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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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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th=50 차고스 제도 (영국) | ?width=50 몰디브 | ?width=50 스리랑카 |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 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 |
국기 | |
면적 | 147,570km² |
인구 | 168,957,745명(2015) |
수도 | 다카 |
정치체제 | 의원 내각제 |
대통령 | 압둘 하미드 (আব্দুল হামিদ) |
총리 | 셰이크 하시나 (শেখ হাসিনা) |
임기 | 2009년 1월 6일 ~ |
명목 GDP | 2,023억 3300만 $, 1인당 1,266$(2015) |
GDP(PPP) | 2,586억 $, 1인당 1,572$(2010) |
수출 | 225억 $(2011) |
수입 | 300억 $(2011) |
국가신용등급 | BB-(S&P) |
공용어 | 벵골어(공용어), 영어(국가어) |
국교 | 이슬람 |
종교 | 이슬람 90%, 힌두교 9%, 불교 0.6%, 기독교 0.3% 등 |
국가(國歌) | 나의 금빛 벵골(벵골어: আমার সোনার বাংলা)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직접 작사, 작곡. |
화폐단위 | 따까(Taka, BDT) |
목차
1 개요
인도 공화국 동북 지역 벵골 만 연안에 자리잡은 국가이며, 정식 국명은 '방글라데시 인민 공화국(গণপ্রজাতন্ত্রী বাংলাদেশ, 고노쁘로자똔뜨리 방라데시)'. 수도는 다카(ঢাকা, Dhaka). 국명의 어원은 벵골어로 벵골 지역이나 벵골어를 가리키는 말인 방라(বাংলা)와 나라를 의미하는 데시(দেশ)를 합친 단어다. ("데시"라는 단어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예를 들어 "국산/국산아닌물건"을 현지어에서 "데시/비데시"라고 부른다.)
지도를 얼핏 보면 거대한 인도반도의 동쪽 겨드랑이에 위치했으므로, 방글라데시의 서쪽은 인도이고 동쪽은 인도차이나일 듯이 느껴지지만, 국경선의 95% 이상이 인도에 둘러 쌓여 있는 형국으로 미얀마와 접하는 국경은 매우 협소하다.
방글라데시가 북쪽과 동쪽으로 접하는 인도는 인도 측 입장에서도 개발이 잘 안되는 낙후 지역이기에 경제 교류상 무의미하고, 남동쪽 끝에서 접하는 미얀마도 쇄국 정책이 길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는 수십년간 인접국과의 교류가 무의미했다고 한다.
2 인구
국토 면적은 144,000km2로 그다지 큰 편은 못 되지만 인구는 2011년 기준 약 1억 6,895만 명으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꼽힌다. 인구밀도가 1,144명/km2이며 이는 한국의 울산광역시, 경기도와 비슷한 정도. 이는 방글라데시 국토 전체가 삼각주이며, 따라서 인구 부양력이 높은 벼농사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50년이면 인구가 2억 5,000만 명까지 증가한다는데, 그러면 인구밀도는 1,737명/km2가 되고 2050년의 러시아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많게 된다. 흠좀무.단 '예측'이라는 특성상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하며 정확한 사실은 아닌 데다가 예측 주체에 따라 숫자가 크게 차이날 수 있음은 고려해야 한다.
국가로 인정받는 나라를 대상으로 하면 모나코, 싱가포르, 바티칸, 바레인, 몰타, 몰디브에 이어 7위이나, 적어도 국토면적 1만㎢를 넘는 국가 혹은 인구 1000만 이상인 국가 중에서는 부동의 1위다. 다만 국토 대부분이 평야 지역인 데다 국토 면적의 60% 이상이 경작지라서 경지 면적당 인구밀도는 한국, 대만보다 낮다.
그나마 출산율은 엄청 줄였다. 1970년대만 해도 1가구당 6.6명이라는 가공할 출산율을 보여[4] 당시 중국의 5.1명이나 인도의 4.5명을 넘어섰던 걸 여러모로 노력하여 출산율을 세대교체율 2.1명을 약간 웃도는 수준(2.3명)으로 줄였다. 고로 1980년대 이후로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보다 인구가 많아졌고 2000년 이후로는 인도가 방글라데시보다 출산율이 높다.
