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투구 스타일

Hitting is timing. Pitching is upsetting timing. - 워렌 스판

1 개요

야구 만화나 게임의 영향으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투수쯤 되면 위력있는 볼을 스트라이크 존 어디에서 마음먹은데로 뿌릴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1] 의외로 그저 그런 구위와 그저 그런 제구력으로 프로의 세계에서 롱런하는 투수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전병호, 일본에서는 호시노 노부유키, 메이저리그에서는 제이미 모이어가 대표적인 선수들.이외에 엄청난 구위를 바탕으로 성공한 놀란 라이언이나 랜디 존슨, 현란한 무브번트를 가진 패스트볼+체인지업+정교한 제구력을 무기로 롱런한 그렉 매덕스같은 타입, 구위와 제구력을 둘 다 갖춘 커트 실링이나 존 스몰츠같은 선수들도 있다.

이처럼 투수들의 타입은 실로 다양하고 그만큼 투구 스타일도 다양하다. 왜냐하면 피칭은 빠른 볼 던지기, 멀리 던지기가 목표가 아니라 타자를 잡아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 정밀기계가 아니라 속기 쉽고 정교한 동작이 어려운 인간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칭의 가장 큰 목적은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속이는 것이다. 물론 타자의 반응속도를 초월한 빠른 볼로도 타이밍을 속일 수 있지만, 꼭 빠르고 정확한 볼로만 타자를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엘리트 레벨의 투수들도 스트라잌존을 4등분, 혹은 6등분하기는 커녕 속구류의 제구 기준점을 2~5군데{안쪽(안쪽 유인구, 안쪽 스트라이크), 바깥쪽(바깥쪽 유인구, 바깥쪽 스트라이크), 경우에 따라 몸쪽 높은 볼}, 변화구의 제구 기준점을 2군데(볼, 스트라이크)로 가져가는 게 고작이다.# 타격만큼이나 피칭도 불확정성이 많이 작용하는 분야이며, 사실 타자를 잡아내기 위해 4등분, 6등분, 9등분하는 제구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문단으로 구분해두었지만, 한 투수가 꼭 한 스타일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다. 체인지업의 명인 톰 글래빈은 좌우형 스타일이지만 동시에 체인지업형 스타일에도 들어가고, 던지는 볼마다 툭툭 잘 떨어지는 브랜든 웹이나 케빈 브라운은 볼끝제일주의 스타일이면서 동시에 낮게, 더 낮게 스타일이다.

야구 커뮤니티 inning에서 활동하는 조용빈의 피칭 이론서 '바이오메카닉 피칭이론의 모든 것'의 내용 일부를 요약했다. 야빠들이 읽어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정도의 책이니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구해볼 만한 책. 2010년에 '바이오메카닉 피칭 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피칭 이론서를 새로 출판하셨지만 투구 스타일이나 효과속도 이론에 대한 부분은 빠져있는 상태.

2 유형

2.1 좌우형 스타일

홈플레이트의 좌우 코너를 활용하는 스타일. 슬라이더같은 횡적 변화구를 갖춘 선수들이 자주 사용한다. 몸쪽 패스트볼을 찔렀다가 바깥쪽 슬라이더로 유인한다거나, 반대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보여주고 몸쪽 패스트볼을 찌른다거나. 역회전성 패스트볼을 갖추고 있으면 더 좋다.

톰 글래빈 같은 경우는 느린 속구, 더 느린 체인지업을 경기 중 90% 이상의 비율로 타자의 바깥쪽으로 던져댔다. 이 경우에는 백도어/프론트도어 피칭으로 분류할 수 있을 듯. 그래도 느린 속구와 더 느린 체인지업을 볼 하나~반 개 차이로 컨트롤할 수 있는 뛰어난 제구력으로 메이저리그를 정복한 위대한 투수가 되었다.

