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부터 다시 볼 수 있는 한신 타이거스 시절.
한신 타이거스 No.18 | |
후지카와 큐지 (藤川球児, Kyuji Fujikawa) | |
생년월일 | 1980년 7월 21일 |
국적 | 일본 |
출신지 | 고치 현 고치 시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98년 고교생 드래프트 1순위 |
소속팀 | 한신 타이거스 (1999~2012) 시카고 컵스 (2013~2014) 텍사스 레인저스 (2015) 고치 파이팅 독스 (2015) 한신 타이거스 (2016~) |
목차
1 개요
일본의 대표적인 마무리 투수였으며 150km/h 초중반대를 찍는 강력한 스터프가 특징이던 투수. 한국에도 야구소년이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름의 한자[1] 때문인데, 저런 이름을 지은 이유는 아버지가 아마 야구팀 투수인데 그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다음날 태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붙였다고 한다(...). 지금 와서는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이 되었다.
2 일본프로야구 시절
1998년 드래프트 1위로 한신 타이거스 입단. 이른바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대로, 원래는 선발투수 자원으로 입단하였고 애초부터 체격이 좋은 편이라 구단에서도 그렇게 기대를 한 모양이지만, 초기의 후지카와는 기대에 대단히 못 미치는 평범한 신인이였다. 입단 당시 최고 구속도 145km/h 사실 신인이 저정도 던지면 대단한거긴 하지만 지금 모습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평범한 구속이다.
본격적으로 1군에 정착한건 대략 2002년. 그러나 이때부터 2004년까지는 성적이 매우 저조했다.
2004년 초반까지는 1, 2군을 왔다갔다 했는데 성적도 성적이지만 이 시절 2군 코치인 야마구치 타카시[2] 에게 본격적인 투구폼 개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한큐 브레이브스 황금기를 이끌던 속구파 투수였던 야마구치는 후지카와의 폼에 쓸 데 없는 부분이 많고 릴리스 포인트가 너무 뒤인것을 발견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한 것. [3] [4] 원래부터 컨트롤은 좋은 편이였고 구속만 따라온다면 완벽하다고 본 그는 원래 선발자원인 후지카와를 중간계투로 전향 시키고 1~2이닝 특화형 투수로 길러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 후지카와가 던지는 최고속도 156km/h의 강속구이다. 2004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중계진의 한축을 담당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개화한 후지카와는 2005년 대폭발. 한신의 필승조 JFK(한신)[5]의 일원으로서 7승 1패 1세이브 46홀드 방어율 1.36의 후덜덜한 성적을 찍으며 일약 일본 최고의 중계투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무려 80시합 등판으로 일본 투수 등판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최우수 중계투수 타이틀까지 덤으로 거머쥔다.
2006년에는 원래 마무리 투수였던 쿠보타 토모유키의 부상시기에 마무리 투수 땜빵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후 한신의 마무리 투수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해 기록한 스탯은 무려 7승 무패 17세이브 30홀드 방어율 0.68 거기다 79이닝동안 탈삼진 122개의 미쳤다고 밖에 할말이 없는 맛간 스탯을 찍어주셨다.
그리고 2008년 마무리 투수로 전향한지 3년만에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하여 명실공히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로 성장하였다.
2010 시즌엔 세이브 28개로 세이브 부분 4위 방어율 2.01으로 무난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요미우리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2차전 경기에서 8회초 1점차 상황에 등판해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아놓고 다음타자인 가메이에게 볼넷, 오가사와라에게 2루타, 라미레스에게 2타점적시타를 맞으면서 퐈이야!(...) 덕분에 한신은 가을야구를 광탈하게 되었다. 마무리가 블론세이브 하는 거야 피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8월 이후로 페이스가 떨어지며, 제구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2011 시즌엔 통산 100홀드를 기록해 사상 최초로 100홀드-100세이브라는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4년만에 40세이브 고지에 올라 최종 41세이브로 통산 2번째 세이브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해 FA자격을 취득했지만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한신에 잔류했다.
2012 시즌엔 48경기에 나와 24세이브 47.2이닝 58탈삼진을 기록했으며 해외 FA자격을 취득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3 메이저리그 진출
2012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얻어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으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케빈 타워스 단장과 면담을 가지는 등, 여러 팀과 접촉했다.
