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rrhic Victory.
1 소개
"천하가 어지러울때 5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재앙을 면치못하고 4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피폐해지고 3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패자가 되고 2번 싸워 승부를 결정지은 나라는 왕자(王者)가 되고 1번 싸워 승리를 결정지은 나라는 제자(帝者)가 된다."고 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여러 번 싸워 승리를 거둠으로써 천하를 손에 넣은 자는 드물고, 오히려 망한 자가 더 많았던 이유다.- 오자
키아네스는 이탈리아 원정 준비로 바쁜 피로스를 찾아왔다."전하, 로마는 대단히 호전적인 나라라고 합니다. 만약 그런 나라를 물리칠 수 있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을 필요도 없는 말이 아닌가. 로마를 정복하게 된다면 그리스인이건, 다른 야만인들이건 우리에게 저항할 수 있는 나라는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우리의 차지가 되는 것이지."
피로스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키아네스는 잠시 후 다시 물었다. "그럼 이탈리아를 정복하신 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키아네스가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다.
"이탈리아 옆에는 아주 부유한 시칠리아가 있지 않은가? 그곳은 지금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으니 손에 넣기에 수월하지 않겠는가?"
"그렇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전체를 지배하시게 되겠지요. 그러면 그다음에는 무엇을 하시렵니까?"
피로스는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편안히 쉬면서 날마다 즐거운 이야기나 나누지 뭐......"
그러자 이렇게 이야기를 끌어온 키아네스는 말했다.
전하는 지금도 편안히 쉬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과 고통 그리고 위험 없이도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하시려고 합니까?[1]
고대의 유명한 일화이자 시사용어.
이겨도 결코 득이 되지않는 승리
고대 그리스 국가였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 이래 최고의 전략·전술가로 회자되었고 이탈리아 반도와 시칠리아 섬에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다. 그로 인해 발발한 피로스 전쟁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를 여러 번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거둔 승리에 비해 아군의 손실이 너무 많았다.
로마군과 첫 결전을 벌인 헤라클레아 전투에서는 휘하 병력 3만 5천 중 4천을 잃는 큰 손실을 입었고, 그 다음해 (BC 279)에 치른 아스쿨룸 전투에서는 4만명의 병력 중 3천명을 잃는 큰 손실을 입고 말았다.[2] 플루타르코스는 "피로스는 자신의 승리를 축하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로마인들과 싸워 한 번 더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는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승리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 결국에는 패배를 안길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칭하게 되었다.
이를 더 심화 해석하여 이득이 없는 무의미한 승리를 이룬 경우, 전술적 승리를 전략적 승리로 환원하지 못한 경우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단순히 말하자면 비용대비 효과가 나쁜 승리, 혹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야...를 표현하는 말이다. 다만 피해가 큰 승리가 모두 피로스의 승리에 포함되는 건 아니다.(중화민국의 중일전쟁 승리나 소련의 독소전쟁 승리) 단순한 영토 싸움이 아닌, 전쟁에 지면 모두 죽거나 노예가 되거나 아예 국가가 멸망하거나 하는 경우엔, 질 때 잃는 것이 이길 때 잃는 것보다 많기 때문에 이기는 것 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기 때문.
승자없는 싸움 항목에서 이러한 예를 더 찾아볼 수 있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파비우스의 승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거두거나, 혹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끝끝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피로스의 승리'는 '전투에서는 이기되 전쟁에서는 지는 셈'이고 '파비우스의 승리'는 '전투에서는 지되 전쟁에서 이기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파비우스의 승리도 로마쪽의 언플로 취급할만한 요소가 많다. 바꿔 말하면 한줌 밖에 안되는 적이 본국 내에서 온갖 깽판을 치고 다니는데도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의미이니.
1.1 실제 피로스의 경우에...
그렇다고는 해도, 실제로 피로스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와의 전투 그 자체보다는 피로스를 불러온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훨씬 더 큰 문제였다. 이들이 충분한 지원을 해주었다면 피로스는 전력을 제대로 복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로마에게도 더 큰 위협을 주었을 것이다.
