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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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였던 뉴욕 메츠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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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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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 레이스에서 뛰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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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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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BC 국가대표 당시.

이름서재응 (徐在應 / Jae Weong Seo)
생년월일1977년 5월 24일
출신지광주광역시 서구
신체185cm, 93kg, O형
출신학교광주화정초-충장중-광주일고-인하대(중퇴)
포지션응원단장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6년 고졸우선지명(해태 타이거즈)
199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뉴욕 메츠)
소속팀뉴욕 메츠 (2002~200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6)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2006~2007)
KIA 타이거즈 (2008~2015)
응원가Ray Charles - I can't stop loving you[2]
군 복무병역특례
KIA 타이거즈 등번호 40번
조동현(2007)서재응(2008~2009)정성철(2010~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26번
장문석(2007~2009)서재응(2010~2015)공석
8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박재홍(2012)서재응(2013~2015)이호준(2016~)
보유 기록
선발 44이닝 연속 무실점[3]2012년 8월 26일 ~ 9월 30일

1 소개

컨트롤 아티스트
나이스 가이
승운 쪽으로는 비운의 투수

KIA 타이거즈의 우완투수. 광주일고의 중심 축이었으며 1년 후배로 김병현, 2년 후배로 최희섭이 있다. 원래는 150km/h에 육박하는 빠른 볼로 윽박지르는게 주 무기였으나, 팔꿈치 부상 이후 빠른 볼 대신 정교한 제구력과 변화구로 승부를 보는 타입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2 메이저리그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96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으나 인하대학교에 입학했다. 인하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8년에는 방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모교의 주성노 감독과 함께 참가했다.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병역특례를 받게 된 그는 인하대학교를 중퇴하고 뉴욕 메츠와 13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으며 미국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다.[4]

입단 이후 부상으로 인한 재활과 수술을 받으며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2002년 뉴욕 메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처음 콜업되어 1경기에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2003년 선발진에 진입하며 9승 12패 188⅓이닝 3.8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팀 타선이 도와주지 않아 10승에는 실패했고, 이는 전성기 시절 박찬호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선발 투수로서는 최고의 기록이었으나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이 2013년 8월 2일, 시즌 10승째를 거두면서 기록을 경신하였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투수코치와의 불화로 인해 마이너와 메이져를 오가며 5승 10패로 전년도보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5 시즌에는 시즌 초반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4월 막판 잠시 출전해 호투를 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다 선발진의 부상을 틈타 8월쯤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14경기에 출전하여 8승 2패를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2005년 뉴욕 메츠에서의 화려한 성적[5]을 기반으로 1회 WBC 국가대표에 선출되었으며, 14이닝 1실점 2승 무패 ERA 0.64 WHIP 0.71[6]을 기록했다. 국가대표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마무리로 돌릴 수 있게 했으며, 두 메이저리거의 활약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WBC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WBC가 끝난 후 2006 시즌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트레이드되어[7] 고등학교 후배 최희섭과 아주 잠깐 한솥밥을 먹기도 했으나, 최희섭보스턴 레드삭스트레이드되었고, 자신도 메이저리그 19경기에서 2승만 거두는 부진을 보인 끝에 한 시즌도 못 채우고 탬파베이 레이스로 또 다시 트레이드됐다. 탬파베이로 이적한 후에는 선발 기회를 계속 부여받았으나, 서재응 본인의 부진[8] 과 시망한 팀 타선 덕분에 탬파베이에서만 8패를 기록하며 부진하며 결국 시즌 후 방출당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최희섭, 추신수 모두에게 홈런을 허용한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그 투수다(...) 추신수의 말에 따르면 (홈런 치라고) 서비스급으로 던져준 공이었다 한다. 나이스 가이라는 별명은 이래서 생겼다 카더라(...)

3 메이저리그 생활 마감

2007년에도 부진은 계속되어, 결국 8점대 방어율을 찍고 시즌 후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방출되며 메이저 커리어를 마감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결정적으로 서재응의 부친이 지인의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이 완전 깡통을 찬 바람에 그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부름에 결국 대한민국 무대 복귀를 선언하여 귀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만 해도 서재응은 뉴욕에 자신의 집을 갖고 있었다.... 서재응 부친의 이야기로는 그 일만 없었다고 해도 절대 미국에서 나올 상황이 아니었다 하니..[9] 아직 1996년 해태 타이거즈의 고졸우선 지명권이 유효했었고, 그렇게 그는 대한민국 무대로 복귀하게 된다.

4 KBO 리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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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17일 KIA 타이거즈 입단식에서.

4.1 2008 시즌

2008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선발진에 합류했다. 초반엔 좋은 제구로 그럭저럭 재미를 봤으나 무릎, 어깨 등 부상에 시달리며 5승에 그쳤다.

