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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ercise of Team Spirit
1976년 6월 7일 최초 실시되었고, 1993년까지[1] 냉전당시 이뤄진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합동 군사훈련으로, 한반도에서 발발하게 될지도 모르는 군사적인 돌발(즉, 북한의 휴전협정 파기) 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연례적으로 실시했던 한·미 양국군의 연합군사훈련 이다.
1994년부터 2007년까지 RSOI(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 of Forces)로 바뀌었다가, 2008년 3월부터는 키 리졸브라는 명칭과 기존의 계획등을 수정함에 따라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과 및 종북주의자들은 팀 스피리트 때도 그렇고, 키-리졸브 역시도 그해에 진행하게 되면은 '북침훈련' 이라고 쌩지랄비난한다. 즉, 그 만큼 매우 중요하고 북한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가능한 훈련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미군은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일어날 경우, 한국군과 협력해서 침략군을 격퇴한다는 목적하에, 본토와 해외기지에 배치하고 있는 육군·해군·공군부대를 가급적 신속히 한국에 투입시키고, 그 부대들로 하여금 한국군과 유기적인 협동체제하에 효율적으로 연합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훈련이다. 훈련은 보통 2주 동안 집중적으로 실시된다.
특히 주한 미 제7사단의 철수로 인해서 북한군의 무력남침 가능성이 커질 것을 감안하여 1969년부터 실시된 훈련명칭 '포커스 레티나'가 그 효시이며 1971년부터의 '프리덤볼트'를 거쳐, 1976년부터는 '팀 스피릿'이라고 하였다.
이 훈련에는 미 육·해·공군부대의 신속한 전략이동으로부터, 지상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공군작전, 한국 해역에서의 한미 연합해상작전, 야전기동훈련, 연합상륙작전, 기동부대에 대한 지원작전 등, 한국방위를 위한 협동태세의 효율성을 측정하기 위한 모든 훈련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78년 훈련부터는 참가 병력이 10만 명을 넘어섰고 동원 병기도 B-52 중폭격기 편대 · 랜스 미사일 대대 등 핵공격 능력을 갖춘 부대가 동원되는 등 그 양상이 달라졌으며, 더욱이 1984년부터는 참가 병력이 20만 명을 넘어섰고 훈련기간도 50∼90일로 크게 늘었다. 이것은 1983년 소련이 중동 산유지역에 개입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로 소련의 동해안 지역을 공격한다는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동시다발보복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1982년 1월 28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410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이 훈련을 전쟁도발을 위한 준비라고 주장한 북한측에 대해서 국제연합군측이 평화를 위한 방어훈련임을 강조하고, 이의 확인을 위해 한·미 연합사령부가 정전위원회 공산측 대표의 요청에 따라, 1990년 3월 폴란드의 로만 유지비크 육군 대령과 마제 페트리카트 대령이 방한, 참관하여 방어용 훈련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남북합의서로 상징되는 1991년의 남북관계의 진전을 배경으로 한·미측은 1992년 실시예정이던 군사훈련을 중지하였다. 그후 북핵(北核) 문제로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한·미측은 1992년 10월 훈련재개를 결정하고 1993년 3월 규모와 기간을 축소한 훈련을 실시하였다. 팀 스피릿이 미국의 새로운 전략전술의 습득과 신무기 운용기술체득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하나의 카드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것.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기간은 북한은 전쟁 대비로 거의 사회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남북 관계경색때 훈련 재개를 하자는 분들도 있었다.
기지 근방에 사는 분들은 MRE나 탄피를 무더기로 주을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대 MBC 특집극 악몽의 시나리오는 북한이 침공한 1980년도 가상전쟁을 무대로 한 다큐드라마이다. 여기서 북한의 침공과 한국의 반격 부분은 이 훈련의 기록영상과 시나리오에 따른 훈련 장면을 삽입했다.
김진명은 팀 스피릿 훈련을 같은 민족을 압박하는 제국주의자들의 음모이자 술책이라고 김일성의 입을 빌려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작중에서 마구 까고 있다. 이뭐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