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에스코바르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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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의 시초
한때 미국의 절반을 마약으로 중독시키고 전 세계 마약 유통량의 70%이상을 손에 쥐었던 사람

Pablo Emilio Escobar Gaviria 1949.12.01~1993.12.02
콜롬비아의 세계최대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보스

2 일대기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사춘기때 마약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꽂혀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1] 천부적인 재능(?)과 장사꾼 기질을 가지고 있었는지 곧 수완을 발휘해서 22세에 메데인의 마약왕으로 등극했다. 꿈을 이뤘다

에스코바르는 이후 미국내 마피아들과 협력 관계를 맺어 콜롬비아 마약 시장의 80%를 점유하였고, 콜롬비아 내에서 생산한 코카를 대거 가공하여 코카인을 생산한 다음에 미국으로 대량 수출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였다. 그리하여 1,000명의 개인 경호원을 가지고 자기 집 내부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갖출 정도로 큰 부자가 되어갔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에 집은 테마파크 (...)로 바뀌어 4성급 호텔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부자였냐면 가지고 있는 현금의 10%가 매년 사라졌는데 그 이유는 쥐들이 돈을 갉아먹어서(...). 전성기 때는 하루에 600억을 벌었다고 한다. 전성기 때의 그의 갱단이 전 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컨트롤하기도 했으며, 1주에 최소 4억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현금 다발을 묶는 데 사용하는 고무줄 구매에만 매달 2,500 달러를 지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메데인의 축구 클럽 아틀렌티코 나시오날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에스코바르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은 아니면 납(Plata o Plomo)' 정책이었다. 그것은 경찰, 공무원, 정치인과 검판사들에게 나에게 협조해서 부자가 되거나(은) 아니면 총알 세례를 받는(납[2]) '선택'을 주는 것. 협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납 세례를 확실하게 내렸는데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죽이고 그를 대신해서 나온 같은 정당의 또 다른 대통령 후보가 타기로 되어 있었던 여객기를 폭파시키고 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인 M19에게 돈을 주어 고등 법원을 공격하게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에스코바르는 이처럼 더럽게 벌어온 돈 중 상당수를 메데인의 사회 인프라와 복지투자에 쓰고, 빈민층에게도 상당한 돈을 나누어주었으며, 빈민층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건설했다. 또 노숙자들과 거지들을 위해서 무료 급식소도 열었고, 성당과 가옥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축구팀도 창설하였다. 자연스럽게 메데인 주민들의 삶도 나아지자 에스코바르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심을 얻게 되었고, 에스코바르는 이러한 업적을 바탕으로 1982년 콜롬비아 총선에 출마하여 메데인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콜롬비아 정부와 마약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의 합동 작전으로 국회의원직에서 쫓겨났고 그 이후에는 추적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르코스에서는 주변인들에게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마지막화 도입부에서는 대통령이 되는 상상을 하는 등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묘사가 나오는데 확인바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추적당하는 신세가 된 그는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갚겠다고 했지만, 결국 미국의 눈치로 인해 콜롬비아 정부가 그의 사면을 거절했다. 그리고 협상을 거쳐 자수를 한 후 자신이 지은 교도소에 스스로 수감했다. 그리고 그 교도소가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면적이 무려 40만 평에 달했고, 교도관도 에스코바르 자신이 직접 선발했다. 교도소 안에는 정원, 수영장과 당구장, 볼링장, 나이트 클럽, 바도 딸려 있었다. 이쯤되면 수감 생활이 아니라 휴가를 보내는 수준. 그러나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게 에스코바르를 보내달라고 요구하자 에스코바르는 이 호화 교도소에서 탈옥을 한다.

에스코바르가 자기를 체포, 방해하려는 관료, 기자까지 마구 죽여 대도 콜롬비아 정부는 에스코바르의 범죄를 파헤칠 수가 없었다. 에스코바르가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사회 고위층을 매수하거나 협작을 가해서 모가지가 날아갈 위험도 있었고, 더군다나 일말의 양심을 가지고 에스코바르를 잡으려 해봐야 에스코바르 자신이 상당한 경호원과 군사력 등을 가지고 있었기에 폭탄이나 총에 맞아서 죽을 판이었다.

