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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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heinz Stockhausen (1928.8.22~2007.12.5)

1 개요

독일클래식 작곡가. 현대 서양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특히 미학에 있어서 모더니즘을 극단적 위치까지 몰고갔으며, 음악을 구성하는 방법으로 음렬주의를 기본으로 한 총렬주의, 그룹이론, 모멘트이론, 공식이론과 같은 음악이론들을 만들었으며, 이 외에 음악의 새로운 재료인 전자음악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져있다. 테이프 레코더와 같은 전자 기기를 이용한 음향 실험으로 오늘날 전자음악의 뿌리를 다졌다.

쾰른 근교의 부르크뫼드라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악기를 배우며 두각을 나타내다가 쾰른 음악원에서 프랑크 마르탱에게 사사한다. 1951년 프랑스 루테티아로 건너가서 올리비에 메시앙 등으로부터 음악을 배우며 큰 영향을 받는다. 1953년에는 쾰른의 라디오 방송국에 음악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전자음악의 실험에 돌입한다. 같은 해 그의 작품번호 1번인 <Kontra-Punkte (대위법)>을 발표한다.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확정적인 기보법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과거 작품을 시작으로 그것을 차례로 변용해가는 'prozession'이나 단파 라디오가 수신한 음형을 변용해가는 '쿠르츠벨렌' 등을 작곡. 그 후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며 연주와 강습회를 열었고, 1971년부터는 쾰른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77년부터는 2003년까지는 7연작 오페라인 <빛>의 작곡에 전념하였다. 이 오페라는 아주 거대한 구성으로 전부 연주하려면 며칠이 걸리며 이 오페라 중 유명한 부분이 수요일 부분 중의 비행 중인 헬리콥터에서 연주하는 음악을 듣게 하는 <헬리콥터 현악 사중주>이다. 2007년 12월 5일, 퀴르텐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대중음악은 20세기 초 흑인음악과 1950년대의 전자음향 실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크라프트베르크, 비틀즈[1], 허비 행콕 등의 뮤지션이 슈토크하우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백남준비디오 아트에도 영향을 끼쳤다.

단순히 저 몇명의 뮤지션들에게만 영향을 미친게 아니라, 현대의 음악과 퓨전 재즈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저 사람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각종 전자악기들의 전자음 가득한 팝, 록음악이 존재할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50년대의 컨트리, 블루스, 포크, 초기 록큰롤이 지금까지 큰 변화없이 이어지고 있었을지도.
특히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 그중에서도 독일의 전자음악 계열의 프로그레시브 록(크라우트 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분명 음악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람인 것임은 틀림없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슈톡하우젠에 대해서는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교사가 취급하지 않고 건너뛴다.

2 대표 작품

  • <10악기를 위한 대위법> (Kontra-Punkte)
  • <소년의 노래> (Gesand der Jünglinge)
  • <접촉> (Kontakte)
  • <찬가> (Hymnen)
  • 오페라 <빛>
  1. 페퍼 상사 앨범 커버에 나온 인물 중에 슈토크하우젠도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