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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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WWE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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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존재했던 WWE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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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WNXT(리얼리티 쇼)와 통합되어 현재 NXT로 운영되고 있다.
* WCWECW는 완전히 폐지된 상태이며 영상 저작권만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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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1999년까지
사용한 로고.
1999년부터 2001년에 WWF로
합병되기 전까지 사용한 로고.
2001년 WWE 인베이전
시절에 쓰던 단체마크
NWA부터 내려오던 WCW의 월드 챔피언 벨트인 역사와 전통의 빅 골드 벨트 (Big Gold Belt)
이 디자인은 WWE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벨트로 쓰이기도 했다.

World Championship Wrestling

막강한 자금력최강의 스테이블을 앞세워 한때 업계 정상에 올랐던 프로레슬링 단체
하지만 대책 없는 운영의 문제점과 과도한 친목질의 폐해, 그리고 운영진의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1]

1 개요

미국프로레슬링 단체.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까지 WWF(현재의 WWE)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한때 시청률에서 WWF를 앞서기도 했다.

2 역사

WCW의 탄생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자세한 내용은 WCW/역사 참고

3 프로그램 목록

  • 새러데이 나잇 (1971~2000) - 원래는 GCW-WCW로 이어져 왔으나, 1992년부터 새러데이 나잇으로 바뀌었다.
  • 베스트 오브 월드 챔피언십 레슬링 (1973~1987) - GCW의 경기를 다시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 매주 일요일마다 방영했다.
  • 월드와이드 (1975~2001)
  • 프로 (1985~1998)
  • 메인 이벤트 (1988~1998) - WWF의 새레데이 나잇 메인 이벤트에 대항하기 위한 프로그램.
  • 파워 아워 (1989~1994)
  • 클래시 오브 챔피언스 (1988~1997)
  • 먼데이 나이트로 (1995~2001) WCW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 에릭 비숍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WWF의 먼데이 나잇 로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RAW와 같은 시간에 맞불 편성되었다. 이름에서 보이듯 대놓고 RAW를 저격하여 쓰러뜨리기 위해 야심차게 출범한 프로그램으로 나이트로와 로우의 시청률 경쟁은 '먼데이 나이트 워'라고 불리웠던 프로레슬링 업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nWo가 흥하던 시절엔 WCW 먼데이 나이트로가 아니라 nWo 먼데이 나이트로가 되기도.. 국내에서도 1998년부터 2001년까지 iTV를 통해 먼데이 나이트로를 방영한 적이 있다.
  • 프라임 (1995~1997) - 미드카더들이 주로 출연하는 프로그램.
  • 썬더 (1998~2001) - WWF 스맥다운과 대척점에 있었던 프로그램.

4 PPV

개최 시기이벤트
1월소울드 아웃(1997-2000)
신 (2001)
2월시-타운 럼블 (1989)
레슬워 (1990~1991)
슈퍼브롤 (1992~2001)
3월언센서드 (1995~2000)
그리드 (2001)
4월스프링 스탬피드 (1994, 1997~2000)
5월레슬워 (1989, 1992)
캐피탈 컴뱃 (1990)
슈퍼브롤 (1991)
슬램보리 (1993~2000)
6월비치 블라스트 (1992)
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시 (1995~2000)[2]
7월더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시 (1991-1992)
비치 블라스트 (1993)
배쉬 앳 더 비치 (1994~2000)[3]
8월호그 와일드 (1996)[4]
로드 와일드 (1997~1999)
뉴 블러드 라이징 (2000)
9월폴 브롤 (1993~2000)
10월할로윈 해벅 (1989~2000)
11월배틀볼[5] (1993)
월드 워 3 (1995~1998)[6]
메이헴 (1999~2000)
12월스타케이드 (1983~2000)[7]

4.1 기타 PPV

  • 벙크하우스 스탬피드 (1988)
  • WCW-신일본 슈퍼쇼 (1991~1993) - WCW와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교류전.
  • WCW-AAA 웬 월드 콜리드 (1994) - WCW와 멕시코 프로레슬링 단체 AAA와의 교류전.
  • 콜리션 인 코리아 (1995) - 미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유일하게 북한 평양에서 개최된 경기. 이 대회 역시 WCW와 신일본 간의 교류전이었다.
  • 밀레니엄 파이널 (2000)