전투 피해도 사실 로마군의 피해가 피로스군보다 더 컸다. 헤라클레아 전투에서의 로마군의 손실은 약 7000명의 전사자+7000명의 포로였던 반면에 피로스군은 3~4000명의 손실만 입었으니 전투 자체만 보면 피로스의 완승에 가깝다. 아스쿨룸 전투에서도 로마군의 피해는 약 8000명이었으나 피로스군의 피해는 3000명으로 피로스군이 더 잘 싸웠다. 결국 피로스가 로마에서 별다른 전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간 것은, 그리스 도시들이 지원이 없어서 쓸데없이 돈준다는 시칠리아나 다른 쓸데없는 곳에서 전력을 까먹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마 혼자만 싸워서 물리친 것도 아닌 셈. 승리의 질적 문제보다는 보급의 문제가 더 컸다.
다만, 이 말이 후세에 알려진 건 그리스인(로마시민이기도 했지만)인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 출처인지라 그저 로마인들의 '자화자찬'이나 정신승리라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이다.[3] 어쨌거나 이 단어는 이후 서양에서 승자가 큰 피해를 입은 경우를 지칭할 때 널리 쓰이는 말이 되었다.
2 역사상의 실제 사례
- 헤라클레아 전투 (BC 280) : 이 표현의 유래.
- 아스쿨룸 전투 (BC 279)
-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 (BC 218 ~ BC 202) - 한니발의 로마 원정군은 로마 진입 시까지 연전 연승을 거두고 있었으나, 소수 정예인 한니발 군의 특성상 전투마다 병력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고, 한니발을 제외한 카르타고 군은 전체가 로마에게 탈탈 털리던 상황이라, 지원다운 지원따윈 하나도 받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한니발 군은 이런 전투 속에서 악전고투 해왔으나,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 군에 의해 참패를 당한다.
- 초한전쟁 (BC 206 ~ BC 202) - 한(유방)의 '파비우스의 승리' 사례이면서, 초패왕 항우의 '피로스의 승리'로도 볼 수 있다. 항우문서 2.6.7.단락의 '패왕의 최후' 항목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항우는 최후의 전투인 해하 전투 이전까지 근 70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지만 이기면 이길수록 도리어 항우가 불리해지고 결국 마지막까지 패배를 모르는 상태로 자결했다. 이후 초는 망했고 한은 400여년을 남아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 고구려-수 전쟁 - 수 양제는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치라, 입조하라 협박 하다가 고구려의 태도가 맘에 안든다는 이유로 113만이라는, 무지막지한 군대를 동원해 대규모 침공 한다, 하지만 이 당시 수나라의 해외원정은 허장성세, 겁박의 목적으로 실제 전쟁보다는 위세를 보여줘서 주변 소국들을 겁줘서 찍어누르려는 생각이었는데... 고구려는 실제 전쟁으로 맞받아 친다. 장거리 원정을 위한 기동성의 부재, 그리고 특히 보급의 중요성은 망각하고 무턱대고 전쟁을 시작한다. 결국 수나라는 4차례 원정에서 요동성 단 하나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2백만여명의 인력만 허비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배신자(곡사정)가 등장하고 내부 반란까지 일어났지만, 수양제는 편집증 적으로 고구려를 공격했고, 고구려가 옛다~ 하며 항복해주는 흉내를 내고 내부 배신자(곡사정)을 돌려보내주자 그제서야 전쟁을 포기한다. 그러면서 개선행진을 했으나, 민심은 이미 떠나 있었고 아예 수나라는 망해 버린다. 다만 이 단락은 좀 이상한게 보통 고수전쟁을 피로스의 승리라고 하면 고구려가 수백만 대군을 장기간 상대하면서 누적된 피로때문에 결과적으로 적을 격퇴했어도 피해를 많이 입은 승리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피로스의 승리라고 보지, 수가 고구려가 거저준 항복선언을 받아먹어서 피로스의 승리라는 논리는 매우 신선하다.