그리고 시카고 컵스와의 2년 $9.5M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3년차에 컵스가 $5.5M의 클럽옵션을 가지고 있으며 옵션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500K의 바이아웃을 지불한다.
3.1 2013 시즌
4월 1일(현지시각), 피츠버그와의 원정경기에서 3:1로 리드중이던 9회말 2사 주자 1,2루 위기상황에 등판하여 공 2개로 마지막 타자를 외야플라이 처리하며 첫경기에서 첫 세이브를 기록하는 좋은 출발을 보였다.
그리고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카를로스 마몰이 부진하자 개막 일주일만에 마무리 자리를 따냈지만 후지카와 본인도 막장투를 선보였고, 15일자 DL에 올랐다. 하락한 패스트볼 구위론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제압하기 힘든 모양새. 신시내티 레즈전에서는 추신수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팔꿈치에다 패스트볼을 작렬하며 일부 팬들에게 제구 막장이면 볼넷이나 줄 것이지 왜 애꿎은 추신수를 때리냐(...)며 비난받기도 했다. 그리고 5월 말 토미 존 서저리를 요하는 부상을 당했음이 알려졌다. 컵스와 일본인 선수의 악연은 계속 이어지는 듯.
3.2 2014 시즌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지 약 1년 만인 8월 6일 콜로라도 로키스전에서 복귀, 1이닝을 몸에 맞는 공 하나를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았다.
시즌이 끝나고 5.5M의 클럽옵션 사용이 거부되어 50만불의 바이아웃을 받고 FA로 풀리게 되었다.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1M의 계약을 체결했다. 다르빗슈 유와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서로 같은 팀에서 만나게 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듯 하다. 성적을 떠나서 다르빗슈 말동무 역할은 충실히 할듯
시즌 이후 논텐더로 풀렸을때 발과 허리에 잦은 통증으로 은퇴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3.3 2015 시즌
시범경기에서 컵스와의 경기에서 5실점을 하는등 부진하였으며 사타구니 통증으로 시즌초에 재활을 하였다.
2015년 5월 15일(한국시간) 캔자스시티와의 홈경기에서 3-6으로 뒤진 8회에 등판하여 1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하지만 그 다음 클리블랜드전에서는 5회 2사 후 구원등판해 ⅔이닝 동안 3실점했다. 2경기 평균자책점은 16.20
5월 18일(한국시간) 40인 로스터에서 제외되며 지명할당되었다. 친정팀인 한신과 라쿠텐이 영입을 계획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현재는 일본에 귀국했으며 한신이 영입에 나선걸로 알려졌다. 현재 몸상태로는 연투가 어려워 선발로 영입을 계획중이다.
6월 1일 친정 한신 타이거즈도 다른 일본프로야구팀도 아닌 독립리그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의 고치 파이팅 독스 라는 팀에 입단하였다. 일단은 고치현 출신인만큼 고향팀에서 뛴다는 의미를 두는 듯.#
11월 14일 결국 한신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등번호는 예전 번호인 22번이 아닌, 18번.
현재 가네모토 도모아키 감독은 선발 투수로 기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승환이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 선발로 쓰려는 듯하다. 하지만 칩승환은 관조로 가버렸다.
4 일본프로야구 복귀 후
4.1 2016 시즌
2016년부터 선발 투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연투는 힘든 모양.
시범경기에서는 3월 6일 요미우리전에 첫 등판을 마쳤으며 그 이후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3월 27일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NPB복귀 이후 첫 공식경기 등판. 하지만 5이닝 4실점으로 경기내용은 좋지 못했다.
4월 3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의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2003년 이후 4580일 만의 선발승을 기록하며 시즌 첫 선발승을 따냈다.
4월 1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14년만의 고시엔 구장 선발등판에서 4.1이닝 7실점으로 부진했다. 후지카와의 14년만의 선발등판겸 2012년 이후 4년만의 등판을 보기 위해 4만여명의 관중이 모였으나 직구의 구속이 140Km 초반대에 머무르며 투구수가 조금 많아지더니 4회부터 눈에 띄게 볼이 높아졌고 5회에는 연속 5안타를 맞으며 결국 강판당하고 말았다.
