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

Parmenides (BC 540 또는 515 ~ 미상)

  • 엘레아 학파의 대표자


1 출생 및 행적

기원전 5세기경, 엘레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시인이다. 철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크게는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 제논 세 사람을 엘레아에서 활동한 학자들이기에, 고대철학 안에서도 엘레아 학파라는 하위 분류 안에 둔다.

파르메니데스는 크세노파네스의 제자라고 알려져 있으나, 생몰년도를 추측해볼 때 파르메니데스가 크세노파네스의 제자가 되기에는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그러니까, 크세노파네스가 백발 노인이 되었을 때 파르메니데스는 사춘기 청소년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와 크세노파네스가 함께 연구를 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보며, 두 사람이 활동한 엘레아에서 가끔 마주치기는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자세한 것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정확한 생몰년도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플라톤의 저작 『파르메니데스』에서 60대의 노구를 끌고 젊은 소크라테스를 찾아왔다는 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다고 여겨진다.


2 저작

<자연에 관하여(Peri physis)>라는 저작을 남겼다고 하는데, 고대 철학자들 중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함께 최초로 그 저작의 일부가 연속된 맥락으로 현대까지 남은 사람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은 그들이 자연철학자였다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통해 전해내려 왔거나, 혹은 불연속된 단문만이 발견될 뿐이라서 그들의 사상을 추측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이 남긴 서사시가 최초로 현대까지, 100여 줄이나 되는 분량으로 연속된 맥락을 통해 '내용이 이해 가능할정도의 분량이' 전해지는 철학자다.


3 파르메니데스의 서사시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파르메니데스의 글 중 대부분은 그가 쓴 서사시의 서문이다.

3.1 서문

서문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하며, 주인공은 암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밤과 낮이 갈라지는 입구'로 찾아간다.[1] 이 입구를 넘어서면 정의의 여신 디케가 주인공을 기다리는데, 여신은 주인공에게 하나의 약속을 한다. 그 약속이란 쉽게 말해 이렇다. "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파르메니데스 서사시의 서문은 이 '모든 것'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도대체 주인공이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될 것인가를 여신이 설명하는 부분을 다룬다. 여신은 그가 알게 될 것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말하는데, 첫 번째는 '항구적이고 불변하는 진리'[2]이며, 두 번째는 '사람들의 사견(Doxa)'이다. 안타깝게도 후반부는 유실되어 내용을 알 수 없다. 카페베네

서사시의 서문 외에는 그가 자신의 사상에 대해 말한 것이 짧은 맥락으로 전해지는데, 파르메니데스의 서사시는 당대에도 매우 짜증나고 읽기 불편한(…) 문체였다고 한다. 따라서 학자들에 따라 해석이 크게 갈린다. 이들은 진리편과 의견편으로 나뉜다.


3.2 진리편

3.2.1 "있음, ~임"에 대해서

파르메니데스는 그의 철학에 대해 주로 시를 통해 기록을 남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논변은 다음과 같다.

있음, ~임은 있는 만큼 있기 때문에 있음,~임이며, 없음은 없는 만큼 없기 때문에 없음이다.[3]
[번역된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이 말을 처음 듣고 멘붕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은 일반적으로 "있음"과 "없음"이라는 것을 하나의 상태로 보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음이라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것을 보거나, 듣거나, 말하거나, 알거나, 생각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대상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있음은 만물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있음이라는 속성에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만약 나는 1만큼(즉, 있는 만큼) "있고", 미오쨩은 1/16만큼 있다고 생각할 때, 미오짱이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오짱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닌듯 싶다. 하지만 가차 없는 파르메니데스는 "그럼 미오짱은 1/16만큼 있으면서 15/16만큼 없다고 하면 없는 거 아니냐"하고 일갈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오덕들의 적이 되었습니다[4][5][6]

따라서 어떤 것은 "있음" 또는 "없음"의 두가지 선택 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없다'면 애초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아예 무엇인지 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없는 것은 애초에 우리가 알거나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알 수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있는만큼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논변이 도출된다.

있음은 있기 때문에 없음일 수 없고, 없음은 없기 때문에 있음일 수 없다.