민족 측면에서는 대부분이 벵골인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 오긴 했지만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다른 민족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비하리인은 전쟁 직전에 100만여 명이 살고 있었으나 상당수가 파키스탄으로 이주하였고, 15만 명은 피난을 갔다가 난민촌에 살면서 파키스탄 국적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무국적 상태에 있다가 2009년에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적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로 지금은 동부에 거주하는 불교계 소수민족 원주민들이 비하리인보다 많아졌다.
3 자연
영토 자체가 다우지(多雨地, 비가 많이 오는 곳)에 자리잡은 데다 과도한 플랜테이션으로 인한 환경 훼손까지 겹쳐져서 엄청난 대홍수를 겪는 국가가 되었다. 연평균 1.6건이 발생하는 사이클론과 이 대홍수 때문에 하구의 비옥한 삼각지가 다 쓸려나가서 농업에도 큰 손실이 났다.그래서 이를 두고 대홍수에 대해 홍수가 한번 날 때마다 영토가 줄어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매년 약 0.4%씩 영토가 줄어들고 있다. 매년 약 서울특별시 면적 정도가 물에 잠기는 셈이다. 작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은 게 아니다!
이 때문에 부레옥잠 해상 농법을 시험적으로 재배하고 있다. 홍수로 늘어나는 호수에서 아예 집을 짓고 부레옥잠밭을 통하여 식용 호박류를 재배하는데 성공하여 그것을 재배하고 팔면서 생계 수단으로 삼자는 것. 더불어 부레옥잠은 소나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 먹이로도 나쁘지 않다. 또한 인도가 산업화 된 이래로 각종 생활하수와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산업폐기물들이 갠지스강으로 대량 방출되다보니 오염이 심각하고 인도에서 갠지스 강 유역에 댐을 건설할때마다 쓸수있는 수자원이 줄어들어 농업생산량에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100년 전에는 코끼리나 코뿔소, 물소등 큰 짐승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멸종하고 중소형 동물만 남아 있다. 가장 큰 포식자인 호랑이도 50~75kg 수준으로 작으며 그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일도 생긴다. 그 밖에 사슴이나 멧돼지, 원숭이 등 포유류가 주류고 황새등 민물 조류도 서식한다. 습지 주변에는 악어도 있다.
또 이런 상황 때문에 2030년까지 2,000만 명의 기후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3.1 지리
남쪽엔 벵골만에 접해 있고 여기를 통해 인도양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경의 대부분이 인도와 접해 있지만 동남쪽에는 미얀마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고, 직접 국경을 접하지 않지만 가까운 주변국으로는 네팔, 부탄, 중국 등이 있다.
4 역사
근대 이전의 역사는 옆나라 인도 벵골 지방의 역사와 겹친다. 수천년 전부터 문명이 존재했으며, 마우리야 왕조나 굽타 제국, 팔라 제국 등의 영향권에 들어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특별히 구분되진 않았으나, 12세기 아랍인 상인들에 의해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해 이후 벵골 동부는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12세기 후반 벵골 술탄국이 수립되어 벵골인들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1352년부터 1576년까지 존속된 이 나라는 무굴 제국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후 무굴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굴 제국이 쇠퇴하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벵골 나왑국[5]이 되었다. 1717년부터 1818년까지 존속된 나왑국은 북부 인도의 패권을 손에 쥔 마라타 동맹에 의해 정복당했고, 이 마라타 동맹이 대영제국에 의해 패배, 실질적으로는 멸망함에 따라 1877년에 세워진 영국의 괴뢰국인 인도 제국의 일부로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에도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서벵골과 구분되지 않다가 1905년 무슬림이 많은 지역인 현 방글라데시 지역이 분리되었다. 분리된 목적은 명목상 행정상 편의를 위해서라고 했으나, 실제론 벵골 지역의 독립운동에 종교로 분열을 일으키려는 목적이었다. 벵골인들은 이것에 대해 반대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이 인도 전역으로 퍼지자 결국 영국은 얼마 안 가 벵골 분할령을 철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분쟁은 피할 수 없었다. 힌두교도가 주도한 국민회의는 무슬림을 은근슬쩍 무시하게 되자 무슬림들은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설한다.
