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그와는 관계 없다.
1 체코의 수도
Praha(체코어)
Prague(영어)
Prag (독일어)
Prága(헝가리어)
Прага(러시아어)
프라하(한국어)
쁘라하(문화어)
1.1 지리
북위 50°, 동경 14°28'. 면적은 496 평방킬로미터, 인구는 약 200만 명이다(2007년 체코 통계청).
체히 지방의 중심부에 놓여 있으며, 블타바 강[1]이 중심을 가로질러 흐른다. 스트르셰도체스키 주가 프라하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행정 관청 또한 프라하에 위치한다. 프라하 시의 중심지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가장 중세 유럽이나 19세기 유럽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도시로 자처하고 있다.
1.2 역사
처음 9세기에 프라하 성이 축조되었고,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현재의 구 시가지의 광장에서 교역이 시작되면서 볼티바 강의 나루터의 취락에서 교역 도시로 발전했고, 1085년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4세기에 이르자 카렐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도시는 더욱 발전하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당시의 인구는 4만으로 추정된다. 그 사이인 1344년에 주교의 도시에서 대주교의 도시로 승격되었고, 1346년엔 카렐 4세의 통치 아래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348년엔 '프라하 카렐 대학교'[2]가 건립되었다.
그러다가 1378년 얀 후스의 종교 개혁으로 14~15세기에는 후스 전쟁의 싸움터가 되었다. 이후 왕위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의 주요 세 도시 중 하나로 등극했고(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15~16세기에는 고딕 건축의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정치적인 의미는 상실하였으나 1583년 루돌프 2세의 통치 아래 잠시나마 두 번째로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어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신교의 자유를 두고 황제 페르디난트 2세와 보헤미아 귀족들 간의 알력 다툼으로 1618년 보헤미아의 귀족들이 프라하 성에서 황제의 대리인들을 투척하면서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바로크 건축이 번성하였고 18세기 말부터 다시 수공업 등이 일어나 경제적으로 회복되어 인구도 8만을 헤아렸다. 그 후에도 인구는 늘어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대의 공업 도시로 성장하였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과 함께 그 수도가 되었다. 1968년의 프라하의 봄 사건으로 유명하며, 1993년 슬로바키아의 분리에 따라 체코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1.2.1 연표
1.3 행정 구역
숫자로 구분해 프라하 1구역부터 22구역까지 있다. 10구역까지 있었으나 행정구역이 넓어지고 세분화되어 22구역까지 나뉘게 되었다. 숫자로 구분한 행정구역 말고 이름이 붙은 구역들이 있는데, 숫자로 나눈 구역보다 더 오래 전에 나뉜 구역들이며 숫자로 나뉜 구역과 겹치기도 하고 다른 구역에 걸쳐 있기도 하다. 예전의 행정구역들과 새로 만든 행정구역들을 병행하여 쓰기 때문에 좀 헷갈릴 수도 있다.[3] 우편을 보내거나 서류상의 공식 행정구역은 숫자가 붙은 프라하 1, 프라하 2 같은 것을 먼저 쓰며 세부 사항으로 이름이 붙은 구역 이름을 쓴다. 대체로 체코인들에게 "프라하 어느 동네에 살아?"하고 질문할 경우 이름이 있는 구역을 대답하며 숫자 붙은 구역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프라하에서 오래 안 산 외국인들은 숫자로 구분하는 편이다.
- 프라하 1
- 말라 스뜨라나, 스따레 므녜스또(구시가), 노베 므녜스또(신시가), 요제포브, 흐라드차니를 포함한 구역. 구시가, 신시가, 프라하 성이 위치한 곳. 관광객들은 다 여기 모여 있고 실제로 프라하 1구역만 보면 프라하 주요 관광은 다 한 거나 다름없다. 카렐 대학교, 프라하 공연 예술 아카데미(AMU), 프라하 건축 디자인 학교(VSUP) 등의 주요 대학도 거의 이곳에 모여 있다.
- 프라하 2
- 비노흐라디, 비셰흐라드, 노베 므녜스또 일부. 외국인들이나 학생들의 선호 거주 지역이며 외국 식당이나 편의 시설이 많고, 젊고 트렌디한 현지인들이 가는 핫플레이스가 많다.
- 프라하 3
- 비노흐라디 일부, 지슈코브[4] 구역. 비노흐라디 보다 훨씬 저렴한 집세, 외국인 상대로 한 클럽과 식당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떠오르는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서민의 동네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슈코브 지역은 집시들이 많이 살고 치안이 안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 프라하 4
- 미흘레, 누슬레, 비셰흐라드 일부. 우울한 공산주의 시대의 아파트들이 잔뜩 들어선 구역이지만, 미흘레나 누슬레 쪽에는 괜찮은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기도 하다.