4월 14일 2군에 내려가지 않고 1군에서 컨디션 조절을 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을 조건으로 1군 선수등록에서 빠지게 되었다. 무너진 투구 밸런스와 잃어버린 직구의 구위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듯 하다.
5월까지의 성적이 5경기 출장 1승 2패 방어율 6.12로 매우 좋지 않은 편 이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2군 경기에도 출장했었지만 선발로서는 힘들다고 판단하여 5월 말 부터 구원투수로 다시 전향하여 마운드에 오를 것 같다.
5 피칭 스타일
후지카와의 투구 스타일은 비율상 70%정도를 직구로 채우고 여기에 완급조절 떡밥용인 포크볼과 커브를 섞어준다. 다만 투구폼의 변화 및 구위가 떨어진 2011시즌 이후에는 포크볼 구사율이 30%로 늘어나며 직구와 포크볼의 투피치 피쳐로 변모하였다.
아무튼 과거 전성기 시절의 이러한 직구에 편중된 피칭이 잘 먹혔던 이유는 2010시즌 기준 최고 156km/h, 평속 150km/h의 빠른 구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이 가진 노하우와 원래부터 뛰어난 컨트롤을 살린 투구법에 있다. 일본 방송쪽에서 후지카와의 직구를 연구한 프로그램에 따르면 우선 후지카와의 직구는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다른 투수들에 비해 살짝 위로 솟아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후지카와의 공이 일반 투수 평균의 1.3배가 넘는 다회전구이며 [6] 회전축의 각도도 매우 적기 때문에 볼의 궤적이 중력에 의해 떨어지지 않고 거의 직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이었다.[7]. 때문에 실제 상대해보면 더 빨라보이고 보통 투수의 직구보다 훨씬 위에서 날아온다고 한다. 이 부분은 후지카와 큐지 - 직구라는 이름의 마구라는 일본 다큐멘터리에서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
거창한 설명이 싫다면 한마디로 직구 구위가 킹왕짱이라 그렇다. 오승환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2009~2012시즌 중 후지카와의 직구 비율 최대치는 2010시즌의 74.8%였고, 2014시즌 오승환의 직구 비율은 70.79%였다.
하지만 2010년 후반부터 종종 과거의 투구폼으로 회귀가 시작되더니 2011년 이후로는 전성기 시절과 하체부분에서 아마추어가 봐도 많은 차이가 날 정도로 투구폼이 변화하면서[8] 직구의 구위가 상당히 줄어들어버렸다. 전성기시절의 후지카와가 공을 놓는 포인트와 지금의 포인트를 비교해보면 위아래로는 5.5피트가량에서 형성이 되는 것은 비슷하지만 좌우의 변화가 1~1.5피트정도의 포인트에서 릴리즈되던 볼이 2피트정도로 약 한발가량 멀어진 모습이 관찰이 된다. 이로 인하여 스핀앵글도 자연스레 바뀌었는데 과거 4~7도 가량의 차이를 보이며 약 184~7가량으로 형성이 되던 스핀앵글이 현재는 약 195~205도 사이에서 형성이 된다. 약 10~20도가량 차이가 나게 되었다라는 이야기인데, 후지카와의 솟아오르는 듯한 직구는 다회전의 영향도 있었지만 스핀앵글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 했다.[9] 앵글이 멀어진 만큼 대신에 호리젠탈 무브먼트는 -1에서 -4정도로 약간 늘긴 했지만 대신에 거의 직선에 가깝다라고 여겨지던 버티컬 무브먼트가 약 4인치가량 상당히 감소하게 되었고 평속도 140초중반대로 떨어졌으며 여전히 2300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드문 더러운 회전속도를 자랑하고는 있지만 과거만큼의 회전속도는 아니기에 예전만큼의 위력적인 직구는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대신 낙폭이나 좌우변화는 역시나 크지 않지만 후지카와가 던지는 직구에 비하여 약 9인치정도 떨어지는 포크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 중. 이 포크볼에 의한 헛스윙율이 상당히 높은데다가 좌우변화가 직구와 거의 차이가 없기에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직구와 속도도 약 15km 정도 차이나기에 타이밍 빼앗는데도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다.