1947년 힌두교도가 주류인 인도 공화국과 무슬림이 주류인 파키스탄이 종교적 이유로 따로 독립하면서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에 들어갔다. 이렇게 방글라데시는 동벵골(পূর্ববঙ্গ), 혹은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서로 한 나라가 되었으나 영토가 거대한 인도의 영토에 의해 분리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분리된 게 아니라 비행기 타고 아주 오래 걸리는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서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을 일종의 식민지로 인식하며 뽑아먹을 건 다 뽑아먹으면서 정부 요직에 동파키스탄 출신 인물을 앉히지 않는 등의 심각한 차별대우를 일삼았던 데다 이 둘은 언어까지도 서로 달랐는데 서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에서 많이 쓰는 벵골어 대신 서파키스탄에서 쓰이는 우르두어를 쓰라고 하면서 다카 대학교 학생들이 반발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1952년 2월 21일에 일어났는데, 이날은 현재 방글라데시의 주요 국가 기념일 중 하나이자 유네스코에서 세계 모어의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이 시위에서 군인들이 폭력으로 누른 것이 방글라데시인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벵골인들은 아와미 연맹을 결성했다.
1970년 역사상 가장 큰 인명피해를 준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 볼라가 방글라데시를 내습해 5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파키스탄은 받은 원조물자를 불공평하게 배분해 방글라데시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70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주장하는 아와미 연맹이 파키스탄 총선에서 압승해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방글라데시의 인구는 현재 1억 4,000만으로 1억 7,000만 파키스탄의 인구와 맞먹지만, 당시엔 방글라데시의 인구가 더 많았다. 하지만 파키스탄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벵골 지역에선 정부의 총선 무효화에 항의하는 폭력적인 시위가 벌어지자 파키스탄 대통령은 방글라데시로와 아와미 연맹의 당수 무지부르 라흐만(মুজিবুর রহমান)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파키스탄군이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 결국 아와미 연맹의 당수 무지부르 라흐만은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선언했다. 파키스탄군이 라흐만을 체포하자 방글라데시인들은 독립군을 결성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일으켜 서파키스탄인들을 공격했고 방글라데시 일대를 장악했으나 결국 파키스탄군에게 진압당하고 국경 지대로 밀려났다.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파키스탄군은 방글라데시인을 무차별 학살했으며 방글라데시 측은 이때 300만 명이 학살되었다고 주장한다.[6] 방글라데시 독립국이 인도 국경에서 게릴라 투쟁을 함에 따라 파키스탄이 인도 영토의 독립군을 폭격하고, 벵골인들이 1,000만여 명이 인도로 피난을 오자 인도군이 참전해 2주일 만에 파키스탄군을 무찌르고, 결국 1971년 방글라데시는 독립했다. 묘하게 방글라데시가 독립하여 여기 살던 파키스탄 지지자들은 파키스탄에 가서 살려고 하나 거기서도 차별하는 통에 지금까지도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초대 지도자로는 아와미 연맹의 무지부르 라흐만이 되었다.[7] 무지부르 라흐만의 별명이 '벵골의 친구'라는 의미의 '봉고본두(বঙ্গবন্ধু)'인데 방글라데시 해군 주력함으로 한국에서 수입한 프리깃 방가반두 함의 함명도 여기서 온 것이다.[8] 그는 얼마 안 가 방글라데시를 1당 독재 국가로 만들려 하다가 1975년 쿠데타로 피살되고, 지아우르 라흐만(জিয়াউর রহমান, 1936~1981)이 정권을 장악한다. 라흐만은 반인도 정책을 취하고 이슬람 우위 정책을 삼으면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큰 비난을 당했고 결국 1981년 지아우르 라흐만 또한 부하들에게 벌집이 되어 총살되었고 1982년 쿠데타가 일어난다. 이런 혼란 내내 반정부 투쟁이 계속 일어났으며, 1990년 반정부 시위로 에르샤드 대통령이 사임하고 일단 민정이 들어섰다. 그러나 2006년 반정부 시위가 또 일어났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3년 2월부터 독립전쟁 중 파키스탄군에 협력했던 전쟁범죄자의 사형 여부를 두고 하탈(Hartal)[9]이 지속되고 있다. 현재 2013년 6월까지 여러 번의 하탈이 있었으며, 내년에 있는 선거까지 하탈이 지속될 전망이다.