따라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계속 있을 것이고, 어떤 것이 없다면 그것은 계속 없을 것이다.


3.2.2 운동과 변화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이 불러온 가장 큰 문제는 운동과 변화에 대한 것이다.
있음이 없음일 수 없고, 없음이 있음일 수 없다면, 없었던 생명이 탄생해서 있게 된다거나, 있던 나무를 불태워서 없어지는 것도 말이 안되며, 나아가 애초에 어떤 변화나 운동도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있음으로 가득찬 하나. 일자(一者)일 것이다는 것이 파르메니데스의 결론이었다.
이를 통해 서양철학의 기본적인 전제중 하나인 "Nihil Ex Nihilo(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가 탄생한다.[7]


3.2.3 논란과 반박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세상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많았다. 이와는 정반대로 "모든 것은 변한다"고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는 물론이고 기존의 자연철학자들도 이를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누구도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반박할 수 없었다는 점.버로우

파르메니데스에게 사람들이 돌을 들고와서 "봐라. 여기 있는 돌이 이렇게 움직이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운동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눈으로 보는 등의 감각적인 활동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항상 우리를 속이고 또 우리는 거기에 속기 일쑤다. 그런데 내가 방금 이야기한 "있음"에 대한 사실들은 눈으로 본 것도 아니요, 단지 우리의 지성을 통해 생각해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머리로 생각하여 알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으며 다 착각이자 독단(Doxa)에 불과하다."

때문에 파르메니데스의 논리에 대해 사람들은 머리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거나 조금 수정해서 세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다원론(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를 빌려왔다. 이데아라든가, 형상같은 개념들은 다 파르메니데스의 "있음"을 토대로 해서 사용되는 개념들이다.


3.3 의견편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주요 논란이나 쟁점은 진리편에서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서사시는 의견편도 존재한다. 현실 입법가였던 만큼, 파르메니데스는 완전 알쏭달쏭한 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은 오직 하나로 있을 뿐이고 운동도 하지 않고 그것이 진리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 삶에 대한 유용함에 관한 지식 역시 있다. 비록 그것이 진리가 아니긴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의견편은 진리편에 기반해서 의견이 전개된다. 그것은 불과 흙이라는 두 개의 근본 원리를 제시하고, 또 나눔이나 응축 변화 같은 원리뿐만 아니라 섞임 같은 원리 역시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독특하다. 하지만 밀레토스 학파의 학설과 근본적으로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어쨌든 파르메니데스 역시 의견편에서 나름대로의 자연학이나 우주관 등을 제시했지만, 엘레아 학파의 다른 인물들인 멜리소스나 제논 등은 파르메니데스 진리편을 논하기 바빴다. 그래서 후대에는 파르메니데스가 의견편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때때로는 멜리소스의 학설을 파르메니데스의 것이라고 오해하곤 했다. 멜리소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의견을 훌륭하게 정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약간 다른 점도 있긴 한데 말이다.

  1. 밤과 낮은 고대 그리스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졌다. 고대인들에게 낮이란, 현대처럼 단지 '지구의 태양을 마주보고 있는 반구 쪽에서 일어나는 자연 현상'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세계의 시작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공허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것들 중 하나였으며, 신화적 세계관에서는 세계를 이루는 근원 중 하나였다.
  2. 파르메니데스의 유명한 어구인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도, 서사시에서 여신이 진리에 대해 설명하며 나왔다.
  3. 영어 be 동사를 생각해 보면 그것의 명사형이 있음도 되고 ~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하지만 플라톤은 이 단계에 대한 논의를 받아들였다. 그에 따르면 정말로 있는 것, 즉 2/2만큼 있는 것이 이데아이고, 그 밖의 것들은 그보다는 조금 덜 있다고 한다.
  5. 아리스쨩은 이 "어느정도 있다"는 애매한 개념을 질료와 형상으로 나타낸다. 자세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항목 참조
  6. 그리고 데카르트는 이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 '실재성'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물론 과연 그 증명이 옳은 증명이었는지는(…)
  7. 나중에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가 가장 부딪히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애초에 기독교에서는 신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