4.2 2009 시즌과 정근우와의 악연

2009년 역시 시즌 초반엔 잘 했으나, 사직 롯데전에서 팀의 공격 도중 나지완의 파울볼이 무릎을 강타, 그 이후 다시 잔부상이 겹쳐 장기였던 제구도 말썽을 일으키게 되어, 전년도와 같은 승수에 방어율은 폭등하며 레전드 임갑교의 뒤를 잇는 응원단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기도 했다.

2009년 시즌 9월 8일 막판 선두 경쟁을 하던 SK와의 경기에서 3회초 정근우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을 입히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사구 후 정근우는 서재응에게 사과를 요청했고 서재응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장면에서 옥근우라는 별명도 탄생. 참고로 정근우는 9회에 사구를 또 맞았다.

그 때는 아무도 몰랐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걸.

그 당시 지펴졌던 불씨는 한국시리즈 3차전 4회말 스코어 0:4로 SK 와이번스가 앞서고 있던 시점에 폭발했는데, 2사 상황에서 정근우KIA 타이거즈의 두 번째 투수 서재응을 상대로 투수 앞 땅볼을 쳤는데, 서재응은 바로 송구하지 않았다. 아웃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달리다가 송구를 하지 않자 빨리 달리다를 반복하던 정근우는 결국 아웃됨과 동시에 서재응을 응시했는데, 후배인 정근우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에 서재응은 뭘봐 이 XX놈아라는 욕설을 시전, 정근우가 '왜요'라고 응수하면서 그대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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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봐 이 삼시세끼야

다행히도 폭행사태까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와중에 김종국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오바하며 선수단의 동요를 막음과 동시에 팀의 결속력을 다졌다(?). 일각에서는 이 신경전 때문에 KIA 타이거즈SK 와이번스와의 심리전에서 밀리지 않고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특히, 김종국은 어디 가서 큰소리 한번을 제대로 안 치는 성격으로 널리 유명한지라 KIA-SK 팬 외에도 그를 아는 사람은 전부 그 어색함에 벙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서재응은 벤치 클리어링 이후 평정심을 잃고 5회말 만루 위기에서 정상호최정에게 연속으로 밀어내기 사구를 내주며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되었다.관련기사 그렇지만 해태 출신이면서 어느정도 타이거즈에 애정이 있는 해설자 이병훈이 이건 서재응의 잘못 이라고 말 할 정도.

이러한 사건으로 서재응은 SK 와이번스를 매우 싫어하는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대놓고 이런말을 했을정도. 당연하지만 SK 팬들도 서재응을 매우 싫어한다(...) 2011년 4월 28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SK 박진만의 머리를 강타하는 공을 던졌고, 이것에 대해 사과는커녕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는 바람에 SK 팬덤과는 완벽히 앙숙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16년 3월 21일 SBS스포츠의 주간야구에서 서재응이 참가하면서 다시 회자되었는데, 서재응 본인의 말로는 그 후에 골프도 치고 문자도 주고받는등 잘 지내는 사이라고... ...

4.3 2010 시즌

서크라이
2010 시즌 첫 등판이었던 무등 삼성전에서 5이닝 1실점하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4월 7일 문학 SK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가 끝나고 서재응은 15승이 목표라고 인터뷰했다. 이 때 서재응 VS 정근우 3차 대전을 기대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2010년 6월 18일 문학 SK전에서 스코어 3:2로 KIA가 힘겹게 앞서고 있었던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마무리로 올라왔으나 조동화에게 초구 끝내기 2루타를 맞았다. 이 날 승이 날아간 윤석민은 분한 마음에 락커룸을 손으로 가격했다가 전치 6주 부상을 입게 되었다.

2010년 6월 20일 선발 투수로 나와 6회 2실점하고 강판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욕하는 것(F word)이 중계방송에 잡히고 말았다.

2010년 8월 4일에는 3일 쉬고 등판하여 6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나오는 불펜들마다 불을 질러서.. 무등예수 지못미. 그렇지만 얻어맞은 불펜투수들을 토닥이고 격려해 주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무등예수란 별명을 굳힘과 동시에 까임방지권을 얻었다.

2010년 8월 17일 넥센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7승을 수확하였다.

2010년 8월 27일 SK전에서 6이닝 무실점 하고 KIA 타선이 왠일로 김광현한테 2점이나 뽑아 승리투수가 될 듯 했으나 구원투수로 올라온 김희걸이 승을 날렸다. 결국 이 경기는 최희섭 타석에서 고효준의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으로 KIA가 이겼다. 그리고 안영명이 어부지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15일 윤석민의 024(⅔이닝 4실점)에 백인호와 신종길, 김선빈이 합작한 뇌주루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따내며 시즌 9승째를 챙겼다.

2010 시즌을 보면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즌이 막판까지 가는데도 10승을 못 챙겼을 정도로 불펜진 방화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이 양반이나 저 양반보다 더할까 싶지마는..

