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르크 카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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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윗을 보유하고 있는 감독은 신의 축복을 받은 감독이다. 그가 있다면 어떤 전술이든 실현 가능하다." - 요한 크루이프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No.7
디르크 카위트 (Dirk Kuyt)
생년월일1980년 7월 22일
국적네덜란드
출신지자위트홀란트 주 카트베이크 안 제이
포지션포워드, 윙어, 윙백
프로입단1998년 FC 위트레흐트 입단
소속팀FC 위트레흐트 (1998~2003)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3~2006)
리버풀 FC (2006~2012)
페네르바흐체 SK (2012~2015)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15~)
국가대표104경기 24골

네덜란드 최고의 심장을 가진 다재다능한 스트라이커이나,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를 다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
박지성과 같이 수비형 윙어의 대표적인 예

1 소개

네덜란드의 공격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 중에서는 가장 괜찮은 활약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장 과소평가받은 선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활동량과 훌륭한 볼 키핑 능력, 이타적인 플레이, 높은 득점력이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박지성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며 디펜시브 윙이라고 불린다. 두 선수 모두 네덜란드 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EPL 팀으로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998년 18세의 나이에 FC 위트레흐트에서 프로 데뷔를 치뤘고 5년 동안 공격수로 활약했으며, 마지막 시즌에만 34경기 20골을 터뜨리며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당시에는 상당히 잘 나가던 페예노르트로 입성, 전 경기 출장에 20골을 기록하여 화려한 데뷔 시즌을 장식했다.

다음 시즌에는 살로몬 칼루와 함께 투톱을 형성,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며 04/05 시즌에만 29골을 터뜨리며 생애 첫 득점왕의 영예를 안게 된다. 이러한 활약에 단숨에 수많은 명문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뛰어난 충성심을 보이며 05/06시즌까지 팀에 잔류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팀은 당시 히동구 감독이 이끌던 PSV에 번번히 밀려 리그 우승을 놓쳤다.

그러다 2006년 8월 라파엘 베니테스의 러브콜을 받고 1500만 유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리버풀 FC에 안착했다. 리버풀에서도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긴 한데, 안습한 것이 득점력이 줄었다.[1] 활동량과 팀 플레이는 여전히 톱클래스를 달리지만 유럽 리그에서도 가장 거친 몸싸움과 강한 압박이 이루어지는 EPL 팀들의 수비진에는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러한 면이 득점력의 감소로 이어졌다.[2] 게다가 풀타임 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첼시 FC로 이적하여 서브 및 로테이션으로 활약하는 살로몬 칼루보다 득점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안타깝다[3].

10-11시즌 안습의 리버풀이 맨유와 경기를 가졌을 때 모두가 맨유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카윗의 해트트릭으로 리버풀이 3:1로 이겨버렸다. 하나는 주워먹기

그러나 넓은 활동량과 이타적인 플레이는 훌륭하여 리버풀 FC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게다가 팀에 대한 충성심도 굉장히 높다. 수비진의 강한 압박에 고전한다지만 오히려 카윗이야말로 필드의 좌우를 종횡무진 누벼대며 피지컬로 미친 듯이 비벼대고, 공을 탈취하고, 태클이나 반칙 한 번 더 하고, 공을 연계하며 상대편에게는 울화통을 아군에게는 사기를 선사하는 멋진 플레이를 기복없이 보여주고 있다. 리버풀에 디르크 카윗이 있다면 맨유에는 박지성이 있다. 매우 흡사한 역할과 플레이를 보여준다. 다만 공격 포인트나 부상 빈도를 본다면 카윗이 박지성의 상위 호환이나 다름없다.

또한 득점력이 떨어진다 어쩐다 하지만 네덜란드 시절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렇지 286경기 71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겼다. 마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복없는 꾸준한 모습과 필요할 때 한 방 그리고 빼어난 PK 능력으로 꾸준한 득점력을 보여줬다.