그리고 제구력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보통 후지카와의 경우 대체로 '직구의 구위'쪽에 주목을 많이 하는 편 이지만, 투구추적을 해 보면 커브의 딜리버리는 조금 불안정한 감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릴리즈포인트가 거의 일정하다라고 할 정도로 딜리버리 컨트롤이 매우 뛰어난 투수. 보통 투수들의 경우 늦게 배운 구종 혹은 자신이 잘 던지지 않은 서드피치같은 경우 조금씩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지만 후지카와의 경우 잘 던지지 않는 커브조차도 릴리즈포인트가 위아래 그리고 양 옆 으로 1피트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만큼 투구폼이 상당히 안정되어있다.[10] 게다가 직구로 유명한 투수답게 변화구의 경우 스핀앵글이 약간 불안정하지만 직구의 경우 스핀앵글이 거의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직구에 한정한다면 일본내에서 후지카와보다 안정적으로 던지는 투수도 드물정도라고 한다.
6 큰경기 울렁증
이와세 히토키나 G.G.사토, 아베 신노스케의 고마워요 시리즈에 묻혀 잘 언급되지는 않는데, 은근히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수호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2006 WBC 대회 8강 리그에서는 이종범에게 2타점 결승타를 얻어맞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에서는 세번째 투수로 한국전에 등판. 이대호, 고영민, 이진영이 간단하게 공략해서 동점타를 뽑아냈다.
2009년 WBC대회
WBC 2회 대회 때 준결승, 결승에서 마무리 투수가 올라가야 할 상황에서 하라 타츠노리 감독이 정작 마무리로 데려간 후지카와는 캐무시하고 선발 투수로 데려갔던 다르빗슈 유를 올렸다. 이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차후 국가대표로 나오지 않겠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후지카와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런 보도를 완전 부정했다.
국내에서도 정규시즌에서는 리그를 씹어먹다 포스트시즌만 가면 얻어터지는 일이 잦았는데,
1. 2005년 시즌성적 1.36 허나 PO성적 9.00
2. 2008년 시즌성적 0.67. 거기에 시즌 1패는 이병규에게 얻어맞은 끝내기 홈런 밖에 없었지만[11], PO성적 6.00에 타이론 우즈에게 끝내기 홈런을 허용해 팀의 광탈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3. 2010년 시즌성적 2.01 PO성적 9.00, 다만 이 시즌은 시즌 후반부터 체력 문제로 연일 퐈이야[12]하던터라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시즌 성적은 낮은데 통산 클라이맥스 시리즈 방어율이 7.88이란 엽기적인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동일기간인 2005 - 2010시즌까지의 통합방어율은 1.26이다. 시즌에는 끝판왕 포스가 철철 넘치는데 이상할 정도로 클라이막스 시리즈와 국제전에서만 두드려 맞는 것을 보면 빅게임에 대한 울렁증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트시즌에서의 나쁜 성적은 정규시즌 중의 혹사로 인해 체력이 떨어져서 생긴 문제라는 견해가 있다.
또 한신 타이거스에서 13년간 활약한 포수 야노 아키히로의 은퇴식이 예정된 경기에서 9회 2아웃을 잡아놓으면 대기명단에 있던 야노 선수가 포수마스크를 쓰고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팀의 3:1 리드상황을 지키지 못하는 3점 홈런을 맞고 본의 아니게 대선배의 은퇴식을 망쳐버린 일도 있었다.[13]
그의 백넘버 후임인 갬블러오승환은 큰 경기에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 센트럴리그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숙적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업셋시키면서 클라이막스 시리즈 MVP를 먹었다.
7 이모저모
- 오승환의 아시아 최다 세이브 타이틀에 도전하는 것이 본인의 목표라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로 2007년 46세이브를 기록하며 기록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 히로스에 료코와는 중학교 동창인데 후지카와에게 못생겼다고 엄청 갈궜다고 한다..(..) 그래도 한신에 입단할때 격려편지를 보내는 등 나름의 친분은 있었는 듯.