5 챔피언 타이틀 목록

  •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1~2001)
  • WCW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3~1994)
  • W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 (1974~2000)
  •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 (1975~2001)
  •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975~2001)
  • WCW 월드 식스맨 태그팀 챔피언 (1991)
  •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1986~1992)
  • WCW 크루저웨이트 태그팀 챔피언 (2001)
  •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1996~2001)
  • WCW 라이트 헤비웨이트 챔피언 (1991~1992)
  • WCW 위민스 챔피언 (1996~1997)
  • WCW 위민스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1997)
  • WCW 하드코어 챔피언 (1999~2001)

5.1 WCW 트리플크라운 & 그랜드슬램 달성자

WCW도 WWE의 그랜드슬램처럼 메인 타이틀,세컨드 타이틀,서드 타이틀,태그팀 타이틀 4개의 벨트가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WWE의 그랜드슬램과 비슷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WCW에서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쉽은 그랜드슬램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월챔, US, 태그팀 타이틀 트리플 크라운만 인정되지만 트리플 크라운+TV타이틀을 딴 선수를 그랜드슬래머로 볼 수 있다.

WCW 그랜드슬램 달성자
릭 플레어
(Ric Flair)
스팅
(Sting)
렉스 루거
(Lex Luger)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Diamond Dallas Page)
크리스 벤와
(Chris Benoit)
스캇 스타이너
(Scott Steiner)
부커 T
(Booker T)
총 7 명
WCW 트리플 크라운 달성자
릭 플레어
(Ric Flair)
렉스 루거
(Lex Luger)
스팅
(Sting)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Diamond Dallas Page)
골드버그
(Goldberg)
브렛 하트
(Bret Hart)
크리스 벤와
(Chris Benoit)
스캇 스타이너
(Scott Steiner)
부커 T
(Booker T)
총 9명

6 평가

6.1 장점

WCW는 WWE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가지 발전을 선보였다. 테드 터너가 밀어주는 막강한 자금력이 투입되면서 WCW는 프로레슬링의 발전을 선도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에피소드 시간을 두시간으로 늘린 것이었는데, 이는 한 위클리 쇼에 더 많은 레슬러들이 등장해 다양한 경기를 선보일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중에는 이게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한 해동안 방송하는 PPV 수도 과거의 WWE보다 많았으며 워 게임등의 독특한 기믹 매치,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활용[8], 나이트로에 이어 썬더라는 두번째 쇼를 방송[9][10], 그리고 매주마다 빅 매치급 경기[11]를 선보이는등 신선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여기에 에릭 비숍은 자신도 악덕 이사 기믹으로 등장했는데, 이는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마흔이 악덕 사장 기믹을 선보인 것보다 앞섰다. 여기에 최고의 인기 스타들이었던 nWo는 그 전의 스테이블들과는 달리 정말로 단체를 장악하는 것 같아 보였기에 스토리 라인도 흥미있었다. 거기다가 녹화가 아닌 라이브쇼로 방송했으니 현장감도 뛰어났다. 테드 터너의 자금력에 에릭 비숍의 양아치공격적인 전략으로 WCW는 WWE를 앞서 갔었다. 그 이외에도 파워 플랜트라는 신인 양성소를 만들기도 했다.[12][13]

6.2 문제점

그러나 이런 장점들도 빛이 바랄 정도로 단점이 심각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인사로, 사장이 레슬링에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14], 젊어서부터 레슬링 업계에서 일한 빈스 맥마흔과는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보니 초기에는 영 삽질을 거듭했다. 결국 부사장 에릭 비숍이 실질적인 지휘자가 되었다.

