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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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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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네짐 역할 하는 분과 상당히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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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kt wiz의 투수!

kt wiz No.11
최대성(崔大城 / Dae-sung Choi)
생년월일1985년 5월 17일[1]
출신지부산광역시 영도구
학력동삼초 - 부산중 - 부산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4년 2차 2순위 지명(전체 9순위, 롯데)
소속팀롯데 자이언츠 (2004~2015.5.2)
kt wiz (2015.5.3~)
등장곡BOBBY - 연결고리 [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3번(2004~2005)
조성환(1999)최대성(2004~2005)김일엽(200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8번(2006)
이정동(2004~2005)최대성(2006)허준혁(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1번(2007~2008)
이정민(2005~2006)최대성(2007~2008)이정민(2009~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9번(2009)
최대성(2009)박시영(2010~201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0번(2012~2015.5.2)
이정동(2010~2011)최대성(2012~2015.5.2)조현우(2015.5.3~)
kt wiz 등번호 21번(2015.5.3~2015)
박세웅(2014~2015.5.2)최대성(2015.5.3~2015)이상화(2016~)
kt wiz 등번호 11번(2016~)
안승한(2014~2015)최대성(2016~)현재

1 소개

kt wiz 소속의 야구선수. 2000년대의 롯데 자이언츠 투수진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우완 파이어볼러로, 많은 롯데 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2 선수 커리어

2.1 데뷔 후 ~ 2011 시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단 당시 포수였다가 투수로 전향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부산고 시절 포수를 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전문 포수는 아니었다. 실제로 3학년 때 54 1/3이닝을 던져 1년 후배 이왕기(59 1/3이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3]


비공인 최고 구속 159Km를 찍었을 정도로 빠른 구속[4]을 지녔으나 컨트롤이 미칠듯이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또한 구속에 비해서 공이 좀 가볍다는 평가도 받고 있어서, 이를 일컫어 '최대성의 홈송구'라고 놀리기도 한다. 역시 포수출신 김인식은 그 점을 이용해 '최대성은 안 휘두르고 가만히 있으면 볼넷이다' 라며 까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 경기에서 증명해버렸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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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신인이었다. 그런데 이 시즌이 종료될 무렵 당시 현대 유니콘스김재박 감독은 35홈런 102타점을 찍은 A급 타자 용병 래리 서튼의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때 트레이드 카드로 쓸 생각이었는데,[6] 이 때 트레이드 카드로 부상한 선수가 최대성이었다. 당시 롯데는 투수 쪽은 그리 안 급해 보이지만 타격이 아쉽다는 여론이 팽배했던 상황이기에 누가 들으면 이 때 롯데 투수력이 좋은 줄 알겠다. 그래도 손민한이 있었기에 이 트레이드는 거의 성사 직전이었다고. 그러나 최대성이 야구월드컵에 출전하여 강속구를 뿌려대며 큰 가능성을 보이는 통에 롯데는 마음을 바꿔서 없던 일이 되었다.[7]

허나 2006년에도 별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신통찮은 성적으로 까이면서 롯데 방화 3인조의 이름을 이어 이왕기름넣을거 최대성능으로 가득염의 일원이 되어 폭풍까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2007년들어 반짝 활약을 펼치며 '최대성능을 이끌어냈다'라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반짝' 이었다는 게 좀 문제.

2007년 잠깐 잘 나가던 시절 한화와의 대결에서 구대성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신, 구대성이라 불리며 은근히 대결 구도를 이끌어가는 듯 했으나 실력차가 너무 나기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특유의 뻣뻣한 신체탓으로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았으며 결국 2009년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유연성이 부족하니 러닝과 스트레칭을 달고 살아야 했는데 구속에 눈이 멀어 자기 관리를 게을리했고, 그 체질에 전혀 맞지 않는 딱딱 끊어 던지는 투구폼도 치명타였다.

백인천노승욱를 부숴버리고[8] 양상문[9]임경완의 허리를 부러뜨리고[10] 미국에서 돌아온 송승준은 동계 훈련도 제대로 치르지 못해 몸이 만들어지지 않아 전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투수진에서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것도 문제.