2015년부터는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들까지 계속 발생하는 판국이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현지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주장하지만 IS가 공식적으로 주장함에 따라 기정 사실로 여기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교를 폐지해 달라는 세속주의 활동가들의 청원을 고등법원에서 기각했다.기사 링크
5 정치
국가 형태는 입헌공화국이며, 정치 체제는 내각책임제다. 1972년 1월 ~ 1975년 1월 내각책임제로 출발했다가 1975년 1월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 그러다 1991년 9월에 개헌을 통해 다시 내각책임제로 복귀하였다. 1972년 12월 26일 헌법이 공포되었고, 1991년 9월 제10차 개헌을 했다.
의회는 임기 5년의 단원제이며 의석은 345석이다. 주요 정당은 아와미 연맹(AL, Awami League),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 자티야당(Jatiya Party)이다. 그 밖에 자티야 사마지탄트리크당(Jatiya Shamajtantrik Dal), 자마티이슬라미당(JI, Jamaat-e-Islami), 노동당(Workers Party) 등이 있다.
2006년 10월 베굼 칼레다 지아(Begum Khaleda Zia) 정권 퇴진 후 차기 총선을 둘러싼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BNP, Bangladesh Nationalist Party)과 아와미 연맹 사이에 극한 대치 상황이 지속되고 전국적인 유혈 사태로 인해 군부 후원하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리고 총선 때까지 정국을 관리할 과도정부(Non-party Caretaker Government)가 구성되었다.
과도정부는 헌법상 총선 전 3개월만 존속하도록 되어 있으나, 총선이 2008년 말까지 연기됨에 따라 약 2년간 과도정부가 방글라데시를 통치하였다. 과도정부는 당초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베굼 칼레다 지아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 당수와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아와미 연맹 당수를 배제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을 대체할 정치 세력 형성이 시기상조라는 점이 분명해짐에 따라 이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2008년 12월 29일 총선을 실시했다.
총선 결과 셰이크 하시나 당수가 이끄는 아와미 연맹이 총 300석 가운데 230석을 획득하여 방글라데시 민족주의당을 누르고 압승하였다. 2009년 1월 6일 정식 출범한 셰이크 하시나 정부는 과도정부 기간 동안 폭등하였던 쌀값을 안정화하는 한편 주재국의 만성적인 전력 및 교통난 해소를 위한 다양한 국가 사업을 추진하였다.
6 사회
한마디로 개막장. 콩고민주공화국, 소말리아,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다.
한때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국내에서 정설로 통했으며 심지어 교과서에까지 실리기도 했지만 헛소리로 판명된 지 오래다. 오히려 90년대 당시 행복도 조사의 기준이 애매해서 생긴 문제로,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최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현지 중산층이나 교민에게 물어보면 저런 조사결과에 대해서 코웃음을 친다고. 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지수가 높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요라고 한다. NEF의 행복지수 조사에선 30에서 40위 정도로 평가받으며 삶의 만족도는 세계 104위라고 한다. 아무래도 부탄이랑 헷갈린 듯
얼마나 막장인지 2010년 기준 방글라데시의 자살률만 해도 무려 인구 10만 명당 128.8명이라는 경악할 수치를 보여줬으며, OECD 1위고 국민들의 행복도가 낮은 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의 자살률(2012년 기준 28.1명)의 4~5배나 되는 수치를 보이고 있다. 자료 환산하면 대략 1년에 무려 20만 명이 자살을 하는 셈이며 방글라데시가 얼마나 살기 힘든 국가인지를 말해준다. 이 조사는 정부가 발표한 공식조사가 아닌 시민단체의 비공식 조사이므로 수치를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물론 저런 추정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며 오히려 방글라데시와 같은 후진국 정부가 시행하는 직접 조사는 자국의 문제를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시도할 소지가 높다.그럼 소말리아나 북한은 자살을 얼마나 할까? 거긴 통계 자체가 안 잡힐 텐데 북한은 한국이랑 비슷하다고 함
여기에 따르면, 11세의 아동도 일 최대 14시간에 달하는 중노동을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서도 억지로 하고 있다고 한다. 또 세계보건기구에서 1984년의 보팔과 1986년의 체르노빌보다도 심각한, 역사상 최대의 집단 중독(?)이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비소 중독으로 최대 7700만 명이 수년에서 수십년의 수명 단축을 겪을지도 모르며 심각한 보건상의 문제도 초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행복지수나 삶의 만족도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전형적인 이슬람교 국가답게 여성 인권 유린 문제도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여성 학대 비율과 강도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까지 포함해서 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심지어 남편이 아내를 상습적으로 고문'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것도 현재 실권자인 여성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집권 중인데도 여성 인권이 바닥인 것이다.[10][11][12]
