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Grover Cleveland Alexander.jpg | |
이름 | Grover Cleveland Alexander |
출생 | 1887년 2월 26일 |
사망 | 1950년 11월 4일 |
국적 | 미국 |
출신지 | 네브래스카 주 엘바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메이저리그 입단 | 191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입단 |
소속팀 | 필라델피아 필리스(1911~1917) 시카고 컵스(1918~192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26~1929) 필라델피아 필리스(1930)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
헌액 연도 | 1938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80.92% (3회) |
메이저리그 통산 ELO 레이팅 TOP 5 | ||||
월터 존슨 | 사이 영 | 레프티 그로브 | 피트 알렉산더 | 그렉 매덕스 |
2,169 | 2,138 | 2,114 | 2,105 | 2,104 |
1 개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대투수로, 통산 3회의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가졌으며 역대 다승 3위[1]에 올라있는 전설적인 투수다. 흔히 이름이 애칭인 Old Pete와 섞여서 피트 알렉산더로도 불리운다. 이 항목에도 리다이렉트를 걸어놓았으며, 실제로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는 Pete Alexander로 소개되었다.
2 커리어
어린 시절 법조인이 되라고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통째로 가져다가 붙여줬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야구에만 맛을 들였던 알렉산더는, 마이너리그 시절 주루 플레이 중 유격수가 던진 공을 맞고 기절했다가 야구를 포기할 뻔 했다. 시신경에 이상이 생겨 공이 두개로 보였을 정도였다고(...)
다행히 이 문제가 해결된 뒤, 그는 750달러의 이적료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한다. 그리고, 전설이 시작되었다. 데뷔 첫 해부터 그는 리그 다승왕과 31완투를 거두며 최다 이닝 투수의 영예를 안았고 MVP 투표에서 3위에 오른다. 그 뒤로 매년 20승~30승 가까이 거둬주는[2] 필리스의 에이스로 자리잡았고 데드볼시대에 내셔널리그를 주름잡는 최강의 에이스로 입지를 다졌다.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시카고 컵스로 팔린 그는 1918년 단 세경기만에 군대에 끌려가게 되었다.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알렉산더는 프랑스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악명 높은 참호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포격의 공포를 감당해야만 것. 이 포격을 통해 알렉산더는 왼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잃었으며, 오른쪽 귀도 잘 들리지 않게 됐다. 또한 그의 밥줄인 오른팔에도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전쟁에서 돌아온 알렉산더는 본격적으로 간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3] 또한 알 수 없는 공포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왔다. 이쯤되면 PTSD가 따로 없다. 원래 애주가 집안이었던 알렉산더는 이 때부터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알코올 중독의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4]
어쨌든 군대에서 돌아온 뒤 그는 다시금 리그를 지배하는 에이스의 모습으로 돌아오는가 했지만, 때마침 시작된 라이브볼 시대에 의해 ERA가 쭉쭉 올라갔으며 탈삼진왕을 밥먹듯이 차지했던 닥터K로서의 면모도 사라졌다. 그렇게 데드볼 시대의 에이스는 잊혀지는가 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된 알렉산더는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20⅓이닝 동안 17K를 잡아내는 활약으로[5]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한다.
이후 1927년 다시 21승 2.52 ERA 시즌을 보낸 알렉산더는 1930년 필리스로 복귀하여 한해를 보낸 뒤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물러난다.
3 메이저리그 이후
1938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 3년차에 80.92%의 득표율로 쿠퍼스타운에 입성했다. [6][7]
은퇴한 이후 그는 순회 야구단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최고의 투수로 활약하며 모았던 돈을 술값으로 탕진했다. 간질과 알코올 중독이 결국 그의 인생을 망친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건 자랑스럽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을 뜯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라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고.
1950년 11월 4일 그는 고향 네브래스카주의 한 호텔에서 숨진채 발견되었다.
4 이모저모
- 그의 사후인 1952년, 그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The Winning Team>이 제작되어 로널드 레이건이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 빌 제임스는 알렉산더의 인생을 클리셰로 점철시킨 끔찍한 영화라며 혹평했다(...)
- 2001년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은 그를 영구결번에 준하는 예우로서 기리고 있다.
- ↑ 크리스티 매튜슨과 공동 3위인 373승.
- ↑ 1914~17 4년 연속 다승왕에 올랐다.
- ↑ 이는 마이너리그 시절 머리에 공을 맞은 충격에 기인한다.
- ↑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 참조.
- ↑ 또한 베이브 루스의 끝내기 도루실패가 결정적이었다(...)
- ↑ 월터 존슨에 이어 사이 영과 역대 2위를 다투는 대투수임에도 3년 차에 낮은 득표율로 입성한 이유는 알콜 중독의 이미지 탓이 컸던 듯 하다.
- ↑ 라고 적혀 있으나 그 사이 영도 2년 차에 75%를 겨우 넘겨 헌액되었다. 명예의 전당 초창기에는 대선수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통산 타율 2위의 대타자 로저스 혼스비는 5년차 78%, 역대 최고의 좌완 투수 그로브도 4년차 76%다. 1936년의 First Five를 제외하면, 첫 해 헌액은 1962년의 밥 펠러와 재키 로빈슨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