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언변이 뛰어났던 맹상군의 식객. 전국책과 사기의 맹상군열전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1 맹상군의 식객 생활
젊어서 뭘 하고 지냈는 지는 알 수 없고, 맹상군이 식객을 우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맹상군이 식객을 들일 때는 그 사람의 특기를 물어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풍훤은 "그런 건 없고, 그저 그쪽이 선비를 좋아하신다고 하니 내 몸뚱아리 좀 의탁하러 왔소"라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워낙 식객으로 별 사람이 다 있었던 맹상군은 대인배스럽게 별말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맹상군은 식객을 세 등급으로 나눠 대접했는데, 갓 들어온데다 내세울 특기 같은 것도 없다고 한 풍훤은 시키는 일만 겨우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머무는 하급 숙소인 전사(傳舍)에 머무르게 되었다. 맹상군이 풍훤이 뭘 하고 지내는 지가 궁금해서 숙소 관리인에게 근황을 물어보니 풀만 가득한 밥상을 받은 풍훤은 갑자기 칼집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면서 "장검아 돌아가자! 무슨 밥상머리에 생선반찬도 없구나!" 라며 노래를 부른다는 보고를 받았고, 맹상군은 이 말을 듣고 일을 시킬만한 사람들이 묵는 중급 숙소인 행사(幸舍)로 옮겨 줬다. 그런데 풍훤은 거기서도 다시 칼집을 두들기며 "장검아 돌아가자! 어디 밖엘 나가려는 데도 수레도 없구나!" 라고 하니, 이번에도 이 말을 들은 맹상군은 자신의 대리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묵는 상급 숙소인 대사(代舍)로 옮겨 수레도 지급해 줬다. 그런데도 풍훤은 5일 뒤 다시 칼집을 두들기고 "장검아 돌아가자! 여기 있어 봤자 내 집이 없구나!"는 노래를 불러대니, 맹상군의 인내심에도 슬슬 한계가 오고야 말았다.[1]
2 의(義)를 사다
어쨌건 이리하여 높은 자리에 올랐는데도 풍훤은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니트 세월을 보냈고, 처음으로 맡게 된 일이 빚쟁이들에게서 돈을 뜯어오는 일이었다. 당시 맹상군은 제나라의 재상이긴 했어도 워낙 식객이 많아 그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자기 고향 땅인 설(薛)에서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말발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풍훤의 재능을 시험해 볼 겸 맹상군은 풍훤에게 수금을 부탁했고, 풍훤도 흔쾌히 여기에 응하여 길을 떠났다.
그런데 설 땅에 도착한 풍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집에서는 돈을 받아 10만 전이란 거금을 거두어 맹상군에게 보고했고, 맹상군은 "집에 부족한 게 있으니 무엇인가 사서 돌아오도록 하라"는 답장을 보냈다. 맹상군의 편지를 받은 풍훤은 이자를 낼 수 있든 없든 맹상군의 빚쟁이들을 모두 한 자리에 불러모은 후 받아낸 이자 10만 전을 가지고 잔치를 벌였고, 잔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빚을 못갚을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빚문서를 죄다 불태워 버렸다.
이후 풍훤이 설에서 돌아오자 그의 비범한 일처리 소식을 들은 맹상군이 화가 나서 풍훤을 소환하자 풍훤은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갚을 기한을 정해줄 수 있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은 10년을 기다려도 이자는 못 받고 그들은 도망갈 것입니다. 이걸 독촉하느니 공과 백성들 사이에 의(義)를 사서 돌아오게 되고 명성을 높이는 것만 못하니 그렇게 하였습니다" 라고 답하니 할말을 잃은 맹상군은 풍훤에게 감사를 표하고 물러가게 했다.
3 교토삼굴
그리고 얼마 뒤, 잘나가던 맹상군도 결국은 진나라와 초나라의 이간질 끝에 제나라 왕의 미움을 사서 파면당했고 뜯어먹을 게 없어져서 식객들도 뿔뿔히 흩어져 버렸는데, 풍훤만은 곁에 남아 맹상군에게 설로 가자고 진언했고, 그 말을 듣고 털레털레 설로 간 맹상군은 그곳의 백성들이 남녀노소 할것 없이 몰려와 자신을 맞이하자 "일전에 의를 사왔다는 말뜻을 오늘 알았소"하고 매우 감동했는데, 풍훤은 한술 더 떠서 "약은 토끼는 굴을 세 개 파둔다(교토삼굴狡兎三窟)고 하니 이제 내가 굴을 두 개 더 파서 공을 두 다리 쭉 뻗고 잠들게 하겠습니다."라며 장담하고 맹상군 곁을 떠난다.