당시 콜롬비아는 좌익 게릴라 FARC와 20년 이상 지속되는 교전 및 우파 민병대의 깽판[3], 과도한 국가부채 문제등으로 이미 혼란한 상황이기도 했기때문에 이 문제로 이미 지친 콜롬비아 정부에서는 에스코바르가 대충 사고나 치지 않고 개인 감옥(?)에서 잠잠하게 있으면 봐주겠다라는 식의 협상을 진행시켰다. 이런 이유로 에스코바르가 자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고, 매일같이 춤추면서 놀아 제끼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 이때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 대선 후보를 노리고 비행기까지 폭발시킨 범죄자가 감옥에 수감되지 않고 호텔(?)에서 매일 밤 술마시고 춤추고 놀며 지내는 꼴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던 것. 그래서 콜롬비아 정부에게 에스코바르를 미국으로 보내라고 압력을 가한다. 그리고 당시 콜롬비아 내에서도 에스코바르에게 당한 사람이 수천 명씩이나 있기 때문에 여론도 좋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때 마침 자신의 부하 조직원 두 명이 에스코바르와 시비가 붙어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콜롬비아 정부가 에스코바르를 다른 감옥으로 이감을 시키려고 했고, 결국 에스코바르는 탈옥(?)을 하게 된다.

이제 수배자 신세가 된 에스코바르는 메데인 주민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도피 생활을 했다. 그런데 자기 가족이 독일에서 입국이 거부되자,(물론 파블로 에스코바르 본인이 입국이 지연되자 독일 대사관에 전화해, 모든 독일인들을 다 죽여버리겠다 협박해서) 콜롬비아 대통령궁 근처에 220파운드의 C4를 터트려버린다. 대부분 다친 사람은 어린이들. 이제 모두 이 천인공노할 인간을 쫒아 죽여버리기를 원했고, '자기 자식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여서' 보고타에 있던 아들과 약 20초간 통화를 하면서 위치가 발각되어 DEA와 콜럼비아 특수부대가 투입되었고,1993년 12월 2일, 탈출 와중에 3발의 총알에 맞고 사망한다.약혐 주의

그는 경호원 엘 리몬과 같이 있었는데 총격전 와중에 리몬은 죽고 그도 지붕을 통해서 탈출하다가 총에 맞았다. 가장 치명상은 귀를 뚫고간 총알이었는데 이것이 자살인지 확인 사살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3 트리비아

에스코바르는 살아있을 동안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마음에 안드는 깡패나 방해꾼이나 마약시장의 경쟁 카르텔은 당연히 학살 대상이었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정부나 언론사까지 테러를 벌여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경찰[4]은 물론이요,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판사[5], 검사, 정치인들까지 죽여버렸다.

심지어 에스코바르의 카르텔을 소탕하려고 시도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후보 3명까지 무차별 암살하기도 했다. 원래는 후보 4명을 죽이려 했으나 세사르 가비리아 트루히요는 운좋게 살아남았다. 에스코바르가 1989년 11월 27일 아비앙카 항공 203편 비행기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시켰는데 이 사람은 다행히 그 비행기에 타지 않아 죽음을 면한 것. 하지만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107명과 밖에 있던 3명, 총 110명이 죽었다(...). 이 폭탄 테러에서 살아남은 세사르 가비리아는 28대 대통령이 되었다

또 9일 후인 12월 6일에는 보고타에 있는 콜롬비아 행정보안국(DAS) 건물 앞에 있는 트럭을 폭파시켜 52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부상했다. 이미 같은 해 5월 30일에도 DAS 관리직 요원인 미겔 마사 마르케스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 그 대신 4명이 사망, 37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즉 1989년에 에스코바르는 200일도 안 되는 기간에 3건의 테러로 166명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렇게 에스코바르가 죽인 사람이 무려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학살은 물론이고 기세 좋게 카르텔을 지휘해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수도로 진격한 적도 있으니 단순히 마약왕의 범위를 넘어서 군벌에 가까운 인물로 악명을 떨쳤다. 에스코바르의 형도 동생덕에 한몫하면서 살았으나 감옥에 폭탄이 와서 다치는 등 정상이 아니었다.