무슬림에 비판적인 사람이나 비무슬림이 린치, 폭행, 협박은 물론이고 사원이 헐리거나 살해까지 당하는 일도 굉장히 흔하다. 세속주의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블로거들이 무슬림들에게 린치와 살해를 당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지역이 무정부 혹은 내란 상태로 중앙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아비규환이다. 게다가 이곳에서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2명이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도 발생되었다.기사 그리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첫날에는 900명의 극단주의자들을 체포하고 37명의 극단주의자들을 체포했다.기사기사 그리고 세속주의자들을 위협하는 극단주의자들을 추가로 5천 명을 체포했고 나흘만에 8천 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기사기사
일본인 차 연구가인 오사다 사치코[13]가 쓴 <세계의 차>에서도 방글라데시 차농장에 취재하러 가서 무척 우려한 게 나오는데 방글라데시 여성들이 찻잎을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따는 일을 하면서 받는 돈이 무려 우리 돈으로 60원이라고 한다! 햇볕에 노출되면서 그 넓은 찻잎을 따는 일에 이런 가공할 푼돈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물가를 고려해도 엄청난 푼돈이었는데 네팔이나 스리랑카, 케냐 같은 다른 차농장에서 여성들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적은 돈을 받고 일해도 방글라데시보다 훨씬 많이 받고 직업환경도 더 좋았다[14]고 쓸 정도였다. 당연하지만 현지 여성들도 아주 푼돈 받고 일해서 분노하면서도 도무지 다른 직업이 없어 이거라도 해야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다고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며 하소연했으니 말 다했다. 인도나 파키스탄도 방글라데시에 비하면 그냥 천국인 셈.
빈자들에게 무담보 저이자 소액대출을 해주는 마이크로크레디트의 개념이 처음 나오기도 한 나라이기도 하다.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는 이러한 빈자 구제 극복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정치에 진출하려고 했다가 현 총리와 집권당 아와미 연맹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견제를 받아 그라민 총재에서 쫓겨나고 유누스 은행조차 몰락하고 말았다.기사 [15]
7 문화
마왕성
▲ 수도 다카에 있는 국회의사당(জাতীয় সংসদ ভবন)이 유명한 편. 루이스 칸이 설계한 것으로, 건물이 독특한 게 특징이다.외국인은 허가 없이 즉석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인터넷으로 사전 방문 신청을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대다수로 사회 주류다. 인도 문화권의 영향으로 힌두교 인구도 9%로 상당한 숫자가(힌두교도 자체집계로는 인구 12%까지 추산) 있다.
7.1 스포츠
축구의 인기가 많은 덕택에 축구를 즐기는 사람도 많지만 축구를 즐기는 사람만 많지 선수 육성시스템이 영 좋지 않기 때문에(...) 인도에 비할바는 못되지만 많은 인적자원을 지니고 있음에도 자국 축구 실력은 세계적인 약체다. 자세한 건 방글라데시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하지만 실력과 달리 이 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런 축구팬들로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자국 팀도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가 약물 검사에 걸려 월드컵 출전이 금지당하자 방글라데시 축구팬 수천여 명이 피파 본부가 있는 스위스 대사관 앞으로 몰려들어서 돌을 내던지며 분노했었고 1998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 vs 아르헨티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가 네덜란드에 패하자 아르헨티나 축구팀을 응원하던 한 방글라데시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해외 토픽으로 실리기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선 프랑스가 탈락하자 방글라데시에서 분노하면서 작은 폭동이 벌어졌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정전으로 월드컵 중계가 중단되자 다카 거리에서 수천여 명이 폭동을 일으켜 수백여 명이 다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중 인기에 비해 실력은 떨어지는 축구와 달리 영연방 나라답게 크리켓에도 환장하는 나라다. 정전이 자주 일어나지만 크리켓 월드컵 땐 정전이 없다고 한다. 정전이 나면 사람들이 국영전기 관계자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웃 인도나 스리랑카, 파키스탄이 크리켓 월드컵에서 우승한 것과 달리 크리켓 월드컵 최고성적은 8강 토너먼트 진출이다. 그러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크리켓으로 마침내 염원하던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방글라데시 역사상 첫 구기 종목 국제대회 우승 기록이라고 한다.