2009년 11월 2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고, 2011년 시즌이 끝날 무렵 제대하였다.

2.2 2012 시즌

78승 투수의 위엄[11]

2011년 말 전역하여 2012년 스프링캠프에 참가, 중도귀국하면서 우려를 자아냈으나 2군 연습경기를 거쳐 시범경기 막판부터 다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최고구속 157km/h를 기록하며 재활이 성공적임을 입증했다. 하지만 과거를 알고 있는 팬들은 여전히 의문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는데...

4월 7일 개막전에서 경기 내내 불안하던 송승준이 팀이 1:3으로 앞선 6회초에 1사 2, 3루를 만들고 내려갔고, 이양기를 잡고 내려간 강영식의 뒤를 이어 2사 2, 3루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가 바로 최대성. 당연히 팬들은 "이 상황에서 최대성이라니?! 양감독 이게 무슨 소리요?"라며 절망했지...만,

연경흠을 상대로 초구부터 끝까지 제구가 잡힌 150km/h대 강속구[12]를 펑펑 뿌려대며 힘싸움에서 승리, 연경흠을 2루수 땅볼로 잡아내고 팀을 구원해냈다. 이 상황을 지켜본 롯빠들은 '내가 보고 있는 게 정말 최대성이 맞는거냐?' '제구가 되는 최대성이라니!'라며 우리도 오승환을 갖게 되었다며 꼴레발을 떨며 불타올랐다.

다음 이닝인 7회초에는 2사 후 안타를 2개나 맞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명우가 구원 등판한 후 강동우를 막아내고 이닝을 끝내면서 최대성은 이날 1이닝 25투구수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1,000일이 넘는 1군 등판에서 당당히 시즌 첫 홀드를 얻게되었다. 변화구 제구는 여전히 안 좋았지만 그래도 남은 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4월 8일 팀이 스코어 5:9로 앞서던 6회초 1사 상황에서 이명우 다음 투수로 올라왔다. 1이닝 동안 1피안타만을 맞으며 전날에 이어 무실점행진을 계속하였다. 이 안타도 먹힌 공이었는데 하필 중견수앞에 떨어지며 안타가 되었다. 설렁설렁 던져도 150이 넘게 찍혀서 롯데팬들은 환호를 질렀다. 마지막 타자를 변화구로 잡아내었다. 점수차 때문에 홀드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424 대첩 때는 롯데가 승기를 잡은 9회말에 등판. 3타자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155km/s는 던져야 안타를 안맞지!

4월 28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 경기에서 3:3 동점이던 8회초 1사에서 등판, 정성훈, 이병규를 공 하나씩 던져서 각각 우익수 플라이,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팀이 8회말에 2점을 뽑으며 3:5로 승리하여 최대성은 2007년 5월 15일 마산 두산전 이후 1,810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4일 문학에서의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스코어 3:3인 8회말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셰인 유먼의 다음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다. 최정이호준을 제구 되는 강속구로 타이밍을 전혀 못 맞추게 하며 모두 삼진으로 잡았는데, 그 다음 타자인 박재홍에게 노림수가 드러나 결승 투런포를 맞고 스코어를 3:5로 만들고 이재곤으로 교체되었다. 최대성은 이날 ⅔이닝 9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3:5로 패했다.

6월이 오며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 롯데 불펜의 한 축을 완전히 꿰차게 되었다.

8월 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300여일만에 세이브를 따냈다. 오지환을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박용택에게 안타를 맞긴 했으나 큰 이병규에게서 병살타를 유도해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날은 1이닝 3타자 8투구수 3타수 1피안타 무탈삼진 무실점 무자책점을 기록. 팀은 6:5로 승리했다.

9월 4일 기아전에 8회초 무사 1루 상황에 등판하여 나지완에게 몸에 맞는 볼을 하나 내주긴 했지만[13] 후속타자를 병살타와 유격수 라인드라이브로 잡아내며 홀드 추가.