발상의 전환
- 고구려-당 전쟁 - 당나라는 동북아시아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던 고구려를 645~668년까지 23년 동안 3차례 대규모 침공, 여러 차례 국지전을 통해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 꺾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당나라 또한 무지막지한 재정 낭비가 발생해 국력이 약해져 말 그대로 군대가 당나라 군대로 전락하게 되었다. 거기다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불과 30년밖에 안 되어 다시 그 땅을 잃고 그 땅에 제 2의 고구려인 발해가 들어선 건 덤이다.
- 북송과 남송 - 북송은 금나라와, 남송은 몽골과 연합하여 숙적이었던 요나라와 금나라를 멸망시켰지만 이때문에 완충지대가 없어져 북송과 남송도 결국 각각 금나라와 몽골의 침공으로 망하게 된다. 특히 해당 전쟁에서 송나라가 요나라를 상대로 졸전하였기 때문에 금나라는 북송을 만만하게 보게 된다.
- 임진왜란(1592) - 명나라 한정. 전쟁에 이기긴 했지만, 막대한 재정소모로 후에 후금에게 멸망하게 되는 간접적인 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 다만, 히데요시가 처들어온 명목이 명나라 정벌도 있긴 했고, 명나라 입장에서는 동쪽 국경을 일본보다 훨씬 우호적인 조선으로 남겨두는 것이 확실히 이득인건 사실이며 한편 명나라의 멸망은 4대 암군들의 지속적인 삽질이 근본적인 원인이였고 여기에 자연재해 등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물이였으니 반드시 피로스의 승리라고 단정짓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물론 이 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조선이었으나 조선입장에선 전쟁에 지면 나라가 망하는 판국이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겨야 했으므로 피로스의 승리는 아니다.
- 뤼첸 전투(1632) - 30년 전쟁 당시 스웨덴과 신성로마제국 사이의 전투. 스웨덴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작센 지방에서 가톨릭 군대를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스웨덴 측의 전사자는 구교측보다 많았고 정예 고참병들이 다수 희생되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장군이자 국왕인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전사하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이후 스웨덴은 뇌르틀링겐 전투에서 스페인에게 대패하면서 전쟁에서의 우위를 상실한다.[4]
- 말플라케 전투 (1709) -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 프랑스 말플라케에서 일어난 전투로 영국,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등을 위시한 연합군과 프랑스와 바이에른 선제후국이 격돌했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8만 6천명의 병력에 포 100문, 프랑스 측은 7만 5천명의 병력과 포 80문을 동원했다. 전투 자체는 연합군의 승리였지만 연합군의 손실이 더 커서 (사상자 2만 1천명. 동원 병력의 약 25%가 전투불가 상태가 되어버렸다) 피로스의 승리가 되고 말았다.
- 7년 전쟁 : 영국과 프로이센 등이 이기긴 했지만 러시아의 표트르 3세가 역사에 길이 남을 뻘짓을 해서 프로이센이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던 것에 가까웠고, 그나마 프로이센은 국력이 완전히 고갈되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고립되었다. 영국은 인도와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큰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막대한 재정 부담이 발생해서 북아메리카 지역에 증세를 시도하다가 엄청난 나비효과를 일으켜 버렸다. 그 외의 국가들도 제대로 된 승자가 없는 패자뿐인 싸움이었다.
- 미국 독립전쟁(1775~1783) - 프랑스 한정. 패자인 영국도 일단 전쟁 자체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진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지키느냐 상실하느냐가 달린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당시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GDP는 대영제국 전체 GDP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으며, 식민지 거주인들의 1인당 GDP는 영국 본토인의 그것을 상회할 지경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도 전쟁에 이기면 독립을 하는 것이고, 지면 그대로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므로 무조건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 막대한 전쟁 비용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얻은 거라곤 라이벌 영국을 이겼다는 자존심과 견제 효과, 그것 뿐이었다(...). 즉 영국은 알짜배기 땅덩어리를 사수하느냐 마느냐, 미국은 자유로운 생활이 보장되느냐 마느냐가 걸린 사생결단 매치업이었지만, 프랑스는 여기에 끼어들어야 할 명분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이 전쟁에서 미국에 할애한 막대한 지원금으로 인해 프랑스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는 꼴이 되었다. 물론 영국의 중요한 식민지를 상실하게 만들고 독립한 미국을 친 프랑스 성향으로 만든 효과는 작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 막대한 규모의 재정 소모를 정당화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재정 소모에다 대대로 사치벽[5]을 부린 프랑스 왕실의 최후는....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보어전쟁 - 진행 과정이 영국판 월남전. 항목 참조.