8 산업
- 방글라데시/경제 항목 참조.
의류업, 그 중에서도 직물 가공업이 '국부'(國富)로 불릴 정도로 2010년대 현재 방글라데시의 산업에서는 직물 가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하지만 그만큼 이면에 숨겨진 인권 유린과 노동 환경 문제도 큰데, 이런 문제가 2013년 4월 24일에 사상 최악의 건물 붕괴 사고라는 방글라데시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에 드러나게 되었다.
9 국기
국기가 일본 국기인 일장기와 바탕 색깔만 다르게 보이지만 빨간 원이 정 중앙에 놓인 일장기와 달리 약간 왼쪽으로, 정확히는 원의 중심이 국기의 정 중앙에서 국기 가로 길이의 5%만큼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는 기가 바람에 날릴 때 중앙에 보이기 위해 기의 중심보다 깃대쪽으로 조금 물러나 있는 거라고 한다.
▲ 1971년부터 1972년까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쓰던 옛 국기.
바탕의 초록색은 이슬람교의 신성한 전통 색깔이자 방글라데시 청년들의 의기와 패기 그리고 벵골 지방의 푸른 초원과 지방을 상징하며 빨간 원은 붉은 피로 독립을 쟁취하고 싸워 이겨낸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희생 정신을 나타낸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점이나 이 나라의 위치가 인도 반도 동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보아 해가 뜨는 동쪽의 이슬람 국가라는 뜻도 있다. 원래 빨강 원에는 금색의 방글라데시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무늬가 없어지면서 일장기와 비슷하게 된 것이었다. 절대로 과거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다.[16]
팔라우의 국기와도 비슷하다. 색깔은 다르지만 원이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까지 같다.
10 외교 관계
1947년에서 1971년까지 한 나라였던 파키스탄과는 사이가 나쁘다. 50년대, 60년대 동파키스탄 시절 정치, 경제 등 파키스탄의 모든 주도권을 서파키스탄이 모두 독점했고 철저히 동파키스탄을 소외시켰으며 심지어 쌀, 소고기, 생선 등 식량자원들까지 수탈하는 등 경제적 식민지로 차별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동파키스탄 사람들이 먹어야 할 식량까지도 수탈할 정도로 악랄했다. 거기다 서파키스탄 본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같은 이슬람이라지만 언어와 문화 차이도 컸고 인종적으로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파키스탄의 아리아인들이 이란과 가깝다 보니 서파키스탄인들은 피부색이 흰 반면에 동파키스탄인들은 드라비다계의 영향을 받아서 피부색이 상당히 검은 편이다. 결국 서파키스탄의 이러한 차별과 지배에 쌓이고 쌓이다 못해 독립 전쟁을 일으켜 파키스탄으로부터 1971년에 독립할 정도였다.
흔히 잘 알려진 앙숙 관계인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사이가 좋다고들 생각하는데 오판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비해 잘 알려지질 않아서 그렇지 사실 인도와 방글라데시도 인도와 파키스탄 못지않게 앙숙이다.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과 싸우고 있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도가 지원할 정도로 독립 초기 인도와 방글라데시는 사이가 좋았으나, 인접한 이웃나라의 특성상 두 나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립 관계로 변질되었다. 영토와 국경 획정을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었고 갠지스 강의 먹는 물을 두고 물 분쟁도 벌어졌었다.