결국 2010 시즌 최종 성적은 140이닝 9승 7패 ERA 3.34 whip 1.16으로 10승만 못했을 뿐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WAR 또한 2010 시즌 KIA에서 가장 높은 4.32로 16승 투수인 양현종을 제치고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했다는 것이 중론. bb/9 또한 1.86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1위로 화려한 제구력을 뽐낸 시즌이었다.

4.4 2011 시즌

서재응/2011년 항목으로.

4.5 2012 시즌

취약해진 KIA 투수진의 희망. 이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불펜진도 불펜진이지만, 선발진에서도 양현종이 부상으로 빠지고 용병으로 데려온 앤서니 르루호라시오 라미레즈의 기량도 의문인[10] 상황에서 윤석민과 함께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꼽혔다. 시즌이 개막하자 실제로 팀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내고 있다. 하지만 승수는 그의 투구내용에 걸맞지 않았으니..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왔던 4월 7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서는 수비진의 실책과 타선의 불발로 인해 SK전 연승이 깨지며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4월 13일 LG 트윈스 전에서는 박용택의 솔로 홈런에 의한 1실점을 제외하면 준수한 투구 내용을 보이며 5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지만 KIA의 火펜진의 방화(...)로 인해 승리요건이 날아가는 불운을 겪었다. 이 날, 팀은 리즈의 볼질로 8:6 승리를 거두었다.

4월 19일 목동 넥센 히어로즈 전에 와서야 겨우 1승을 챙겼다. 하지만 서재응이 7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도 7회 이전까지 KIA 타선이 홍재호의 솔로홈런으로 인한 1득점만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어떨까 조마조마했던 것이 사실.

6월 26일 잠실 LG 트윈스 전에서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날 KIA는 공식적인 실책 3개와 기록되지 않은 실책까지 수비가 상당히 불안정했다. 특히 4회가 절정이었는데, 윤완주가 송구 실책으로 주자를 내보냈고 김상훈은 이닝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놓쳤다. 5회에도 조영훈이 2사에서 실책으로 만루위기를 빚었다. 그러나 서재응은 에러가 나올 때마다 에러한 선수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실책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윤완주를 향해 크게 이름을 부르며 고개 숙이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낸 것은 리더십의 절정으로 찬양받았다. 결국 서재응은 위기를 스스로 돌파하며[11] 에러로 인한 실점을 하지 않고 4승째를 올렸다. #

9월 18일 광주 두산전에서는 7이닝 74투구수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으나[12] 불펜 투수들[13]이 불을 지르며 8승이 날아가버렸다. 승리가 날아갔음에도 오히려 특유의 아빠 미소(...)로 불펜 투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으로 KIA팬들의 안구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역시 대인배.. 이 날 경기는 2:2로 무재배무승부로 끝났다. 이 날 경기로 그의 평균자책점은 2.83이 되었으며, 순위는 류현진과 공동 3위, 토종 투수들 중에서는 공동 1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류현진도 이날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동병상련

9월 23일 목동 넥센전에서 투구수 110개 3안타 1볼넷으로 프로 통산 첫 완봉승을 올렸다. 이 시점에서 36이닝 연속 무실점, 선발로는 35이닝 연속 무실점중. 선동열의 선발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경신이 눈앞에 왔다.

9월 30일 군산 롯데전에서 9이닝 122투구수 30타수 5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으로 완봉승을 거두면서 2경기 연속 완봉승으로 시즌 9승째를 올렸다. 선동열의 37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경신하였고, 기록을 44이닝으로 늘렸다.[14] 또, 평균자책점 2.57인 셰인 유먼을 제치고 2.49를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2위에 올라섰다.

10월 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회초에 실점하며 연속이닝 기록도 깨지고 8이닝 4실점하며 스코어 4:3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시즌 10승에도 실패하고 평균자책점 순위도 4위까지 떨어지며[15] 결국 9승 8패로 또 다시 시즌 10승을 달성하지 못하고 영 좋지 않게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6 시즌 은퇴식 날에 중계석에서 밝힌 바로는 제일 아쉬웠던 시즌이 바로 이 2012 시즌이었다고 한다.

4.6 2013 시즌

타이중 참사 + 생일빵 + 노쇠화 = 흑역사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로 차출되었지만, 대한민국타이중 참사를 겪고 예선에서 광탈하는 바람에 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WBC 후유증 때문인지, 시즌 초반엔 다시 서재앙 모드로 돌아오며(…) KIA 팬들에게 욕을 먹었다.

3월 31일 무등 넥센전에서 5⅓이닝 87투구수 6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4탈삼진 6실점(5자책)으로 부진, 5⅔이닝 2실점을 기록한 고교 후배 김병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패했다.