- 유틀란트 해전 - 항상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해군을 유지해 온 영국 해군에 비해 적은 전력으로 더 많은 함선을 격침시킨 독일 해군의 전술적 승리였다. 세계최강 영국 해군이 1:1 해전에서 패한 적은 거의 250년 전인 영란전쟁 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은 전 세계에 흩어진 해군을 불러오고, 엄청난 함선을 재 건조하는 버스터 콜을 통해 이 손실 을 메꿀 수 있는 여력이 있던 비해 독일군은 이기고 작은 손실을 가졌음에도 이를 채우기도 힘겨웠다. 결국 전투 이후 독일 해군이 해양 진출을 포기하게 되며 영국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된다. 이 전투의 가장 좋은 평은 "The imprisoned got out of their cell, punched the jailer & then returned." /"죄수가 감방에서 나와 간수를 후려치고 다시 감방으로 돌아갔다."
- 산타크루즈 해전 - 전투 자체는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한척을 격침시키고 한척을 중파시킨 일본군의 승리였다. 그러나 일본군은 이 전투를 끝으로 숙련된 조종사들을 대부분 잃었다. 이후 일본군은 이런 정교한 항공전 전술을 구사하지 못하고, 필리핀 해 해전 때는 칠면조 사냥 수준의 참패를 당한다.
- 겨울전쟁 -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영토를 뜯어낸 소련의 승리로 보이겠지만, 개전 당시의 병력 차이를 비교해 본다면 핀란드군 전체 병력과 맞먹는 17만명의 전사자를 낸 소련의 명백한 손해다. 오죽하면 당시 핀란드가 내놓은 영토는 전사자를 묻을 부지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
- 러일전쟁 - 일단 일본이 이겼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큰 손해는 없었던 러시아군과는 달리 일본군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실제 사상자 수를 봐도 일본이 2배. 협상자리에서도 패전국인 러시아가 우위에서 주도했고, 일본은 최우선 목표인 배상을 한푼도 받아내지 못하고 물러섰다.(이에 실망한 시민들은 히비야에서...) 그래도 러시아를 이겼다는 자부심은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소련에게 탈탈털리면서 와장창.
- 크레타 섬 전투 : 전투 결과 영국군이 패해 독일군은 크레타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일 공수부대는 약 4000여명의 전사 및 실종자가 발생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후 독일 공수부대는 다시는 정규 공수작전을 하지 못했으며 이후엔 일반 지상군 전투병력으로 활동했다.
- 구정 공세 - 베트남 전쟁 중 베트콩이 야심차게 계획한 공세였으나, 미군의 성공적인 방어로 큰 타격만 입은 채 실패했다. 하지만 이 공세는 미국 본토에서 강한 반전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여서, 이후 미국이 베트남에서 발을 빼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술적으로 미국의 대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패배를 불러온 경우. 즉 북베트남의 '정치적 승리'를 가져온 것이다.
- 1975년 최후 공세 - 이를 통해 북베트남은 기나긴 베트남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1976년 공식적인 통일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앞서 프랑스와 전초전은 넘어가자특히 20년 미국+남베트남...과의 처절한 전쟁이 엄청난 피해를 남긴데다 1978년 중국의 침략전쟁까지 가세해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할 무렵에야 차차 회복되었다.
