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역사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백제 때 상당현(上黨縣)이었다. 통일신라 때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면서 서원경(西原京)이 되었다.

2 고려

태조 때 청주목이 되어 충주와 함께 충청도의 어원이 되었다.

고려시대의 무인 집권자중 한명인 경대승이 청주 경씨이며, 조선 초기의 유명한 문신 한명회가 청주 한씨이다.[1]

현존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흥덕사 유적이 청주에 있으며, 그 옆에 고인쇄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청주 시 차원에서 직지와 관련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나, 그 의욕이 지나친 나머지 전혀 상관없을법한 자리에까지 직지 홍보를 하고 있는 모습도 간혹 보인다. 예를 들면 한의학박람회에 자리를 차지한 직지 부스라든지….[2]

사실 이런 이유는 청주시 자체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명승지나 유적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리 국보라지만 시 한복판에 있는 철당간을 홍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침 세계 최초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가진 직지가 있다 보니 이렇게 된 모양. 그렇다고 흔적 정도만 남아있는 상당산성을 홍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쪽도 참 분투하는 중이다(...)

3 조선

조선 후기까지 청주목(淸州牧)과 문의현(文義縣)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23부제 실시 후에는 공주 관할로 넘어갔다가 13도제 실시 후 충청북도 청주군과 문의군이 되었다.

4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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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현 청주시 일대의 행정구역 상황.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문의군이 청주군에 병합되었다. 1931년 청주면이 청주읍으로 승격되었다. 1935년 사주면 일부가 청주읍에 편입되었다.

5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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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인 1946년 청주읍이 청주부(府)로 승격되어 청주군에서 분리되고, 청주군의 잔여지역은 청원군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 청주부가 청주시(市)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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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청주시를 둘러싸고 있던 청원군 사주면을 편입해 시역(市域)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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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청원군 강서면 등을 추가로 편입하였다.

1989년 동부출장소와 서부출장소를 설치하였고, 1990년 또다시 청원군 북일면과 남이면 일부 추가 편입을 통해 지속적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1995년 흥덕구(구 서부출장소)와 상당구(구 동부출장소)의 2개 일반구를 설치하였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통합되어, 청주부(청주시)-청원군 분리 68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되었다. 구 청주시와 구 청원군의 통합 및 변경 사항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청주시/통합 청주시 성립과정 항목 참조.
  1. 청주 한씨는 한국의 한씨중 가장 많고 본관별로 성씨를 나누어 세어도 10위에 드는 많은 씨족인데, 청주에서는 이 청주 한씨들을 대머리 한씨(…)라고 부른다. 머리카락과는 관계 없고, 청주시 근교의 한씨 집성촌 동네 이름이 대머리라서 그렇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방서동(구 방정리)이며, 대머리는 '큰마을'을 뜻하는 '대멀'에서 나왔다 한다.
  2. 청주에 놀러와서 동네 한바퀴를 돌면 직지라는 글자가 박힌 가로수나 가로등 횡단보도 보호석이라든가 직지의 이름을 넣은 어린이집. 식당, 카페 등등등등 정말 직지가 넘쳐난다(...) 청주시가 아니라 직지시(市)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