4월 7일 사직 롯데전에서 5이닝 79투구수 5피안타 4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여 서재응답지 않게 벌써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매 이닝마다 주자를 출루시키며 꾸역꾸역 이닝을 막아냈기 때문에, KIA 팬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건 서재응이 잘 던진 게 아니라 롯데 타자들이 못 한 거다. 그래도 출루한 김문호를 견제로 2번이나 잡아내며 괜찮은 견제 능력을 보여 줬다는 게 다행.

4월 25일 마산 NC전에서 다리 상태가 안 좋은데도 이닝을 꾸역꾸역 먹는 모습[16]으로 팬들을 걱정하게 하기도 했지만,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3볼넷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시즌 2승을 챙겼다.

5월 1일 잠실 두산전에서 간만에 좋은 피칭 내용을 선보였고, 7이닝 6피안타 1볼넷 1탈삼진 1실점(1자책)으로 3승을 챙겼다.
특히 이날 선발 출장한 포수 차일목의 리드에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동창이자 친구 김상훈의 자리는 더더욱 좁아지고...

5월 18일 잠실 LG전에서는 2회를 제외한 매 이닝마다 안타를 맞으며 득점권에 몰렸으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이며 5⅔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2탈삼진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필승계투조가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켜 주면서 4승을 챙겼다. 2012년과 비교했을 때 승수를 올리는 페이스가 상당히 빠른 편. 이제 서크라이에서 벗어나는가

그러나....

자신의 생일5월 24일에 열린 무등 NC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생일빵을 제대로 맞았다. 4이닝 동안 101구를 던져 9피안타 3사사구 10실점(10자책)으로 최악투를 기록하며 조기 강판당했고, 결국 KIA가 패하며 자신의 생일에 선물 대신 굴욕적인 패전의 멍에를 썼다. 말 그대로 탈탈탈 털리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구속도 안 나왔고, 거기에 제구까지 제대로 안 되면서 완벽히 무너졌다. 제대로 생일빵 맞았다

재미있게도 원정 경기와 홈 경기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 날 경기 후 기준)

  • 원정 경기 : 27이닝 4승 ERA 1.33 28피안타 10사사구 9탈삼진 4실점 4자책
  • 홈 경기 : 18이닝 3패 ERA 11.00 26피안타 9사사구 7탈삼진 24실점 22자책

10실점하며 제대로 생일빵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된 후 나간 기사에서는 서재응의 별명인 "재앙"을 영어로 한 disaster를 본따서 서재스터라는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서재응 외에도 KIA의 유부남 선수들 대부분이 홈 경기에서 심각하게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수 시장 차별이냐

6월에 접어들면서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6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사실상 경기가 거의 다 기울어진 상황에서 나와 배팅볼 투수 수준으로 두들겨 맞는 등 팬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8월 9일 NC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동안 5피안타를 내주었으나 1실점(1자책)으로 잘 틀어막았으며, 팀도 승리를 거두게 되어 오랜만에 시즌 5승째를 따냈다.

그러나 이후 8월 15일 두산 베어스와, 8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선발 경기에서 모두 패하면서 시즌 7패째를 떠안았다. 이후 경기에서도 부진한 투구를 보여 9패째를 기록했고, 결국 9월 9일 1군에서 제외된 후 시즌을 사실상 마감했다.

2013 시즌 성적은 1군 19경기 5승 9패 84이닝 5피홈런 116피안타 36탈삼진 33사사구 평균자책점 6.54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시즌 후 천안에 가서 시구를 하면서 타어강을 전염시켰다. 차일목과 도찐개찐

4.7 2014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는 선발로 나왔지만 이내 더는 선발로 나올 수 없는 상태라고 판명됐는지 불펜으로 전향했다.

4월 2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7:7인 9회초에 등판하여 2이닝 37투구수 2피안타 3사사구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8:7로 지면서 서재응은 이날의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10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1:0으로 지던 8회말에 올라오지만 박병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신나게 털려버려 팀이 9회초 2점을 뽑아냈지만 결국 5:2로 패하는 단초를 제공.

5월 4일 넥센전에서는 팀이 4:2로 지던 9회초에 올라오지만 강정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나서 이성열에게 투런홈런을 맞으며 신나게 털렸지만 팀이 9회말 이대형의 1타점 적시타, 고영우의 무사만루 희생플라이와 브렛 필쓰라린으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김주찬의 끝내기 안타로 패전을 면했다.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경기내용이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는데 2군에서도 신나게 털려서 은퇴가 임박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선발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2군에서도 차도없이 전반기를 보낸 가운데, 후반기 들어 데니스 홀튼의 방출로 급하게 1군으로 콜업되었다.

