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이건 네팔에게도 최다골차 패배 기록으로 남았다. 그래도 1986년 월드컵 예선전에선 한국과의 홈경기에서 0-2로 선전한 적도 있다. 그리고 1999년 남아시안게임 대회에서 부탄을 상대로 12:0으로 이기면서 몰디브와 더불어 90~2000년 사이에 10점차 대패를 당한 최약체가 10점차로 다른 나라를 이긴 기록을 거둔 바 있다. 그런 네팔 리그에서 한국 선수 모집을 한다고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기사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한국 선수들이 인도네시아나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같은 동남아 리그에서 꽤 여럿 활약하고 있다. 다만 서남아시아 쪽으론 활약하는 한국 선수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자세한 건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할 것.
크리켓은 영국 식민지 여파인지 좀 하는 편. 1975년에 세미 프로리그이긴 해도 크리켓 리그가 문을 열었다.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같은 크리켓 강호는 그렇다쳐도 이웃 방글라데시나 아프가니스탄보다 실력은 떨어진다.
1999년부터 야구보급이 시작되어 약 17년을 거쳐 경기 인구는 약 300명까지 늘었다. 2010년 네팔 야구 연맹 (NBF)이 정식으로 설립.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야구·소프트볼이 정식 종목으로 복귀가 결정된 때 예선 출전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개인 종목은 어느 정도 하는 듯 하다.아시안 게임에서는 1951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 처음 나왔으나 메달을 1개도 못 받고 47년동안 불참하다가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오랫만에 나와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받은 게 최고성적이다.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 종목에서 동메달 3개를 받았으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권투에서 동메달 1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여자 가라테에서 동메달 1개를 받았다.
10 한국과 네팔
한국과는 1968년 영사관계로 있었다가 1974년 대사관계로 격상되어서 수도 카트만두에 주 네팔 대사관이 신설되었다.
네팔은 셰르파라든지 관광업으로 종사하는 이들도 많지만 워낙에 실업자 수가 많기에 결국 다른 나라로 가서 일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지못미 2010년 6월 16일자 네팔 히말라야 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한국에서 합법적 취업비자를 받고 가서 일하면 한 달에 보통 100만 원 정도를 버는데 이는 가까운 인도에서 버는 돈의 5배가 넘으며, 네팔에서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이들 월급 3배가 넘는다고 한다.[34][35] 거기에다가 말레이시아나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싱가포르, 홍콩, 일본보다도 임금이 높다고 한다.[36] 그러다보니 서로들 한국에 가려고 하면서 한국인 여행자들도 네팔 여행가서 현지인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지면 혹시 한국에서 일할 곳을 부탁하는 요청을 자주 듣는단다.
하지만 연줄이 없으면 한국어 능력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 한국어 능력시험에서 합격해야 취업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불법 체류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브로커들의 협박에 시달리는 등 위험부담이 크다. 때문에 비싼 수강료에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하며 경제적으로 빈곤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위한 한국어 교육 방송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효기간이 2년정도로 짧기 때문에 2008년 경제위기로 취업비자 발급건수가 크게 줄어들었을 때 상당수의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자들이 한국어 능력시험 합격증 유효기간이 지날까봐 두려워했다는 얘기가 있다.
물론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사장 혹은 상사에게 구박을 받거나 물리적 폭행 등을 당해 생기는 정신적 휴유증을 안고 돌아오거나 산업재해로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하는 사건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일할 경우 작업조건이 열악한 3D 업종에 종사하는 데다 업체 대부분이 영세하여 안전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높은 빈도로 사고가 발생하곤 한다. 또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하여 돈을 뜯기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그나마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에는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 능력시험의 난이도가 상당한 데다가 경쟁률이 높다 보니 아주 사라진 건 아니라고.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배낭여행자 거리인 타멜거리에 가보면 한국식당도 제법 볼 수 있는데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있으며 타멜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조금은 어설픈 한국말로 호객행위를 하는 네팔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로 한국에 온 경험이 있는 네팔인들이다.
