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은어)

충무로에서 한국 영화 산업이 발달한 사실에서 착안하여, 오늘날 한국 영화판을 일컫는 말. 마찬가지로 지역 이름인 헐리우드가 마치 미국 영화판의 동의어인 양 자리잡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보다도 충무로의 별명 자체가 한국의 헐리우드.

충무로라는 명칭 자체는 한국 영화판의 대명사일 뿐, 정작 영화사 사무실은 충무로에 별로 없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혜성처럼 갑툭튀한 심형래느님의 권능언령으로 말미암아 충무로는 어느 순간부터 무지막지한 권력과 일사불란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한국 영화판을 좌지우지하는 이너서클이 되었다.

심형래 가라사대, 충무로는 감독, 스태프, 기획자, 투자자, 영화배우평론가로 이루어진 이들은 학연, 지연과 같은 인맥으로 똘똘 뭉쳐서 친목질을 벌이는 기득권 세력이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서로 빨고 핥으면서 내놓는 물건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2007년에는) 저질 조폭물이요, (2010년에는) 피칠갑 잔혹물이다. 그러다가 어느날 유망하되 다만 자기네 이너서클에 들지 못한 뉴비가 영화판에 나타나면, 그가 독자적으로 커서 자기네 이권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일제히 보이콧을 펼쳐서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는단다. 그리고 그 유망주는 바로 심형래 자신이다. 이건 뭐 프리메이슨도 아니고

그러나, 감히 특정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힌 영화판이 그렇게 일사불란한 집단적 의지와 행동 방침을 가지는 실체적 집단일 수가 없다. 더구나 이권을 지키기 위한 연계 따위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 영화판은 지금 친구가 내일에도, 아니 1시간 후에도 친구임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한 복마전이다. 웬만큼 성공한 제작자, 감독끼리 사업상 이득이 돼서 친분을 쌓을 수는 있지만, 이권을 지키기 위한 연계는 되도록 안 한다. 왜냐하면, 그 이권이라는 게 아는 사람끼리 지켜주고 나눠먹을 수 있을 만큼 크지도 않고, 안정적이지도 않다. CJ 같은 대기업이 봐주거나 투자해주는 영화사라면 모를까,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창립된 영화사는 1작품 망하면 그냥 해체될 확률이 높고, 1작품 망한 다음에 어떻게 버틴다고 쳐도 2작품 연속으로 망하면 그냥 해체된다. 대기업의 투자를 받는 영화사도 3작품 이상 망하거나, 이익을 못 내고 본전치기만 하면 그냥 사업 철수다. 따라서 1작품을 만들 때 아귀떼처럼 매달려 수익을 뽑아내야 하는데, 누굴 봐주고 지켜주고 이익을 나눠줄 여유 따윈 눈꼽 만큼도 없는 것이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분위기도 삭막, 살벌하기 그지 없어서 방송업계의 드라마 제작분야에서 일하던 인력이 영화판에 들어가면 너무나 삭막한 분위기에 한동안 적응이 안돼서 빌빌대거나 그냥 나온다. 모 PD의 말에 의하면 영화판 사람들은 뭔 굶주린 개떼 같다고 말할 정도.

이렇게 삭막한 데다가 현장 스탭들 임금 수준은 안드로메다. 영화 제작 스탭 가운데 가장 힘든 부서인 제작부의 1년 연봉이 평균 3백만원 선이다. 결코 3천만원을 잘못 쓴 게 아니다. 고용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돈을 제대로, 제 때 받으면 진짜 다행이다. CJ 같은 대기업 계열의 영화사는 이것만은 잘 지키지만, 그 이외 영화사는 받을 돈을 떼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떤 경우에는 급여 대신 급여의 액수만큼 영화표를 주기도 한다. 영화표를 주는 수준도 양반이고, 영화가 망하거나 개봉도 못하고 엎어지면 그냥 영화사 대표가 야반도주를 해 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또한 한국에만 영화사가 대충 1천여개 업체를 헤아리는데, 1년에 도산하는 영화사는 이 중 절반이다. 그리고 다음 해에 없어진 만큼 또 영화사가 생긴다. 또 그 해에 영화사의 절반이 엎어지고 그만큼 다시 생기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영화사를 차리고 영화를 하나 만들어서 웬만큼 이익을 거두면 다음 작품을 만들지만, 웬만큼 자본이 튼튼하지 않은 영화사는 한 작품 만들어서 이익을 뽑아내지 못하면 그 영화사는 그냥 해체된다. "뭐 1천개나 된다고? 그럼 영화가 수천 편은 나와야 하잖아? 뻥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제작하던 영화를 완성해 보기도 전에 엎어지는 영화사가 엄청나게 많다. 무조건 제작에 들어간다고 그 영화가 완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혼탁한 카오스에서 이권을 위한 연계 따위가 존재할 수가 없다.

충무로라는 표현은 그냥 한국 영화판의 은유에 불과하다. 허지웅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히려 영화판에서 최고 수준의 투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심형래야말로 사실상 충무로에서 가장 힘이 센, 최고의 강자인 것이다.
  1. 60, 70년대까지만 해도 충무로에 영화사들이 몰려있었으나 당시 존재한 영화사들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지금은 충무로에 자리잡고 있는 영화사는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