NC전에서 1년만에 선발로 등판. 왜 2군에만 있었지 싶을 정도로 그럭저럭 5선발급으로 나쁘지 않은 노련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나, 수비실책으로 5이닝 3실점 후 강판. 꽤 아쉬움이 남는 투구였고 이후로는 불펜으로 전환해서 그럭저럭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정도의 투구를 보여주며 이닝을 먹어주고 있다. 사실 기아 불펜이니까 이 정도로도 그럭저럭이란 평이 나오는 수준이지... 2013년에 이어 노쇠화가 진행된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는 것이 중평. 더 아쉬운 점은 서재응이 파이어볼러 스타일이 아닌 노쇠화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는 제구파, 기교파 투수임에도 1~2년만에 처참한 수준으로 성적이 폭락하였다는 것이 더욱 큰 아쉬움이다.

그리고 2014년 노쇠화의 영향으로 불펜으로 전환함에 따라, 서재응의 염원이던 한 시즌 10승은 결국 꿈으로 남게 되어 선수 개인에게도 굉장히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올 시즌 최종 성적은 16경기 32⅓이닝 무승 2패 2홀드 평균자책점 6.40으로 그야말로 처참했다. 팬들은 저딴 성적을 2년 연속 내고서도 억대 연봉 쳐먹는다고 깠다.

그리고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의 비활동기간 훈련 금지 규정 위반을 들먹이면서 그 책임을 한화 이글스김성근 감독에게 돌리는 등 온갖 떡밥을 남겼고, 이 떡밥으로 인해 롯데 선수단 CCTV 사찰 사건과 안치홍 임의탈퇴 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훈련 금지 규정만을 들먹이며 억대 연봉 선수만 배불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렇게 구단들과 전 구단 팬들까지 모두 서재응과 선수협에게 등을 돌리면서[17] 서재응은 사실상 재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2억 원에서 40%가 삭감돼서 1억 2천만 원을 받게 되어 또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이 결정됐다. 제 몫을 한 김병현의 경우는 오히려 동결될 가능성이 큰 편. 비슷한 성적을 냈고, 나이도 비슷한 타팀의 불펜투수들과 비교해보자면, 넥센의 송신영은 3억 원에서 1억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고, 이정훈 역시 1억 원에서 5천만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NC를 보면 이혜천은 1억 원에서 9천만 원으로 10%가 깎였으며, 박명환은 5천만 원에서 4천만 원으로 깎였다. 서재응의 삭감폭이 어느 정도 큰편이나, 타 선수들에 비해 여전히 연봉이 비싼 편이었다.

팬들은 형저메조차 연봉이 1억 원에서 7천만 원으로 삭감되었는데, 왜 한 것도 없는 선수에게 1억 2천씩이나 주냐면서 반발하였다. 그래도 송신영은 팬들에게 이미지라도 좋지

4.8 2015 시즌

2군에서 출발하였으나 퓨처스리그에서 17이닝 1자책 ERA 0.53의 빼어난 피칭으로 콜업, 4월 25일 두산전(5⅓이닝 2실점), 5월 2일 SK전(5⅓이닝 1실점)으로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두경기 모두 팀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5월 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1⅔이닝동안 2자책을 기록했다.

잠시 2군에 내려갔다가 복귀한 날인 6월 3일에 두산 베어스를 상대해 7이닝 1실점(1자책)으로 시즌 첫 승을 챙겼다! 무려 662일만의 승리. 7이닝까지 82구로 던져 더 던질수있었지만 김병현에게 다음 투수들도 투구감각 익혀야 되니 그만 던져라는 말을 듣고 그만 던졌다고 한다 역시 김병현의 포스란.. 참고로 서재응이 두살 더 많다 이 경기에서 던지고 바로 말소되면서 신인투수 박정수와 바턴 교체를 했다.

다만 팀 리빌딩 과정이고 서재응이 오래 던지기에는 나이가 있기 때문에 1군에 자주 있지는 않는다. 선발 등판 시에 1군에 등록되고 그 다음날 말소되는 식. 대신 선수단과 동행을 하면서 플레잉 코치 식으로 선수단을 집결하는 응원단장 역할을 하고 있다. 5선발 체제에서 5번째 선발 자리를 두고 서재응과 다른 선수가 번갈아서 나오는 방식.