그런데 에릭 비숍은 nWo의 성공에 취해서 몇년간 nWo만 우려먹었는데, 첫등장 이후 nWo가 갈라지고 다시 붙고...이런 식으로 몇년을 끄니 처음에는 신선했을지라도 결국엔 지겨워지게 되었다[15]. 에릭 비숍의 이런 인성은 당시 녹화 방송이던 RAW를 스포일링해서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리는 것을 막는 부정행위까지 불사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을 비웃다가 오히려 시청률 관광을 당하는 인과응보로 이어진다. 거기다가 크루저웨이트의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에릭 비숍과 nWo 패거리는 그들을 들러리로만 보고 무시, 모욕했으며 크리스 제리코가 이런 대접을 못참고[16] WWE로 간 뒤[17] 래디컬즈[18][19]마저 건너가자 한창 WWE로 기울던 시청률이 더욱 넘어가기 시작한다. 케빈 내쉬등은 크루저웨이트를 난쟁이라 모욕하며 WWE로 가봤자 별 문제 아니라고 무시했지만, 문제는 관객들은 크루저웨이트 경기들을 매우 즐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히 크루저웨이트 계통의 팬들은 그들이 좋아하던 스타들을 보기 위해 WWE로 채널을 돌렸다. 거기다가 WWE보다 빅맨우대가 더욱 심했는데, 이쪽은 아예 케빈 내쉬와 스캇 홀등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서[20] 후배 레슬러들이 푸쉬를 받기 힘들게 되어있었다. 아예 WCW는 베테랑과 그외가 쓰는 락커룸이 분리되어 있었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기껏 브렛 하트를 데려왔더니만 에릭 비숍은 그를 어떻게 써야될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등[21], 인사권의 문제는 심각했다[22]. 베테랑들의 텃세, 인사권의 문제, 실질적인 총책임자였던 에릭 비숍의 만용 등의 문제가 있던 WCW는 이를 바짝 쫓아온 WWE가 애티튜드 시대를 시작하고, 믹 폴리가 WWE 챔피언이 된 것을 WCW에서 조롱했다가 0.6의 시청율이 WWE로 옮겨간 뒤는 다시 역전할 힘을 내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다.

더 멀리 갈것 없이 WCW에서 쓸모없다고 방출시키거나 잡지 않았던 인재들이 WWE로 간뒤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인물들중에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등이 있다[23].

간단히 결론을 내리면, 사내정치(친목질)이 심화되면서 망조를 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지나친 연예인 게스트 스타 남용에 미드카더들 푸대접, 한 명의 스타에만 매달리는 운영에 각본 조절권한에 의한 각본의 붕괴등도 큰 문제였다[24].

문제는 현재의 WWE도 WCW를 몰락으로 이끈 행동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25][26]

7 몰락의 원인

7.1 에릭 비숍의 시대 착오적 마인드

당시 WCW의 책임자였던 에릭 비숍의 마인드는 굉장히 프로레슬링에 모욕적이었는데 처음 부사장 취임했을 때는 그래도 크루저급을 끌어들여 큰 인기를 끄는데 일조했지만 WWF 출신의 헤비급들을 마구 영입하면서 이런 인기있던 레슬러들의 기회를 다 날려버렸다. 거기다 본인도 스타성 플레이어만 있으면 경기가 어떻든 흥행은 된다는 굉장히 안좋은 생각을 갖고 있어서 실력 좋던 선수들은 다 뒷전으로 밀어낸 다음 실력으론 정말 처참하기 그지 없는 노장들로만 메인 이벤트를 구성했었다[27].

7.2 새로운 메인 이벤터 발굴의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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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WCW의 메인 이벤터들을 한대 모은 DVD의 표지인데 사진에서 보면 선수들 가운데 그나마 어렸던게 골드버그였다. 골드버그는 66년 생으로 그가 한창 무적으로 군림하던 시기였던 98~99년은 겨우 30대 초반이었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 모두 40이 넘어간 노장이었다. 거기다 저들 가운데 DDP를 제외하면 이미 과거 NWA와 WWF에서 활약하던 즉 관객들이 거진 20년 동안 봐 오던 사람들이었기에[28] 새로운 선수의 발굴이 없던 WCW는 스티브 오스틴더 락이라는 새로운 아이콘들을 배출한 WWF에게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7.3 내부 정치 문제

7.3.1 비숍의 전횡

외부 말고도 WCW 내부에서도 문제가 여럿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것은 에릭 비숍과 릭 플레어의 대립이었다. 에릭 비숍이 집권하기 전까지 릭 플레어는 과거 NWA 시절부터 그 영향력을 발휘하며 WCW에서도 선수들 영입 등 여러 업무를 보곤 했는데 에릭 비숍은 그런 릭 플레어를 매우 싫어한 탓에 그와 툭하면 싸우곤 했고, 결국 릭 플레어가 회사에 통보하고 아들의 레슬링 경기를 보러 갔음에도 해고시켜 버린다.[29] 결국 이러한 처분으로 WCW 내부에서 릭 플레어를 따르던 젊은 선수들은 불안함과 불만이 높아졌고, 관객들 역시 오랜 시간 NWA-WCW를 지탱해오던 릭 플레어가 팽당했음을 알고, 불만을 표출했었다. 거기다 릭 플레어가 없는 동안 에릭 비숍은 폭주하다시피 하며 막장 운영을 했고, 이는 결국 에릭 비숍 본인이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원인이 된다.[30][31]