길을 떠난 풍훤은 먼저 위나라 왕을 만나[2] "위와 제나라는 자웅을 겨루고 있으나 두 나라 모두 '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둘 중 웅이 되는 쪽이 곧 천하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왕이 무릎을 꿇고 "어떻게 하면 위나라가 웅이 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으니 풍훤은 "지금의 제나라를 만든 사람은 맹상군인데, 제나라는 그런 맹상군을 버렸습니다. 제나라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하는 맹상군이니 이제 그 사람만 발탁하면 제나라를 개발살낼 수 있습니다"라고 꼬셨고, 위왕은 아싸 조쿠나 하며 사신을 보냈다.
그 직후 풍훤은 제나라로 재빨리 돌아가 왕에게 "댁이 파면시킨 맹상군을 위나라 왕이 초빙하려 하는 데 지금 잠이 옵니까? 그 사람이 위나라 재상이 되면 당신은 개발살납니다"했고, 제왕은 "이놈이 뭔 개소린가" 했지만 혹시나 싶어 알아보니 그때쯤 도착한 위나라 사신이 진짜로 맹상군을 만나 현질하고 있어서 식겁했고, 이에 풍훤은 "떡밥을 물었구나 맹상군도 사람인데 따따블 안 부르면 안 올 듯" 했고 제나라 왕은 이것을 그대로 실천, 덕분에 봉지를 1천호 늘려서 복직해서 맹상군은 매우 신났다. 이에 풍훤은 그치지 않고 "선왕의 제기를 하사받아 설 땅에 종묘를 세우라"는 보신책을 알려줬고, 당연히 맹상군은 이것을 그대로 했다. 헌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소인배 제나라 왕은 훗날 맹상군을 까버린다(...).
여담이지만 위와 같은 우여곡절을 겪어 맹상군이 복직하자 흩어졌던 식객들도 뜯어먹을 거 없나 하고 다시 모여들었고 풍훤이 그런 식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자 맹상군은 "난 식객 대접하길 좋아해서 언제나 그 놈들을 최선을 다해서 대접해줬더니, 내 처지가 어렵다고 튈 땐 언제고 이제와서 무슨 낯짝으로 다시 기어들어와! 만약 그들이 돌아오면 내가 저놈들 낯짝에 침을 뱉어줄테다." 라며 매우 화를 냈다. 이에 풍훤이 "시장이 아침엔 바글바글하다 저녁에는 썰렁한 이유가, 아침시장을 좋아하고 저녁시장을 싫어해서는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돈이 많고 자리가 높으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선비들이 전부 떠났다고 해서 일부러 식객들이 오는 것을 막을 필요까진 없습니다. 이전처럼 그들을 대우하시길 바랍니다." 라고 진언했고, 맹상군은 뭔가 깨닫는 바가 있어 수레에서 내려와 풍훤에게 깨달음을 줘서 고맙다고 절하며 식객을 대접했다고 한다.
4 위나라에서 재등장
맹상군의 사후 풍훤은 위나라로 갔고 그곳의 다른 전국사군자인 신릉군에게 의지했다. 진나라 왕이[3] 신릉군이 조나라와 위나라에서 2차례나 진군을 이기자 신릉군을 억류하기 위해 진나라로 불렀으나 풍훤은 자신이 옛날에 섬겼던 맹상군과 초회왕의 사례를 들며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신릉군은 자신의 다른 빈객인 주해를 보냈고 주해는 신릉군에 대한 의리를 지키며 죽었다. 진왕은 채택의 계책을 받아들여채택하여 신릉군과 위나라 왕 사이를 갈라놓게 했고 그 계책이 주효해 신릉군은 니트족으로 전락해 하릴없이 주색으로 소일을 하다가 죽었고, 풍훤 또한 그 뒤를 따르듯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