6월 18일 LG전에서도 6이닝 1실점의 역투를 펼쳤으나 물빠따들이 점수를 못 내며 ND로 물러났다. 팀은 패배. 10일 로테이션으로 던지고 있다는 걸 감안해도 이번시즌 평균자책점 2.49로 터지지 않는 타선에 승운을 못 챙기고 있을 뿐 매우 우수한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끔찍한 부진으로 은퇴하라는 소리까지 나왔던 지난 2년간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왕년의 에이스의 부활. 등판하지 않을 때에도 팀 케미스트리를 다잡아 주는 고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24일 NC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5이닝 9피안타 4볼넷 1홈런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날 NC 나성범의 1회초 선제 투런홈런을 더불어 1회에 3실점을 하였고 2회말에는 신종길이 답이 없는 수비를 연달아 보여주었는데 김종호타구를 신종길이 타구판단 미스로 신종길의 키를 넘어가 주자2명이 있던 1,2루 상황에 주자 모두를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이 수비의 실책들은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되었다. 5회에 1실점을 추가로 하였고 결국 손민한과의 노장선수 대결은 손민한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7월 5일 kt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4⅓이닝 8피안타 1볼넷 1홈런 5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부진은 계속되어 7월 11일 SK전에서도 1.1이닝 3실점으로 물러났다. 날이 더워지며 체력이 다한 탓인지, 거듭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평균자책점은 10점까지 올라갔다. 11일 등판은 서재응이 평소 SK에게 강한 것을 고려해 로테이션을 깬 표적등판이었음에도 크게 깨지며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3경기 연속 부진한 투구로 다음날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1군 콜업전 등록하고 등판후 말소하는 식이 아닌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한 2군행으로 콜업 일정은 미정. 대신 콜업된 투수는 바로 한기주.

한달만인 8월 16일 선발등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폭우로 취소, 다음날 그대로 선발등판한다.

다음날 선발인 8월 17일 경기에서는 3.2이닝 2실점 5피안타 1탈삼진 1볼넷 63투구수 후 조기 강판되었다.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4회 폭투가 나오며 분위기가 안좋아지자 빠른 퀵후크를 통한 교체로 마운드를 김광수에게 내주게 되었다. 김광수가 서재응의 책임주자를 불러들이지 않아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팀은 이 실점이 결승점이 되며 역전을 하지 못하고 패했다.

그리고 이 경기가 서재응의 2015년 마지막 선발 등판이 되었다.

이후 2군으로 다시 강등, 콜업되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9경기 선발등판 40이닝 1승 4패 ERA 4.95. 시즌초 오래간만에 왕년의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으나 날이 더워지며 체력과 구위하락을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쉬운 시즌.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KIA 구단에서도 서재응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해 주고 내년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게 해 줄 입장이다. 2015년 12월 11일 5,000만원 삭감된 연봉 7,000만 원에 재계약했고,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4.9 2016 시즌 : 시즌 시작 전의 은퇴

2015년 선언한 대로 현역 마지막 해. 40세이자 만 38세가 되는 해이다. 왕년의 대투수는 선수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라고 생각했으나

스프링 캠프 중인 2016년 1월 28일에 결국 은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선수협회장 자리도 이호준에게 넘겨주고 선수로서의 삶을 마무리 지었다. 스프링캠프에서의 구위 등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듯. 은퇴 후 계획은 마땅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구단에서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하면, 연수도 보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서재응의 입담이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해설 제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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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광주 한화전에서 최희섭과 함께 합동은퇴식을 가졌다.

5 해설자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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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1일, SBS Sports와 계약하면서 해설위원으로써 야구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주간야구에서 윤석민 선발전환에 대한 우려를 표해서 기아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해본 베테랑이 한국 야구에서도 한 철지난 소위 '강한 마무리'론을 설파하는게 말이나 되냐는 것. 다만 맥락을 읽어보면 상위권 팀들과 달리 기아의 타력이 워낙 약하기 때문에 잡아야 할 경기를 확실하게 잡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는 반론도 있다. 이후 임창용 고향팀 복귀가 알려지면서 임창용 복귀떡밥을 깔기 위한 기아 구단의 전방위 언론플레이(...)라는 쓸데없는음모론까지 제기되었으나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론에 불과하니 귀담아듣지는 않는 것이 좋을듯.

일단 첫날인 4월 8일은 호된 해설 신고식을 치렀는데 긴장과 경험부족이 드러난 것은 물론 편파해설 논란까지 휘말렸다. 이순철 해설과 호흡을 맞췄는데 하필 기아 vs LG전이라서 이순철 해설의 주관이 폭주했고 서재응은 예스맨이 되면서 LG팬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다만 이순철 해설이 이런 특별한 매치업만 아니면선수 편파는 몰라도 팀 편파 해설을 하는 인물은 아니고, 서재응 해설이 친분 있는 이순철 해설과 호흡을 맞추라는 SBS의 배려가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 차라리 최원호-이종열 해설도 실력 없는 해설자들이 절대 아니고 둘 다 공교롭게 LG 출신이라 이들 중 하나와 붙여놨으면 긴장도 좀 덜하고 편파해설도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표하는 일부 팬들도 있다.

일단 자신이 잘 아는 기아에 대해 해설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서재응 본인은 분명 부분부분 해설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앞으로 다른 팀 해설로 어떤 역량을 보여주냐에 따라 성공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다.

