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쓰시카 호쿠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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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葛飾北斎.jpg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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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우키요에 중 하나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부악36경[1] 중 하나인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葛飾北斎(かつしかほくさい)
(1760년 10월 31일(?) ~ 1849년 5월 10일)

1 개요






知ってるつもり?! 葛飾北斎歴史バラエティ葛飾北斎

일본 에도 시대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는 필명으로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토슈사이 샤라쿠,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함께 우키요에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딱히 호쿠사이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우키요에로 유명하지만 직접 그린 그림도 우키요에 못지 않게 유명하다. 미술에 대한 열정이 매우 깊어 전통적인 우키요에 기법을 넘어 서양화 등 여러가지 다른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시켰으며 이 때문에 스승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파문은 스승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면서 호쿠사이의 작품 세계를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모든 삼라만상을 그리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로 그의 작품은 가부키 배우 위주로 그렸던 토슈사이 샤라쿠와 비교해 보면 정말로 풍경, 인물, 풍속, 사물을 넘나들며 소재가 다채롭고 작품의 수가 많다. 그 중에 우리나라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그의 대표작 부악 36경(冨嶽三十六景)경 중 하나인 '카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그림 자체도 매우 유명하지만 클로드 드뷔시교향곡 바다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미술 교과서의 단골 손님. 이어령 교수는 그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 작품을 예로 들어 몰아치는 거친 파도와 정지된 파도의 포말을 비유해 시간을 축소한 일본인의 정서를 논하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양 미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기타

  • 일본 만화 업계는 호쿠사이를 일본 만화의 원류로 삼는다. 실제로 호쿠사이가 데포르메한 인물 기법을 보면 다른 우키요에 작가들과는 다르게 일본 만화의 그것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라는 그림책이 유명한데, 이 시기의 '만화'라는 용어는 현재의 만화와는 달리 '희화(戱畵)', '스케치'와 같은 의미에 가까웠지만, 호쿠사이만화에는 콧김 표시와 같은 만화적 표현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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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체되는 것이 매우 싫었는지 호를 30번 이상 바꾸었고, 90번이 넘게 이사다닌 일화 또한 잘 알려져 있다. 그 덕분인지 생전에 3만점이 넘는 작품을 낸 엄청난 다작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열정적인 삶을 사는 예술가는 단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쿠사이는 향년 90세로 당대로 봐서는 엄청나게 오래 살았으며 오히려 노년에도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고 더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부악 36경'과 '부악 100경' 모두 70세 이후에 한 작품활동이다.

3 관련 문서

  1. 후지산을 주제로 후지산이 보이는 각 고장의 풍경을 그린 연작. 부악(冨嶽)은 후지산을 뜻한다.
  2. 원작은 만화 《백일홍》으로 국내 미정발 상태다.
  3. 호쿠사이의 1820년대 춘화집 '키노에노코마츠(喜能会之故真通)'에 수록된 통칭 '문어와 해녀(蛸と海女)'라는 작품은 촉수물 포르노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영문 위키) 일본에서는 이 그림에 영향을 받은 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日 표현의 자유 논란…"왜 여고생은 장어가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