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매튜슨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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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크리스토퍼 "크리스티" 매슈슨(Christopher "Christy" Mathewson)[1]
생년월일1880년 08월 12일 ~ 1925년 10월 7일
국적미국
출신지펜실베이니아주 팩토리빌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00년 뉴욕 자이언츠 입단
소속팀뉴욕 자이언츠(1900~1916)
신시내티 레즈(1916)
감독신시내티 레즈(1916~1918)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크리스티 매튜슨
헌액 연도1936년 - 최초의 5인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90.71% (1회)

커리어

1 소개

"Big Six"
모든 것이 완벽했던 초창기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이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는 최고의 우투수 중 하나.
피트 알렉산더와 함께 다승 공동 3위에 올라있는 전설적인 투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5인 중 한 명이다. 뛰어난 성적에 더해 금발벽안의 미남으로 17시즌 동안을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 당대의 슈퍼스타였고 역사상 최고의 투수라 불리는 아메리칸리그의 월터 존슨과 메이저리그를 양분하였다. 통산 ERA(8위)와 다승 순위(3위), 완봉승 횟수(3위)에서 모두 올타임 10위 안에 드는 유일한 투수이기도 하다.[2]

2 선수 시절

2.1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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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슨은 1899년 뉴잉글랜드 리그의 야구팀과 계약을 맺고 그 다음 시즌, 캘리포니아 리그의 노포크 팀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20승 2패를 기록한 후 뉴욕 자이언츠가 덥썩 그와 1500불에 계약을 맺는다. 그러나 바로 선발로 나선 세 경기에서 내리 3패(...)를 기록한 후 계약 파기 및 계약금을 환불(...) 곧바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100불에 드래프트로 그를 뽑아갔으나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응?).[3][4]

2.2 커리어

다시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매튜슨은, 1901년 만21세의 나이로 ERA 2.41에 20승을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이 젊은 투수가 얼마나 오래 활약할 지 의문이었던 감독은 유격수와 외야수 연습을 지시했지만, 자이언츠로 온 감독 존 맥그로가 이를 중단시켰다. 그 후 1903년부터 1914년까지 매튜슨은 매년 22승 이상을 기록하는 투수가 된다.

1905년에 다승, ERA, 탈삼진에서 1위를 달성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먹었고, 그 해 열린 1905년 월드 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를 상대로 1차전 4피안타 완봉승, 이틀 후 4차전 4피안타 완봉승, 3일 후 5차전 6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며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다.3연봉 사람이 아니므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던지면서 자이언츠를 우승으로 이끈 투수가 있다
다음 해인 1906년에는 디프테리아에 걸려 고생했으나 ERA 2.97에 22승-12패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5] 물론 병이 나은 다음 해 1907년에 다승왕, 탈삼진왕을 차지하고 1908년에 또 한번 트리플 크라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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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뉴욕 자이언츠

그러나 그 해 페넌트레이스는 통과하지 못했다. 1908년은 바로 시카고 컵스가 우승한 해(...)대한제국 순종 2년
그 다음 해 1909년에는 아깝게 2승 차이로 다승왕을 놓쳤지만 ERA 1.14와 승률왕을 기록하였다. 특히 1.14의 방어율은 밥 깁슨의 1.12에 이은 역대 5위. 데드볼 시대라는 점을 물론 감안해야 하지만 조정 ERA로도 222다. 그 다음 해에는 다시 한번 다승왕을 차지하고 1911년에는 루브 마콰드[7]와 원투펀치를 이루며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둘 모두 프랭크 베이커[8]에게 결승홈런을 얻어맞고 우승 문턱에서 패배한다.

다음 해 1912년에 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오오 상대는 아직 밤비노의 저주에 걸리기 전이던 보스턴 레드삭스. 매튜슨은 3경기 3완투 ERA 0.94라는 충격과 공포의 투구를 보여줬으나 야수들이 이에 호응하듯 충격과 공포의 에러질을 보여주면서 0승 2패로 광탈(...)뜬공 좀 잡으라고 야막 시발들아 매크라이

1913년에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2완투 1완봉 ERA 0.95를 기록하였으나 1승 1패로 또 탈락(...) 그나마 정규 시즌에서 다시 한번 방어율왕을 기록한 게 위안.

3 감독 시절

1916년 에드 로시[9]와 함께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 해 플레잉 코치로 전향하여 단 1승만을 거두고 이듬해와 그 다음 해 중반까지 감독으로 재직하여 164승 176패를 기록했다.

4 제1차 세계 대전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튜슨은 아내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이미 당시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군 면제 대상이었다.) 대위의 계급장을 달고 화학병으로 참전했다.[10] 타이 콥, 조지 시슬러 등과 함께 독가스 제거, 오염지대 개척 임무를 담당하였으나 훈련 과정에서 실수로 화학 가스를 흡입하고 만다.누구는 운도 좋네 전쟁이 끝난 후 3년간 뉴욕 자이언츠에서 코치직을 맡았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가스 흡입으로 인한 후유증과 싸우는 데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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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년에 지냈던 휴양지의 저택

1923년에 그는 다시 현장에 복귀했으나, 이미 병세가 너무 위중한 상태였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45세의 나이로 아깝게 요절하고 만다. 그가 죽기 전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결코 야구든, 인생이든 비겁하지 않았다.’