2014년 3월 20일 프로듀서(PD)를 비롯한 국내 방송사 직원 3명과 여행가이드 등 한국인 4명이 네팔에서 힌두사원과 군사시설을 불법 촬영한 혐의로 18일 체포돼 사흘째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국 대사관측에서는 이들의 촬영장비가 공중에서 전경을 촬영하는 헬리캠으로 군사장비가 아니며 불법 촬영 의도가 없었다고 현지 경찰을 설득하여 이들 4명을 풀려나게 했으나 19일 다시 경찰서로 간 뒤 20일까지 구금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37]
11 해당 국적의 캐릭터
※해당국 작품 제외.
- 기동무투전 G건담 - 키랄 메키렐
-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 이클립스 - 탈리사 마난달
- 터프가이 - 치셴
- 시타를 위하여 - 시타 자르나
- 오버워치 - 테카르타 몬다타, 테카르타 젠야타, 시마다 겐지 [38]
-
네팔렘
12 해당 국적의 유명인
- ↑ 전 지역
- ↑ #
- ↑ 이미 힌두교 결혼식을 비밀리에 올리기도 했다.
- ↑ 역대 국왕 중 최단기 재위.
- ↑ 역대 국왕 중 최장기 재위.
- ↑ 1950년 11월 7일 망명했다가 1951년 1월 7일 복위했다. 그 사이 짧은 두 달 동안 국왕이었던 사람은 당시 네 살이던(...)
- ↑ Nepali Congress party. 네팔 의회당
- ↑ Rastriya Panchayat(국가 위원회), 줄여서 Panchaayat. 네팔어로 판차야트는 의회, 위원회라는 뜻이나, 보통 '판차야트'라고만 할 때에는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무정당 판차야트를 가리킴.
- ↑ 농민 단체 4명, 청년 단체 4명, 여성 단체 3명, 노동자 단체 2명, 퇴직 군인 단체 2명
- ↑ 1971년 당시 네팔의 대학 졸업자 수는 1만 3천 명이었다.
- ↑ 지역 대표조차 국민이 직접 선출한 것이 아니니, 결국 네팔 국민 중에 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대학 졸업자 1만 3천 명 뿐이었단 얘기다.
- ↑ 정부가 발표한 인명 피해는 사망 11명에 부상 164명이다.
- ↑ 국민투표는 노랑과 파랑이 인쇄된 투표용지를 썼고 판차야트를 지지하는 사람은 노란 색, 다당제를 지지하는 사람은 파란 색에 기표하도록 했다. 네팔 국민 대부분이 믿는 힌두교에서 노란 색이 종교적인 의미(성인(聖人)을 가리킴)가 있다는 점에서 국민투표 당시에도 색깔을 의도적으로 선정했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투표 결과가 색상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 ↑ 지역 대표 112명과 국왕 임명 28명으로 구성되었다.
- ↑ 1981년 선거는 1959년 이후 22년 만의 보통선거였음에도 투표율이 52%에 불과했다. 다당제를 지지한 사람들이 판차야트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얘기.
- ↑ 대신 왕당파인 '국가민주당'이 창당되어 총선에 참여하였다.
- ↑ 갸넨드라가 해산했던 의회의 의원과 임명직 의원을 합쳐 330명으로 구성되었다.
- ↑ 지역구 120개에서 2명 씩 선출
- ↑ 지역대표 120명, 비례대표 100명, 의회 임명 9명
- ↑ 1위이든 2위이든 120개 모든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단 얘기다.
- ↑ 220석이 80석(!)으로 줄었다.
- ↑ 이 때문에 2년 임기의 초대 대통령이 7년 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
- ↑ 2013년 총선도 제헌 의회를 다시 구성한 것이다.