- 테러와의 전쟁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탈레반은 강성한 미국을 상대로 15년에 걸친 소모전 끝에 최근에야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나라는 완전히 초토화됐고 게다가 미국이 물러간 뒤에도 수많은 군벌들이 이미 탈레반과 맞설 준비를 마친 상태라 Again 1989밖에 안 되므로 사실상 피로스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 이라크 전쟁 - 역시 미국이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사실상 타협의 형태로 물러갔지만, 승리의 기쁨 그런 거 없었다. ISIL이라는 희대의 사이코패스급 집단이 새로운 적으로 등장했고, 국내의 분열까지 결합해 이라크는 말 그대로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3 가상 매체에서 (결과적으로) 피로스의 승리를 한 경우
- 기동전사 Z 건담 - 에우고
- 기동전사 건담 더블오 - 솔레스탈 빙[6]
- 란마 1/2 - 히비키 료가의 사자포효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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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대전쟁 ~ 동방삼월정 - 치르노 - 수호전 - 양산박의 호걸들. 스핀오프이자 후속작인 수호후전에서는 살아남은 호걸들이 섬라국(태국)으로 가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대신 양산박의 호걸들을 죽게 만든 북송은 망하고 남송이 세워진다.)
- 슈퍼전대 시리즈
- 얼음과 불의 노래
- 도른 원정 - 2차례나 치른 도른 원정에 칠왕국은 많은 병력만 잃고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승리한 도른 역시 영토가 거의 초토화되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기에 승리하고도 평화협정을 맺어야 했다.
- 스타크래프트
- 프로토스 - 초월체가 이끄는 저그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끝에 초월체를 소멸시켰지만 고향 행성 아이어를 버린 채 샤쿠라스로 퇴각해야 했다. 샤쿠라스까지 따라 온 저그를 물리치는 과정에서도 사라 케리건의 모략으로 알다리스, 라자갈, 피닉스 등 귀중한 인재들을 잃는 큰 피해를 입었다.
- 저그 - 사라 케리건이 이끄는 저그 군단은 차 알레프에서 UED를 비롯한 아르타니스와 아크튜러스 멩스크의 3연합군을 쓸어버렸지만, UED는 소수의 원정대 밖에 없었으며 이마저도 케리건에게 큰 피해를 입어 초창기처럼 제대로 모으지 못했으며 프로토스와 멩스크는 케리건의 뒤통수로 상당히 크게 맞은 상태라 3연합군의 규모가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결국 많이 약해진 3연합을 무찌르는 과정에서 저그 군단은 큰 피해를 입었으며, 케리건이 이끄는 군단은 복구하느라 4년 동안 잠복기에 들어갔다.
- 은하영웅전설 - 버밀리온 성역 회전 후 시점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전략상으로는 이겼지만, 전술상으로는 양 웬리에게 졌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파비우스의 승리이지만 라인하르트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피로스의 승리이다. 작살날 뻔 했던 전쟁을 이긴 것은 제국의 파비우스의 승리이나 자신의 화려한 군사적 커리어에 양 웬리를 이김으로서 방점을 찍으려 했다 되려 양 웬리에게 개관광을 타버린 라인하르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화룡점정으로 양 웬리가 어이없게 죽어버려서 영원한 승리자가 되어버렸다.
- 용자왕 가오가이가 FINAL - 제네식이 골디언 크러셔를 날려서 대량 복제된 소울 11 유성주를 끔살하는데 성공하지만 그전에 용자들 대부분이 자폭 공격을 감행해서 기체가 개발살난 상태가 되어버린다. 물론 제네식도
발빨래판팔파레파와의 격전으로 걸레짝이 되어버린건 덤.
- 호빗 - 아자눌비자르 전투: 전투에서는 이겨 안개산맥과 화색산맥의 오크들이 전멸하고 적 지휘관 아조그도 죽였지만 난쟁이도 대왕인 스라인의 한쪽눈이 멀고 소린의 동생인 프레린도 전사하는 등 원래 군대의 절반정도 되는 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10] 거기다가 난쟁이들은 모리아안에 발록이 살아있어 모리아에 정착을 하는데에도 실패한다.