5 플레이 스타일

신장 6피트 2인치(188cm), 체중 90kg로 당시로서는 큰편이었다고 한다. [11] 동시대의 월터 존슨이 불같은 강속구로 리그를 호령한 것에 비하면 그의 패스트볼은 초라했지만 9이닝 당 볼넷 허용률이 1.6개로 정교한 제구력의 소유자였으며, [12] 80구 이하의 완투 경기가 9경기나 되며 정교한 제구력과 공격적인 피칭은 그야말로 그렉 매덕스의 그것과 유사하다. 크리스티 매튜슨의 연속 69이닝 무볼넷 기록을 깨뜨린 것도 그렉 매덕스다. 다만 그렉 매덕스가 최강의 투심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었다면, 크리스티 매튜슨에게는 스크류볼이 있었다. 투수의 공이 구질이 다르고 투구폼이 똑같은 경우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인데, 매튜슨의 경우는 커브스크류볼의 투구폼이 똑같았다. 똑같은 폼인데 한 놈은 이리 오고 다른 놈은 저리 가니 타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 물론 당시에는 스크류볼이란 단어 대신 '페이드어웨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6 모데카이 브라운과의 라이벌리

1900년대 내셔널리그는 자이언츠와 컵스의 양분 체제였다. 그리고 크리스티 매튜슨과 모데카이 브라운은 각각 자이언츠, 컵스의 당대 최고의 에이스였다. 브라운의 통산 승수는 239승에 불과(...)하지만 이는 그가 매튜슨보다 7년이나 늦게 데뷔했기 때문이었으며, 오히려 5시즌 연속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평균 26승을 달성하는 등 사실상 용호상박의 관계였다.

1903년 처음 맞대결을 벌인 이래 총 25번을 격돌하여 브라운이 13승 10패, 매튜슨은 11승 13패를 기록했다. 특히 1908년에 있었던 플레이오프에서의 격돌은 양팀이 98승 55패로 동률을 기록한 상태에서의 경기였는데 여기서 그 유명한 '머클의 본헤드' 사건이 발생하여 컵스와 브라운이 자이언츠와 매튜슨을 제압하게 된다.매크라이 이게 컵스의 마지막 우승인 건 안 자랑
  1. 사실 외래어 표기법상 '매슈슨'이 맞지만, 통상 '매튜슨'이라고 쓰므로 이 항목 역시 매튜슨으로 둔다.
  2. 월터 존슨은 통산 다승 2위, 완봉승 1위지만 ERA가 12위다. 물론 월터 존슨은 크리스티 매튜슨이 겪지 못했던 라이브볼 시대를 겪은 탓이긴 하지만.
  3. 당시 레즈의 구단주 존 T.Bush는 유망한 투수들을 자이언츠로 보내고 자이언츠를 인수할 계획이었다.
  4. 이 때 매튜슨과 트레이드되었던 자이언츠의 투수는 아모스 루시로, 통산 246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대투수다. 선더볼트라는 이름답게 강력한 속구가 주무기였지만, 트레이드 당시에는 이미 부상 및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하락세였고, 1900년 트레이드 다음 해에 3패를 기록하고 은퇴한다.
  5. 조정 ERA는 88
  6. 이 때 트리플 크라운 뿐만 아니라 출장수, 선발 출장수, 완투, 완봉, WHIP, 심지어 세이브까지 전부 1위를 해먹었다,말 그대로 다 해먹은거다
  7. 본명은 리차드 윌리엄 마콰드(Richard William Marquard). Rube(시골뜨기)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통산 201승을 기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좌완투수
  8.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3루수로 홈런왕의 시초격 되는 인물이다.
  9.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신시내티의 외야수로, 2376안타를 기록하였고 역사상 가장 무거운 배트의 사용자이기도 하다. 블랙삭스 스캔들의 상대 팀 외야수이기도 했다.별로 안 좋은 기록
  10. 이 당시 같이 참전한 사람 중에는 그 타이 콥도 있었다!이런 것도 지기 싫어하는 이기심
  11. 그의 별명인 Big Six가 그의 큰 키에서 나왔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12. 그의 패스트볼이 초라했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당장 칼 허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직구가 초라하면 커브, 스크류볼 투피치 투수가 된다.하지만 매튜슨은 스크류볼로 인한 통증으로 경기 중 중요한 상황에 한정하여 몇 구 던지지 않았다.애초에 월터 존슨의 패스트볼에 대한 당시 선수들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그의 패스트볼보다 초라하지 않을 선수가 없다. 당장 야구에 대한 엄청난 자존심으로 베이브 루스 조차도 깔봤던 타이 콥내가 역대 최강의 어깨를 가진 투수를 봤구나하고 증언하게 만든게 바로 월터 존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