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史/History of Philosophy
- 고대 그리스로부터 비롯되어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서양"의 철학적 역사에 관해서는 철학사/서양 항목을 참조.
- 인도 및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동양"의 철학적 역사에 관해서는 철학사/동양 항목을 참조.
목차
1 개요
"철학사"란 말 그대로 철학의 역사를 가리킨다. 철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흔히 "철학사가"라고 불린다.
철학의 특성 상 철학 연구에서 철학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학에서 수학사가 차지하는 비중 혹은 물리학에서 물리학사가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크다. 이 항목은 그런 철학사 자체의 의의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참조할만한 지침에 관해 기술한다. 실제 철학의 역사를 참조하기 위해선 철학사/서양과 철학사/동양 페이지를 방문할 것.
다른 학문 분야가 그렇듯 이 위키 항목을 전적으로 신뢰하면 매우 곤란하다. 특히 철학은 그 역사가 긴만큼 선행 자료와 다양한 관점이 많으므로, 보다 신뢰할 만한 전문가나 전문 자료[1]를 참조하길 권한다.
2 철학의 역사
상술한 바대로 본 항목에서는 철학의 역사보다는 철학의 역사의 연구를 보다 중점적으로 다룬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비롯되어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서양"의 철학적 역사에 관해서는 철학사/서양 항목을 참조.
인도 및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동양"의 철학적 역사에 관해서는 철학사/동양 항목을 참조.
2.1 철학 하위 분야의 역사
3 철학사를 바라보는 관점
철학이 어떤 학문이고, 그것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는 철학의 큰 논의 내용 중 하나이다. 이하 소개된 내용들은 철학사에 대한 논쟁 가운데 잘 알려진 사례들이며, 그외에도 다양한 논쟁거리들이 있다.
3.1 철학사와 지성사, 그리고 사상사?
일반적으로 "지성사"와 "사상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인류의 모든 지적인 활동, 즉 지성에 의거한 학문적 활동의 역사.
- 사상사(History of Ideas): 인류의 사상적 관점과 생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한 역사.
철학사 서술의 큰 쟁점중 하나는 철학사가 지성사와 사상사, 그리고 그 너머의 문화 및 사회적 맥락을 얼마나 수용해야하는지 여부이다. 즉 철학사가 '철학만' 따져도 되는지 아니면 보다 넓은 맥락을 포함해야하는지에 관한 논쟁인 것이다. 이에 관한 주된 입장들은 다음과 같다:
- 철학사는 철학으로 족하다: 철학자들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므로 그 시대의 사상과 지성, 그리고 문화에 명백히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주장과 근거, 즉 논증이다. 우린 데이비드 흄의 철학적 입장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고 싶은 것이지, 그 사람 사생팬이 되고 싶은게 아니다. 따라서 철학사는 철학적 내용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서술하는 것으로 족하다.
- 철학사는 지성사, 사상사 등과 떼놓을 수 없다: 당대의 맥락으로부터 벗어난 철학사는 의미가 없다. 고전역학을 무시하고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할 수 있는가? 복음서를 무시한다면 대체 신 존재 증명 같은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결국 철학사를 잘 알기 위해선 그 시대의 지성, 사상, 문화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만 한다.
3.2 철학사는 서양에만 있었는가?
흔히 "철학사"라고 하면 동양을 제외하고 서양만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이 <서양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를 저술하기 전까지 서양에선 "철학사"라고 할 때는 오직 서양의 철학사를 가리킬 뿐, 다른 지적 전통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현대의 대한민국에서조차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논쟁의 관건은 '철학이란 무엇이고, 그 범주에 동양의 오랜 지혜들이 포함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내놓는 답들이 갈린다는 점에서부터 비롯되며, 이 문제에 관한 대표적인 입장들은 다음과 같다.
