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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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무토 케이지, 故하시모토 신야, 쵸노 마사히로

闘魂三銃士
1984년 데뷔한 신일본프로레슬링 프로레슬러 쵸노 마사히로, 무토 케이지,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하시모토 신야 세 선수가 결성한 스테이블, 혹은 이 세 선수를 뭉뚱그려 부르는 호칭.
라이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4천왕[1]과 함께 일본 프로레슬링 2세대, 즉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세대를 넘어서는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신일본과 WCW등을 넘나들며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전일본의 4천왕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을 통해 카와다 토시아키를 뺀 나머지 멤버가 NOAH로 이탈한 것처럼, 투혼 삼총사도 21세기 들어 무토 케이지가 신일본의 스트롱스타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전일본으로 완전 이적, 故 하시모토 신야가 ZERO-ONE이라는 신 단체를 창단해 독립하면서 흩어졌고, 이후 신일본 링에서 세 선수가 동시에 선 흥행이 없었다. 심지어 신일본의 전성기를 이끈 투혼삼총사가 2005년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그를 위해 무토,쵸노,하시모토가 다시 신일본의 링에 서는 흥행을 준비중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질질 늘어졌고 갑작스런 하시모토의 사망으로 결국 영원히 열리지 못하게 되었다.

하시모토의 사망이후 신일본은 차세대 주자를 밀기 위해 이른바 신 투혼삼총사 - 타나하시 히로시, 나카무라 신스케, 시바타 카츠요리 - 가 결성되었으나, 시바타가 신일본을 탈단하고 외도를 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끝났다.[2] 고토 히로키가 성장한 이후에는 고토를 시바타 대신 넣어 신 투혼삼총사로 하자는 말도 있었을 정도로 신예 키우기에 애를 썼던 신일본의 노력은 어느정도 성공하여 타나하시와 나카무라가 신일본의 젊은 에이스로 확실히 성장하여 대활약중이다.
  1. 미사와 미츠하루,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훗날 아키야마 준을 넣어서 5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2. 외도의 이유는 다름아닌 종합격투기 출전. 아이러니하게도 신 투혼삼총사라 불리우던 시절만 해도 셋 중 가장 재미있는 레슬링을 하는 선수는 시바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