- Warhammer 40,000
- 브락스 공성전: 카오스에 빠진 추기경 자판 때문에 헬게이트가 열린 브락스를 진압하기 위해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가 투입되었는데 그 결과 데스 코어 오브 크리크는 무려 1400만 명, 브락스 민병대는 8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리고 전쟁의 목적 중 하나였던 브릭스의 무기고는 전쟁기간 도중 모두 소진되거나 파괴되어 버렸다. 사실 이 전쟁에서 확실하게 이득을 본 건 코른에게 바칠 해골과 피를 잔뜩 얻은 쥬폴과 알파 리전 소속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들을 포로로 붙잡고 먹튀한 다크 엔젤, 그리고 카오스 데몬과 싸워 이겨 정치적 입지가 더욱 탄탄해진 헥터 렉스뿐이다. 그러나 브락스를 가만히 놔두었다면 나중에 제국에 큰 위험이 될거라는 예언이 있었는지라, 피해는 크긴 했지만 어쩄든 이긴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워해머 세계관에서 1400만은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1400만 밖에 사망자를 내지 않고 다른 임페리얼 가드 군단의 도움 없이 전선을 유지한 데스 코어 오브 크리그가 대단한거다.
- 호루스 헤러시 - 호루스를 죽이고 반란을 진압하는데 성공했지만, 스페이스 마린 리전중 절반이 배신하여 제국의 전력이 크게 약화된데다가 많은 행성이 초토화되고, 결정적으로 황제가 빈사상태에 빠져 황금옥좌에 안치되어 제국은 끝없는 쇠퇴기를 겪게 된다.
- 오르페우스의 몰락: 임페리얼 아머 12의 배경이 된 전투. 네크론의 침공에 맞서 아마라 행성을 지켜내긴 했지만 행성은 초토화되었고 방어군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결국 행성 주민들을 내팽개치고 철수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미래에 큰 위협이 될 요소를 미리 쳐냈다는 가치라도 있는 브락스 공성전 보다 꿈도 희망도 없는게, 네크론은 아직 세력이 강성한지라 행성계가 점차 네크론 손아귀에 떨어지고 있는지라, 성전을 새로 하거나, 아예 다 Exterminatus 해버리는게 좋을 거 같다는 결말을 맺는다.
- 레트리뷰션의 결말: 아자라이아 카이라스도 족치고, 새로 챕터 마스터에 취임한 가브리엘 안젤로스에 의해 챕터가 정화되었으나, 사실상 챕터 자체가 풍비박산 난 상태. 아직도 블러드 레이븐의 갈 길은 멀다.
그래서 그라이아 행성에서 대규모 돚거질을 벌인 거였구만
-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 결과적으로 외계인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너무 커 다음 침공은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의 전투에 감명을 받은 다른 외계종족인 스피어가 지구인들에게 우주 항행기술을 제공하게 되고 후편에서 본격적으로 외계인 레이드가 시작되리라는 암시와 함께 영화는 끝을 맺는다.
-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 p.158~159
- ↑ 아스쿨룸 전투때 잃은 병사들 가운데는 장교들이 많이 껴있어 타격이 더 컸다.
- ↑ 이 사람은 로마에도 꽤 우호적이지만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잃지 않았다.
- ↑ 그러나 이후 요한 바네르, 레나르트 토르스텐손의 활약으로 다시 전쟁의 우위를 가지고 오게 된다.
- ↑ 사실 브루봉 왕가의 사치는 루이 14세때부터 루이 15세때 절정을 맞았고 루이 16세때는 오히려 상당히 검소했다.
- ↑ 다만 싸운 끝에 얻은 것이 피로스의 승리인 게 아니라 애초에 최종 목적이 달성되면 숙청당할 처지였다. '무력에 의한 분쟁 근절'을 표면적인 목적으로 내걸었지만 본래의 목적은 솔레스탈 비잉에 대항하기 위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
- ↑ 이 기술을 사용하면 사용 할수록 불행과 절망에 빠지게 되므로 이기든 지든 슬픈 기분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 ↑ 레전드 대전 항목참조
- ↑ 성도 리그 8강전에서 에이스인 번치코로 지우의 리자몽과 호각의 승부 끝에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너무도 치열한 승부였기에 번치코도 이기긴 해도 중상을 입어 4강전에 출전하지 못해 4강전에서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한웅을 이긴 트레이너가 우승해버렸다.(...) 이 때문에 패배해도 그냥은 패배 안하고 물귀신이 따로 없다는 평가를 지우가 받기도 했다.(...)
- ↑ 원작에서는 전쟁의 원인인 스로르가 영화에서는 아자눌비자르 전투중 아조그에게 죽음을 맞는것으로 변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