- 서양의 잣대를 동양에 들이밀면 안 된다: 애초에 두 지역에서 나타난 사상적 내러티브는 본질적으로 같을 수가 없다. 당장 생각해보자. '체계적인 논문 발표와 토론을 수반하는 학계'라는 개념이 동양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말은 동양에 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두 지역에서 진행된 지성의 역사가 외형적 체계로 보나 내면적 경향으로 보나 애초에 달라서 같은 체계에 넣을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철학', '학계', '논문', 등의 단어는 본래 동양에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쓰이던 단어를 번역하던 과정에서 '완벽하게' 대체할 단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임의로 그렇게 쓴 것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양의 철학을 세계의 철학사에 제멋대로 평가해서 구겨넣는다면 어떤 사상가의 사상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에 대해 판단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판단'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그것이 서양의 고유한 특성이 아닌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 서양 같은 철학사가 동양에도 충분히 있다: 동양의 지성사에서 나타난 개념들이 서양사와는 전혀 상이하다고 보는 것도 편견이다. 현대의 "논문" 같은 개념들은 근대적 개념이지, 서양의 전통적이고 고유한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이 했던 활동이 "철학"이라면 제자백가가 했던 활동도 충분히 철학이다. 철학이 서양철학을 보통 칭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근대 이후 서양의 학문들이 정치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크나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2]. 따라서 남은 과제는 현대적 관점에서 동양의 지적 전통을 보다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것일 뿐이다.
3.3 서양철학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합리성을 중시하는 서양 철학이 시작한 것이 탈레스부터였다는 것에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있었던 신화적 내러티브[3]가 서양의 철학과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엇갈리는데, 그래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철학사 서적들은 일단 첫 장을 호메로스부터 시작한다.
주목할만한 것은 호메로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이다. 많은 철학사 서적들은 '그리스 철학의 문제 제기들을 호메로스의 철학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4], 이것에 대해 국내의 김상봉 등의 학자는 '호메로스에게서 이성적 사유를 찾아내는 식의 철학사관은 아버지가 아들을 닮았다고 말하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성적 문제 제기가 아닌 호메로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이 후대의 철학이 생겨나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3.4 철학의 역사는 발전해왔는가?
자연과학은 지난 수 천년 간 명백히 눈부시게 발전하였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철학은 지난 수 천년 간 과연 얼마나 발전했는가? 발전이 있기는 했는가?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플라톤이나 공자에 비해서 철학적으로 더 아는게 많은가?
- 철학은 발전해왔다: 우리는 플라톤이나 공자보다 철학적으로 아는게 많다. 아이작 뉴턴의 명언을 빌리자면 철학의 역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의 어깨 위에 다시 또다른 난쟁이가 올라선 과정이다. 물론 자연과학만큼 극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철학자들은 고대의 철학자들보다 명백히 더 많은 철학적 문제들을 접하고 더욱 정교한 논증들을 파악하고 있다[5]
- 철학은 발전하지 않았다: 우린 플라톤이나 공자보다 나은게 없다. 결국 철학자들은 똑같은 문제와 똑같은 해법을 되풀이 할 뿐이다. '사실 단일된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고 철학자들의 내러티브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도 있다. 이런 입장에 관해서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논문을 참고하라.
3.5 철학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철학사 자체가 그들의 철학인 학자들이 있는데, 이 <서설>은 이러한 이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이런 학자들은 이성 자체의 원천들로부터 길어내려고 애쓰는 이들이 그들의 일을 결말지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 임마누엘 칸트[6]
수많은 철학자들과 철학도들이 키배를 벌여온 떡밥 중 하나. 논쟁의 핵심은 철학 연구를 하는데 철학사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한지 여부, 그리고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깊게 알아야만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대학의 많은 철학과에서는 어느 정도 철학사에 관한 교육을 시키는데, 이는 물리학과에서 딱히 물리학사에 관한 교육을 전공으로 시키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런 논쟁에서 맞서는 두 극단적 입장은 다음과 같다:
- 철학사 연구가 철학의 전부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듯이[7] 모든 철학적 사고는 이미 다 이루어졌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오직 옛 고전들을 정확히 이해하는데만 전념하면 된다.
- 철학사 연구는 철학에 불필요하다! 출판된지 5년이 넘은 철학 서적이나 논문은 더이상 최신의 연구를 위해서는 읽을 필요가 없는 구닥다리다. 철학자들은 오직 현재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전념하면 된다.
당연히 전자는 후자가 자신의 뿌리도 모르고 헛된 짓을 하는 것이라 비판하고, 후자는 전자가 그저 훈고학에 매달릴 뿐이라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철학자와 철학도들은 이 두 극단 사이 어디엔가에서 철학사에 대한 자신의 나름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 철학사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논쟁 사안은 철학사의 의의 및 그 접근 방식에 관하여 이루어지고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다 온건한 형태의 논쟁은 다음과 같은 입장들 간의 견해차로부터 촉발되고는 한다.