제헌 의회 선거를 두 번 한 나라가 또 있나? - ↑ 마오이스트와 지방(사실상 민족)에 기반을 둔 정당들은 인종과 민족을 기준으로 획정하길 바라는 반면, 네팔 의회당과 네팔 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여당은 지형과 자원을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특히 떠라이-마드헤시(Terai Madheshi) 지역이 가장 많이 반발하는 지역으로, 2015년 말에도 여전히 새 헌법을 반대하며 유혈사태를 벌이고 있다.
- ↑ 1979년에 공산당 학생 운동에 가담하면서 정치에 몸 담기 시작했고, 이미 2010년에 국방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 ↑ 새 헌법에 반대하는 떠라이-마드헤시(Terai Madheshi) 지역 의원들은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다.
- ↑ 산술적으로 득표율이 0.3% 만 넘어도 의석 배분이 가능하다. 실제로는 0.22%를 득표한 정당에까지 의석이 배분되었다.
- ↑ 2013년 총선 때 의회에 진출한 정당은 30개, 이 가운데 당선자 수가 10명을 넘지 않는 하위 22 정당의 의원 합계가 78명이다.
- ↑ 2015년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비디아 데비 반다리는 적극적인 여권운동가로 새 헌법에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정을 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다. 2006년에 임시의회에서 의회에 여성 의원을 1/3 이상 선출하도록 의무화한 법안을 제시한 바로 그 사람이다.
- ↑ 7,000m 산조차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건 심한 과장이다. 다만 4,000m 이하 산은 정말로 이름을 붙이지 않는데, 딱히 산이 낮아서 우습게 본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냥 그 높이에 사람 사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즉 4,000m 이하 봉우리(?)는 산 이름 대신 마을 이름이 붙어 있는 것. 가령 해발 1,600m인 사랑곳(Sarangkot)이라는 마을은 네팔에선 아이들이 평지(...) 번화가의 스쿨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통학하는, 흔하디 흔한 마을 중 하나일 뿐이지만 1,700m 설악산을 험하다고 하는 한국 기준에서 명백한 산이다. 이 정도 높이를 평지 취급 할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이라 고산병 걸리기 직전 고도에도 마을이 드물지 않다보니 자연스레 생기는 일.
- ↑ k2, 가셔브룸 1,2 브로드피크는 정확히는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해 있다. 두 산맥 모두 인도 판과 유라시아 판의 충돌로 인해 생겨났다.
- ↑ 인도 화폐 1루피당 1.6네팔루피의 고정환율을 가진다.
- ↑ 2016년 3월 기준 약 5600원
- ↑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일할 때 숙소나 식사는 매우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생활비를 아끼고 한푼이라도 바득바득 모아서 돌아가면 최소한 경작지와 집 한채는 떨어지기에 어떻게든 버티는게 목적이다. 좀 다른이야기지만 어느 네팔인은 5년간 일해서 번 돈으로 집 5채를 샀다가 마오이스트들에게 3채가 파괴당하는 엄청난 불행을 겪은걸 위키러가 직접 목격했다.(...) 일주일간 일을 제대로 못하는걸 공장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줬으나 집 3채에 비하면야(...)
- ↑ 주로 우리나라 공장 등에서 일하긴 하지만 현지에선 나름 대학까지 나온 고학력자다.
- ↑ 말레이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보다 임금수준이 훨씬 낮은 나라이고, 싱가포르나 홍콩의 경우는 선진국이라 당연히 자국민의 임금은 훨씬 높지만 최저임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이 낮다. 아랍에미리트 등 사우디를 제외한 걸프 만 연안의 석유부국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남아시아인들을 착취하다시피 부려먹는 걸로 악명이 높다. 일본도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는 임금이 일본인보다 낮은 편이다. 이런 면에서 볼때 한국은 진짜 천국인 셈.
- ↑ 그래서인지 2015년 4월에 촬영된 JTBC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네팔편에서 공중촬영분에선 네팔당국의 허가를 받았다는 자막이 나왔다.
- ↑ 본래 일본 국적이었으나 신분 세탁을 위해 그의 스승인 젠야타가 있는 네팔로 국적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