2012년 6월, 페네르바체로의 이적이 결정되었다. 이적 조항에 따라 이적료는 단돈 £1M이며, 리버풀 팬덤은 브렌던 로저스 감독의 부임 직후 터진 이 뉴스에 충공깽에 빠졌다.[4]

페네르바체에서는 모우사 소우와 함께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유로파리그에서도 팀이 32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데 한몫했다. 최종 기록은 리그 31경기 8골.
2013-14 시즌에도 모우사 소우, 엠마뉴엘 에메니케와 함께 페네르바체의 득점을 책임지며 리그 31경기 12골을 기록.
2014-15 시즌에는 리그 32경기 8골을 넣었다. 통산 95경기 28골. 유럽대항전과 컵대회 기록을 합치면 130경기 37골.

2015년 4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올 시즌으로 페네르바체 생활을 마감하고 다음 시즌에는 페예노르트로 귀환함을 알렸다.

2016년 2월 21일 로다전에서 페예노르트 통산 100호골을 달성. 2월 28일 위트레흐트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면서 1959-60시즌의 렌스트라(39세), 빌커스(36세)에 이어 에레디비지 사상 세번째 최고령 15골 득점자(35세 221일) 기록을 세우고 리그 득점 3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 기록은 리그 32경기 19골.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

2 국가대표

국가대표팀에서도 헌신적인 플레이 덕분에 활약이 좋다. 비록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로벤, 스네이더 등에게 득점 면에서 밀리는 면모가 있었지만, 16강전인 슬로바키아 전과 8강전인 브라질 전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제공하는 등 1골 3도움으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특히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수비력과 투지와 활동량은 카윗을 제외하면 네덜란드 공격진의 다른 어떤 선수도 제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로 2012, 카윗을 기용하지 않은 눈 버리는 경기력으로 3패 광탈한 것이 단적인 증명이다. 카윗이 빠진 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커다란 이유 중 하나임은 틀림 없다.[5] 과소평가 과소평가 말이 많지만 그것까지 감안해서도 정말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선수.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팀의 필요에 따라 최전방공격수에서 후방의 윙백까지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대활약. 멕시코전에서 국제경기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브라질과 맞붙은 3·4위 결정전에서는 전반전 헤딩 경합 중 머리에 출혈이 있었으나 교체하지 않고 풀타임 출장하면서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마감했다.

2015년 4월 10일(한국시간) 친정팀 페예노르트로 9년만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1년.

3 플레이 스타일

유망주 시절에는 그리 주목 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헌신적이고 움직임이 좋으나 실력은 기대에 조금 못미치는 선수....였으나, 10대 중,후반에 들면서 여태까지 노력이 결실을 맺었는지, 기량이 폭발적으로 만개하였다.

리버풀 시절에는 주로 수비형 윙어로 굉장히 헌신적인 활동량과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현란한 드리블링이나 엄청난 킥을 보유한 선수는 아니지만 한때 에레디비지에에서 4년 연속 20득점을 해줬던 선수임에도 아주 수비를 열심히 가담하고 심지어 잘하기도 하며 특히나 왕성한 활동량과 체력은 운동장 전체에서 카윗을 구경할수 있게 해준다. 박지성과 함께 수비형 윙어의 대명사.