- 철학사의 의의는 최신 연구를 보조하는 데 있다. 철학사를 공부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또한 최신 연구가 벽에 막혔을 때 옛 고전을 참조함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다.
- 철학사는 그 자체로 철학적 작업이다. 최신 연구에 대한 응용을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철학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철학사는 과학처럼 진보해온 것이 아니며, 선현들의 생각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입장차는 철학사 연구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낳고는 한다. 예컨대 전자는 '실제로 옛 철학자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보다는 '어떤 유익한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따지는데 주력하며, 특히 분석철학적 훈련을 받은 철학사가는 옛 고전을 철저하게 논증의 형태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둔다. 반면 후자는 실제로 옛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당대의 사회 및 문화에 관한 이해를 겸비하고, 또한 원문에 대한 철저한 문헌학적 해석 역시 강조하는 편이다.
4 철학과에 갓 들어온 학부생을 위한 철학사의 독해
이 문단에서는 수많은 철학사를 참고하게 될 철학과 학부생들이, 철학사에 접근할 때 유의해야 할 태도에 대해 몇 가지 다룬다.
- 어휘의 해석에 주의하고, 번역본을 읽더라도 될 수 있으면 원문을 교차 참고할 것. 예컨대 어떤 철학사가 '고대 그리스인의 신화'를 정의할 때, '세계와 생명, 신들과 인간들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사회의 신앙'[8]이라고 정의했다면, 이 정의에서 '사회'라는 말을 해석할 때 '현대 대한민국의 사회'를 떠올리면 당연히 안 된다. 고대 그리스의 사회는 현대 대한민국의 사회와는 분명히 그 성격이 다르며, 일상적인 글읽기에 익숙해져서 이것을 놓치고 지나치면 당신은 철학사를 오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그러면 대체 오독하지 않으려면 '고대 그리스인의 사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해결 방법은 일단 말로는 간단하다. 고대 그리스인의 사회를 다룬 2차 문헌에 파묻혀 지내면 되지. 단어의 의미 하나를 꼼꼼히 음미하며 읽어야 하고, 단순히 책 한 권 읽고 완상하는 것보다는 수많은 다른 자료들을 찾으며 단어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 서문을 꼼꼼히 참고할 것.
- 많은 철학사가들은 글을 시작하며, 서문에서 자신이 철학사를 접하는 태도가 어떤지 미리 밝힌다. 즉, 근현대에 저술된 수많은 철학사들의 첫 문장은 대개 '철학사란 ─이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철학사가가 철학사를 어떻게 보는지, 그래서 책 안에서 쓰인 단어를 그 사람이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9]
- 1차 문헌을 반드시 참고할 것.
- 1차 문헌이 뭔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예를 들자면, 어떤 철학자의 글을 분석하는 글을 쓸 때, 분석의 대상이 된 원문을 가리킨다. 반대로 2차 문헌이란 다른 사람이 1차 문헌을 연구한 저술을 가리킨다. 정말로 철학의 역사를 열심히 배우려는 열정을 가진 철학도라면, 철학사가 파트별로 다루는 1차 문헌을 반드시 참고하라.
-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할 것.
- 물론 애초에 사람은 선입견이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대상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많고 그릇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면 올바른 학술적 독해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예로, 철학사의 중세 철학 파트를 읽을 때 '아, 누군가가 중세는 암흑시대(Dark Age)라고 말했지. 중세 사람들은 과학을 탄압했겠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철학사를 접하면 중세의 시대상에 대해 오독할 수 있다. 간단히 생각해보자. 중세가 암흑시대였고, 과학과 문화가 쇠퇴했다면 그 쇠퇴한 기반 위에서 어떻게 근대 철학이 탄생했겠는가? 동양의 분서갱유 사건만 보아도, 쇠퇴한 기반 위에서 쇠퇴하기 이전보다 나은 학술적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많은 독서와 자료 검색을 생활화하자.
5 참고해 볼만한 철학사 서적
가나다순.
철학사는 언제나 철학계에서 논란의 대상이다. 위에서 제시된 철학과 철학사에 대한 관점 차이만 해도 그렇고,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에 어느 철학사가 객관적인지에 대해 항상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 제시한 철학사 책들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므로 아래 모든 철학사 서적들을 죄다 읽음으로써 철학사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철학사 책은 무시하고 바로 1차 문헌으로 돌입할 것인지, 혹은 그냥 철학사 자체에 관심을 갖지 않고 바로 현대 철학에 돌입할 것인지는 결국 자신의 관점과 관심 분야에 달린 것이므로 유의할 것.