7.3.2 도를 넘어선 이너서클 선수들의 행태

당시 선수들 가운데서도 오리지널 nWo 멤버인 헐리우드 호건, 케빈 내쉬, 스캇 홀은 백스테이지 권력을 꽉 잡고 있었는데 특히 헐리우드 호건은 자신이 벨트를 독점해야한다는 욕심으로 가득차서 벨트를 넘겨주더라도 자기랑 친한 선수들에게 넘겼으며 자기 친구들 이외의 선수들에게는 아예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한편 케빈 내쉬는 에릭 비숍의 옆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단행했는데 WCW 인기의 한 원인이었던 크루저급 선수들을 죄다 바닐라 난쟁이라 부르며 깎아내렸고, 자이언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빅 쇼가 자기 자리를 넘본다는 생각에 그를 밀어내 그가 WWF로 이적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된다. 거기다 당시부터 알아주는 알콜 중독자였던 스캇 홀은 쇼 당일에도 술에 잔뜩 취해서 온갖 사고를 다 쳤는데도 단지 저 둘의 친구라는 이유로 거금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일도 하지 않고 회사에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8 여담

WCW를 멸망시킨 직후, 빈스는 여유를 찾았는지 또 한번 거대한 투자를 하는데 바로 XFL(...)

먼 훗날 헐크 호건에릭 비숍의 권력 행사 등의 전철을 TNA가 그대로 답습했고 똑같은 상황으로 망해가고 있다.

2013년에 WWE에서 DVD판매량 조사결과 1위는 레슬매니아29였으나 2~4위까지는 WCW의 베스트 DVD가 상당한 판매량을 올리고있다.인수되어 사라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워낙 좋은선수들이 거쳐간 단체라 아직까지도 팬들이 상당한듯.특히 WCW에서 큰인기를 누린 빌 골드버그의 DVD는 트리플 H의 DVD보다 2주 늦게 나왔음에도 훨씬 압도적으로 판매되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한번쯤은 다시 복귀해야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에디 게레로, 크리스 제리코등이 대놓고 WCW는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깔 정도로 베테랑들에 좌지우지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WCW라면 이를 가는 레슬러들도 꽤 있다. 브렛 하트크리스 벤와는 WCW를 보고 열정이 없는 곳이라고 깠으며 에디 게레로는 케빈 내쉬의 텃세덕에 그가 있을때가 가장 레슬링이 하기 싫었다고 얘기했다. 이때문인지 이들은 WCW 출신임에도 WWE에서 챔피언까지 오르는 등 이적생 푸시를 어느정도 받았다.

반면 이후 2003년부터 2004년에 이르는 시기, 더 락과 스톤콜드가 실질적인 커리어 은퇴를 하자 각본 컨트롤 권한을 가진 트리플 H에볼루션을 앞세워 스캇 스타이너부터 케빈 내쉬, 부커 T에 이르기까지 전술한 선수들과 달리 WCW에서 메인이벤터로 군림했던 선수들을 속된 말로 아작내며 챔피언 장기집권을 이루어낸다.[32][33]끝판왕 골드버그 상대로도 좀 털리긴 했지만 결국 온갖 비열한 수단으로 때려눕혀 타이틀을 뺏기까지 했다. WCW 출신 메인이벤터들을 그야말로 삽으로 묻어 버린 그의 행보는 비록 데뷔는 WCW에서 했지만 찬밥신세로 1년만에 방출됐던 앙금과, 그 시절 WWF를 멸망 직전으로 몰고간 WCW에 대한 작은 뒤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34] 이에 대한 연장선인지 WCW가 망한지 10년도 지나 이제 마지막 WCW레전드로 남아있던 스팅이 WWE에 나타났을때 트리플 H와 대립하면서 HHH는 자신을 WWE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면서 WCW의 잔재인 스팅을 쓰러뜨리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현실은...

WWF만의 팬들에게는 WCW의 메인이벤터들이 작살나는 것이 큰 선물이었을지 모르나 레슬링 팬들은 WCW의 스타들이 강력한 기믹을 유지하며 WWF의 간판들과 맞붙는 드림 매치를 원했던 것이지, 결코 예측가능한 진부하고 원사이드한 대립으로 상대를 아작내는 것을 보고 싶어했던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상대가 WCW 존재 당시 결코 단체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라 할 수 없었던 트리플 H라는 것은 분명 코어 레슬링 팬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이다.

