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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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고양이

이름프란티세크 플라니츠카[1]
(František Plánička)
생년월일1904년 6월 2일
사망년월일1996년 7월 20일
국적체코
출신지프라하
포지션골키퍼
신체조건172cm / 68kg
등번호-[2]
소속팀슬라비아 프라하(1923~1939)
국가대표73경기 / 0골

1 클럽 커리어

프라하에서 태어난 플라니츠카는 어렸을 때 여러 클럽을 전전했지만 19세에 고향 팀 중 명문 클럽인 슬라비아 프라하에 정착했다. 지금이야 체코 리그에서 그럭저럭한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30년대에는 플라니츠카,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안토닌 푸치 등을 앞세워 강호로 군림했었다. 플라니츠카는 이 클럽에서 16년을 뛰면서 소속팀의 골문을 든든히 지키며 30년대 체코슬로바키아리그 최강팀으로 역사에 남았다.

슬라비아 프라하의 위세는 대단했는데 1932년 미트로파 컵에서 이탈리아 챔피언 유벤투스를 만나 4대 0으로 꺾어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슬라비아 프라하의 흑역사인데 초반에 2골을 먼저 넣은 슬라비아 프라하는 훼방과 시간 끌기로 남은 시간을 보내버렸다. 이에 화가 난 유벤투스 팬들은 로리 델랍으로 빙의하여 쓰레기를 슬라비아 프라하 선수들에게 투척했고, 이 과정에서 골키퍼 플라니츠카가 유벤투스 팬들이 던진 물건에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70년 쯤 후 누구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때문에 슬라비아 프라하는 2차전을 포기했고, 주최측에서는 둘 다 책임을 물어서 탈락시켜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16년간 거의 천 경기 가까이 뛰었고 그 과정에서 73%의 승률을 올렸다고 한다.

2 국가대표 커리어

플라니츠카는 1926년부터 국가대표 생활을 했는데 무려 73경기를 뛰었다.[3] 또한 그는 73경기 중 37경기를 주장으로서 참가한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의 간판이었다.

2.1 1934년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월드컵에 참가한 플라니츠카는 매 경기마다 실점은 있었지만 인상적인 방어로 팀을 결승에 까지 올려놓았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잠피에로 콤비와의 골키퍼 대전. 이 혈투에서 플라니츠카는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뛰던 이탈리아의 투지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2골 다 플라니츠카조차 막을 수 없는 훌륭한 골들이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2 1938년 월드컵

네덜란드를 1라운드에서 연장에만 3골을 넣어 따돌린 체코슬로바키아의 2라운드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보르도에서 만난 두 팀은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난투극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플라니츠카는 오른팔이 부러져 2차전을 뛸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브라질에게 2차전에서 패배. 8강에서 짐을 쌌고, 그것이 플라니츠카의 마지막 A매치였다.
그 대회에서 베스트 골키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3 은퇴 이후

건강관리를 잘해서인지 꽤나 정정한 모습을 보였다. 1996년에 48년만에 슬라비아 프라하가 체코 리그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91세의 노구를 이끌고 축하연에 참석했을 정도.. 그러나 두 달 후 플라니츠카는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에 대표팀의 먼 후배였던 카렐 포보르스키도 참석했는데 그는 원래 그 날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입단 계약일이었지만 입단 계약을 미루고 플라니츠카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화제가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

172cm의 작은 키였지만 뛰어난 슈팅 방어력을 갖고 있었고 아크로바틱한 플레이를 선보였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별명이 프라하의 고양이였다.

현대의 선수와 비교하면 이케르 카시야스와 비슷할 듯 싶다. 골키퍼 치고는 작은 키, 왼발잡이,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으로서의 리더쉽, 아크로바틱한 세이브 그리고 관중의 물건투척 사건까지..

그리고 페트르 체흐의 국가대표팀 선배들 중 단연 최종보스.

5 수상

5.1 클럽

체코 퍼스트 리그 우승 8회: 1925, 1928–29, 1929–30, 1930–31, 1932–33, 1933–34, 1934–35, 1936–37(이상 슬라비아 프라하)
미트로파 컵 1회: 1938
보헤미안 컵 우승 6회: 1926, 1927, 1928, 1930, 1932, 1935

5.2 개인

월드컵 베스트 11 1회: 1938
유네스코 국제 페어플레이 상: 1985

체코 페어플레이 상: 1994.
  1. 국립국어원의 체코어 표기법에 맞는 표기는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
  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3. 2차 대전 이전에 그 보다 A매치를 더 많이 뛴 선수는 스위스의 수비수 세베리노 미넬리밖에 없다.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그의 기록이 깨지는데는 28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