9월 7일 한화전 7회초 1사 위기상황에 올라와 타자가 댄 기습번트를 향해 몸을 날리는 투혼을 보여주었다.(황재균의 호수비로 아웃) 그리고 장성호를 6구째 스탠딩삼진으로 잡아내고 포효하였다.여기서 바깥쪽 꽉 차는 마지막 공은 전광판에 159km가 찍히며 최대성의 공식 최고구속 기록을 경신했다. 이 날 기준 5승 16홀드. #

8월이 지난 시점에서 최대성의 5월은 성장통이었다는 평이 지배적. 8월 한 달 간 정말 미친듯이 굴렀고(무릎 부상을 달고서)위기상황에서 주자를 잡아내는 것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던 4월만 해도 주자가 나가면 불안했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으며,결정적으로 변화구 제구가 제법 된다. 상기한 일시적인 마무리 보직도 훌륭히 소화해낸 것까지 한 시즌 동안 실력이나 멘탈이나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긴 공백을 거쳐 복귀한 첫 해에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최대성이기에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선수 중 하나.

9월 24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이기던 9회말에 양승호 감독의 지시로 등판하였으나 긴장했던 탓인지 이승엽에게 볼넷만 주고 바로 김사율로 강판되었다. 팀은 1:2로 역전패.
이날 최대성의 기록은 0이닝 5투구수 1볼넷 1실점 1자책점.

최대성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승패, 홀드, 세이브 없이 3경기 2⅓이닝 3피안타 3볼넷 1피홈런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1.57을 기록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 스코어 5:4로 팀이 앞선 10회말에 뜬금없이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였는데 선두 타자 박정권에게 안타, 김강민에게 희생번트, 조인성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 3루의 위기를 자초하여 불대성 모드로 돌입하는 듯했으나, 최윤석을 희생삼진[14], 임훈을 초구에 좌익수 플라이로 잡고 이닝을 끝내며 포스트 시즌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날 최대성의 기록은 1이닝 18투구수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 세이브.

최대성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2⅓이닝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최대성은 2012년 포스트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4⅔이닝 7피안타 4볼넷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5.79, 1세이브를 기록했다.

2.2.1 2012 시즌 - 문제점

타고난 강견에서 뿜어져 나오는 높은 구속의 직구가 최대 강점이다. 더군다나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2007년에 비해 영점제구력도 어느정도 잡힌터라 4월에는 과거보다 더욱 좋은 활약을 하였다. 다만, 강력한 패스트볼을 뒷받침해줄 변화구가 조금 밋밋하고 변화구의 제구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으며 흔히들 '볼끝'이라 하는 구위가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지만, 4월의 투구 내용은 불펜 투수로써 1이닝 정도는 충분히 먹힐 수 있는 투구내용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다 도루 가능성이 있는 주자가 없을 때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2012 시즌 초 최대성의 투구폼은 전문 선수나 분석원이 아니더라도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크다. 주자가 없을 때나 만루 상황이나 3루에만 주자가 있을 때처럼 주자가 도루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경우에는 와인드업 자세에서 왼발을 들고 힘을 모으는 동작이 긴 편이다. 그러나 도루할 가능성이 높은 주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 동작을 대폭 생략하며 빨리 던지려고 하며, 제구력이 시망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상당히 떨어져버린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피안타율과 볼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 타자가 출루하면 2007시즌 말기 버전으로 퇴화

롯데 스텝들도 이를 잘 아는지, 주자가 있을 경우에는 올리지 않으며 안타를 맞는 등 타자가 출루할 경우에는 어지간하면 교체를 해주었다. 여유 불펜이 널널할 때라면 모르겠지만, 기나긴 정규리그동안 늘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는데다 항상 불안했던 것이 롯데의 불펜[15]인 탓에 한시라도 빨리 교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5월 들어선 결정적인 순간때마다 직구를 통타당하며 홈런을 양산했다. 결국 롯데의 5월 침체에도 한몫했지만 과부하에 시달리는 롯데 불펜 사정상 딱히 대안도 없기에 계속해서 신뢰를 받으며 등판하게 되었다. 사실상 셋업맨의 위치를 수행중이기에 성적의 안정화가 필수적이었는데, 등판하면서 주자 관리 능력은 차차 개선되어 5월 이후에는 상기한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2.3 2013 시즌

2012년의 좋은 활약으로 2013 시즌에도 필승조로 낙점받았다. 하지만 팔꿈치에 뼛조각이 돌아다녀서인지 시즌 초에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팬들은 하루빨리 수술받기를 바랐지만, 본인은 어차피 투수라면 달고 다니는 고질병이라 괜찮다고 하였다. 마 함 해보입시더

6월 15일 경기 도중 3볼을 던지고 통증으로 인해서인지 자진강판되었다.