- 프라하 5 - 스미호브, 말라 스뜨라나 일부. 1구역에서 가까운 5구역 지역은 살기 좋으나 스미호브 지역은 집시들이 많이 살고 치안이 안좋은 곳으로 유명했다. 최근 나름 재개발이 많이 되고 있는 곳. 프라하를 산지로 하고 있는 스따로쁘라멘이라는 맥주 공장이 있다.
- 프라하 6
- 데이비체, 브제브노브, 부베네츠 일부, 흐라드차니 일부. 꽤 넓은 행정구역으로 부촌과 프라하 구석의 싸구려 아파트촌, 국제공항까지 포함하고 있다. 데이비체와 부베네츠 쪽의 경우 이름난 부촌으로 부베네츠 쪽에는 각국의 대사 공관과 대사 관저가 몰려 있다. 미국 대사 관저는 궁전 같은 크기를 자랑한다. 주체코 한국 대사관도 이 구역에 있다. 특성상 외국인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살며, 다른 구역에 비해 깔끔하고 치안이 좋은 편이다. 그러나 데이비체, 부베네츠 지역에 한한다.
- 프라하 7
- 부베네츠, 홀레쇼비체. 레뜨나, 스뜨로모브까 등의 큰 공원에 붙어 있는 지역이며 시내와의 접근성과 비교적 싼 집세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기 좋은 지역이다. 오래 전부터 박람회 등이 열렸던 벨레뜨르즈니 빨라츠와 국립 미술관, 국립 예술 학교(AVU)가 위치해 있고 클럽이나 현대 미술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홀레쇼비체 일부 지역은 치안이 안 좋고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5구역의 스미호브 지역과 함께 재건축된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 프라하 8, 9, 10구역은 딱히 특징이 없는 서민 거주 지역이다.
- 프라하 8
- 까를린, 리벤, 노베 므녜스토 일부, 지슈코브 일부
- 프라하 9
- 흘로우볘띤, 리벤, 프로섹, 비소차니
- 프라하 10
- 말레시체, 브르쇼비체, 비노흐라디 일부
1.4 주요 관광지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
유네스코 세계유산 | |
이름 | 프라하 역사 지구 |
Historic Centre of Prague | |
국가 | 체코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등재연도 | 1992년 |
등재기준 | (ⅱ), (ⅳ), (ⅵ) |
프라하(Prague) 시가지의 건축물들은 중세시대에 건축학적·문화적 중심지였던 프라하의 영향력을 잘 대변해 준다. 프라하에는 11~18세기에 건축된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하라드차니 성(Hradčany Castle), 성 비투스 성당(St Vitus Cathedral), 카를 다리(Charles Bridge) 등 세계유산에 등록된 많은 건축물은 대부분 14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 황제 시대에 축조된 위대한 기념물들이다.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프라하는 옛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많고 서유럽에서 가깝기 때문에, 동유럽(옛 공산권) 지역에선 가장 붐비는 문화 관광도시 중 하나다.
최근에는 특정 장소에서 모여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느낀 만큼의 가이드비를 내는 팁 투어가 인기를 얻고 있다. 프라하에 방문할 계획이라면 팁 투어는 꼭 들어보도록 하자.
아래 설명할 대부분의 관광지는 그리 넓지 않은 중심가 1구역에 몰려 있어서, 평소에 많이 걷는 편인 사람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도 대부분 구역을 구경할 수 있다.
-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그 광장.
- 프라하 성
- 성 비투스 성당
-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배경이 된 곳이다.
- 황금 소로
-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 있으며, 단칸방이다.
- 카를 교
- 난간의 여러 조각상들과 다리 위의 각종 노상 퍼포먼스 공연으로 유명하다. 30개의 동상 중 가장 먼저 세워진 요한 네포무크 성상이 유명하다.
- 구 시가지 광장
- 얀 후스 동상
- 프라하의 연인에서 소원의 벽으로 나왔던 곳이다.
- 캄파섬
- 화약탑
- 틴 성당
- 시민회관
- 유태인 지구
- 페트로진 전망대
- 국립 중앙 박물관
- 2015년까지 휴관 중이다.
1.5 기타
프라하의 1인당 GDP는 2011년 43200달러이다.[5]
유럽여행자들에게 비교적 외면받는 동유럽 지역의 도시임에도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한 도시이다. 동서구분시 동유럽으로 본다 해도 동유럽 안에서는 가장 서쪽이라,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지척이라 그리 멀지도 않은 위치와 원활한 교통이 관광객 유치에 한몫한다.