- 테마송과 함께 등장신. 화면에 나온 여성은 그냥 팬이 아니라 이 테마곡을 부른 LINDBERG의 보컬 와타세 마키로, 자신의 노래를 테마송으로 써주는것에 대해 후지카와에게 감사하다고 개인적으로 싱글 CD를 전달한다던가 코시엔에 시합을 보러 가기도 했다고 한다..
- 2007년 9월 경기때 당시 요미우리 소속이던 이승엽의 타석때 첫구를 백네트로 던지면서 고의성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고 이때 이승엽도 상당히 벙쪘었던듯. 그래서인지 그후 만나서 대담을 나눴을때 후지카와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하자 이승엽이 "백네트에 공을 던진 선수로 기억하지^^" 라고 화답해줬다. 예상대로 그건 고의가 맞기는 했는데 이승엽한테 화가 난것이 아닌 당시 타임을 받아준 심판때문에 투구동작을 멈추다가 부상 당할뻔 해서 재차 초구를 던질때 그렇게 했다고 한다.(...)
- 2010년 같은 성의 후지카와 슌스케가 입단하면서 한동안 이름이 후지카와 큐(藤川球)까지 쓰였다가[15] 계약시 본인의 강한 요구에 따라 큐지가 후지카와(藤川)로 슌스케가 후지카와 슌(藤川俊)까지 표기되는 것 으로 일단락되는 듯 하였으나 스포츠기사에서는 오히려 큐지가 후지카와 큐(藤川球) 혹은 큐지(球児)로 표기가 되었고 슌스케가 후지카와(藤川)로 표기가 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다행이 2011시즌부터 슌스케가 등록명을 슌스케(俊介)로 바꾸면서 일단락 된 듯.
- 한신의 등번호 22번은 원래 '미스터 타이거스' 타부치 코이치를 필두로 포수들이 착용했던 번호였지만, 후지카와의 맹활약으로 현대 한신 팬들에게는 마무리 투수의 등번호로 주로 인식되고 있다. 그 등번호를 이어받은 게 오승환이었고, 후지카와가 쌓은 등번호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블론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2000 | 한신 타이거즈 | 19 | 0 | 0 | 0 | - | - | 4.76 | 25 | 21 | 25 | 22⅔ |
2002 | 12 | 1 | 5 | 0 | - | - | 3.71 | 56 | 30 | 64 | 68 | |
2003 | 17 | 1 | 1 | 0 | - | - | 3.38 | 28 | 13 | 19 | 29⅓ | |
2004 | 26 | 2 | 0 | 0 | - | - | 2.61 | 26 | 11 | 35 | 31 | |
2005 | 80 | 7 | 1 | 1 | 46 | - | 1.36 | 57 | 21 | 136 | 92⅓ | |
2006 | 63 | 5 | 0 | 17 | 30 | - | 0.68 | 46 | 24 | 122 | 79⅓ | |
2007 | 71 | 5 | 5 | 46 | 6 | - | 1.63 | 50 | 22 | 115 | 83 | |
2008 | 63 | 8 | 1 | 38 | 5 | - | 0.67 | 34 | 16 | 90 | 67⅔ | |
2009 | 49 | 5 | 3 | 25 | 3 | - | 1.25 | 32 | 17 | 86 | 57⅔ | |
2010 | 58 | 3 | 4 | 28 | 5 | - | 2.01 | 47 | 22 | 81 | 62⅔ | |
2011 | 56 | 3 | 3 | 41 | 5 | - | 1.24 | 25 | 14 | 50 | 51 | |
2012 | 48 | 2 | 2 | 24 | 2 | - | 1.32 | 34 | 16 | 58 | 47⅔ | |
통산 | 562 | 42 | 25 | 220 | 102 | - | 1.77 | 460 | 228 | 914 | 692⅓ | |
년도 | 소속팀 | 경기수 | 승 | 패 | 세 | 홀 | 블론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이닝 |
2013 | 시카고 컵스 | 12 | 1 | 1 | 0 | 1 | 1 | 5.25 | 11 | 2 | 14 | 12 |
2014 | 15 | 0 | 0 | 0 | 0 | 0 | 4.85 | 18 | 8 | 17 | 13 | |
통산 | 27 | 1 | 1 | 0 | 1 | 1 | 5.04 | 29 | 10 | 31 | 25 |
- ↑ 공 구(球)자에 아이 아(児)자
- ↑ 일본프로야구 최다안타(3,085개) 기록 보유자인 장훈에게 3,000안타가 되는 홈런을 허용했다.
