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레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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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툴레 협회
독일어:Thule Gesellschaft
영어: Thule Society

1 개요

1918년독일 뮌헨에서 성립된 신비적 연구단체. 정식 명칭은 Thule Geselschaft. 번역으로는 툴레회 내지는 툴레 종단이라고 통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결성된 상류층 인사들의 비밀결사로, 정치적 성격과 더불어 상류층 인사들이 취미 생활을 함께 나누는 모임이기도 했다. 창설자는 루돌프 폰 제보텐도르프 남작(Rudolf von Sebottendorf, 본명 루돌프 그라워(Rudolf Grauer, 1875~1945)). 그리스 • 로마시대에 알려진 전설상의 극북의 섬 울티마 툴레를 그 상징으로 하였다.[1] 1차 대전 직후 대두한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혐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 등은 상류층 특유의 보수적인 의식에 기인한 것이었고 이러한 성향의 툴레회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공격적인 극우 운동 세력들을 후원하였다. 협회는 수십명의 소조직으로,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을 마술적인 것을 입증하는 연구를 추진했는데, 회원에 반유대주의를 성명히 한 디트리히 에카르트(Dietrich Eckart, 1868~1923), 히틀러 등이 가담해서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 시기이기도 하며, 초기 나치즘의 사상적 배경의 일부를 형성했다고 한다.

특히 툴레회는 나치당의 이념 및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근본적으로 나치당의 전신인 독일노동자당의 창설을 지도한 것이 툴레회였다. 툴레회의 성향이었던 반공주의, 반민주주의, 게르만 민족의 신화성에 대한 신봉, 반유대주의는 나치당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고, 또한 나치당의 초기부터 주요 인사였던 루돌프 헤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디트리히 에카르트 등이 바로 툴레회의 회원이었다. 나치당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 역시 1919년 툴레회가 창설되면서 채택된 상징이었다. 툴레회의 기관지 "뮌헨의 파수꾼(Munchener Beobachter)"은 이후 나치당의 인수를 통해 당기관지 "민족의 파수꾼(Volkischer Beobachter)"이 되었다.

그러나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듯 20년대즈음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이 정치적 파워를 얻고 난 후에는 점차 그 영향력과 힘등이 축소되었다 결국 나치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툴레 협회 인원들 중 몇명은 투옥되기도 햇으며 협회 자체는 43년에 해체되고 만다.

하인리히 힘러 등 나치당의 주요 간부중 오컬트에 심취하였는데 정치에 대한 입문으로 잠시 가입했을 뿐인 히틀러와 달리 툴레 협회의 오컬트,신비주의학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 이 때문에 힘러는 나치 독일의 오컬트 조직이란 이미지 때문인지 수많은 서브컬처에서 신비한 힘을 쓰는 사악한 집단으로 등장한다.

2 서브컬쳐

  1. 또한 툴레에서 게르만 민족이 유래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2. 설정 상 툴레 협회와 관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