9 WCW를 거친 레슬러들

  1. 경쟁프로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분별한 스토리라인의 구성과 또 자기 자신들 밖에는 아웃 오브 안중이었던 일부 메인 이벤터들의 이기주의, 그리고 프로레슬링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이 그저 일반 상품정도로만 취급해 동일한 마케팅 방식으로 일으켜보려했던 경영진들의 무지등이 빚은 결과였다.
  2. 처음에는 그저 그런 PPV였는데 뒷날 스타케이드를 밀어내고 최대의 PPV 자리를 차지한다. WWE에서 2004년에 부활한 바 있다.
  3. 1996년 헐크 호건의 배신과 nWo의 결성으로 유명한 PPV. WWF 섬머슬램과 동급이었다.
  4. 이 PPV의 메인 이벤트에서 헐크 호건이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에 스프레이로 nWo를 새기는 악행을 이룩한다. 1년 뒤에야 렉스 루거가 벨트를 탈환하는데 이 스프레이 흔적을 지우느라 엄청 고생했다고(...)
  5. 스타케이드 1991, 1992에서 써먹은 배틀볼을 PPV로 독립.
  6. WWE의 로얄 럼블과 동급의 경기. 한가지 차이가 있다면 링이 총 3개라는 점. 그리고 참가하는 선수 역시 총 60명이다.
  7. NWA 때부터 내려온 프로레슬링 최초의 PPV이자 WWF의 레슬매니아와 쌍벽을 이루던 WCW 최대의 PPV.
  8. 특히 기이할 정도로 대단한 기량의 크루저웨이트 선수들이 한 시대에 활동했다.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크리스 제리코등이 전부 WCW 출신이다. 이 외에도 루챠계에서 손꼽을만한 루챠도르들이 많이 WCW를 거쳐갔다.
  9. 이에 맞서 WWE도 스맥다운을 시작하게 된다.
  10. 사실 이 시점에서 에릭 비숍은 나이트로와 썬더를 나누어 현재 WWE가 실시하는 브랜드 익스텐션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nWo 로스터와 나머지 로스터로 분리할 생각을 하고있었던것. 아무리 에릭 비숍이라도 nWo만 나오는 쇼는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고.
  11. 당시 WWE에선 위클리 쇼때는 메인 이벤터들이 자버만 상대할 뿐이었다. WCW에서 메인 이벤터들이 위클리 쇼에서도 서로 싸워댔다. 하지만 너무 자주 싸워대다보니 nWo처럼 신선함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지금 WWE에서 매주 슈퍼스타들이 붙는걸 당연하게 생각하나, 당시엔 위클리 쇼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자버를 상대로 자신의 주무기들을 선보이는 장이었는데, 자버를 상대로 원사이드한 경기를 보여주던 슈퍼스타들이 어느날 AFKN을 틀었는데 PPV가 열리고 시간은 무려 3시간에 강력함을 자랑하던 슈퍼스타들이 서로 붙어서 일방적인 경기가 아닌 서로 치고박고 싸운다는 것만으로 PPV의 가치는 엄청나게 높아보였다.
  12. 여기를 거쳐간 선수로 골드버그, AJ 스타일스등이 있다. 의외로 밥 샙도 이곳에서 수련을 받았었다.
  13. 다만 여기서는 선수들에게 기술을 굉장히 과격하게 걸도록 가르쳤기에 부상자가 많이 나오고 출신 레슬러들이 동업자 정신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워플랜트 출신 골드버그의 킥으로 선수생명이 끝난 브렛 하트 역시 이런 점을 비판하였다.
  14. 사장이 피자헛 경영진 출신이었다고 한다.
  15. 비숍은 새로운 인력을 발굴, 육성해 스타로 키우기보다 기존의 슈퍼스타들을 이용, 다양한 방법으로 캐릭터를 개발하는데 이골이 난 인물이라 한계가 컸다.
  16. 자서전인 라이언즈 테일을 보면 스캇 홀과 충돌한 얘기등이 자주 나온다.
  17. 거기다가 등장도 엄청나게 화려하게 등장하자 WCW에서 무시당하던 레슬러들이 자신들도 WWE로 가면 저런 대접을 받을 거라고 환상을 품게 되었다
  18.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새턴, 딘 말렝코의 4인조 팀으로 절친한 관계이기도 했다.
  19. 이 네 명과 제리코까지 합쳐 다섯 명 중 새턴은 WWE에 적응하지 못했고 딘 말렝코는 나이가 좀 많은 데다가 체중이 크루즈웨이트 급이라 선수보다는 트레이너로서 주로 활동했지만 나머지 세 명은 WWE 챔피언까지 지냈다는 걸 생각해보면 충분히 성공한 편이다. 오히려 나중에 WCW가 망하고 나서 WCW출신에 대한 WWE의 대우를 보면 이들은 줄을 아주 잘 선 셈이다.
  20. 제리코의 자서전에 따르면 스캇 홀은 제리코 등에게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 보러 오는 거니까, 니들은 대충 해라"라고 모욕했다고. 그러나 현실은 크루저웨이트 보러 온 사람도 많았다.