SBS 2016 추석특집 내일은 시구왕에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6.1 메이저리그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2뉴욕 메츠110000.00001
200332188⅓91203.8219346110
200424117⅔51004.901335054
20051490⅓8202.59841659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6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672405.78752549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6탬파베이 데블 레이스17901805.001223139
200711523408.13841628
통 산118606⅓284004.60691184340

6.2 KBO 리그

  • 투수기록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8KIA 타이거즈1679⅓55004.08902945
20092179⅓54006.131013853
20102414097003.34
(5위)
1344068
201130130⅓89224.281444784
20122916098002.59
(4위)
1435897
2013198459006.541163736
20141632⅓02026.40451318
201594014004.95521316
통 산(8시즌)164745⅓4248244.30825275417
완투, 완봉기록
년도완투완봉
20080완투0완봉
20090완투0완봉
20100완투0완봉
20111완투
(6위)
0완봉
20122완투
(5위)
2완봉
(1위)
통산3완투2완봉

7 투구 스타일

아마추어 시절 최고 95마일(153km/h)까지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으나 마이너 시절 토미 존 수술 이후로 구속이 감소한 탓에 제구력과 변화구 위주의 기교파 투수로 스타일을 바꿨다. 짧은 메이저리그 생활에도 제구력만큼은 극찬을 받았다.[18]
주로 투심 패스트볼, 커브와 체인지업을 구사했는데 특유의 제구력과 맞물려 경기가 잘 풀리는 날에는 문자 그대로 컨트롤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손색이 없었다.

8 여담

  • 언론에서 불리는 공식 별명은 나이스 가이지만, 벤치 클리어링과 빈볼 등 경기 내적으로도 구설수가 많아서 이젠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없다(...).팬들은 보통은 그의 이름을 줄여서 서쟁이라고 부르고, 못해서 깔 땐 서재앙이라고 부른다. 진화(?)하면 서발라마가 된다.(…) 부상으로 로테이션을 거르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2009 시즌에는 서+부서지기 쉬운 물건이라는 배리에이션이 존재했다. 서티로폼, 서프심, 서수깡, 서쿠다스 등등. 서재앙에서 재앙(disaster)를 따서 디재스터 서, 서재스터(서재응+디재스터)라고도 불린다. 또, 한창 부진했을때 작가질을 한다고해서 서익스피어라고 불렸다. 하는 일이 없다고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로 불리우던 시절도 있었다. 뉴욕 메츠 시절이던 2003년 호성적을 거두고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뒤 겨울에 대단한 도전에 출연하는 등 방송활동을 좀 했다가 2004 시즌에 부진하면서 엔터서라는 별명도 얻었었다. 하지만 진짜로 본격적인 엔터질을 했던건 아니어서 몇 년 안가 사장된 별명.[19]

하지만 2010 시즌 들어 시즌 극초반 선발 투수들이 이닝을 못 먹고 두드려 맞는 등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에 반해 서재응은 안정된 투구를 연달아 펼쳤던 점으로 인해 디시인사이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선 잠시동안 무등예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재응 본인은 불교 신도다. 때문에 무등부처나 서가모니라는 별명을 미는 팬들도 있었으나 갸갤에선 무등예수로 확정.