결국 1979년과 2001년에 양국 군인들끼리 국경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져 전쟁 위기까지 고조되었다. 거기다가 종교 문제로도 대립하고 있는데, 인도는 힌두교에서 신성시 여기는 소를 이슬람교를 믿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인도에서 밀수, 도축하여 쇠고기를 즐겨먹는다며 방글라데시를 수시로 비난한다. 이에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술과 돼지고기를 즐기는 주제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쇠고기 먹는 거 인도는 비난할 자격이 없다며 맞대응한다. [17]
하지만 방글라데시는 이웃 파키스탄에 이어 인도와 사이가 나빠지면 고립된다. 인도를 견제하고자 중국이 접근하지만 그 중국은 파키스탄이랑 혈맹이라고 하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직접적으로 간섭하지 않았으나 파키스탄을 지지하던 역사가 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방글라데시로선 지역 강국인 인도랑 한 판 맞붙기도 어렵고. 인도도 방글라데시랑 원수지간이 되는 걸 달갑지 않게 여겨서 파키스탄이랑 다르게 외교적으로 접근해 2015년 방글라데시와 인도가 양쪽에 속했던 마을들을 각각 인도와 방글라데시로 반환하면서 국경문제도 해결되었고 영토 분쟁도 해결되었다. 또한 현 집권당인 아와미 연맹도 친인도 성향이 있어 인도에 호의적이다.
또한 이웃에 맞닿은 나라 미얀마와 영토 분쟁이 있다. 위에 지도를 봐도 미얀마 쪽에서 있는 작은 섬들이 방글라데시 영토로 나와있는데 이 섬들을 두고 해상 영토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막대한 자원 및 군부의 오랜 독재 정치로 장비 면에선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는 미얀마가 더 유리해 보이지만 미얀마 자체도 오랜 독재와 폐쇄 및 미국 및 강대국들이 방글라데시를 지지하고 사이나 나쁘긴 해도 일단 파키스탄 견제를 위하여 우방으로 남은 인도를 미얀마가 무시 못하며 방글라데시에 대한 영향력을 위하여 중국도 현재 방글라데시와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게다가 방글라데시 해군이 한국에서 방가반두 같은 호위함을 들여오면서 미얀마 해군력에 꿀리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로서도 내부 문제로 골머릴 앓는 와중에 깊게 갈등을 빚을 일은 없을 듯.
의외로 대한민국과 경제적으로 교류가 상당한 편, 방글라데시의 주요 산업인 의류업의 태동부터가 한국과 관련이 있는 데다가(특히 대우그룹과 연관이 있으며 한창 쿼터제가 제정되어서 추가 수출에 애로사항이 꽃피울때 때마침 방글라데시에서 사업가가 오길래 몇시간동안 면담한 다음에 방글라데시 현지 사업가랑 합작해서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을 일으켰다.[1])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차리고 있고, 한국으로 가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이 1만명 정도인지라 그만큼 한국을 아는 방글라데시인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방글라데시에서 선박해체업도 성행하면서 한국배도 같이 해체되곤 하는데 일 자체가 고된 3D 산업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벌어진다.
말레이시아와 수교 중인데 특히 말레이시아인들이 꺼려하는 잡종들은 주로 방글라데시에서 노동자들을 수입해서 쓴다. 그런데 이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특히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방글라' 등의 인종차별적 용어들이 사용되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등 여러모로 혹독한 차별을 받는다. 물론 말레이시아 내의 외국인 범죄자들 중 방글라데시 국적이 많긴 하지만, 설상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닌데도, 나라에서는 여러모로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방글라데시인들도 말레이시아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들이 많다. 어느 외국인이 말레이시아의 실체를 폭로하는 글이 있는데 이 글 역시 방글라데시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도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2010년에 포괄적 협력 관계에서 2016년에 시진핑이 방문한 이후 중국과의 관계는 전략적 협력 관계로 격상되었다.#
11 2016년 방글라데시 다카 베이커리 테러
정확한 항목은 해당 항목을 참고하라.
2016년 7월 1일(현지시간), 총과 흉기로 무장한 괴한 9명이 외국 공관 등이 밀집한 굴샨 지역의 "홀리 아티전 베이커리"에 난입, 인질극을 벌인 사건. 이 사건으로 일본인 7명(건설개발 컨설팅 업체 소속), 이탈리아인 9명 등 인질 20명과 경찰관 2명이 살해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한 때 사망자에 한국인이 포함되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IS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피살된 외국인들의 시신임을 주장하며 사진을 공개하기도 하였다.
테러범들은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 외국인들이 음주를 일삼으며 이슬람 가치를 훼손하고 있어서 일을 벌인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 전부터 방글라데시는 공식적으로 맥주 "헌터 비어"를 생산하고 수출해온 나라다.