  21. 처음 등장하고나서 브렛이 했던건 특별 심판이었다(...)
  22. 빈스 맥마흔은 브렛 하트를 두고 그 혼자만으로도 프랜차이즈를 만들수 있으며 WCW가 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건 자신에게 다행이었단 얘기를 했을 정도였다. 몬트리올 스크류잡까지할 정도로 걱정했는데 허탈했을지도
  23. 그래서 미국내의 레슬링 팬들, 특히 WCW의 열성팬들은 비숍이 오스틴을 내치지만 않았어도 WCW를 살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다만 이건 비숍이 악의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오스틴이 워낙에 부상에 시달려 제대로 키워 볼 여지가 없었던 점도 있지만.
  24. 더구나 케빈 내쉬같은 인물들은 각본구상까지 간섭해 자신에게 불리하게 전개되는 내용을 담은 각본은 아예 거부하고 무시했다. 다른 선수들이야 어떻든 자신에게만 스폿라이트가 비춰야 당연하다는 사고 때문에 많은 유력하고 잠재력있는 선수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25. 사실 이건 어느 정도 걸러들어야 할 것이다. WWE는 과거의 WCW와는 상층 구조가 전혀 다르고 라커룸의 분위기도 좋은 편이고 실력 면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으며 NXT의 영향으로 신인 수급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WWE 각본진의 삽질은 여전하여 시청률은 하락 일로를 걷고 있으며, 사내 분위기 역시 여전히 정치적 역학관계가 강하게 작용하여 응당 인정을 받아야 할 선수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6. 2010년 이전에는 존 시나 한명에게 매달리는 운영으로 정말로 WCW의 전철을 밟나 했지만 NXT의 설립 등을 통해 외부에서 인디 레슬러들을 수혈받게 되면서 많이 개선되었다.
  27. 애초에 비숍도 빈스 맥맨과 같은 떡대 근육맨 매니아였던 점도 아울러 크다.
  28. 그나마 DDP도 거의 40 가까운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선수 생활은 그닥 길지 않았다.
  29. 거기다 백스테이지에서 로스터들을 모아놓고 릭 플레어를 개털로 만들거다, 니들도 함부로 깝치면 X 될 줄 알아라 등 협박성 말을 해 백스테이지 분위기를 완전 작살내 버렸다.
  30. 문제는 비숍이 플레어가 WCW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예전 WCW팬들이 작성해 올리는 'WCW를 패망하게 한 원인 탑 10'에서도 상위 5위권에 놓는 것이 비숍의 플레어에 행한 무례함이다. 모든 WCW소속 선수들이 플레어를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큰 어른으로 대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숍이 알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자기가 하는 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인물이 버티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싫은 것이긴 하겠지만 비숍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31. 결국 안습이 되서 릭 플레어는 WWE에 건너간 뒤에도 한동안 야코가 죽어 지냈지만 WWE에서는 WCW와 달리 숀 마이클스나 트리플 H, 크리스 제리코 같이 릭 플레어를 존경하는 레슬러들이 다수 있었고 특히 릭 플레어가 젊은 크리스 제리코에게 잡을 해주겠다고 했을때 제리코는 거절하고 오히려 이 노장 레슬러를 띄워주었을 정도로 존경심을 표시하였다.
  32. 그렇다고 트리플 H에게 안 맞은 선수가 멀쩡했냐...하면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참조. 이쪽이 수백배는 더 비참했다.
  33. 사실 이건 숀 마이클스의 개과천선(...)과 골드버그의 빠른 퇴사가 복합적으로 얽힌 면이 있다.
  34. 물론 이건 WCW팬들 입장에서 그런 거고 당시 WWE 팬들은 어두운 시절에도 WWE 팬이었다는 자부심이 상당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지 않았고 WCW의 거물급들이 사라져도 판도가 크게 변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 시점에서 노땅들이 아닌 알짜배기 WCW 출신들은(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 등) 이미 WWE 선수로 거듭나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