하지만 본래 에레디비지에 시절에는 공격수로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페예노르트 시절에는 4년 연속 20골을 넣었고 실제 리버풀로 올때는 그 전에 있다가 빌라로 떠난 밀란 바로시나 같이 뛰었던 크레이그 벨라미, 피터 크라우치등의 득점력이 좋은 스트라이커들이 없었기에 입단 당시만해도 에레디비지에 시절처럼 스트라이커로 많은 득점을 해주길 바랬었다. 훗날 생길 -라인보다도 먼저 리버풀의 주포가 되어주길 바랬으나... 하지만 기술적으로 아주 훌륭한 선수는 아니라 꾸준한 기회에도 페예노르트 시절만큼의 폭발력이 발휘되지는 못했다. 사실 득점력이 줄었다기보다는 에레디비지에 시절에도 본인이 스스로 엄청난 득점기회를 만들거나 혹은 골잡이로의 본능을 보여주었던 것은 아닌데 리그의 수준차이나 이런 것들로 인한 다소간의 오차였다. 그런 이유로 계륵이 되어가던 중이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라파엘 베니테즈는 아예 공격수 치고는 놀라운 활동량이나 수비력을 보고 윙어로 변신시켜 버린다. 그리고 토레스를 구매하지 이른바 수비형 윙어. 그리고 이것은 정말 대성공을 거두게 되어 심지어 2014년 월드컵에서는 풀백으로 뛰기까지 한다. 20골씩 넣는 폭발적인 득점력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어느정도씩을 골을 넣어주고 맨유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아직 죽지 않은 득점력을 보여주었었다.

이후 페네르바체로 떠나면서 역시 똑같은 롤을 수행하면서 잘사는듯 싶더니만 영광의 커리어의 시작점이었던 페예노르트로 재 복귀 하면서 부터는 득점력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4 기타

사비 알론소의 인터뷰에 의하면 자기가 본 리버풀 팀원들중 가장 무식하다고 한다(...)

2009년 3월 영국의 일간지 더 선에서 세계에서 가장 못생긴 축구선수 3위에 꼽혔다.(무식한데다 못생기기까지..) 참고로 4위가 호나우지뉴

김 호 감독이 이끌던 수원이 2002년에 당시 22세의 네덜란드 유망주 디르크 카윗을 영입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당시 소속팀이던 위트레흐트와 이적료 협상을 마치고 사인만 남겨놓은 상황이라 김 감독이 공론화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카윗은 2002~2003시즌을 시작하자 무서운 득점력을 보였고, 네덜란드대표팀 명단에까지 올랐다. A매치 데뷔는 2004년에 성사됐지만 대표팀 명단에 오를 정도로 유망주로 급부상한 것이다. 결국 카윗은 수원 입단을 거절하고 2003년 거액의 이적료로 페예노르트에 입단했다. 이는 K리그 사상 역대 최고급 선수를 영입하려다가 불발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1. 리버풀로 이적하기전 (리그기준) 03~06 폐예노르트시절 득점 101경기 71골 (경기당 0.7골)과 06~12리버풀시절 208경기 51골(경기당 0.25골)로 큰 차이를 보인다, 득점력만 놓고 봤을 때는 주득점원으로써는 생각한 영입치고는 부족한 수준...그래서 후술하듯이 공격수 추가 영입이 있었다.
  2. 덕분에 리버풀은 부족한 득점력을 메우기 위해 또다른 공격수를 영입해야만 했고, 그 결과 리버풀에 입단한 선수가 바로 페르난도 토레스. 하지만 토레스를 영입하기 위한 이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레이그 벨라미, 지브릴 시세, 마르크 곤살레스, 루이스 가르시아, 플로랑 시나마-퐁골 등 주전급 자원 여러 명을 이적시켜야 했고 이는 팀의 스쿼드가 없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3. 출장한 경기 수는 거의 엇비슷하지만 칼루는 처음 이적해왔을 때부터 활약이 변변찮아 서브로 전락해버리며 풀타임 출장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에 비해 거의 전 경기 풀타임 출장하는 카윗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게 되고 만 것이다.
  4. 지난 시즌부터 이어 진 리버풀 구단측의 세대교체 움직임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고, 구단 입장에서도 고주급자들을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이적이 결정되었다. 팬 입장에서는 팀에 헌신적이고 필요 할 때 한 건씩 해주는 카윗의 이적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점.
  5. 연계가 안 되는 공격진, 공격진에서의 부족한 수비 가담, 그로 인해 풀백과 미드필더진들과의 고립 현상, 수비마저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