  • 자녀를 셋이나 두어 꽤 유명한 정자왕이다. 딸 하나 아들 둘.
  • 잘생긴 얼굴에 비해 목소리가 가는 편이라 가끔 베컴과 비견되기도 한다.
  • SK만 만나면 날아다니는 피칭을 보여줘서 솩나쌩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 2011 시즌 도중에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김상훈을 대신해 KIA 타이거즈의 주장을 맡았었다.
  • 브렛 필이 입단한 이후에는 브렛 필과 함께 "베이비 페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 2012년 6월 14일 대 히어로즈 전에서 캐스터가 최희섭에게 광주일고 시절을 물어보았는데 서재응의 광주일고 최고참이 되면서 얼차려를 비롯한 모든 가혹행위를 막았다고 증언하였다. 오오 서재응 오오 그럼 법규형은 때리고다녔단 얘긴가
  • 2014 시즌후,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과 더불어 단체훈련금지로 인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규정은 원래 있었던 거긴 하지만 단체훈련을 하다 걸린 넥센이 한화와 김성근 때문에 그랬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20]
  •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인 탬파베이 레이스에 있었을 때, 웬 젊은 남자가 그에게 팀에 대해 어떤 거 겉냐고 물어보자 말단 직원이라 생각해 "처음에 왔을 때는 기분이 더러웠는데, 막상 와서 지내 보니 나름 괜찮다."라고 대답해 줬다. 이 젊은 남자는 2014년까지 템파베이의 단장 겸 부사장을 맡은 앤드류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서재응보다 1살 많은 젊은 단장이었기에 나온 해프닝.
  • 영혼의 배터리인 차일목과 마찬가지로 타어강을 전염시킨 주범 중 하나이다. 끼리끼리 논다
  • 선발 투수로 오랫동안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시즌도 10승을 달성하지 못했을 정도로 승운이 없기로 유명하다. 전성기였던 2003년 뉴욕 메츠 시절에도 어메이징한 팀타선 덕분에 9승에 그쳤으며 크게 활약한 2005년에도 후반기에 뒤늦게 콜업되는 바람에 8승에 그쳤다. 그후 WBC 휴유증과 잔부상으로 하락세에 빠지며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실질적인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2010년에도 시망한 타선과 불펜의 불질로 인해 9승을 기록하며 또 한번 10승에 실패한다.(...) 커리어 하이인 2012 시즌에는 2.59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1선발급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불펜의 불질로 또(...) 9승에 그치며 결국 윤석민상을 수상하고 만다. 그후 노쇠화와 부상으로인해 1군과 2군을 전전하며 예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 결국 2016년 은퇴하면서 10승의 꿈은 영원히 물거품이 되고 만다.
  • 20101101142153_6603.jpg
여성팬에게 야구공을 선물하는 훈훈한 모습 사실은 장난친 거고 경기 끝난 뒤 제대로 야구공을 줬다고 한다.
  1. 이 측면 투구 폼은 여러곳에서 서재응의 상징으로 쓰인다. 특히 부가 설명이 제구파 투수라면 100%다.
  2. I can't stop loving you~ 기아의 서재응~ 오오오 오오오~ 기아의 서재응~ 롯데 자이언츠 시절 김주찬의 응원가와 같았다.
  3. 종전기록은 선동열의 37이닝. 다만 구원등판을 포함한 기록은 선동열의 49⅓이닝으로, 이 기록까지 경신하는 데는 실패했다.
  4. 여담으로 처음에 계약금 100만달러를 제시했던 메츠 측에서 서재응의 부상을 알게되자 계약금을 후려쳤으나 서재응이 타팀으로 가겠다며 배짱을 부리자 135만 달러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5. 90⅓이닝 8승 2패 ERA 2.59 피안타율 0.251 피출루율 0.285 피장타율 0.383
  6. 여기서 1실점은 멕시코 대표이자 라쿠텐에서 활약한 루이스 알폰소 가르시아에게 맞은 홈런. 롯데와 한화에서 뛴 적이 있는 카림 가르시아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당시 멕시코 야구 국가대표팀에는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가 선발 라인업에만 무려 3명이 있었다.
  7. 이 트레이드는 서재응이 팀의 요청을 무시하고 WBC에 나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8. 이는 메츠시절 마이너와 메이져를 넘나들며 4년연속 20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05시즌 후반기의 호투와 WBC 출전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결국 구위하락과 주무기였던 체인지업의 위력감소로 이어지게되었다..
  9. KBS N 스포츠의 "나는 야구선수와 결혼했다" 7화에서 나왔다.
  10. 아니나 다를까, 라미레즈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염증으로 1달간 경기에 나오지 못하였다.
  11. 5회에는 이준호의 호수비의 도움을 받았다.
  12. 이날 영혼의 배터리인 김상훈이 2타점을 얻어내며 분투하기도 했다.
  13. 8회초 손영민이 장작을 쌓고 한승혁이 주자를 불러들이며 1실점, 9회초에 올라온 홍성민은 잘 던지다가 2아웃에서 오재일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맞았다.
  14. 노경은도 9월 30일 기준으로 33이닝 무실점으로 이 기록에 도전중이었다. 서재응은 "내가 기록을 못 깨더라도 노경은이 깨줄 것이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던졌다고.
  15. 전체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한 노경은이 규정이닝을 채운 토종 선발투수 중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16. 투수 땅볼을 1루로 보낼 때 토스를 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로 굴려서 송구를 했을 정도였다. 박재홍 해설위원도 서재응의 이런 투혼을 "가슴으로 던지고 있다"고 평했다.
  17. 어느 정도냐 하면 은퇴를 생각했었다는 기사에 하나같이 '왜 실천 안하냐'는 댓글이 달릴 정도...
  18. 2005년 당시 메츠 감독이었던 윌리 랜돌프가 굉장히 신뢰했다. 위에 메이저리그 경력부분에도 나오지만 시즌 초 출전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다가 시즌 후반에 올라와 11경기 동안 6승에 평균자책점 2.74를 기록했을 정도.
  19. 이 시기 야인생활하면서 가끔 인터뷰나 하던 김성근 감독이 젊은 투수 한명이 괜찮은 성적 올리더니 바람이 잔뜩 들어 방송국이나 들락거린다고 돌려 깠는데 지목만 안했다 뿐이지 서재응을 겨냥한 말이었다. 서재응이 SK와 김성근 감독에게 적개심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유가 이 발언을 들어서일 가능성이 있다.
  20. 한화는 선수협에 단체훈련이 가능한지 요청을 했다. 선수협은 규정상 안된다고 했고 한화는 이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