그리고 6월 18일 결국 우측 팔꿈치 수술 결정을 했다고한다. 수술 날짜는 6월 25일.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수술 이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4 2014 시즌

김시진 감독이 김성배와 함께 더블 스토퍼 체제를 이룰 것이라고 밝혔다. 좌타에 부담감이 있다는 김성배를 대신해 좌타를 막는 클로저가 될 듯 하다.

2월 16일 자체 청백전에서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구속 151km/h를 기록하며 수술 성공을 알렸다.

7월 5일 SK와의 경기에서 7:5로 뒤진 9회초에 등판하여 혼자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냈지만, 나머지 세타자를 삼진으로 잡아 이닝을 끝내고 팀이 9회말에 역전승을 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희망고문도 이런 희망고문이 없다

2.5 2015 시즌

5월 2일 kt wiz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별 활약을 못했고 이후 6월 17일 조범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팔꿈치 통증으로 다시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내년 복귀가 목표라고. 하지만 13년도에 같은 부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서 주위에서 우려를 하고있다.

2.6 2016 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에 등판해 홍성흔에게 홈런을 맞고 0.1이닝 2실점 ERA 54.00으로 화끈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3 플레이 스타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제구 안되는 우완 파이어볼러".

공끝이 좋지 않다는 평이 있지만 150km중반대 이상의 패스트볼을 지속적으로 뿌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제구가 잘 되지 않는다. 제구가 되는 경우에도 코너웍 같은 건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스트라이크존에 집어넣기 급급한 수준. 커맨드가 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볼카운트 싸움이 불리해지거나 주자가 있을 경우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에 넣는 것 조차 힘들어 한다.

슬라이더를 던지는데 잘 긁히는 날은 의외로 위력적인 움직임과 스피드를 보여준다. 문제는 그렇게 긁히는 날이 드물다는 것. 역시 제구는 잘 안된다.

이 선수의 가장 큰 문제라면 제구 안되는 파이어볼러로서 보낸 세월이 10년을 넘어간다는 것. 하지만 패스트볼의 위력 때문에 꾸준히 기회를 얻고 있고 몸만 건강하다면 1군 불펜진의 한 자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얻는 편이기도 하다. 나이를 감안할 때 2015년의 수술 후 재활여부+제구잡기가 향후 선수 생활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3.1 야구 외

사직아재들에게 몹시 인기가 많아서 아재들의 아이돌로 불린다. 최대성이 사직에서 미니쿠페 타고 등장하면 아재들의 웅장한 함성소리가 사직의 하늘을 메운다 카더라. 한동안 부진할 때에도 욕을 하며 격하게 응원하는 아재들이 많아서욕데레 최대성 얼빠의 8할은 아재 팬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부산고등학교 출신 성골이라는 점과 롯데에 몇 없는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이기 때문에 아재들의 편애가 심한 듯하다. 군에 가기 전 등번호는 11번을 달고 있었는데[16] 이 때문에 11번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던 故 최동원 감독이 당시 11번의 주인인 최대성이 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현 등번호인 30번은 삼진을 많이 잡겠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자세히 아시는 분 추가바람.

연고지가 부산광역시여서 선수단 내 불교인구가 높아 "불교 자이언츠"라 불리는 롯데에 몇 없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17] 현재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회아가씨를 만나고 있는 듯.성격도 서글서글하고 팬들과 후배 선수들에게 평판도 좋다.

강속구 투수인 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소녀감성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예전 싸이 캡쳐나 몇몇 짤방, 결정적으로 트위터에서의 오그라드는 대사와 여고생같은 말투 덕분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샤르륵~"...13시즌에는 이재곤과 함께 찍은 오그라드는 사진+하트가 붙은 트윗으로 다시 한 번 팬들을 뒤집어지게 했다.빨리보자 내동생♥(...) 여담으로 그는 외동아들이다.