프라하가 다른 도시와는 달리 문화유산이 많이 남은 이유는 유럽국가들에게 최악의 피해를 안겨준 제2차 세계대전 때 전면적으로 나치와 맞붙지 않고 일찍 항복해 직접적인 전쟁과 폭격은 거의 빗겨갔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밀고 밀리면서 초토화된 독일과 폴란드의 경우, 현재 복원한 것이 아닌 예전 그대로 남아 있는 건축유산은 많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체코의 국민성이 "슈베이키즘" 으로 대표 되는 "반전주의"인 것은 맞으나, 민족성이 마냥 납작 업드려 항복 하는 것이 다인 것 마냥 평가 하는 것은 한 마디로 멍멍이 소리이며, 편협한 시각이다. 실제 체코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발전한 중공업과 부를 바탕으로, 프라하-비엔나-부다페스트로 대표 되는 3국 정치에 참여 하고 있었고 (형식일 뿐이었지만서도) 부국이었다. 현대사에서 쉽게 폄하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항복은 실제로는 체코의 동맹국 이었지만 전쟁에 지친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준비가 되지 않았던) 독일에게 체코 침공을 묵인 하는 대가로 불가침 협약을 맺고 체코의 뒤통수를 가열차게 날린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에 당시 체코 대통령인 에드바르드 베네쉬는 (Edvard Benes) 국경에서 전투 대기하고 있던 모든 군대에 즉각항복명령을 내리고 항복한다.
당시 체코의 군사력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독일과 전투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수준이었고, 체코가 단독으로 전투를 할 시, 영국과 프랑스는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체코가 항복하면서 그 많은 군사무기들이 몽땅 나치로 흡수되어 프랑스 침략에 사용된 것은 무시하자. 이건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 당시 체코 지도부는 자국 국민을 열강들 끼리의 전쟁에 피해자로 만드는 것을 거부, 전쟁보다 어려운 항복을 하였다. 이는 녹색작전 부분 참조.
허나 국가의 항복후에도, 군인으로서 항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레지스탕스가 되거나, 영국군 혹은 러시아군에 합류 하여 전쟁을 지속한 군인들의 숫자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2차대전 종료후 승전국의 지위를 갖게 된다. 위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들이 다수 있다.
1. Dark Blue Sea(2001): 체코 항복 후, 영국공군에 합류하여 싸운 체코 조종사들 이야기
2. Zelary(2003):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 일원이던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3. Tobruk(2008): 2차 대전 시, 북아프리카전선에 참여 했던 체코병사들 이야기
또한 체코의 경제력과 노동력, 우수한 기술이 필요했던 나치에 의해 폴란드나 소련같은 여타 동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절멸과 파괴를 면한 탓도 있다. 물론 대전 내내 체코인들은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인들과 함께 2류 인간 취급을 받으며 무기 만드는 노예로 열심히 부려먹혔다.
프라하 성 내부에는 중세에 사용되던 무기와 갑옷들 그리고 그 도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 내부에서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쇠뇌를 쏴볼 수 있는데 관리가 부실해서인지 명중률이 더럽다. 정말 과거에 저런 걸로 싸웠다면 닥 돌격도 해볼 만했을지도... 하지만 재밌으니 한번 쯤 쏴보자.
그 밖에도 대장장이 아저씨가 직접 만든 제품을 팔고 있기도 하다. 단도부터 시작해서 클레이모어 소드, 도끼 등등 재밌는걸 많이 만든다. 딱히 물건을 사지 않아도 칼을 벼리는 과정을 구경해도 재미있다. 단점이라면 화로에서 가끔씩 연기가 날려 눈이 맵다는 점 정도.
중세 건축뿐만 아니라, 근대의 신고전주의나 아르누보의 건축물들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심지어 해체주의의 거장 프랭크 게리의 춤추는 빌딩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그야말로 서양 건축의 박물관이라 할 만한 곳이다.
그런 이유로, 헐리우드 영화 제작 중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뉴욕이 배경이 되는 영화의 경우 프라하에서 많이 촬영한다. 그 시기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는 듯하다.
어째 이 곳의 창문에서 권력자들이 많이 투척당하기로(...) 유명하다. 비공식적으로 4건. 후스 전쟁을 유발한 첫 번째 투척, 30년 전쟁을 유발한 두 번째 (단, 시기상은 세 번째) 투척이 유명하다.
꼭두각시와 공동묘지로 유명하다. 베니스, 부다페스트에 이어 기괴한 동화 같은 풍경의 도시로, 온 동네에 꼭 꼭두각시 극장이 있다. 또한 옛 건축물 구석구석에 메멘토 모리의 심볼(해골, 시계, 연금술 문장 등)이 숨겨져 있다. 프라하에 가면 점성술사의 시계탑을 꼭 볼 것.
프라하 중앙 광장의 관람은 저녁 무렵에 하는 것이 좋은데, 밤이 되면 조명과 고건축물이 어우러져 매우 훌륭한 야경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프라하 관광 중에는 항상 주머니를 주의하자. 전 유럽의 난다 긴다 하는 소매치기는 전부 프라하에 모였다고 한다. 파리는? 로마는? 런던은?