허용투수 - ↑ 유투브에 후지카와의 수정 전/후 투구폼이 나오는데, 공 릴리스 시 오른 쪽 다리가 일찍 구부려져 낮은 점을 발견하여 다리를 피게 해 릴리스 포인트를 높이게 한 것이 적중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잘 안 알려졌으나 이 이후에도 2010년 후반기등 종종 이 시절의 폼으로 회귀하는 일이 있었고 그럴 때 마다 구위가 여지없이 하락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 ↑ 같은 케이스는 아니지만 비슷한 일로 인해 구위를 잃어버렸던 키쿠치 유세이의 경우도 비슷한 교정으로 구위를 되찾았다.
- ↑ 제프 윌리엄스-후지카와 큐지-쿠보타 토모유키.
- ↑ 일반적인 아시아 선수들의 공 회전속도는 1900대에서 형성이 되는 반면에 후지카와의 전성기시절 회전속도는 거의 평균 2400~2500에 가까웠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미친 회전수로 꼽히는 우에하라 코지가 평균 약 2300~2400대에서 형성이 되며 메이저리그 최고속으로 꼽히는 아롤디스 채프먼정도 되야 회전속도가 2400~2500대에서 형성이 된다. 회전속도만 놓고 보면 세계최고수준이였다는 이야기다.
- ↑ 이것은 과거의 오승환의 직구가 위력적인 이유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오승환의 직구 또한 엄청난 회전수와 적은 회전축 각도가 구위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것은 2012년에 스포츠 운동화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 ↑ 일본 내 피칭 인스트럭터 및 코치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과거처럼 하체가 주저앉으면서 무게중심이 오른쪽으로 많이 쏠리는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이가 나이인지라 투수의 경우 나이를 먹으면 팔 각도가 내려오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노화현상 혹은 혹사로 인한 영향 보는 측면도 없지않아 있다.
- ↑ 일반적으로 직구의 경우 손가락으로 찍어누르는 방향으로 휘어지게 되어있다. 과거의 후지카와의 경우 수평을 180도라고 봤을때 약 4~7도 사이이내에서 아래로 찍어 눌렀기에 좌우의 변화는 적었지만 위로 솟아오르려는 힘이 강한 구질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따라서 후지카와의 솟아오르는 직구는 스핀앵글의 영향이 상당히 강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수평에서 20도정도 벗어난 위치에서 누르기 떄문에 공도 자연스럽게 20도 정도 대각선으로 휘어지려고 하게 된다.
- ↑ 흔히 투구폼 겹쳐놓기 움짤로 유명한 다르빗슈 유가 위아래로 1피트 그리고 양 옆으로 2피트 이내로 딜리버리 컨트롤을 하는 투수라는 걸 떠올려보면 굉장히 딜리버리 컨트롤이 뛰어난 선수라는 이야기다.
- ↑ 거대한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라뱅쓰리런의 시초가 되었으니까... 고마워요 후지까와?
- ↑ 시즌 중반까지 1.30이던 방어율이 시즌 종료때는 2.01까지 수직상승했다.
- ↑ 경기 영상. 상대는 당시 최약체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홈런을 친 선수는 무라타 슈이치였다. 현지 해설자가 홈런 허용 순간 본인도 모르게 "날아가지마!" 를 외치는 장면이 압권.
- ↑ 노래가 나오면 한신팬들은 메가폰을 들고 좌우로 박자를 맞춰 떼창을 불렀는데 보통 마무리투수들이 빠른 템포의 노래를 사용하는 것 과는 다르게 조금 독특한 풍경. 덕분에 2007년에 후지카와의 사진을 재킷에 담아서 야구소년의 노래라는 이름으로 재발매 되었었다.
- ↑ 형제가 고시엔에 배터리로 출전했을 당시 형제 구분을 위해서 쓰던 등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