군 복무를 법원공익으로 했는데 법원에서 모든 종류의 싸움을 직접 옆에서 볼 수 있어서 멘탈 강화는 물론,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게 됐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했다.

프로야구매니저에서도 까이는데 3코스트 레어 주제에 구속 스텟이 80이 넘었지만 좋지 못한 성적으로 권혁 레어와 함께 구속 쓰레기설의 증명에 일조했다. 그러나 07 최대성은 5코스트치고 스탯은 상당히 좋게 나오고 유학도 가능해서 진리카드 중 하나로 여겨진다. 단일 년도덱이 생긴 이후 코스트 대비 좋은 성능을 내주는 소위 4대 국걸국민덱중 하나인 07 롯데덱 불펜의 중심을 맡으면서 존재감도 더 커진 편.

이후 2012년의 좋은 활약으로, 능력치 좋은 중고코 최대성 카드들이 등장하면서 입지가 더 나아졌다.

KIA 타이거즈김주형과 비슷하게 생겼다.[18]도플갱어 오영종과도 많이 닮았다.

4 역대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4롯데 자이언츠66⅓00002.84832
20051114⅔01009.202598
2006233013106.60432027
20074157⅓32072.67393153
20082100009.00130
20091군 기록 없음
2010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1
20127167⅔881173.59652950
2013139⅓00015.791369
20144145⅓22012.58412843
연도소속팀경기이닝세이브홀드평균자책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15kt wiz82⅔000013.50470
-통산216233⅓14162264.11239138192

5 관련 항목

  1. 윤희상과 생년월일이 같다.
  2. 최대성의 원 등장곡인 친구의 자작곡은, 상당히 긴장감있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12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받은 곡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네이버에서 최대성 등장음악으로 검색하면 자동완성이 있을 정도.
  3. 반면 장원준은 3학년 때 단 10이닝을 던져 1학년(43 1/3이닝), 2학년(25 2/3이닝) 때보다도 훨씬 적었다.
  4. 공식적으로는 158Km를 기록했으며, 리즈가 2011년 160km를 찍기 전까지 엄정욱과 함께 공식경기 최고 구속 기록을 갖고 있었다. 연습경기에서는 160km를 찍은 적도 있다고 한다.
  5. 이에 대해 김인식 감독은 그 발언에 오해가 있다고 하여 김 감독은 롯데전에서 경기 전에 최대성을 불러 좋게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6. 당시 현대는 외국인 선수를 보는 안목이 대단히 탁월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진출 후 실패한 클리프 브룸바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었다.
  7. 참고로 서튼은 그 후 2년동안 폭망... 만약 트레이드 했으면 롯데가 빅 엿을 먹을 뻔 했다.
  8. 어떻게 보면 백인천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 중 하나다. 투수진 연쇄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으니....
  9. 불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이상목을 영입하고 손민한을 마무리로 돌렸지만 실패했다.
  10. 양상문 감독 시절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84구를 던진 적도 있다.
  11. 이 짤은 2013시즌 시범경기에 나온건데, 71경기 8승8패1S17H라고 작성한 성적의 텍스트가 너무 많아 경기수의 텍스트를 덮어버린 것이다.
  12. 최고 155km/h가 찍혔다.
  13. 나지완은 발끈하며 식빵을 구웠지만 최대성이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벤치클리어링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지완은 9월 2일 한화전에서도 2연속으로 공을 맞은 바 있다.
  14. 최윤석이 삼진을 당함과 동시에 1루 대주자 김성현이 도루를 성공했다.
  15. 2012년 4월 한정으로 그 문제의 불펜이 믿을 수 없는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이 페이스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16. 이후 이정민이 잠시 채갔다가 제 주인을 찾아갔다.
  17. 갸갤러의 친구가 부산에 사는 꼴빠였는데,교회에서 최대성을 만나 선물을 전해주자 고맙다는 인사와 오늘 교회에 점심으로 소고기 무국이 나온다며 먹고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
  18. 게다가 최대성과 김주형의 나이는 1985년생으로 나이까지 동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