-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스털링 P. 램프레히트 저, 1권)
- 러셀 서양철학사(버트런드 러셀 저, 1권)
- 객관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신뢰할 수 없다는 평이 있다. 러셀의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상당히 편향적인데 이는 러셀 본인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래서 철학의 역사를 막 배우기 시작한 입문자에게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저술 시기가 2차 대전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근대 독일의 철학에 대해 편향적으로 서술한다는 지적이 있다.[10] 역으로 러셀의 사상에 공감하는 독자에게는 추천할만한데 러셀 자신의 시각으로 기존 철학을 모조리 비판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정도이다.
- 루트릿지 철학사(Routledge History of Philosophy, 루트릿지 출판사, 10권, 국내 미번역)
- 사실 이 책은 객관성을 따지기보다는, 같은 책이라도 다루는 사상과 철학자의 파트마다 각 분야의 권위자가 저술을 분담한 것이 중요하다. 코플스톤이나 힐쉬베르거와 같은 사람들의 철학사와는 내용상 차이가 있을 수 있더라도, 신뢰할만한 학자들의 연구 내용이 반영되었다는 것. 해외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듯 하다. 물론 국내에는 번역이 되지 않아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다. 총 10권 구성이다.
- 소피의 세계(요슈타인 가아더, 3권)
- 아동용 소설이라 철학사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은데, 소피의 세계는 엄연히 철학사가 맞는다! 동화적 내러티브 속에 철학의 문제들을 역사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독해의 난이도는 말할 것도 없다. 초등학생 수준의 어휘면 읽고 남는다. 만약 철학사가 무엇인지 쉽고 재미있게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참고해도 나쁘지 않다. 내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설명하자면, 수학 귀신의 철학판 정도?
- 슈퇴리히 세계철학사(한스 요하임 슈퇴리히, 1권)[11]
- 특이하게도 동양의 철학을 다룬다. 다만 저자가 동양철학을 깊게 파지는 않았는지 그 분량이 많지는 않다. 독해의 난이도는 매우 낮은 편; 그러나 소피의 세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2학년 이상의 학부생이 레포트용으로 참고하기에는 적절치 못하고, 저자도 서문에서 일반인들이 철학사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쓴 책이라고 밝힌다.
학교 4년다니는 동안 잘만 참고 했는데만약 철학과에 막 들어온 학부생이라면 이 책을 참고해도 나쁘지는 않을 듯. 서양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그 맥락을 꿸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페이지는 1000페이지가 넘어가기에 두꺼운 편이지만 은근 책장에서 뽀대난다.
- 스텀프 서양철학사
- 코플스톤 서양철학사(프레데릭 코플스톤, 11권)
- 특이할만한 사항은 엄청나게 분량이 많다는 것. 이 분량을 어떻게 혼자 다 썼는지부터가 의문이다(…). 독해의 수준은 평이한 편이다. 국내에 코플스톤의 모든 철학사 서적이 번역된 것은 아니며, 출판사도 각기 다르다. 다만 포함된 내용은 매우 상세하며, 학부생이라면 한 번 참고해볼 법한 책.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코플스톤 본인이 철학사를 쓴 동기를 밝힐 때부터 "성당에서 신학도들 가르치려고 만든 책"이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중립성에 대해 논란이 많다는 것이다. 책 여기저기에 가톨릭 신자인 코플스톤의 관점이 드러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을 갖다 버리라는 말은 당연히 아니고, 몇몇 철학사들은 명저로 꼽힌다. 특히 합리론이 그렇다.
-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요한네스 힐쉬베르거, 2권)
- 수많은 철학과 학부생들의 친구. 번역하는 데 10년이 걸린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 번역판은 1965년 발간된 제 8판을 기준으로 했다. 분량도 적절하고, 설명도 지나치게 장황하거나 편향되지 않고 적절하다. 독해의 수준은 낮은 편으로[12], 만약 철학과 학부생이라면 코플스톤과 힐쉬베르거의 철학사는 늘 당신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팁을 하나 적자면, 철학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의 수준으로 해석할 수 없는 문장이 나올 경우 원문이나 영문판을 참고할 것. 영문판은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배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