2.2 상하형 스타일

스트라이크존의 위아래를 공략하는 타입. 포크볼나 커브볼을 낮게 깔았다가 높은 속구로 삼진을 잡는다거나, 반대로 커브볼이나 포크볼로 삼진을 잡아내는 타입. 그렇다고 강력한 속구가 필수인 건 아니다. 데이비드 웰스배리 지토, 마이크 무시나 등 대부분의 커브 명인들은 이런 타입에 속하는데 우리나라는 커브볼러들이 워낙 적어서 보기 힘든 타입. 김광현이 이 타입이 될 수 있었는데.... 커브를 봉인했잖아? 안될거야 아마.
커브볼과 포크볼, 패스트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조정훈이 이 스타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2.3 윽박지르기형

구위는 좋은데 제구력이 평균 이하인 투수들이 '칠테면 쳐봐라'라는 태도로 깡다구있게 타자를 윽박지르는 타입. 1, 2이닝 전력투구하는 중간계투마무리들중에 많이 보인다. 전성기의 롭 넨이나 아만도 베니테즈, 한국같으면 2005~2006년의 오승환이나 쌍권총 시절의 권혁, 권오준, 최근에는 최대성정도? 볼넷이 꽤 많았던 부상 이전의 박찬호도 이 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뭐니뭐니해도 이 타입의 대표는 일본 프로야구의 후지카와 큐지다. 최근 커브빈도가 늘었지만 한참 잘나갈땐 닥치고 직구,직구,직구였다. 야구소년이라는 별명이 생긴 데는 이런 자신만만함도 큰 몫을 차지했다. 국제대회에선 통하지 않았지만.

삼진 숫자만큼이나 볼넷 숫자도 무시무시한 놀란 라이언이 이 타입의 대표적인 명투수. 대부분의 선수들이 나이들어 구위를 상실하면 다른 타입의 투수로 변신하거나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데, 라이언은 마흔 넘어서도 이 스타일이었으니 정말 대단.

2.4 볼끝제일주의

공끝이 무지무지 더러울 경우 그냥 가운데 보고 던져도 알아서 휘고 떨어지는 수준의 선수들이 있다. 요즘 싱커볼러로 구분되는 선수들을 이 타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또 너클볼러도 이 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160km 짜리 속구만큼이나 현란한 볼끝도 천부적인/선택받은 재능이라 3번처럼 아무나 구사할 수는 없는 스타일. 한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마무리로 활약했던 바비 위크먼은 사고로 검지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가는 바람에 뭘 던져도 볼이 심하게 변한다고 한다. (포크볼 던진다고 손가락 사이를 찢었던 이광우 선수는... 안습) 그렉 매덕스도 80년대 후반엔 투심이 워낙 괴상하게 변해서 한동안 가운데만 보고 던졌던 적이 있었다고...

이 투수들은 포수들을 잘 만나야 되는데, 속칭 미트질때문이다. 볼같은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내는 포수와 스트라이크같은 볼을 만들어내는 포수들의 차이는 분명하니... 거기다 제구가 갑자기 흔들리는 경우에 답이 없어지는 타입이기도 하다.

국내엔...글쎄 이런 유형은 많이 없지만 공끝이 더러운거로는 궁내 체고의 씽카볼투수가 유명하다.

2.5 낮게, 더 낮게 스타일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구위가 크게 위력적이지 못한 선수들이 모든 볼을 낮게 던지는 경우와 최근 늘어난 싱커형 변화구처럼 자연스럽게 볼이 낮게 깔리는 경우다.

낮은 볼은 높은 볼에 비해 장타의 위협이 적기 때문에 구위가 그저그런 선수들이라면 낮은 볼과 친해두는 편이 좋다. 130km짜리 속구로 30넘어 200승 이상을 거둔 제이미 모이어가 대표적.

반면 브랜든 웹이나 케빈 브라운, 데릭 로우 같은 싱커형 선수들은 볼이 자연스럽게 밑으로 깔리는 싱킹 무브먼트를 갖춘 경우.