위의 악명 때문에 묻히는 거지만(...) 에스코바르는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메데인의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시키는 공을 세웠고 당시 막장이었던 콜롬비아의 상황속에서 빈민층들을 위해서 통 크게 돈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 않았으면 1년 넘게 피신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메데인 주민을 위해 나름의 공을 세웠다고 해도 그와 별개로 절대로, 절대로 범죄가 정당화 되는건 아니다. 애초에 건실한 산업을 키우는 대신에 마약을 팔아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고, 메데인 빈민층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썼다 해도 타 지역 주민들에게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테러를 저질렀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 이미지가 영 좋지 않다. 어쨌든 현재도 콜롬비아 내에서 에스코바르를 좋게 보는 빈민층들이 은근히 많고 메데인에서의 에스코바르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도시 빈민의 삶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케이블카와 전철 등의 인프라 건설에는 일정 부분도 기여하지 않았다. 메데인의 도시 기반 전체가 파블로 에스코바르 덕분에 이루어졌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대중의 무지에 충격을 받는 사람도 많다.

메데인 전철은 파블로 에스코바가 판을 치기 전인 1979년부터 계획되었으며, 1995년 1차 완공되었다. 1979년 파블로 에스코바르 같은 속칭 "마약왕"들이 교외도시의 치안을 망쳐 놓는 것을 우려, 메데인 시 정부의 상위 기관인 Antioqia 지방정부에서부터 계획했었던 일이며, 이는 뉴욕, 리우 등 먼저 발전했었던 도시들이 교외 도시 공동화 현상을 방지하기위해 울며 겨자먹기식 대안으로 전철을 건설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를 들면, 부산 지하철 4호선이라 할 수 있다. 반송동, 금사동, 서동 등 교외지역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어 견딜 수 없어질 지경에 이르자,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건설된 것이 부산 지하철 4호선이니 적절한 비교라 볼 수 있겠다.
메데인 케이블카 역시 마찬가지. 2004년 1차 케이블카가 완공되었으니, 이 역시도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연결하기는 힘들다. 가디언 지를 인용하자면 케이블 카를 건설한 후 "건설 지역의 살인, 강력범죄율이 80% 이상 감소했다"고 한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공헌 아니면 공헌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가 치안을 망쳐놓고, 도시를 지옥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이루어진 일이다.

전 세계에 10억 달러 이상 재산 소유자가 겨우 226명[6]이던 1989년, 에스코바르의 재산은 250억 달러로 세계 7위의 부자로 알려졌다. 에스코바르의 현금은 죽을 때 일부밖에 회수되지 않았다. 수천만 달러가 콜롬비아 일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전 세계의 특수부대 출신들이 보물찾기에 나섰다고 한다. 재산 액수가 과장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재산이 현금이 아닌 다음에야 정확히 평가하기도 힘들고, 에스코바르의 재산을 합법적으로 평가한 사람이 없는 터라 신빙성은 없다.

정부가 흔히 자국내 갱단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 위해 갱단의 실태를 과장하는 경향도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갱단 두목이었던 마이어 랜스키에 따르면 FBI등은 갱단이 취급하는 돈을 열 배 이상 부풀리는 경향이 있다고. 실제로 쿠바 혁명으로 미국 갱단이 입은 손실을 자체 조사한 결과 의외로 규모가 작아서 놀랐을 정도라고 한다.

앞서 나왔듯이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를 자신이 전부 갚는 조건으로 자신과 자신의 조직원들을 전부 사면해달라고 탄원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콜롬비아 정부의 부채는 대략 350억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내전+오일쇼크+이자율 증가라는 3콤보가 겹친 결과물이었다. 이 많은 부채를 갚아주겠다는 건 아무래도 에스코바르의 허세로 보인다.

2012년에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7]가 콜롬비아 카라콜 채널에서 113부작에 걸쳐서 철찬리에 방영되었다. 2015년에는 넷플릭스가 그의 일생과 그를 쫒는 미국 마약 감시반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나르코스를 만들었다.