이태리처럼 조직단위로 움직이지는 않으나 각개전투로 일단 시도해보고 아님 말고식으로 도전하니 조심하시길...
특히 천문시계가 있는 광장 일대에 소매치기가 많으니 유의하자. 주위에 있는 핫도그나 빵을 사먹을 때 특히 더 조심할 것.
그 밖에 S사의 수장이신 이모 회장께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방문하는 장소로 포시즌 호텔이 있다. 프라하 배낭 여행 중 우연히 외국인 친구와 의기투합했는데 숙소가 포시즌이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상당한 부유층의 자제일 것이다.
여행을 프라하 인 아웃으로 결정한다면 프라하 관광 외에 주로 가는 곳이 독일의 드레스덴과 같은 체코 남쪽지방의 체스키크롬로프다. 버스로 각각 2~3시간 정도면 도착하니 당일치기로 가는 경우가 많으며, 드레스덴은 쇼핑, 체스키 크롬로프의 경우는 레프팅으로 많은 여행객이 간다. 지역도 작아서 프라하처럼 도보로 대부분의 볼거리를 모두 볼 수 있다.
공항인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는 대한항공과 체코항공의 관계 덕분에 한국어 표지판이 꽤 있는 편.
지금은 어딜 가도 한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게 되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숨은 명소로 유명했다. 일단 위에 써져 있듯이 볼만한 것이 엄청 많으며, 무엇보다 이국적인 느낌이 짙어서 제대로 외국에 왔다는 느낌이 확 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990년대 체코 물가가 굉장히 싼 편이었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의 엄청 비싼 물가에 절망한 한국 관광객 청년들의 마음을 힐링해주는 곳이었다. 지금은 폴란드 크라쿠프나 우크라이나 리비우가 잘 보존된 중세도시나 싼 물가 등 과거 프라하의 상황과 비교적 비슷한 편인데, 일반 관광객들의 서유럽 위주 루트에서 너무 먼 곳이라 아직 덜 붐비는 편이다.
데이어스 엑스: 맨카인드 디바이디드의 배경도시이기도 하다.
2 파이어 엠블렘 창염의 궤적의 등장인물
데인 왕국의 기사. 클래스는 팔라딘.
광왕 아슈나드에게 절대 충성하며 초반부터 중반까지 데인 왕국을 대표하는 적으로, 덕분에 지겹게 보는 분이다. 그걸 배려했는지 게임 그래픽이 매우 보기 아름다운 분
여성의 몸으로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실력 하나만으로 아슈나드의 인정을 받아 사준에 들어간 대단한 여자이다.
힘 대신 마력을 사용하는 창 플레임 랜스를 쓰는데, 멋진 무기이기 하지만 마력과 마항력이 힘과 방어보다 낮은 것을 왜 쓰는지는 알 수 없다. 능력치를 높게 설정해서 모양새를 맞춘 후 밸런스 조정을 위해서일지도.
인붙이이며 보기보다 오래 살아왔을 것이다. 세네리오가 인붙이인 걸 눈치채고 동류라고 부르기도. 인붙이의 문장은 오른쪽 가슴에 있다고. 하악
이래봬도 부하를 아끼며 능력 위주로 판단하는 장군. 그러나 인붙이이기에 라그즈는 굉장히 싫어한다.
생김새나 하는 짓이 누군가와 판박이인 건 기분 탓이다.
마지막에는 아이크 일행의 주인공 보정을 넘지 못하고, 패해서 전사한다. 그리고 플레임 랜스는 전리품으로 입수된다.- ↑ 이 블타바 강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s-1의 연작 교향시인 몰다우(체코어 블타바)로 유명하다
- ↑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4세가 세운 대학이다. 이후 합스부르크의 페르디난트 3세의 이름이 추가되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으로 바뀌었고, 대학의 독일어 사용 우위에 대해 체코어 사용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1882년에 독일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Deutsche Karl-Ferdinands-Universität)과 체코어 카를-페르디난트 대학(Česká universita Karlo-Ferdinandova)으로 분리되었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건국되자, 페르디난트 3세의 이름을 떼고 각각 이름을 바꿔 프라하 독일어대학(Deutsche Universität Prag)과 프라하 카렐 대학교(Univerzita Karlova v Praze)가 되었고, 독일어 대학은 독일계 체코인들 대부분이 추방된 1945년에 폐쇄되었다.
- ↑ 거리 번호도 두 가지가 있다.
- ↑ 얀 지슈카에서 따온 이름.
- ↑ 체코 전체의 경우 2014년 IMF 통계 기준으로 17171달러로 세계 42위이다.