두 타입 모두 장타를 억제하고 땅볼을 늘리는 게 지상목표다.

2.6 체인지업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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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산타나의 2007~2010 구사 구종 자료. 속구-체인지업이 90% 이상임을 알 수 있다. >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이 대표적. 속구-체인지업 배합이 90% 이상이며 브레이킹볼은 대부분 보여주기 위한 용도다. 제이미 모이어케니 로저스도 체인지업의 명인들. 요한 산타나같은 강속구/체인지업 조합도 요즘은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속구 구속이 구린 선수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체인지업은 속구와의 구속차이가 관건이지 반드시 속구 구속이 좋아야 될 필요는 없기 때문. 적재적소에 체인지업을 구사하며 타자의 타이밍을 흔들어놓는 선수들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꼽자면 부상 없었던 서재응 정도나 2009년에 WBC로 인한 것과 부상이 겹친것 때문에 구위가 떨어졌던 봉중근 정도를 꼽을수 있겠다.

매덕스같은 경우는 경기후반 위기상황에는 항상 초구 안쪽 체인지업, 2구 바깥쪽 체인지업, 3구 안쪽 속구 승부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는 타자들도 다 알고 있는 조합이지만, 2~3구째의 효과속도 차이때문에 항상 타자들을 유격수 땅볼, 2루수 땅볼로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바깥쪽 느린 볼은 실제 구속보다 효과속도가 더 느리고, 안쪽 직구는 효과속도가 더 빠르다. 잘 맞추기 위해서는 안쪽으로 올수록 배트가 좀 더 빨리 넘어와야 하기 때문. 따라서 같은 구질이라도 바깥쪽, 안쪽인가에 따라서 효과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같은 공이라고 볼 수 없다. 투수의 제구력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2.7 다재다능형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 것으로 유명한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2007~2010 구사구종 자료. 2009년과 특히 2010년엔 각종 구종을 다양하게 구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별별 기술을 다 구사하는 선수들. 다양한 구질에 팔각도까지 자유자재로 변경시키는 선수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특유의 문화 때문인지 보기 쉽지 않지만, 메이저리그의 데이비드 콘이나 올랜도 에르난데스 같은 선수들은 구질도 다양하고 경기중에 팔각도를 수시로 변화시키며 투구했었다.

2.8 제 1선발형

구위면 구위, 배짱이면 배짱, 거기다 제구력까지, 한마디로 '에이스', '단기전의 우승청부사'들이다. 애리조나와 보스턴에 우승을 안긴 커트 실링이나 선수생활 후반기의 약켓맨로저 클레멘스가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둘이 외나무다리에서 다이다이로 붙었던 2001년 월드시리즈 7차전은 최고의 투수전이었다. (경기 결과 로저 클레멘스 6.1이닝 1실점, 커트 실링 7이닝 2실점) 한국이라면 2006~2007년, 2010년의 류현진 정도가 될 듯. 일본프로야구의 다르빗슈 유도 이 경우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약점이라는게 없는 투수이며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다르빗슈 유의 경우에는 일본야구를 아는 누구나 대부분 메이저에 가서도 통할만한 투수라고 말할 정도이다.

처음부터 이랬던 선수들도 있지만, 윽박지르기형 선수들이 제구력이 갖춰지면서 완전체로 진화하는 경우도 있다. 약켓맨로저 클레멘스도 80년대에는 무지막지한 직구를 앞세운 윽박지르기형 선수였다가 이 스타일로 변화한 경우.

아이러니컬하게도 워낙 구위가 좋아 투구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파울로만 끊어내다가 아웃되는 경우가 많아서 오랜 이닝 투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실 혈기왕성한 젊은 투수들의 경우, 투구수 줄이기에 크게 신경을 안 쓰기 때문에 피칭을 너무 공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1. 정말 그런 투수들은 없다. 아무리 잘 던지는 에이스 투수라고해도 어느 투수던 간에 4사구는 주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