2016년 7월 7일 현재, 테러범으로 사살된 방글라데시인 사이풀 초우키데르(39)가 테러범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오인사살 의혹이 있다.
IS는 방글라데시에 추가 테러 위협을 하고 있는데, 이슬람 국가이면서 저소득 후진국이자 치안이 불안정한 방글라데시를 동남아시아 지역의 거점으로서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가 IS의 본격 영향권 안에 든다면, 세계적인 관광 국가인 태국 뿐 만 아니라 아시아 동부권 전역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12 대중매체에서의 방글라데시
12.1 방글라데시 국적, 출신 캐릭터
※ 해당국 작품 인물은 제외한다.
- 애쉬 파룩 - 프론트 미션 2nd : 해당 작품의 주인공. 작중에서는 아롤데시 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나온다. 처음엔 방글라데시로 OCU에 가입했지만 모종의 이유로 분리독립하며 국명을 바꾼 것이다. 여기서도 힘들게 사는 동네북 국가로 나온다...
- ↑ 철수권고 발령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
- ↑ 동남부 치타공 힐 트랙스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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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한국만 해도 1955년에는 6.3명의 출산율을 보였던적도 있고, 타이완도 1950년에는 7명대의 출산율을 보였던적도 있는데다가 몽골도 1960년대 당시에는 7.5명대의 출산율을 기록한적이 있으니까, 그냥 방글라데시의 출산율 하락시점이 늦다보니 가공할만한 출산율 수치를 나타내는것처럼 보이는것일 뿐이다.
- ↑ 나왑(nawab)은 이슬람인 귀족이다. 굳이 서양식으로 번역하자면 대공국 정도. 영어로는 nawab of Bengal.
- ↑ 반면 파키스탄 정부 측은 부정하며 26,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적으론 50만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 ↑ 현 총리가 무지부르의 장녀다.
- ↑ 그래서 반 무지부르 파가 집권했을 때는 강제 퇴역을 당하거나 함명이 변경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 ↑ 남아시아에서 파업을 일컫는 말. 하지만 말이 파업이지 사람들이 차도를 점거하고 소리지르며 돌아다니며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부수거나, 심하면 길가의 가게들의 유리창을 부수고 약탈한다. 그래서 실질적으론 파업이 아니라 폭동이다.
- ↑ 그러다보니 현 총리가 틈만 나면 신경 쓰는 게 여성과 아동 인권이다.
- ↑ 사실 여성 인권이 낮은 국가에서도 가문의 힘으로 유력 정치인이 되는 경우는 꽤 많다. 방글라데시의 경우 셰이흐 하시나는 초대 대통령인 셰이흐 무지부르 라만의 딸이고, 가장 큰 야당 BNP의 칼레다 지아는 4대 대통령인 지아우르 라만의 아내다.
- ↑ 여성 인권 지수를 결정하는 데 고위직 여성의 수를 고려할 경우 실질적으로는 여성 인권 최악인 나라가 여권이 높은 나라로 판단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성평등과는 무관하게 유력 가문 출신, 유력 가문의 유력 인사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이런 간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해서 여성이 고위직에 올라선 경우가 많기 때문.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 여권이 최악이라는 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서구 국가들보다도 이른 시기에 여성 총리급을 배출한 바 있다
- ↑ 현재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다.
- ↑ 네팔이나 인도 차농장에서는 몇몇 인기 좋은 농장은 여직원들에게 햇볕을 가릴 양산을 기본으로 주고 식사 제공에 상여금에 명절에 특별 보너스, 우수직원에게는 커피 포트나 가전제품을 준다든지 그 나라 여성 인력 고용상황에서 엄청나게 우대하는 경우도 종종 봤지만 방글라데시에는 그런 거 없었다고 한다...
- ↑ 방글라데시 헌법 상 총재직은 정년이 60세인데 유누스는 이를 훨씬 넘긴 70세에도 총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가 이를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에 고소하여 그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정계 진출 시도 안 했어도 결국 그 꼴 났을 듯 - ↑ 그런데 이 국기가 만들어질 당시에 재임중이던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장녀이자 방글라데시 10대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가 "아버지가 국기를 디자인할 때 일장기를 참고하였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 ↑ 근데 방글라데시도 이슬람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에서 종교적으로 금하는 술 그것도 자국산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자세한건 맥주/목록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