4 에스코바르에 대한 일화

  • 인생에서의 첫 범죄는 무덤의 비석을 훔쳐 가난한 상주에게 판 것이라고 한다.
  •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들여올 때 보잉 727기를 개조해서 좌석을 전부 떼어낸 후에 마약을 운반한 적이 있다고 하며, 심지어 잠수함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마약 운반의 전성기 시절에는 1년에 10분의 1정도만 제대로 '공급'해도 충분한 이윤이 남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마약단속 정책이 바뀌었을 정도라고...
  •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의 합동 작전에 쫒겨 추운 콜롬비아 산맥으로 도주했을 당시에 약 2백만 달러의 지폐를 불쏘시개로 썼다고 한다.
  • 도주 시절 두 명의 측근에게 재산을 맡겼었는데, 두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고 생각해서 모두 사살. 그러자 두 측근의 주변 인물들이 반발해서 에스코바르의 집과 모친, 친척들에게 보복으로 테러를 가했다고 한다.
  • 에스코바르의 무덤은 본인 확인을 위해 조카와 부인이 함께 한 가운데 다시 파헤쳐졌다. 그의 묘비명은 "미국에 있는 감옥보다 콜롬비아에 있는 무덤을 더 선호한다." (Prefiero una tumba en Colombia que una cárcel en Estados Unidos.)라고 적혀있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에도 기여를 했다. 미군이 에스코바르를 잡기 위해 콜롬비아에서 수색한 경험이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에스코바르를 잡기 위해 미국이 콜롬비아에 투입한 부대 중 네이비씰 6팀이 이후 2011년에 빈 라덴을 잡는다.#
  • 남미 여러나라의 국부인 시몬 볼리바르의 검을 가졌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파블로가 활동하던 당시 시몬 볼리바르의 검은 M-19라는 게릴라 집단이 1973년에 훔쳐간 상황이었는데[8] , 이 M-19가 나중에 파블로를 도와 콜럼비아 정부를 테러하던 과정에서 시몬 볼리바르의 검을 맡겼다는 주장이다. 단순한 설로 보기 어려운게 파블로의 아들 후안이 자기 아버지를 회고할 때 시몬 볼리바르의 검이 자기집에 있었다고 주장했다.(출처:스페인어)

5 서브컬처에서

  • 한국에 정발된 고르고13의 첫 에피소드[9]는 누가 봐도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모델이다.
  • 톰 클랜시 소설과 이걸 영화화한 작품 <긴급명령>(해리슨 포드 주연)에 등장하는 펠릭스 코르테즈의 모티브가 되었다. 배역은 미드 24 시즌 3에서 악역으로 나온 호아킴 드 알메이다가 맡았다.
  • 2015년에 첫 시즌이 시작된 미드 나르코스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엘리트 스쿼드 시리즈에서 나시멘투 역할을 맡았던 브라질 배우 와그너 모라가 살을 찌워 연기했다.
  • 2014년에 개봉된 영화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에서는 마약왕의 조카와 사랑에 빠진 캐나다 청년의 시선을 통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삶을 그려내었으며, 베네치오 델 토로가 파블로 에스코바르 역을 맡았다.
  1. 22세가 되기 전에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2. 총탄의 탄두는 납으로 만들어져있다. 물론 통짜 납이었다간 1차대전처럼 중독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물렁물렁한 재질 특성상 강도 문제가 생기므로 구리로 씌우거나 혼합재질을 사용한다. 하여간 납이라는 단어가 총알을 상징하기도 한다.
  3. ...덕택에 해결될 뻔했던 내전이 더 연장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4. 최소 1000명 이상 추정
  5. 200명 이상 추정
  6. 2012년 1425명이지만 23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특히 양적완화 정책이 이어진 08년도 이후의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저 당시의 Billionaire는 지금의 trillionaire수준이다.
  7. Pablo Escobar, el Patron del Mal. 평범한 체격인 나르코스와 달리, 현실처럼 에스코바르가 후덕한 체격으로 나와서 싱크로율이 더 높다.
  8. 1991년에 콜럼비아 정부로 돌아왔다.
  9. 제목은 '메데인 카르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