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Louis Hector de Villars, Prince de Martigues, Marquis and Duc de Villars and Vicomte de Melun
(1653.5.8-1734.6.17, 향년 80세)
1 개요
존 처칠과 사보이 외젠의 맞수이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의 26원수 이전 최고의 장군
2 출생
원래는 몰락한 귀족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 피에르 드 빌라르는 루이 14세 초기의 프롱드의 난에 가담했다가 몰락한 귀족으로 외교관이었다. 어쨋든 당시의 출세를 원하는 몰락 귀족[1]이었기 때문에 백 년 후 프랑스 최고의 명장처럼 군대에 1671년, 18세로 입대한다.
3 군대 생활 초기 (1671-1700)
당시의 루이 14세는 절대왕정과 그의 아버지 루이 13세와 리슐리외가 30년 전쟁에서 신교도를 지지함으로서 영토를 얻은 후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많은 전쟁(대표적으로 영란전쟁, 팔츠계승전쟁,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등)을 벌였는데, 이는 군대의 성장을 의미한다. 빌라르 역시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여러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673년, 프랑스-네덜란드 전쟁 당시의 마스트리트 공방전과 세네페 전투에서의뛰어난 자질을 시작으로 승진을 한다. 그러나 당시 군사장관이었던 루부아(Marquis de Louvouis)와의 갈등으로 인해 승진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후 콩데 공 [2]과 뤽샹부르 공작 밑에서 군사 경력을 쌓으면서 때를 기다린다. 그 와중 1690년에는 바이에른 선제후국에 군사 교관으로 가서 교편을 잡으면서 바이에른 선제후와 친분을 쌓는다. 이후에는 팔츠 계승 전쟁에서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그의 전과를 더욱 빛나게 한다.
4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700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고 앙주 공작. 즉 루이 14세의 둘째 손자를 다음 왕으로 지명한다. 그러나 지난 날 루이 14세가 벌여 넣은 전쟁으로 인해 두 왕국이 합병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면 프랑스의 힘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두려워 한 다른 열강들은 이를 견재하려 하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는 자신의 아들 카를 6세가 카를로스에 의해 계승권 3위로 지명되었다는 점을 들어 트집을 잡으며 스페인의 주도권을 얻으려 하여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한다. 이 와중 영국-신성 로마 제국-프러시아-네덜란드의 연합으로 프랑스는 불리하게 되지만 빌라르 덕에 위기를 모면한다. 대표적으로 프리틀링겐 전투 (1702)와 회흐슈테트 전투(1703)에서는 연합군을 거의 박살냈고 연합군이 프랑스 국경 근처에 왔을 때의 말플라케 전투(1709)[3]에서는 사보이 외젠과 존 처칠의 연합군 21,000명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고 1713년 영국이 존 처칠의 실각으로 인해 전쟁에서 이탈한 후의 드냉 전투에서의 승리로 연합군을 괴롭혔다. 그 이후 라인 강을 건너 프라이부르크로 진격한 것으로 인해 라슈타트 조약과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고 이는 프랑스의 유라함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조약으로 두 부르봉 왕가의 경우는 서로를 합병할 수 없었다. 허나 스페인이 프랑스의 세력권 아래에 들어온 것은 자명한 일이었고 이는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당시 두 나라가 같은 편이라는 것으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